그들 각자의 음악 여행기

이채민

DJ, 음악 칼럼니스트, 래퍼 이 세 사람이 각자 다른 도시로 떠났다. 텍스트와 사운드로 구성된 음악 여행기 삼부작이 어디로든 떠나볼 것을 재촉한다.

MAP landscape

나의 도쿄클럽 순례기

추천 사운드트랙 list

1. Fishmans – <宇宙 日本 世田谷 (UchuNippon Setagaya)>
2. YMO – Firecracker

디제잉을 하러 도쿄에 자주 간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도쿄는 전 세계 DJ들이 열광하는 중요한 좌표로서, 큰 규모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호황을 누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EDM이 창궐하면서 도쿄 클럽 신도 완전히 뒤집어졌다. 롯폰기 웨어하우스처럼 역사가 긴 클럽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작은 공간으로 클럽 신의 축이 옮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에는 여전히 건재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이 곳곳에 있다. 은밀하게 숨어 있는 클럽을 좋아하는데, ‘보노보(Bonobo)’라는 곳이 그렇다. 메인 스트리트에서 한참 벗어난, 조용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다. 보노보는 2층짜리 목조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공간으로 밖에서 외관만 얼핏 보면 전혀 클럽의 형상이 아니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면 나베가 보글보글 끓고 있고 꼬치 오뎅이 제멋대로 꽂혀 있는 작은 사케바가 등장하기 때문에 여기에 진짜 클럽이 있으리라고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신세계는 그 안에 있는 작은 문 하나를 열면 펼쳐진다. 마법처럼 사방이 온통 보라색 조명으로 물들어 있는 사이키델릭한 클럽이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처음 가는 사람은 갑자기 반전되는 분위기에 무서움마저 느낄 수 있다). 거기서 나오는 음악은 정말이지 ‘헉’ 소리가 나온다. 음악이 얼마나 멀고 깊은 세계로 사람을 데려갈 수 있는지 경험할 수 있달까. 2층으로 올라가면 다다미방이 하나 등장하는데, 디제이가 좌식 테이블에 앉아서 음악을 틀고 있는 모습도 진풍경이다. 건물 옥탑으로 올라가면 유리로 만들어놓은 작은 온실 같은 공간도 있다. 맥주 자판기에서 술도 뽑아 마실 수 있고 흡연도 할 수 있는 한 템포 쉬어 가는 곳 이다. 주변에서 ‘도쿄에 가거든 어디서 놀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보노보를 주저 없이 1순위로 꼽는다. 뭐랄까 나만 알고 싶은, 지켜주고 싶은 마력이 있는 클럽이다. 누군가의 이 한마디가 보노보가 어떤 곳인지 잘 압축하고 있다. “보노보는 도쿄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끝판이다!”

다음 소개할 4개 클럽은 시간대별로 조금씩 머물러볼 것을 추천한다. 첫 번째는 시부야역 앞 광장 근처에 있는 ‘바 브리지(Bar Bridge)’다. 좋은 디제이들이 와서 음악을 틀기도 하지만 사장님이 직접 커스텀메이드 방식으로 제작한 스피커의 사운드 품질이 남다르다. 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바 브리지에 가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다 사람이 서서히 모여들면서 북적거리면 ‘벤트(Vent)’로 자리를 옮겨볼 것. 내 생각엔 새벽 1~2시 사이가 적절한 타이밍이다. 오모테산도 힐스 끝자락에 있는 이곳은 규모가 좀 큰 편에 속하는 클럽이다. 간판도 따로 없어 처음 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 수 있다.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내가 가본 전 세계 클럽 가운데서 가장 사운드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디제이가 어떤 음악을 플레이하면 그것이 갖고 있는 고유의 음색이나 밸런스가 그대로 유지되어 조화로운 사운드로 구현된다. 일본에는 장인 정신을 가진 스피커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만든 스피커로 음악을 틀면 오랜 시간 들어도 귀가 전혀 피곤하지 않다. 스피커 앞에서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은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고, 그것은 곧 클럽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클럽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테리어 요소는 사운드 그 자체다.

클럽 순례기의 마지막 종착지는 ‘오스(Oath)’와 ‘터널’이다. 아오야마에 실제로 긴 터널이 있는데 그 끝자락에 위치한 클럽이다. 같은 건물 일층에 오스가 있고 지하에 터널이 있다. 새벽 3~4시쯤 가보면 조금 전에 벤트에서 본 사람들이 어느새 거기에 그대로 모여 있다. 새벽 5~6시가 되면 그날 도쿄 전역에서 음악을 틀었던 디제이나 크루들이 모두 여기로 넘어온다.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9~10시가 다 돼서야 음악이 멈추는 것 같다. 일요일 오후 1시부터는 오일장처럼 작은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작년 여름 도쿄에서 열린 캘빈 클라인 오프닝 행사의 애프터 파티도 여기서 했다. 그날 이 작은 클럽에 엘시디 사운드 시스템의 제임스 머피(James Murphy), 디 엑스엑스의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니나 크라비츠(Nina Kraviz)와 같은 웬만한 해외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급 디제이들이 다 모였다. 그런데 충분히 그게 가능한,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닌 상징성 있는 클럽이다. 도쿄의 진짜 멋진 사람들은 여기서 다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 디구루(DJ, 이디오테잎 멤버)

어느 도시를 가든지 그 지역 뮤지션들의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 가면 좋다. 짐가방을 싸서 듣고 비행기에서도 듣다가 여행지에 도착해서 다시 들으면 내가 알던 그 음악이 완전 다르게 들리는 순간이 온다. 내게 도쿄는 ‘피쉬만즈’라는 밴드의 음악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있는 도시다. 레코드 숍 주소 5개를 들고 첫 해외여행을 도쿄로 떠난 시절부터 정말 좋아하는 밴드인데 그들의 음반 중 도쿄 세타가야구에 대한 앨범이 있다. 도대체 어떤 동네이길래 노래까지 만들었을까 싶어서 일부러 그곳을 걸으면서 다시 음악을 들어봤다. 그 순간 말로 설명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이 일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젊은 시절 활동한, 전자음악 신에 한 획을 그은 밴드 YMO(YellowMagic Orchestra)의 ‘Firecracker’라는 곡도 도쿄에서 들어보면 그 도시와 음악이 착착 달라붙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여행지에서 들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도시, 그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오클랜드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추천 사운드트랙 list
1. Drake – Nice For What
2. BobbyCaldwell – WhatYou Won’tDo For Love
3. Junko Ohashi – TelephoneNumber

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
두 밤을 지나서 도착이야
새벽을 맞이한 이 도시
녹색의 파도가 수놓지
비슷한 듯이 보인 것이
자세히 보면 다 다르듯이 같은
이름의 다른 이야기
다른 세상이 날 맞이하지
인간이 발견한 마지막 섬
뉴질랜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은 것과
저 높은 스카이 타워
오클랜드란 도시는 거대한 요트
항해하는 신대륙과 키위의 솔
멋들어진 슬로 라이프
겪어보기 전엔 몰라
식사를 할 때마다 온 마음으로
언제 다시 여기 올까?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자연은 매번 감동을 줘
어딜 가든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해 “조금만 더”
시간이 느리게 가던 이 도시는 타투로 남아
아직도 가슴을 울리던 올 블랙의 하카
더 많은 이야기가 계속해서 살아 숨을 쉬고 있지
그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난 다시 이곳에 – MC 메타(래퍼)

올해 4월 공연을 위해 뉴질랜드에 다녀왔다. 오클랜드에 위치한 큐 시어터에서 ‘MC Meta Meets Newzealand’라는 타이틀로 열린 단독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당시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받은 단상과 감정을 떠올리며 그것을 랩 메이킹으로 작업해봤다. 추천 사운드트랙은 내가 뉴질랜드를 여행하며 즐겨 들은 곡이다.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를 찾아서

추천 사운드트랙 list
1. Carminho Meu – Amor Marinheiro
2. Gisela João – AsRosasNão Falam
3. Raquel Tavares – MeuAmor de Longe
4. Mariza – Rosa Branca 5. Ana Moura – Dia de Folga

와이프가 될 사람과 나는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서로 알게 되었지만, 나중에 서로가 친해지고 난 뒤 놀랍게도 같은 학교에 다녔으며, 심지어 같은 건물에서 교양 수업을 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수업 이름은 ‘대중음악의 이해’. 두 사람 모두 지금은 대중음악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 시절 과목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지루한 과목 속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였다. 우리는 각자 파두를 인상적으로 들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지를 리스본으로 정했다. 그렇게 우리는 파두가 탄생한 도시, 리스본으로 떠났다.

리스본은 살면서 열 번은 더 가고 싶은 곳이다. 우선 물가가 저렴하다. 놀라울 정도다. 두 사람이 실컷 먹고, 보고, 우버로 곳곳을 다녀도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어지간한 아시아 대도시에서 노는 것보다 몇 배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리스본은 힙하기까지 하다. 독립서점을 비롯한 문화 공간은 물론 컨테이너 파크, 코워킹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까지 트렌드 대부분을 수용하고 있다. 이벤트도 많다. 우리가 여행 중일 때는 포르투갈의 음악 신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네 팀이 경연을 벌이는 ‘레드불 컬처 클래시(Red Bull Culture Clash)’를 알리는 대형 광고가 리스본 곳곳에 걸려 있었고, ‘소파 사운즈 리스본(Sofar Sounds Lisbon)’이라는 이벤트 역시 꾸준히 열리고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고 가장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역시 파두다. 파두는 어딜 가나 있었다. 전통 플리마켓에서는 버스킹 공연이 자주 열렸고, 길을 걷다가도 곳곳에서 늘 파두를 들을 수 있었다. 파두 중고 음반을 파는 곳도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 파두 LP가 쥐어져 있기도 했다.

리스본에서도 알파마 지구에 파두 공연을 하는 카페와 바가 많다. 파두는 일종의 한과 같은 정서를 지닌 음악이다. 그 한은 포르투갈만의 정서이기에 별다른 표현을 찾기 힘들다. 목소리에서 들리는 한은 흡사 판소리에 비견되며, 거기에 고수의 북 대신 옆에서 구슬피 울어주듯 열두 줄의 기타가 처연하게 맞장구를 친다. ‘내 얘기를 들어봐다오’ 하는 듯하지만 때로는 무심하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부른다. 경쾌한 파두 음악조차 슬픔을 노래하니, 한국 사람이라면 가사를 잘 모르더라도 정서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포르투갈에서 파두를 접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이다. 광장에서도, 상점에서도, 카페에서도 들을 수 있는 것이 파두니까. 그러나 파두는 좀처럼 그냥 흘려듣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래서 괜히 거리를 서성이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포르투갈 현지인들은 ‘파두는 포르투갈 사람만이 부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파두 박물관에도 들렀다. 그곳에서는 수많은 파두 음악가들이 쌓아온 역사와 작품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었다. 파두는 대개 어두운 곳에서, 특정한 박자가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박물관 역시 어두운 편이었다. 1800년대에 리스본 알파마 지구에서 생겨난 이 음악이 2010년대인 지금까지도 멋지게 남아 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파두 음악을 하는 이들은 파두를 음악의 한 갈래보다는 파두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정서와 서사가 깊이 수반되어야 하며, 그걸 얼마나 잘 풀어내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적인 역량, 그러니까 가창력이나 연주력과는 별개의 무언가가 파두를 구성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리스본과 파두 모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기에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정작 리스본이 가장 아름다웠던 때는 해가 강하게 드는 선선한 날이었지만, 파두는 비가 오거나 날이 어두울 때 이따금 생각이 난다. 서로의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조명, 그만큼 어두운 알파마 지구의 골목, 저마다 흥미로운 모양새를 한 건물 아래 도로를 채우고 있는 삐뚤빼뚤한 돌, 열려 있는 문밖으로 나오는 포르투갈 기타와 음악가의 목소리까지 리스본은 어느 시간 하나, 어느 공간 하나 빠짐없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가득했다. 다시 리스본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느긋하게, 간판 없는 카페에서 이름 모를 음악가의 파두를 더욱 진득하게 들어보리라 다짐해본다. – 블럭(음악 칼럼니스트)

그저 전통 음악인 줄 알았던 이 장르에는 새로운 젊은 음악가가 꾸준히 등장하며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카르미뉴(Carminho), 기셀라 주앙(GiselaJoão), 라켈 타바르스(RaquelTavares) 같은 80년대생 음악가들이 파두 본연의 소리를 소화하면서도 현대적 해석을 시도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마리자(Mariza)나 아나 모라(AnaMoura)처럼 영미권과 남미에서 이름을 알린 스타들도 추천하고 싶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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