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살면 무슨 옷을 입을까? 24 FW 릭 오웬스 컬렉션

명수진

RICK OWENS 2024 F/W 컬렉션

이야기는 릭 오웬스가 살았던 캘리포니아 포터빌(Porterville)로부터 시작된다. 쇼 노트에 릭 오웬스는 엄격한 아버지가 집에 TV를 놓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썼다. “푸치니, 바그너, 퍼셀, 슈트라우스의 황홀한 음악에 맞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아버지는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의 문고판을 부드럽게 읽어주었습니다.” 25년 전, 포터빌을 탈출해 파리에 온 릭 오웬스는 옛 귀족들의 거주지였던 팔레 부르봉 광장(Place du Palais Bourbon)에 스튜디오와 집을 마련했다.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릭 오웬스는 파리 본사 부티크로 게스트를 초청해 살롱쇼 형태로 24 FW 시즌 컬렉션을 선보였다.

릭 오웬스의 기묘하고 뒤틀린 상상력에는 아버지가 그에게 들려준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쓴 <화성의 하녀, 튜비아 (Thuvia, Maid of Mars)> 같은 SF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투영되어 있다.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Pavane for a Dead Princess)>의 호른 연주를 믹스한 사운드트랙이 신비롭게 울려 퍼지고 마치 고난을 짊어진 듯한 드라마틱한 실루엣이 등장했다. 캣 슈트를 입은 모델들은 니트, 패딩, 알파카 등으로 만든 거대한 스카프를 마치 몸을 겁박하는 끈처럼 힘겹게 짊어진 모습이었다.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기괴한 마스크와 풍선이나 아코디언처럼 부풀린 고무 소재의 퍼프 부츠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고난의 짐은 때로는 어깨가 하늘로 삐죽 솟은 아방가르드한 톱과 거대한 망토 형태의 아우터로 변형되었다. 머리에 뒤집어쓴 헬멧 같은 바라클라바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몸을 감싸 ‘보호’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피날레는 스팽글을 장식한 스트랩이 뱀처럼 몸을 감고 있는 케이지 드레스가 장식했다. 이처럼 릭 오웬스는 몽상가적인 상상을 동원해 성서적 모티프와 미래의 유목민에 대한 상상력을 뒤섞었다.

카나리아 옐로, 더스티 로즈, 아쿠아 그린 등 아름다운 컬러 팔레트와 함께 소재의 특성도 도드라진다. 일부 재킷은 자전거 타이어를 업사이클링 해서 만들었다. 망토의 일부는 가족이 운영하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한 소규모 공장에서 정제된 빙하수를 사용하여 생산한 것. 거대한 보풀이 인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질감의 코트는 알파카 섬유를 펠트 처리하고 세심하게 브러싱 해서 생산했다.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릭 오웬스의 의상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야만적인 시대’에 따뜻한 위안을 준다. 언제나처럼 신비롭고 마법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프리랜스 에디터
명수진
영상
Courtesy of Rick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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