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밀리 데언이비스의 페라가모

이예지

90년이 넘은 페라가모의 역사를 탐험하는 그의 여정에 <더블유 코리아>가 동행해 대화를 나눴다

올해로 스물아홉 살, 이제 겨우 네 번째 런웨이. 두 해 전 페라가모의 새 수장으로 임명된 런던 출신의 맥시밀리 데언이비스(Maximilian Davis)는 유서 깊은 전통으로 무장한 페라가모를 단번에 현대적으로 변모시켰다. 하우스의 기원인 피렌체와 전통 패션 도시 밀라노를 오가며 90년이 넘은 페라가모의 역사를 탐험하는 그의 여정에 <더블유 코리아>가 동행해 대화를 나눴다.

2월의 밀라노는 내내 흐린 날씨와 대조적으로 신예들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몇 시즌 전 수장이 교체된 페라가모, 에트로를 비롯해 데뷔 쇼를 선보일 토즈, 블루마린, 모스키노까지 전통과 장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패션 도시 밀라노가 현대적 정서를 적극 수용하며 변신하려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훤히 보였다. 이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심에 페라가모의 젊은 수장 맥시밀리언 데이비스가 있다. 최근 패션계에서 빈번하게 이뤄지는 세대교체에 성공적으로 탑승한 인물 중 하나로, 영국 맨체스터 출신이며 트리니다드-자메이카 정체성을 가진 패션계를 대표하는 젊은 피다.

2017년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을 졸업한 그는 웨일즈 보너의 조수를 거쳐 자신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2022년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신성. 그가 갑작스레 대회에서 중도 하차했는데, 그 이유는 이 젊은 디자이너가 페라가모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혼란의 와중에 모두를 놀라게 한 파격적인 인사 발표였다. 젊은 디자이너 대회에서 이제 갓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를 번개처럼 낚아챈 이는 CEO 마르코 고베티였다. 피비 파일로, 리카르도 티시 같은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셀린느와 버버리의 부흥기를 이끈 이 베테랑 CEO는 맥시밀리언을 “비전의 명확성과 실행 수준 및 강력한 미학을 보건대 그는 지금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이런 초고속 인사는 위험성이 큰 모험이기도 했지만, 맥시밀리언은 보란 듯이 유서 깊은 이탈리아 럭셔리 하우스 페라가모를 아주 쿨하고 현대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리고 올해 2월, 당연히 기대를 품고 그가 네 번째로 선보이는 런웨이 쇼에 참석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신발 브랜드 중 하나인 페라가모의 기성복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막중한 책임을 지닌 맥시밀리언은 2024 F/W 컬렉션이 자유롭고 더없이 흥미진진했던 1920년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1920년대는 옷으로 자유를 표현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 표현을 나와 나의 헤리티지, 또 페라가모에 녹여내려고 했습니다.” 현대적 자유의 표현은 두툼한 울 캐시미어 소재 올리브색 코트 군단으로 시작되었는데, 아주 넓은 퀼팅 벨트가 달린 것, 가죽 셔츠와 스커트 셋업, 투명한 시스루 드레스에 매치한 것 등 다채로운 밀리터리식 변주가 돋보였다. 또 버건디색, 겨자색, 검은색 등 겨울에 어울리는 색이 주도하는 비슷한 그룹이 이어졌다. 비늘 같은 가죽 시퀸 드레스는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고, 성별의 경계 없이 날렵하지만 어딘가 투박하게 재단된 코트와 태슬을 주렁주렁 늘어뜨린 스커트, 비즈가 알알이 박힌 이브닝드레스가 매치된 룩은 모던한 대조 효과를 드러냈다. 마치 도발적인 것과 예의 바른 것 사이의 해결되지 않은 논쟁처럼 보이게 배치한 지점은 몹시 흥미로웠다.

슈즈가 전시된 뮤제오 페라가모의 입구. 페라가모 첫 번째 부티크 오픈 100주년을 맞아 <1898- 1960 살바토레 페라가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수많은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발에 직접 피팅을 했던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생전 모습.

슈즈로 번성한 페라가모에서 액세서리군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그가 페라가모 액세서리를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벼운 타조 깃털이 드라마틱하게 휘날리는 털북숭이 펌프스와 허벅지까지 오는 대담한 사이하이 부츠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얻은 역사적인 T바 펌프스와 유니섹스적인 브로그(Brogue) 장식, 몽크 스트랩(Monk Strap)도 부활했다. 한편, 맥시밀리언 데이비스가 페라가모에 온 이후 핵심 액세서리로 급부상 중인 허그(Hug) 백이 다양한 소재와 디테일로 등장했다. 새로운 페라가모 모노그램으로 뒤덮거나, 950개 이상의 가죽 스팽글을 손으로 일일이 쌓아 만들기도 했다. 까만 밤을 빛내는 그의 이브닝드레스에 제격일 액세서리들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막 컬렉션을 론칭했을 무렵 그에게 지원사격을 보낸 리한나, 두아 리파, 킴 카다시안 같은 디바들이 좋아할 드레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위한 테일러링 아우터와 젊고 도발적인 감각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컬렉션이었다.

밀라노 패션위크가 막을 내린 후 피렌체에 잠시 들러, 하우스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에 동참했다. 피렌체는 페라가모 가문이 깊이 뿌리내려 도시 번영을 도운 곳으로, 천재 슈메이커였던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중심 거리에 위치한 뮤제오 페라가모에서는 피렌체에서 할리우드로 건너가 여배우들의 발끝을 책임진 화려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삶을 간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피렌체 근교의 슈즈 아틀리에에서는 슈즈를 만드는 섬세한 과정과 장인 정신을 통해 페라가모가 슈즈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아카이브에서는 방대한 양의 슈즈, 의복, 가방을 통해 곧 100주년을 앞둔 하우스의 찬란한 역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맥시밀리언도 다녀갔음이 분명한 이곳이 그에게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 됐으리라는 것도 확신했다. 런던에서 밀라노로 건너와 거대한 패션 하우스 앞에 우뚝 선 그가 과연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확신은 묵묵함과 성실함이 엿보이는 그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다.

페라가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와 나눈 대화

당신이 이끄는 거대 함선 페라가모의 순항을 보는 중이다. 네 번째 정규 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다시 한번 축하한다. 어디서 인터뷰 답변을 쓰고 있나?
다음 컬렉션을 준비하며 밀라노에서 지내고 있다.

순항하고 있음을 내가 어디서 느꼈냐면, <더블유 코리아>가 매년 주최하는 한국의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Love Your W’가 있다. 지난해 이 자선 파티에서 한국 셀러브리티가 가장 많이 입고 싶어 한 브랜드 중 하나가 페라가모였다.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부디 좋아했으면 좋겠다.
서울에서 매년 열리는 큰 자선 파티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한국 셀러브리티들이 우리 컬렉션을 입은 사진도 보았다.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페라가모 입성 전과 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모든 거점을 이탈리아로 옮겼나?
페라가모에 합류하기 전 런던에 살았고, 페라가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평소 좋아하던 밀라노로 이사했다. 피렌체는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방문했다. 브랜드 아카이브를 보관하고 있는 아틀리에가 위치한 곳으로 페라가모의 핵심과도 같은 도시인데,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왜 이곳이 하우스의 정수로 오랜 시간 존재해왔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맥시밀리언표 페라가모의 영감의 줄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나?
브랜드가 오랫동안 중요한 가치로 여겨온 정교한 장인 정신은 페라가모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난 맨체스터에서 자라면서 처음 브랜드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 가족 모두 페라가모 신발의 열혈 팬이다. 난 가족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족을 중요시 여기는 태도는 우리 하우스뿐만 아니라 매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이 페라가모 컬렉션이 유서 깊은 페라가모 가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하면서 디자인 영감을 얻는다.

당신이 이 브랜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가장 먼저 부여받은 임무는 무엇이었나?
브랜드 헤리티지를 최우선으로 염두에 둘 것. 페라가모의 코드를 새롭게 다시 디자인하면서도 항상 브랜드의 뿌리를 기억하고, 그를 토대로 현대적인 컬렉션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하우스의 영광과 성취의 주인공인 슈즈는 내가 모든 룩을 디자인할 때 출발점이자 영감으로 삼는다.

CEO 마르코 고베티와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가? 리카르도 티시, 피비 파일로와 함께 일한 노련한 CEO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조언을 줄지 궁금하다.
그는 항상 나를 지지해주며, 오랜 경험에서 나온 혜안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주고 있다.

벌써 네 번째 런웨이 쇼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분기점이었을 것 같다. 이번 시즌은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두고 준비했나?
2024 F/W 컬렉션을 통해 1920년대 특유의 해방된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당시 초현실주의, 다다 같은 사조와 레이오그래프(Rayograph)의 발명은 텍스처나 컬러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요소를 왜곡해 새로운 표현을 발견한 출발점이었다. 더불어 1920년대 독일의 초현실주의 예술가 한나 회흐(Hanna Hoch), 만 레이(Man Ray), 라이오넬 웬트(Lionel Wendt) 같은 예술가들이 큰 영감이 되었다. 어느 날 마주한 레이오그래프(만 레이가 개발한 렌즈 대신 오브제를 바로 인화지에 올려놓고 빛을 비춰 추상적 이미지를 얻어내는 사진 기법) 초상화와 기법의 시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에 매혹되었다. 그것은 당시 아름다운 여성들의 얼굴을 통해 새로운 재단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 시대 패션은 자유를 표현하는 수단 중 하나였고, 그 자유의 표현에 나와 나의 헤리티지, 또 페라가모의 유산까지 녹여낼 수 있었다. 보호 또한 중요한 주제였는데, 1920년대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안전할 때까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으로 정체를 숨겼다. 이번 쇼에서 투명한 드레스에 매치한 두꺼운 퍼로 된 남성 오버코트는 보호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 컬렉션의 기본인 테일러링은 날카로운 실루엣의 옷깃을 왜곡된 비율로 만들어 초현실주의 정신을 표현했다.

전반적으로 실용적인 아우터가 강조된 컬렉션이라고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22번 룩이 멋졌다) 이번 시즌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은 무엇인가?
아, 선택하기 어렵다. 두께감 있는 헤비 울 캐시미어 코트나 재킷, 이브닝 룩이 가장 마음에 들긴 한다.

이번 시즌 당신의 의도가 잘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피드백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이번 컬렉션은 반응이 무척 좋았고, 매장에 어서 도착하기를 기대한다는 많은 리뷰를 봤다. 내 컬렉션을 입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더불어 이번 패션위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디자이너 톱 4에 오른 것 또한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이번 밀라노 패션위크를 마치고 피렌체로 향하는 짧은 페라가모 트립에 나도 참가했다. 뮤제오 페라가모, 슈즈 아틀리에와 아카이브를 방문한 일정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당신도 비욘세, 리한나와 같은 스타들과 깊은 인연이 있으니, 할리우드 부츠 숍을 운영한 살바토레 페라가모에게 디자이너로서 유대감을 느꼈을 것 같다.
내 컬렉션 활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자 출발점이다. 특히 슈즈 아틀리에의 아카이브는 1만4,977개의 신발, 1,663개의 가방, 5,280벌의 레디투웨어, 2,728개의 스카프, 5,754개의 넥타이 등이 보관된 경이로운 장소다. 또 가죽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와의 관계가 하우스의 심장 같은 곳에서부터 세계로,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곳인 이 아틀리에와 아카이브야말로 전통의 보전과 전승,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소중한 장소다.

페라가모에서 슈즈를 빼놓을 수 없는데, 당신이 디자인한 키 슈즈는 무엇인가?
2023 S/S 시즌 내 첫 번째 런웨이를 위해 간치니가 조형적인 굽으로 형상화된 엘리나 샌들(Elina Sandal)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카이브와 브랜드 코드를 재조합해 새로우면서도 기하학적 프로필이 완성됐다. 또 1956년 미국 고객을 위해 만든 18캐럿 골드 샌들에서 영감을 받은 2023 F/W 시즌 컬렉션에 처음 선보인 굽이 있는 뾰족한 펌프스, 1955년에 특허를 받은 페라가모의 상징적인 케이지 힐을 모티프로 한 2024 S/S 시즌 샌들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팝 팬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질문해보자면, 앰배서더 NCT 제노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떤지 궁금하다.
페라가모가 추구하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조해가는 열정을 가진 제노와 함께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그는 매력적이고, 젊은 세대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주며, 그의 음악과 스타일, 페르소나는 무척 특별하다.

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나?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때로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요리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짧은 목표, 긴 목표가 궁금하다.
다음 컬렉션! 다음 쇼가 목표이다.

사진
Courtesy of Ferrag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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