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말했다.
여기 4명의 여행가는 바로 그 새로운 눈을 얻고자 배낭을 멨다. 건축가, 갤러리스트, 가구 컬렉터, 미식 전문가가 저마다 여행지에서 마주한 영감의 장면을 보내왔다.
[건축]을 좇아 떠난 여행
장면 하나 은둔형 건축가의 활짝 개방된 건축
여행지 스위스 쿠어, 페터 춤토르 아뜰리에
페터 춤토르는 은둔형 건축가로 유명하다. 상업적 작업엔 영 관심이 없고 자신이 온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작업만 맡기에 그는 설계를 의뢰하기에 가장 어려운 건축가로 꼽힌다. 이 은둔의 고수가 스위스 작은 마을에 집과 사무실을 지어 살고 있는 모습이 궁금해 불현듯 스위스 쿠어행 비행기를 끊었다. 그렇게 쿠어 산기슭에 자리한 마을 할덴슈타인에 도착, 그곳에선 그가 아무리 세상 어려운 사람이라지만 마을 주민들에게는 따뜻한 사람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가 없는 집 중정에
는 마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있었고, 세 건물 모두 딱히 게이트로 막혀 있거나 통제되어 있지 않았다. 실제 이웃들도 입을 모아 그가 얼마나 따듯한 사람인지 말해주었다. 작고 사소한 요소 하나 놓치지 않는 춤토르의 건축물은 어쩌면 그의 까다로운 성격과 따뜻한 인품이 합쳐져 나온 것이 아닐까? 앞으로 단순히 설계에만 매진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태도를 지니며 건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장면 둘 고즈넉한 자연 속에서 드러난 뾰족한 존재감
여행지 스위스 발스, 하우스 발마
발스는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곳에서 굳게 믿고 있던 상식의 틀을 깨는 한 계기가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은 으레 있는 듯 없는 듯, 즉 최대한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있는 설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마을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몇몇 건축물은 그러한 태도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설계한 ‘하우스 발마’는 첫인상부터 무시무시했다. 마치 4층 석탑을 연상시키는 외형.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런 괴이한 모습이 주변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사실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을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지붕을 각도만 다르게 하고 4칸으로 만들어 입면 요소로도 활용하였다. 발스에서는 예부터 목재와 석재를 쌓아 집을 지었는데, 쿠마는 두 재료를 함께 공중에 매달아 마치 쌓여 있는 것처럼 구현하였다. 이 두 재료의 색 조합은 주변 오래된 집들이 그러하듯 목
재가 변색한 것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하우스 발마는 마치 이런 인사이트를 던지는 듯만 했다. 침묵하는 설계가 아닌, 주변 맥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
장면 셋 가장 충실한 미술관 디자인이란
여행지 스위스 리헨,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가장 큰 차이는 기능이다. 그렇다면 순수미술을 담는 공간은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할까? 적어도 뉴욕 여행 당시 방문한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 디자인’으로서는 실패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반면 렌초 피아노가 건축 설계를 맡은 리헨의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구겐하임과는 달리 관객들이 공간 자체보다는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는 인상이 스쳤다. 다른 말로, 기능을 아주 충실히 체현했달까. 가장 큰 노력이 들어간 천장 디테일마저도 자연광을 실내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전시가 더 돋보이게끔 했다. 사실 렌초 피아노는 필요하다면 자기 건축물을 돋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몹시 뛰어난 건축가다. 그러한 그가 이렇게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하는 건축물을 짓다니. 좋은 디자인을 결정짓는 것은 가장 당연한 부분을 소홀히 취급하지 않고 충실하게 해결해냈는가에 달려 있음을 다시금 상기했다.
장면 넷 벽돌 그 이상, 계속해서 발견되는 재미
여행지 스위스 바젤, 바젤 시립미술관
영화든 책이든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가 덜하다.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발견하는 좋은 디자인 요소들은 집중력을 높이고 의외의 재미를 준다. ‘바젤 시립미술관’을 실제로 방문하기 전까진 그저 벽돌을 특이하게 활용한 사례라는 점만 알고 있었다. 벽돌 패턴으로 박물관 이름을 새겨 넣은 줄 알았던 부분이 사실 벽돌 각도와 LED를 이용하여 미디어처럼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건축계에서는 ‘Less is more’ 또는 ‘Less is a bore’라는 말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둘 다 적용되지 않는다. 이곳의 전시 공간은 건축가들이나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가 가득하지만 관람객에게는 전시에 집중하게 하는 명확하고 단순한 공간이다. 그에 반해 공간이 전환되는 계단실은 누구나 알아볼 만큼 재미있는 공간감을 보여준다. 사전 지식이 없던 덕에 답사 내내 시간이 가는 줄 모른 채 온 정신을 집중해서 볼 수 있었으며, 이 글은 사전 조사를 하지 않고 간 답사에 대한 변명이다.
– 조세연(건축사무소 ‘노말’ 소장)
[예술]을 좇아 떠난 여행
장면 하나 고장난 현대인을 위한 미술관
여행지 미국 메릴랜드 포토맥, 글렌스톤 미술관
평소 강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나는 전시를 관람할 때도 늘 바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눈앞의 작품을 제대로 살펴보기도 전에 작품 설명 텍스트로 돌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여름 방문한 워싱턴 D.C.에서도 그렇게 갖가지 정보를 과식하며 돌아다니다, 하루는 메릴랜드의 고즈넉한 동네에 위치한 ‘글렌스톤 미술관’을 찾았다. 큐레이터 에밀리 웨이 레일스와 사업가 미첼 P. 레일스 부부가 2006년 약 28만 평의 부지에 개관한 사립 미술관인 이곳은 ‘사색의 미술관’을 표방한다. 미술은 단편적인 해석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 설립자의 뜻에 따라 작품 설명 텍스트를 일절 제공하지 않는다. 관람의 질을 위해 실내에서는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정보 수집과 기록의 행위가 전면 차단된 전시실 안, 관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앞의 미술을 오롯이 경험하고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행여 작품을 보다 질이 생기면 각 전시실에 상주하는 가이드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일방적인 설명 대신 서로 오갈 수 있는 대화를 유도한다. 엘스워스 켈리, 리처드 세라, 바바라 크루거 작품 등 어마어마한 컬렉션을 전시하는 글렌스톤은 아무런 지자체의 금전적 지원 없이 운영됨에도 ‘정보 중독’으로부터 치유가 필요한 그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을 것을 약속한다. 입구에선 이런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입장은 ‘언제나’ 무료입니다(Admission is always free).”
장면 둘 변화무쌍한 삶과 예술의 터전
여행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에인베르크
어느 날 친구와 각자가 꿈꾸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선 편하게 일할 사무실이 마련되어 있고, 동시에 나의 취향을 마음껏 전시할 수 있으며, 가끔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개최해 공익을 충족시킬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두서없는 생각을 마구 쏟아내다 보니 이 꿈의 공간은 뚜렷한 실체로부터 점점 멀어져갔고, 결국 우리는 이를 ‘부동산 서류에 건물의 용도를 무엇으로 분류할지 고민될 정도로 변화무쌍한 곳’ 정도로 정리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의 주택가에 위치한 ‘에인베르크’는 내가 막연히 꿈꿔온 판타지가 아주 가깝게 실현된 곳이었다. 에인베르크는 2017년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북 디자이너 이르마 붐이 우표 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 남편 율리우스 베르뮬렌과 함께 설립한 곳이다. 이곳은 그들의 집이자, 이르마가 디자인한 수백 권의 책이 명예의 전당처럼 전시된 열람실이며, 작업실이자 오피스, 그리고 율리우스 취향의 작가를 발굴·지원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다. 다양한 창작자와 형태의 예술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품(네덜란드어로 Eenwerk)’인 셈. 설립자 부부는 삶의 순간순간에서 받은 영감을 작업물에 폭넓게 녹여내고자 가장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을 여러 창작자가 만나는 곳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지난 2월, 율리우스가 작고한 이후 이곳은 그의 예술적 레거시를 이어가는 터전이라는 또 다른 목적이 생겼다.
장면 셋 샤갈이 꿈꾼 막을 내리지 않는 무대
여행지 프랑스 파리, 팔레 가르니에
평소 공연을 즐겨 보지도 않는 내가 수시로 취소 표까지 찾아가며 ‘팔레 가르니에’에서 진행되는 발레 공연 <지젤>을 예매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의 이유에서다. 바로 팔레 가르니에 극장 내부에 샤갈이 그린 천장 벽화를 꼭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 샤갈 특유의 선명한 색채와 서정이 살아 있는 이 벽화는 화려하기로 유명한 본 건물의 웅장한 대리석 계단과 샹들리에에도 결코 압도당하지 않는 존재감을 내뿜는다. 각종 발레 및 오페라 연극의 의상 디자이너로도 활약했던 샤갈은 천장 패널에 모차르트, 드뷔시, 바그너, 차이콥스키 등 저명한 작곡가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개중에는 내가 관람한 <지젤> 1막의 막바지에 마을 사람들이 숲속에서 함께 춤추는 장면도 있다. 그래서인지 1막이 끝난 인터미션 때 조명이 환하게 켜진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방금 본 무대의 시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극장이 연극의 일부가 되는 총체적 예술을 꿈꾼 샤갈의 의도가 정확히 통한 셈이다. 그런데 샤갈은 프랑스 정부가 의뢰한 이 근사한 천장을 그려놓고도 재료비를 제외하고는 돈을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그가 중요하게 여긴 건 돈이 아닌, 무대 위의 순간을 그림으로 영속화하는 그만의 창작적 이상의 실현이 아니었을까.
장면 넷 살아 있는 고미술
여행지 독일 쾰른, 콜룸바
미술사를 전공한 나조차 고미술 위주의 전시를 볼 땐 종종 지루함을 느끼곤 한다. 이 옛것이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에 얽힌 이야기를 더 살펴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맥락 없이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고미술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은 전시 기관의 몫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콜룸바’는 자칭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얼핏 뻔하게 들리는 슬로건이지만 콜룸바는 지나간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이를 동시대의 맥락에서 제시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내고 있다. 먼저 박물관의 건축이 그 정체성을 대변한다. 건축가 페터 춤토르는 중세 시대 콜룸바 성당의 남은 유적을 그대로 활용해 이를 모던한 회색 벽돌의 외벽을 지닌 건물로 탈바꿈했다. 고대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소장품을 적절히 섞어 전시하는 큐레이션 방식에서도 그 노력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예컨대 최근 진행한 전시에서는 콜룸바 예배당에서 발견된 14세기 십자가 오브제를 앤디 워홀의 거대한 십자가 페인팅과 함께 배치했다. 병치된 두 작품을 두고 전시 책자는 ‘가톨릭 의식에서 구원과 승리의 서사를 일깨우는 도구로서 사용된 십자가’와 ‘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무한 증식되는 기호로서의 십자가’의 차이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동일한 기호의 의미가 시대와 국가,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관통하며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섬세하게 일러주는 미술관 덕에 관객은 각 작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과의 연결점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 박지민(갤러리스트, 예술 전문 인스타그램 ‘크락티(Crakti)’ 운영)
[음식]을 좇아 떠난 여행
장면 하나 200년 전, 인도 북서부의 풍경으로
여행지 인도 뉴델리, 부카라
12명이 아무 말도 없이 손과 입을 바쁘게 움직였다. 포크도 나이프도 없이 낮은 나무토막 위에 앉아 지름이 1m에 이르는 커다란 난을 뜯어 렌틸콩 수프에 푹 적셨다. 잠깐, 여기가 클린턴, 오바마, 트럼프까지 왔다 간 미국 대통령 맛집이라고? 인도 뉴델리 최고의 럭셔리 호텔 중 한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이라고? 순간 잊었다. 거의 동굴 같은 레스토랑 분위기, 인도 북서부의 부족 식사를 하는 것처럼 천장에 구리 냄비가 주렁주렁 매달린 이곳, 가스와 인덕션 하나 없이 오직 장작불과 항아리 구이로 모든 요리를 만드는 이곳이 ‘호텔 안에 있다’는 것을. 내가 아는 세계 각국, 인도 출신의 셰프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 레스토랑 ‘부카라’에서였다. 1977년에 영업을 시작해 단 하루도 만석이 아닌 날이 없었다는 이곳은 밤 11시 30분에도 입장 대기 줄을 선 고객들로 나에게 충격을 안겼다. 인도 북서부의 전통적인 꼬치 요리를 통해, 소박하지만 과감한 전통의 맛을 고수한다. 번뜩 생각이 들었다. 한식 음식점이 서울의 럭셔리 호텔에 있었다면 이렇게 소탈하고 대중적인 로컬 문화를 그대로 포용할 수 있었을까? 숟가락 하나 없이, 손으로 닭다리를 잡고 뜯으라고, 먹는 방식까지 타협 없는 전통을 자연스럽고 자랑스레 안내할 수 있을까? 수많은 SNS 콘텐츠가 인도 요리가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오해와 차별을 부추기지만, 이곳에서는 굳이 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것을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든 미식가든 관광객이든 현지 사람들이든 다 똑같이 인도 요리 유산의 일부가 된다. 향신료를 가득 발라 원시적으로 불에 굽고 익힌 단순한 요리는 원초의 감각으로 모두를 이끈다. 손가락에 묻는 따뜻한 소스는 음식이 원래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같다. 사랑과 온기가 가득한 것, 위도 아래도 없이 그저 맛있고 배부르고 행복한 것.
장면 둘 랍스터 요리에서 맛본 미식의 정수
여행지 홍콩, 카프리스
랍스터와 함께 나온 소스를 살짝 포크에 묻힌 뒤 입에 가져갔다. 아! 눈을 감았다. 완벽함의 정의는 무엇인가? 소스가 딱 달 라붙어 말문이 열리지 않았고, 행여나 다른 감각의 방해로 이 황홀한 여운이 사라질까 봐 눈을 뜰 수 없었다. 홍콩의 미쉐린 3 스타 프렌치 레스토랑 ‘카프리스’의 특별 요리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손꼽히는 로마네 콩티DRC 특별 디
너를 위한 요리. 요리의 모양새는 평범했다. 잘 구운 랍스터, 속을 채워 구운 동그란 호박꽃, 그리고 갈색 소스. 하지만 한 입 먹자마자 모든 세포의 감각이 전율했다. 소스의 온도, 질감, 향, 미묘한 스파이스 뉘앙스까지 알수록 보이는 디테일이 오감의 폭죽을 끊임없이 터뜨렸다. ‘미식의 정수’란 무엇일까? 단순히 개인의 입맛을 떠나서, 절대적으로 더 높은 경지의 미식이 존재할까? 이 랍스터 소스 덕에 나는 답을 찾았다. 결국 미식의 최전선에 있는, 이 접시 위의 창작물에 인생을 바치는 예술가이자 노동자인 셰프들은 본질적으로 극한의 기술자다. 잘 구현한 최종 제품만이 명품이 된다. ‘창의’라는 미명으로 그저 새롭기 위한 새 요리를 만들고, 특이한 조합으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지루한 반복을 통해 이룬 장인의 경지로 정교한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도 그렇다. 대부분은 거창한 계획을 말하지만 중요한 하나의 문장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귀하다. 그저 편안해 보이는 미소 뒤에 얼마나 많은 실패와 좌절, 도전의 시간이 있었는지 알기에.
장면 셋 꿈꾼 대로 살아보는 삶
여행지 말레이시아 파항
각국의 미쉐린 스타 셰프들과 함께,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1시간 남짓 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금세 열대 정글이 나온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산 중턱에서 2014년, 로커이자 영화 제작자 남편과 건축가 아내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바람결에 엘더플라워가 흔들린다. 향이 햇살처럼 쏟아진다. 커다란 화덕에서 오리고기를 굽고, 자연이 만든 것들을 바로 수확해 꾸밈없는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투박하지만 향이 가득한 로즈메리 감자구이에 레몬즙을 뿌리니 와인이 저절로 들어간다. 우리는 아이처럼 농장의 열매와 꽃을 따서 먹고, 이곳의 시소가 일본 시소보다 낫다며 일본인 셰프와 농담을 하고 웃었다. ‘언덕 위의 작은 농장(A little farm on the hill)’은 글자 그대로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밭이다. 농사를 짓고 자연의 삶을 살아보겠다며 쉰을 넘은 부부가 그저 새 도전을 시작한 취미 같은 공간이었다. 농사짓는 법을 알아서 시작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살겠다고 결단했기에 씨를 뿌리고 열매를 가꾸는 법을 애써 배웠다. 실패가 더 많았다. 산의 위 비탈, 아래 비탈 작물을 시험하며 시행착오를 겪은 지 10년 차, 하다 보니 미식의 최전선에 있는 셰프들이 찾아와 함께 농장을 일궜고 함께 가꾸는 텃밭이 됐다. 농장의 개들은 한참이나 밭을 뛰어다니다가 오두막의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잔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보니, 또 그렇게 살게 된다더라. 무슨 일이든 잘 알기에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 보다. 태양과 함께 꽃이 피고 바람에 춤추는 정글 농장의 부부처럼.
장면 넷 나누고, 던지고, 섞이고
여행지 싱가포르
다 같이 커다란 쟁반 앞에 서서 열 번이 넘도록 “꽁시파차이(복 많이 받아요)!”라고 외치며 50cm는 족히 되는 기다란 젓가락으로 잘게 채 썬 채소들을 천장에 닿도록 던져 올렸다. 광둥어로는 ‘로헤이’, 복을 부르는 음식인 ‘유생’은 원래 생선을 뜻하지만 동음이의어가 ‘번영’ 을 의미하기에 새해에 복을 빌며 먹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음식이다. 불꽃놀이 같았다. 알록달록 예쁜 색 재료들은 행운과 건강, 재물까지 저마다 의미를 담고, 생일 폭죽을 터뜨린 듯, 때로는 식탁 위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들 즐거웠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 뭐든지 빨리 시작하고 빨리 마무리하는 한국인에겐 이미 ‘새해’는 공식적으로 끝난 지 2주나 된 때였다. 신정은 말할 것도 없고 구정 연휴도 지났으니까. 그리고 떠난 2월 말의 싱가포르 출장에서, 아직도 거리는 신년 축제 분위기가 가득했다. 거리 곳곳에서 춘절 사자춤을 몇 번이나 보았으니까. 중국계가 대다수인 싱가포르는 이 기간에 중국식 레스토랑이 특히 붐비는데, 이 신나는 축제 분위기에 섞여 나도 엉겁결에 ‘로헤이’를 했다. 함께 크게 외쳤다. “꽁시파차이!” 많은 복과 재물이 함께하기를, 둥근 접시 위에 섞이는 모두의 소망 같은 마음으로. 음식은 곧 축제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 이정윤(다이닝미디어아시아 디렉터)
[알바르 알토 가구]를 좇아 떠난 여행
장면 하나 알바르 알토의 시작이자 상징
여행지 핀란드 파이미오
파이미오 요양원 알바르 알토와 아이노 알토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된 ‘파이미오 요양원’을 여행한건, 이제 막 알바르 알토의 가구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파이미오 요양원과 41번 암체어 ‘파이미오’만 알던 때에, 무슨 자신감으로 차도 없는 여행자가 핀란드의 남서부까지 향했을까. 투어를 시작하기 위해 요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1월의 북유럽이 안겨주는 매서운 추위와 공간은 유독 대비를 이뤘다. ‘그러니까 요양원이었겠지’라는 느낌 이상으로 알토 부부의 디테일은 곳곳에 묻어 있었다. 천장 조명의 빛을 상부로 은은히 퍼지게 하여 환자의 눈이 부시지 않게 했고, 큰 창 앞으로는 환자들의 이동을 위해 계단을 낮게 설계했다. 그뿐만 아니라 병실은 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문부터 개수대 형태까지 신경 썼고, 옷장과 조명, 서랍장과 간이 테이블은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다양한 기능을 소화할 수 있게 디자인한 동시에 눈에 편한 색상으로 제작하여 이 건축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히 했다. 알토 부부는 단순히 요양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고려하여 작은 부분까지 직접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설계했다는 사실이 오늘날까지도 이 요양원에서 나온 제품을 가치 있게 만들고, 수집가들을 매료시키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도 이곳에 다녀온 이후로 1930년대 빈티지 제품을 단순히 오래된 가구를 넘어,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장면 둘 두 대학교에 남겨진 알토의 흔적
여행지 미국 보스턴, 베이커 하우스 & 우드베리 룸
종종 살아 있는 빈티지 제품을 생각한다. 물건에, 그리고 빈티지 제품에 살고 죽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알토의 제품에는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구 쇼룸이나 갤러리, 박물관 등 제품을 소개하기 위한 공간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오래전 설계된 공간에서 가구들이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을 때, 살아 있음을 더 또렷이 느낀다. 대표적으로 MIT의 기숙사 ‘베이커 하우스’와 하버드 대학교의 라몬트 도서관에 있는 ‘우드베리 룸’이 그렇다. 알바르 알토가 MIT 교수로 재임하던 시절 미국에 남긴 유산 세 곳 중 두 곳인데, 베이커 하우스는 여전히 알토의 가구와 조명이 기숙사에 남아 있어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베이커 하우스만을 위해 제작한 몇몇 희귀 제품은 1999년 리노베이션 시 수집가들의 손에 넘어간 듯싶지만, 사실 정확한 건 들어가보지 못했으니 알 수 없다. 밖에서 보거나, 학생들의 유튜브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서랍장과 벽 선반, 그리고 조명뿐이다. 1949년에 완공되어 사용하던 한 건축가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니,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아름답다. 시 낭송 전문 아카이브인 하버드 대학교 라몬트 도서관 내 우드베리 룸 역시 알바르 알토가 1949년에 설계한 곳이다. 책을 찾는 사람의 눈부심을 배려한 서가의 천장 조명이나 플로어 조명, 굽이 달린 다양한 ‘L-leg’ 제품과 책 보관을 위한 캐비닛 등이 눈에 띈다. 완공 당시부터 사용한 것이 맞다면, 스웨덴 헤데모라에서 생산하던 시기의 알토 제품들이다. 이렇게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빈티지 제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수집가로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장면 셋 살아 숨 쉬는 빈티지를 찾아서
여행지 핀란드 위배스퀼래, 위배스퀼래 대학
알토의 살아 있는 빈티지 제품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핀란드 중남부를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했을 당시만 해도 알바르 알토 뮤지엄이 기나긴 리노베이션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갈 수 없었고, 가 볼 수 있는 건 비르피 수타리의 2020년 다큐멘터리 필름 에도 나왔던 ‘위배스퀼래(Jyväskylä) 대학교’뿐이었다. 캠퍼스로 진입했을 때, 가장 먼저 반겨준 건 알토 디자인의 특징이 녹아든 도어 핸들이었다. 이어서 건물의 상부 창 너머로 A337, ‘비행접시’라는 별명을 가진 조명이 보였는데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지도 만지지도 못할 빈티지 제품을 ‘보러’ 온 동양인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수상했지만, 이럴수록 뻔뻔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건물을 돌아다녔다. 학생들 무리에 휩쓸려 도망치기도, 다시 도전하기도 하면서 위배스퀼래 대학의 메인 건물에 다다랐을 때, 대수롭지 않게 배치된 수많은 알토의 빈티지 제품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혹은 공부하며 일상적인 시간을 저 귀중한 빈티지 제품과 함께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나 같은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태도를 보인 경비 아저씨의 사무실에도, 지금 세계의 어느 쇼룸에서 값비싸게 판매하고 있을 제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모습을 상상하면서 여기까지 왔지. 영리 목적의 공간이 아닌 곳에서 살아서 여전히 숨 쉬고 있는 빈티지 제품을 보는 것, 이게 내 수집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장면 넷 수집가를 위한 집은 무엇이 다른가
여행지 프랑스, 메종 루이 카레
‘메종 루이 카레’는 프랑스인 수집가이자 갤러리 오너였던 루이 카레를 위해 알바르 알토가 설계한 개인 주택 프로젝트로,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유일한 알바르 알토 건축물이기 때문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역시나 별장이다 보니 여행객이 방문하기에는 번거로운 위치에 있다. 이곳은 알토가 1939년 가구 브랜드 ‘아르텍’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마이레 굴리크흐센을 위해 설계한 주택 ‘빌라 마이레아’와 많은 공통점을 공유한다. 추위를 막기 위한 이중창과 창문 앞 플랜터 가구 그리고 마스트(돛대) 형상의 기둥이 대표적이다. 또한 굴리크흐센이 그랬듯 루이 카레 또한 수집가였다는 점에서 공간 분리를 위한 일본식 파티션과 수집품 보관을 위한 공간을 반영했다는 점이 그러했다. 알토 디자인의 도어 핸들이 다양한 줄은 알았지만, 용도를 구분한 줄은 몰랐는데, 이 집에서는 사적 공간과 공용 공간의 도어 핸들을 구분하여 공간의 성격
에 따라 통일감을 주면서도 디테일한 면을 살렸다는 점이 기억에 남았다. 이는 수집가로서가 아닌, 추후 내 집을 인테리어하는 데도 귀한 아이디어가 될 듯싶다. 더불어 이 집에는 희귀한 알토 디자인 제품이 있는데, 다이닝룸의 펜던트 조명과 ‘A809’ 조명의 프로토타입과 개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V-leg’ 스툴, 그리고 ‘H-leg’로 제작된 캐비닛 등은 이곳 외에는
만날 수 없거나 힘들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또한 감사한 점은 루이 카레의 부인인 올가 카레가 2002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자녀가 없어서 그들의 수많은 수집품이 상속인들에게 나눠지고 팔렸지만, 이 루이 카레의 집만큼은 프랑스의 알바르 알토 협회에 의해 보존할 수 있게 된 덕분에 60년 이상 된 이 집의 오래된 제품을 여행객으로서, 수집가로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 권혁도(가구 컬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