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삐딱하게, 24 FW 펜디 컬렉션

명수진

FENDI 2024 F/W 컬렉션

런웨이에 층층이 텐트를 드리워 공간을 분할하고 은밀한 느낌을 더했다. 커튼 사이로 튤립처럼 우아한 실루엣의 짙은 브라운 그레이 코트가 오프닝을 열었다. 스탠드칼라와 여밈 사이로 화이트 자락이 살짝 엿보이는 ‘선’의 미학이 오리엔탈 무드를 물씬 풍기는 코트였다.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겨 두 가닥의 로우 번 헤어를 한 모델은 영화 <스타워즈>의 레아 공주를 연상케 했다.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가 지난달에 열린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자신이 <스타워즈>의 오랜 팬이고 수집품도 꽤 가지고 있음을 고백했던 것이 떠오르는 지점이다.

킴 존스는 펜디의 1984년 아카이브에서 이번 24 FW 시즌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아카이브로 남아있는 스케치를 보고 저는 당시 블리츠 키즈(Blitz Kids, 80년대 런던의 전설적인 클럽인 블리츠를 놀이터 삼아 놀았던 세대로 보이 조지, 듀란듀란으로 대표됨)와 뉴 로맨틱(New Romantics), 그리고 워크웨어와 귀족 스타일과 일본 스타일이 뒤섞인 런던을 떠올렸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떨쳤던 80년대 영국의 서브컬처를 펜디의 고전적 로만 스타일과 믹스 매치한 것!

오리엔탈적인 코트와 슈트에 이어 그레이, 카키, 브라운 컬러 팔레트의 터틀넥 니트와 팬츠, 미니멀한 스커트 슈트, 셔츠 드레스가 줄줄이 등장했다. 언뜻 봤을 때에는 꽤 우아하지만, 이면에는 영국 서브컬처 특유의 삐딱함을 숨겨 놓았다. 무릎 기장의 랩스커트가 펄럭일 때마다 쇼킹한 원색의 타이즈가 슬쩍슬쩍 보였고, 해체된 케이블 니트를 볼레로나 숄처럼 무심하게 둘렀다. 셔츠 드레스는 앞뒤가 뒤집힌 것처럼 패턴을 구성했고, 여러 질감의 니트를 분해하고 비틀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하이브리드한 풀오버나 상의에 뜬금없이 부착한 바라클라바가 눈길을 끌었다. 하다못해 평범한 니트도 소매 한쪽은 걷어 올리고 한쪽은 내려서 비대칭으로 스타일링했으니, ‘삐딱해지고자 한’ 의도가 다분히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반전 매력은 거의 모든 룩에 매치한 부츠였다. 특히, 컬렉션 후반부에 등장한 신성한 고대 조각상 프린트가 도발적인 사이하이 부츠와 충돌하며 멋진 트위스트를 보여줬다. 또한 펜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소재에 대한 집요한 연구이다. 런웨이에서 모피를 입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델들도 꽤 있겠지만, 정교하게 깎아서 마치 코듀로이처럼 가공한 밍크 풀오버나 낡은 듯 갈라진 것 같은 크랙 질감을 가미한 시어링 코트, 실크보다 더 부드럽고 가볍게 가공한 레더 원피스는 등장하는 순간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개의 백을 함께 드는 스타일링을 통해 다채로운 백 컬렉션을 선보였다. 액세서리 및 남성복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아이코닉한 피카부(Peekaboo) 백을 부드럽게 변형하고, ‘심플리 펜디(Simply Fendi)’라고 이름 지은 새로운 새첼 백을 선보였다. 한편, 추파춥스 모양으로 생긴 펜던트를 가죽 목걸이나 가방에 달아 장식했는데, 이는 조만간 틱토커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이 열광할만한 아이템이 될 것 같다.

영상
Courtesy of Fe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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