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존중,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비전

김현지

이탈리아,솔로메오,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인본주의적 기업을 표방하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젊은 감각으로 이끄는 부사장 캐롤리나 쿠치넬리(Carolina Cucinelli)의
비전은 사랑과 존중, 그리고 믿음과 같은 애정 어린 단어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W Korea>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한국에서 낯선 브랜드가 아니다. 특히 주목했으면 하는 지점이 있나?
Carolina Cucinelli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 솔로메오(Solomeo)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한 지역 사회가 기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놀랍지 않나! 이 곳에서는 조용한 삶의 방식이 곧 열정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인본주의적 기업을 표방한다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당신의 해석 역시 궁금하다.
아버지이자 창립자,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환경, 특히 자연 속에서 영감과 창의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솔로메오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수익의 일부를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 사용한다. 공원, 원형 극장에 이어 우리의 소중한 프로젝트인 유니버설 도서관이 곧 완공될 예정이다. “도서관을 짓는 사람은 미래 세대를 위해 공공 곡물 저장고를 짓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오늘날 우리가 이룩한 모든 것의 수호자가 될 세대의 미래를 꿈꾼다.

당신은 나무보다 숲을 보는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 중 특히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있나?
옷에 대한 생각도 크지만, 최근 들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의 자리를 대신할 젊은이들에게 100년 후에도 변함없을 브랜드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탐구하고 또 이해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중부 지역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 솔로메오에 위치한 브루넬로 쿠치넬리 본사.
브루넬로 쿠치넬리 부사장, 캐롤리나 쿠치넬리.

브루넬로 쿠치넬리에서 일하는 것이 원래 당신의 꿈이었나?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좋은 추억으로 가득하다! 재봉사가 꿈이었던 어린 시절, 오후 내내 공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바느질과 뜨개질을 배우며 소재나 원료에 대한 엄청난 열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내 인형들을 위한 옷을 만들곤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작은 광장에서 축
구를 하던 자유로웠던 순간도 기억난다.

아버지에게 얻은 가장 큰 가르침은 무엇인가?
존경과 존중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를 관통하는 공통된 키워드를 꼽아달라.
모든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에 대한 존중이다.

브랜드의 철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늘 꿈꾸는 바다! 문화적 성장, 새로운 세대를 위한 기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우리의 비전은 모든 이들의 일상에 대입할 수 있지 않나.

쿠치넬리 가문의 일원이기에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서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리가 매일 지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다음 날 아침 더욱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열정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이다.

2024 가을 겨울 컬렉션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의 장인 정신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무수한 실험의 결과물인 신소재와 다양한 기법, 섬세한 쿠튀르 니트웨어에 깃든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럭셔리한 비전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데일리 럭셔리’를 제안해왔다. 조용한 럭셔리 올드 머니 룩 등 최근의 트렌드와 맥을 같이했는데 예상한 바인가? 존중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젠틀 럭셔리(Gentle Luxury)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는 형태, 디테일, 소재 측면에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만의 정체성을 따라왔다. 현재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는 트렌드가 우리의 방식과 비슷하지만,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언제나 시대를 초월하는 취향을 제안하고 지켜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와 마찬가지로 럭셔리가 추구하는 가치 역시 변화해왔다. 예를 들면 지속 가능성, 가치 소비 등 럭셔리의 이름에 라벨을 붙일 수 있지 않나. 럭셔리 시장을 주도하는 한 브랜드로서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점치고 있는지 궁금하다.
패션 트렌드가 돌고 돌아 클래식으로 회귀하듯, 브랜드 역시 결국 오리지널리티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1978년, 브랜드의 시작과 함께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추구해왔다. 당시에 지속 가능성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 우리는 늘 그리고 필연적으로 자연을 생각하는 기업이다.

현대 고등 공예 예술학교

팬데믹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지난 2, 3년간 큰 매출 성장을 이뤘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탄탄한 고객층을 다시 한번 입증한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태도로 다가갈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는 젊은 세대에게 영감과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또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줘야 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비전이 단 한 명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구매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옳은 일을 한 셈이다.

한국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나에게 한국은 스타일 연구의 장이자 거리에서 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세계를 높이 평가해준 시장이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몇 있다. 이를테면 ‘Be Your Change’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팟캐스트라든지.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언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는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각 분야의 정상에 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이미 우리 자신에게서 일어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외에도 브루넬로 쿠치넬리에 대해 알리고 싶은 점이 있을까?
장인 정신 그리고 지식의 중요성이다. 2013년, 솔로메오 햄릿에 현대 고등 공예 예술학교를 설립한 이유기도 하다. 우리는 새로운 세대의 장인을 양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에 계획하고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다면 <더블유>에 살짝 귀뜸해 달라.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곧 연락합시다(웃음)!

포토그래퍼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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