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신비의 나라. 나비가 옷이 되고, 강아지와 코끼리가 가방이 되는 패션계의 원더랜드.
“Almost Childlike(아이 같은 거죠)!” 톰 브라운이 2018 S/S 컬렉션 직후 〈WW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쇼의 배경음악은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의 ‘Part of Your Love’였고, 인어 꼬리와 흡사한 스커트, 무중력 상태의 우주 헬멧, X-레이 스캔한 뼈다귀 무늬 드레스가 이어졌으며, 피날레는 거대한 흰색 유니콘이 걸어 나와 판타지 월드의 막을 내렸다. 실용적이며 현대적인 옷들이 넘쳐나는 요즘의 런웨이에서 패션이 품은 꿈과 환상의 세계에 잠시 매료된 순간이었다.
패션 세계에서 모험, 위트, 젊음, 환상은 불변의 코드다. 기자들에게 꼼데가르송이 여전히 가장 보고 싶은 쇼 중 하나로 꼽히는 건 그래서다. 소꿉놀이할 때 쓰던 장신구, 캐릭터 인형, 장난감 보석들이 그대로 옷 위에 엉겨붙어 있는 꼼데가르송의 피날레 룩은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 동시에 하나의 작품처럼 보였다. 레고 블록을 붙여 스커트를 만든 마리 카트란주, 나비 장식으로 옷을 만든 모스키노도 맥락을 함께한다. “인스타그램 세대에게는 액세서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요.” 어느 해외 일간지에서 액세서리 트렌드를 두고 한 말이다. 요는 액세서리를 선택하는 기준이 인스타그램용으로 바뀐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자신의 피드를 만들기 위해 하루는 셀피를 올리면 그다음은 전략적으로 ‘좋아요’를 부르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패션 아이템이어야 한다) 소품을 찍어야 한다는 것. 피식 웃음은 났지만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건 이 일상에서 비롯한 위트 넘치는 동화 같은 아이템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 시즌 획기적인 캡슐 컬렉션으로 재미를 담당하는 웃음 유발자, 모스키노는 이번 시즌 ‘마이 리틀 포니’와 손잡고 유니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감자튀김과 세정액, 바비 인형, 알약 등으로 이어진 모스키노의 리스트 중 더블유 패션팀에서는 포니의 핸드폰 케이스를 획득한 밀라노 컬렉션 담당자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핑크 포니가 그려진 원피스 수영복, 구름 위에 떠 있는 포니를 가득 채운 스포츠 브라톱과 브리프, 무지개와 포니가 그려진 백팩, 포니 형태의 체인 핸드백 등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탐낼 만하다. 스톡홀름 출장을 다녀온 선배가 포니 인형 키링을 내밀었을 때 나조차 이걸 어떤 가방에 달면 좋을지 떠올렸으니 말이다. 화보 촬영에 최적화된 동물 모양의 가방은 대중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까? 톰 브라운의 애완견을 디자인한 핵터 백은 의외로 꾸준히 팔린다는 게 홍보 담당자의 설명. 이전 시즌의 펭귄 백은 세로 형태라 실용적인 면에서 반응이 덜했고, 그 후 나온 돌고래 백은 애니멀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덧붙였다. 형태는 귀엽지만 가격은 그렇지 않은(3백80만원) 디자인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뜻이다.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캐릭터 소품이라면 손사래를 칠 패션팀 K 선배는 이 가방을 어떻게 생각할까? “부드러운 곡선과 고급스러운 형태가 위트 있으면서 우아함이 느껴져. 단정한 슈트에 들고 싶어.” 결론은 갖고 싶다는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로에베의 경우 2016년에 선보인 코끼리 형태의 엘리펀트 가방이 브랜드의 아이코닉 백이 되었다. 다양한 패턴과 크기의 엘리펀트 백을 시작으로 지난해는 팬더 엘리펀트, 올해는 토끼 모양의 버니 백을 내놓으며 라인업을 구축했다. 특히 버니 백은 코리아 에디션으로도 출시되는데, 반응이 좋은 지역에서만 국가 에디션이 나오는 걸 참고해보면 국내에서도 동물 가방의 인기를 실감 할 수 있다. SM적인 보디 하니스 룩에 테디베어 모양의 백팩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매치한 필립 플레인, 이브닝드레스와 드레시한 슈트에 손바닥만 한 얼룩말 귀고리를 더한 브랜든 맥스웰도 뉴욕 컬렉션에서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충격적인 사건과 자극적인 기사가 매일 도배되는 요즘, 패션계의 원더랜드는 현실과 일상에서 꿈꿀 수 있는 매력적인 판타지가 아닐런지.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아트워크
- 허정은
- 사진
- Indigital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