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느낌, 혹은 두 번째 데뷔 같다고 그는 말했다. AOMG의 음악 동료들을 얻고 30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축해가는 사이먼 도미닉은 세상에 한번 더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중이다.
오늘 촬영 틈틈이 무척 어색해했다. 무대에 서는 것과 사진 찍히는 건 다른 기분인가?
이런 촬영 때는 뭔가에 빙의된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하거나 스스로 섹시 하다고 여겨야 하는데 점점 어렵다. ‘척하는’ 걸 워낙 안 좋아한다. 20대 때는 내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뻔뻔함이 있었다면 서른 넘으니까 내 자신에 대해서 신중해졌다고 할까, 그런 뻔뻔함이 사라졌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의미를 두나?
나는 크게 느낀다. 서른이 되면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전 회사와도 헤어졌고, 팀도 해체했으며 오랜 연애도 끝났다. 한꺼번에 작별의 시간을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티는 안 냈지만 힘들고 외롭고 쓸쓸했다. 그러고 나서 서른하나 돼서 박재범을, AOMG를 만난 거다. 두 번째 데뷔를 하는 느낌, 혹은 새로 태어난 느낌이었다. 20대 때는 사람들 앞에서 더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눈물도 종종 흘린다. 약한 모습을 드러낼 줄도 알게 되었는데, 그게 본래의 나와 더 가까운 것 같다.
더 솔직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20대 때는 행사, 예능, 녹음의 연속이었다. 성실했던 그 당시의 나를 높게 평가한다. 힘든 티를 안 내고 일 했으니까. 나이 앞의 숫자가 3이 되고 나서는 아예 바뀌어버렸다. ‘힘들어 못하겠어, 안 할래’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이게 나의 본 모습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누군지 잘 모르겠다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요즘은 ‘네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하라고’들 한다(웃음).
차트 1위에 오른 ‘사이먼 도미닉’은 당신이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할 때부터의 오래된 레퍼토리다.
어릴 적 팬들은 다 아는, 2006년 언더에서 활동할 때의 노래다. 2년 전 AOMG에 들어갈 때 클럽을 빌려 생일 파티를 했는데, 무슨 노래를 할까 하다가 다시 그레이와 함께 편곡했다. 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노래니까.
AOMG와 같이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하다.
전 소속사인 아메바컬쳐랑 끝난다는 소문이 돌자, 다른 회사들에서 은근히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전에 같이 작업한 그레이나 DJ 펌킨이 FA로 나와 있는 나를 데려오자고 AOMG 대표인 박재범에게, 중간에서 많이 부추긴 모양이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나도 회사가 좋다는 인상을 느끼고 있었고. 그러다 직접 만나서 함께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공동대표인 박재범이 뭐라면서 당신을 설득하던가?
박재범은 천사다. 회사를 위한 회사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주가 돼서 돌아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크루 같은 레이블을 만들고 싶다며 형이 와주면 원하는 그림이 이루어질 것 같다고 하더라.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나가도 된다, 계약이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런 자유분방함에 끌렸다.
두 달 전 더블유에서는 박재범과 로꼬를 인터뷰했다. 소속 아티스트끼리 함께 어울려 음악을 만들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뮤지션끼리 배울 게 많고, 그래서 서로 윈윈이 될 수 있다. 재범이랑 내가 사장이긴 하지만 이름만 대표일 뿐 의사 결정에서의 권위는 내세우지 않는 1대 1의 관계들이다. 우리끼리 있을 때 몰래카메라 한번 설치해보고 싶다. 되게 철없고 실없게 노는데, 그러면서도 즐겁고 행복하다.
앨범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서른 이후로 작업 스타일이 좀 달라졌다. 20대 때는 후다닥 속도를 냈다면 이제 가사 한 줄 한 줄, 그냥 넘기는 거 없이 의미를 담아 공들여서 쓴다. 슈프림 팀의 2013년 ‘그대로 있어도 돼’ 때부터 이런 방식으로 준비했다. 아주 오랜만의 싱글이라 센스랑 늘 만나서 공책에 쓰고 지우고… 그렇게 시간을 충분히 들여 만들고 발표하니 메시지가 좋다는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수정하고 퇴고하는 과정이 길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지치고, 나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후반에는 정이 떨어진 상태가 되기도 하더라. 고치고 또 고치다 힘들어서 토할 거 같아 ‘이거 사운드클라우드에 그냥 올려버릴까?’ 할 정도로. 이번 싱글도 작년에 다 만들어놓고 계속 수정하느라 변비 같은 존재였다. 변비 같았지만, 세상에 내놓고 보니… 똥을 쌌는데 황금똥, 아니 황금알을 낳은 거다(웃음)!
황금일 줄은 전혀 몰랐나?
결과에 상관없이 기나긴 후반 작업을 마치는 기쁨이 더 컸다. 낮 12시에 음원을 공개했는데, 밤을 새우고 뮤직비디오 수정을 했다. 너무 피곤해서 곡이 나오건 말건 깨우지 말라고 하고서 간신히 잠들었는데, 전화가 미친 듯이 울렸다. 진입 차트 1위라고. 기분 좋게 다시 잠들었는데, 몇 시간 뒤에 또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차트 올킬이었다. 며칠간 기분 좋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작 당신은 ‘Top 100에 야망 없다’고 가사에도 썼는데.
재범이 피처링한 ‘ & Only(원 앤온리)’가 더 반응이 좋을 거라 예상했다. 곡을 발표하면 회사에서 서로 재미 삼아 순위를 예측해보기도 하는데, 나는 25위 정도를 얘기했다. 순위에 대한 감이 가장 좋은 로꼬만 1등 할 거라 장담했는데 진짜 맞혔다.
가사에서 지금 수감 중인 이센스와의 여전한 의리를 드러낸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20대를 함께한 사람들, 내 크루들, 고마운 이들의 이름을 다 넣고 싶었는데 가사 쓰면서 생각해보니까 내 이름을 가장 빛내게 해준 단 하나라면 슈프림팀, 그리고 이센스였던 거 같았다. 스무 살 초반에 만나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했다. 센스는 내 마음속에서 래퍼로 여전히 1등이기도 하다.
얼마 전 <복면가왕>에는 출연해서 보컬로서의 인상도 각인시키기도 했는데.
노래를 잘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던 프로그램이고, 음악이 중심이 되는 쇼니까. 가면을 쓰니 마치 발라드 가수가 된 것처럼 다른 자아가 빙의되는 느낌으로 노래할 수 있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가면을 벗으면 안 되는 등 출연자에 대한 규칙이 엄격해서 재미있기도 했고(웃음).
언더 신부터 메이저까지 경험하고 잔뼈가 굵었다. 어떤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
‘여러번의 테이크에 이제 인트로 하나를 잘 끝냈네’라는 구절을 썼다. 내 인생도 습작을 거쳐 이제 인트로 하나 끝낸 거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음악에만 신경 쓰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다음 작업을 구상하고 있나?
준비되면 이번에는 바로 바로 쾌변하려고 한다.
당신의 지금이 무척 좋아 보인다.
마음이 더 편해진 거 같다. 오래가는 노래, 오래 들을 수 있는 랩을 쓰는 게 꿈이다. 영원한 건 없겠지만 영원했으면 좋겠다.
- 에디터
- 황선우, 이경은
- 포토그래퍼
- 주용균(Zoo Yong Gyun)
- 스타일리스트
- 김보나
- 헤어
- 황수진 (미장원 by 태현)
- 메이크업
- 김미애 (미장원 by 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