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곡 그 이상, 작사가 김이나의 속 깊은 음악 이야기

금다미

화려한 이름의 프로듀서와 가수들이 포진한 대중음악 시장에서 작사가로서 온전하게 기억될 이름. 음악과 아티스트를 향한 팬심에 쉼표가 없었던 여자, 김이나.

‘노래를 듣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뭘 듣는 걸까? 누군가는 멜로디를 좇고, 사운드의 풍경을 느끼고, 눈 감고 귀를 닫아도 맴돌 감각적인 소리를 즐긴다. 누군가는 가수라는 화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혹은 가수가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 귀에 확 다가오는 단어들로 그 노래에 자신만의 태그를 붙인다. 여러 레이어가 쌓여 완성된 하나의 곡에서 작사가는 작곡가나 가수에 비하면 뒤켠에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이나는, 지난 10년 동안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대중가요 작사가의 이름이다.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으로 데뷔한 이 작사가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와 아이유의 ‘좋은 날’, ‘잔소리’, ‘너랑 나’가 히트하면서 크레셴도처럼 존재감을 키워갔다. 최근 유재석의 또 다른 자아인 유산슬의 입에서 절절한 구애의 언어가 흘러나오기까지, 김이나가 말과 이야기를 안겨준 대상들은 그 장르도 연령대도 정의할 수 없이 다양하다. 가수와 작곡가들은 곡에 김이나식 인장을 새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그녀를 찾는 걸까? 사실 김이나의 작사에는 ‘스타일’이 따로 없다. 그녀는 음악에 자기 인장을 새기려는 아티스트로서의 고집 대신, 최적의 음악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하겠다는 스태프로서의 고심을 더 필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이타적인 사람’이어서 결국 ‘성공한 대중가요 작사가’가 됐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 자기 멋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이타성이란 희귀한 것이니까. 이제 방송과 라디오, 웹 예능 등의 활동으로 무척 바빠진 김이나가 5년 전에 낸 책 <김이나의 작사법> (문학동네)이 리커버 한정판으로 출간됐다. 전과 전혀 다른 표지로 갈아입고, 약간의 작사 노트를 더한 버전이다. 작사 노하우 사이사이 놓여 있던 김이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녀를 더 알기 위해 만나기 좋은 때다. 김이나 역시 스튜디오에서 마주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왔군요, 때가.”

꽃무늬 샤 드레스는 H&M x 지암바티스타 발리, 검정 가죽 재킷은 슈프림 제품.

싹 다 갈아엎어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싹 다 갈아엎어주세요 나비 하나 날지 않던

나의 가슴에 재개발해주세요

내 맘을 그냥 두지 말아줘요

금싸라기 같은 내 맘을 내 맘에 전철역을 내어줘요

그대만이 내릴 수 있는

– 유산슬 ‘사랑의 재개발’, 김이나 작사

사람을 좋아하나 보다. 오늘 현장에 와서 낯도 안 가리고 처음 보는 스태프들과 신나게 서로의 슈가맨에 대해 수다 떨어줘서 고맙다(웃음). 사람 좋아하는데, 멀리서 보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가까이서 부비부비하는 건 별로다.

여러 알려진 곡들의 작사 작업뿐 아니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3>를 비롯한 방송과 라디오 <김이나의 밤편지> 디제이 활동으로 당신을 갈수록 친숙하게 느끼고 있다. 대중가요 작사가가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접점을 가지고 이렇게 부각된 예는 당신이 처음 아닌가? 주변을 둘러봐도 그렇고, 대개의 작사가들은 노출에 거부감을 갖는 편이다. 작곡가들도 그런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다. 특히 방송에 관해서라면, 그들 대부분이 자신과는 안 맞는 일이라고 여긴다. 방송에서도 했던 말인데… 작사가들 중에서 내가 제일 나댄다(웃음).

연말에는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라디오부문 신인상도 받았다. 사실 수상으로 따지면야 작사가로서 문광부 표창을 받은 일부터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 3년 연속 상을 받은 일까지, 경험이 적지 않지만.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그런데 활기 있게 바쁘다. 고요하게 바쁘던 시절도 있었다. 국내 작사가 저작권료 수입 1위 하고 그럴 때. 2010년 즈음부터 몇 년간 한창 작업량이 많던 시기에는 1년에 30~40곡을 썼던가? 집과 작업실을 오가는 생활만 하면서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작사란 어느 가수의 노랫말을 대신 써주는 일이니, 나의 세계와 나의 예술을 고집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방송을 하며 내 개인을 알리고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요즘 당신을 보면 방송 활동을 안 하기엔 너무 아까운 비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패널이나 진행자로 참여하는 토크에 능하다. <나는 가수다 3> 이후 <슈가맨> 시즌 1을 하면서 처음엔 방송 생리를 파악하지 못해 어려웠다가, 〈하트 시그널>에 출연하면서 몸이 좀 풀린 느낌이 들었다. 어느 순간 스위치 하나의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전에는 ‘방송도 내 일이다’라는 스위치가 안 켜졌던 거다. 사람이 어떤 일을 거듭하다 보면 내가 이 일을 왜 선택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가만 나를 들여다보니 방송 일이 재밌을 것 같아서 임한 면이 놀랍게도 분명 있더라. 내가 흥미 있어 택했으면서, 마지못해 끌려가는 사람처럼 굴고 있었구나… 그 점을 인지하고 녹화 현장으로 나가는 날과 까먹고서 피곤한 일정을 해치운다 생각하며 나가는 날의 차이가 컸다.

스스로 한 선택의 이유를 잊지 않는 것, 그 이유를 인정하고 인지하는 것. 좋은 이야기다. 간혹 나에게 ‘작사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같은 시선을 보내는 경우가 있어서 그 시선에 움츠러들기도 했던 것 같다. 방송을 하면서 이 일이 나에게 필요한 성격이라는 걸 알았다. 방송은 결국 소셜인데, 평생 친구 셋만 만나며 외부와 교류하는 게 부족했던 나에게 이거야말로 딱 좋은 소셜인 거다. 출연자들과의 대화, 관객이나 시청자의 반응, 인간적인 교류, 정… 이런 경험이 가사를 쓸 때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는다. 방송 시작하기 전에는 본업 외 일에 시간을 쓰는 게 자칫 해로울까 우려했지만, 어떤 행위를 하기 전에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해보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

방송에 적합한 부류의 필요조건 중 하나는 ‘주어로 시작한 말을 흐지부지 처리하지 않고 술어로 말끔히 끝맺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화술의 좋고 나쁨과는 별개로 문장의 단정함을 어느 정도 갖춰야 보고 듣기에 안정감이 생긴다. 김이나는 그게 되는 데다 센스도 갖췄다. 처음에 방송 모니터링을 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말을 저렇게 하는구나 싶어서. 그 적나라함이나 민망함 때문에 이젠 모니터링 같은 걸 못한다. 오늘 사진 촬영하면서 한 번도 내가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을 안 한 것처럼(웃음).

가죽 블라우스는 렉토 제품.

고단한 나의 걸음이 언제나 돌아오던 고요함으로

사랑한다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 조용필 ‘걷고 싶다’, 김이나 작사

당신에게 ‘인생의 책’은 뭔가? 픽션을 좋아하고, 장르 소설을 즐긴다. 작가로는 정유정이 좋다. 책을 좀 닥치는 대로 읽는 편이라 하나를 꼽기는 애매한데, 어릴 때 내게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동화책이 있다. 제목은 <요술 분필>. 주인공이 분필로 문을 그리면 문이 생기고, 친구를 그리면 친구가 나타나고. 그 책을 다시 구하고 싶어서 뒤지다가 영국의 중고 서점에서 파는 원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판타지에 홀렸던 걸까? 스토리 자체보다 활자 인쇄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소용돌이에 빨려서 천천히 떨어졌다’는 내용이면 텍스트가 빙글빙글한 형태를 그리며 점점 작아진다거나, 새가 구슬픈 소리로 운다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어떤 기호들이 등장하는 식이었다. 영상이 아니라 지면만으로도 사람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당신의 정체성은 글 쓰는 사람과 음악인 중 어느 쪽에 가깝나? 음악 쪽 인물에 가깝다. 작사를 할 때면 늘 ‘나는 스태프다’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가사는 소리의 언어다.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닌, 듣고 부르는 글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작업해야 한다. 곡이 가진 느낌에 어떤 가사를 붙여야 멜로디가 더 멋지게 들리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

책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발음 디자인’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발라드 곡에서 가수가 침이 튈 만한 발음이면 망한다고(웃음). 언어의 뉘앙스란 그게 내포하는 의미뿐 아니라 부드러운 발음인가 튀는 발음인가 등의 영향도 받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똑같이 한국어를 쓰지만,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환한 풍경을 묘사할 때 ‘밝다’와 ‘찬란하다’에 확실히 차이가 있지 않나? 특정 분위기에서 내가 ‘찬란하다’라는 표현을 왜 사용하게 될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ㅊ’이라는 파열음으로 시작해 말이 ‘촤악’ 하고 퍼지면서 ‘ㄹ’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어감이 파도가 일렁이는 듯하다. 거기서 행복하고 벅찬 풍경이 연상되는 거지.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 중에서 한 단어를 택해 사용할 때, 아주 사적이고 세밀한 이유가 작용하는구나 싶다. 요즘 그런 것에 관한 책도 쓰고 있다. 여러 표현에 따른 내 느낌과 이야기를 에세이로.

책에서 작사가라는 직업을 옛 미술 작품에서 본래의 색깔을 찾아내는 복원 예술가에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다. 음악이 이미 가지고 있는 톤앤매너와 정서라는 게 있다. 데모 음악을 받아보면, ‘이 곡에는 톡톡 쏘는 듯한 말을 해야겠구나’ ‘문학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야겠구나’가 느껴지는 각각의 DNA가 존재한다. 거기에 보컬 고유의 질감과 가수의 이미지도 고려해야 하고. 작사는 곡, 가수, 대중의 니즈, 시류 등등의 조건이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작업하는 일이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나만의 영감을 펼치는 일과는 다르다.

대중가요의 가사란 내가 인지하지 못해도 무의식에 저장되는 영역이 아닐까? 히트를 치게 만드는 요인은 곡과 멜로디이고, 롱런을 책임지는 건 가사라고 본다. 히트 여부는 곡의 첫인상으로 결정되는 면이 크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곡은 얼굴이고 가사는 성격이랄까? 멜로디는 즉각적으로 확 꽂히고 반하게 만드는 요소다. 가사는 이 사람과 대화하면서 알아가게 만드는 쪽이고. 하지만 중요한 건 곡과 가사를 뚝 떼어놓고 각각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멜로디보다 가사야말로 ‘누가’ 부르는가의 문제와 밀접하다. 가왕 조용필의 입에서 고단한 모든 걸 내려놓고 너와 걷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의 울림, 아직 소녀였던 아이유가 용기 내어 오빠에게 고백했지만 거절당했는지 눈물이 차오른다고 할 때의 감성을 생각해봐도. 작곡가, 작사가가 아무리 위대해봤자 개성 있는 아티스트 한 사람이 자아내는 감성을 이길 수가 없다. 가수가 작곡가나 작사가가 생각하는 만큼을 헤아리지 않은 상태로 부를 때도 있다. 그런데 자기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얹거나 덜어내 표현할 때, 거기에 그 사람의 탁월한 기량과 감각, 호흡과 질감 등이 배어 나온다. 직접 곡이나 가사를 쓰지 않아도 악기로서 자신을 더 제련하려는 가수도 많다.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수 없는 그들 역시 대단한 아티스트다.

눈물은 나오는데 활짝 웃어

네 앞을 막고서 막 크게 웃어 내가 왜 이러는지

부끄럼도 없는지 자존심은 곱게 접어 하늘 위로

한 번도 못했던 말 어쩌면 다신 못할 바로

그 말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아이쿠, 하나 둘)

– 아이유 ‘좋은 날’, 김이나 작사

가요와 팝을 불문하고 대중음악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나 소재는 사랑, 이별이다.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20대 초반에 쓰레기부터 보석까지 다채로운 남성을 만났다’고 언급하던데… 역시 히트곡 작사가는 많은 경험치와 연애 재능을 가진 인물이었던 건가? 재능이 없으니까 좋지 않은 남자도 많이 만났겠지(웃음). 물론 나는 내가 먼저 좋아해서 다가가는 편이었다. 연애를 마구 하던 20대 초반은 지금 생각해보면 썩 마음에 안 드는 시절이지만, 그때의 경험과 심상이 지금 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된다.

<김이나의 작사법>에서는 이별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고 나눠 놨더라. 부처 유형, 망부석 유형, 저주 유형, 논개 유형… 김이 나는 어떤 유형이었나? 그저 쿨하지 못한 유형이었다. 차이면 지질하게 매달리거나. 언젠가 이별이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본 적이 있는데, 근사하게 되돌아서는 건 내 체질이 아니더라. 그렇게 끝내면 미련의 꼬리가 정말 길게 간다. 매달리는 행위는 한마디로 내 감정을 위한 살풀이 같은 거다. 상대의 마음을 돌이키고 싶다기보다 내가 내 감정을 써야겠다는 것. 훗날 이불킥을 하더라도 살풀이해버리는 게 낫지.

작사에도 트렌드가 있나? 있다. 요즘 트렌드라면, 사소한 이야기가 군데군데 들어가 있는 것? 예전에는 ‘거위의 꿈’ 같은 노래가 위로를 안겨주는 방식, 더 거슬러 올라가면 팝송 ‘Heal The World’나 ‘We Are The World’처럼 거시적인 평화의 노래가 통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노 단위로 힘든 시대다. 구체적으로 힘들고, 확실하게 힘들고. 이런 때 사람들이 갈증을 느끼는 건 추상적으로 뭉뚱그리는 스타일과는 좀 다른 위로 같다. 대표적으로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가 생각난다. ‘다 힘들어. 내가 사탕 하나 줄게. 당 떨어지면 꺼내 먹어’라고 하는 식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최근에 다소 뭉뚱그리는 이야기의 노래들이 가요 차트를 점령해서 내가 뭐 놓치는 흐름이 있나 싶었다.

변하지 않기로 그렇게 서로 바랐으면서

변하지 않아서 이렇게 지루해져 버렸죠

어떻게 했더라도 우린 지금일까요

모든 게 말장난 같아요

– 자이언티 ‘5월의 밤’, 김이나 작사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 이곳저곳에서 차트 조작설에 관한 논쟁이 활발하다. 예전부터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 해부되려나 싶다. 누군가는 이미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거나. 나도 조작 세력이 있다고 의심은 한다. 하지만 그 세력이 대체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으니… 이제 대중은 차트의 알고리즘도 웬만큼 파악하고 있는데, 새벽 시간대 차트에 이상한 움직임이 보였기 때문에 이렇게 모두의 의심이 증폭한 거다. 나를 비롯해 업계 동료들의 상황도 우려와 배신감 사이에서 혼란해하는 중이다. 아무도 명확한 답은 모르니까.

사실 가요 차트를 말할 때마다 업계 관계자들 말고 그걸 들여 다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싶다. 길가의 옷가게, 스타벅스와 커피빈 외의 카페들에서는 차트 TOP 100 같은 걸 종일 플레이하는 듯하지만. TOP 100만 듣는 이들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다. 알고 보면 많은 사람이 구체적 취향을 가지고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지만, 그냥 어딘가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게 좋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음악은 노출 빈도수만큼 좋게 들리기 쉽다. 정들고 친숙해지니까. 그러니 그 점을 이용해서 조작하려는 사람도 나오는 거다. 적극적인 자기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 힘들지 않을까?

작사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5년 정도 직장 생활을 유지하지 않았나? 무모하게 꿈에 도전하면 금세 포기할 수 있지만, 주어진 직업이나 내 생활을 유지하면서 다른 꿈을 준비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당신의 조언은 값지고 현실적이다. 작사가가 되기 전에도 음악 산업과 관련한 직장에 몸담고 있긴 했지만, 뭔가를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작사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주변 동료들을 봐도 지금 하는 일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사람은 거의 없다. 뭔가를 하다보니 여기 까지 온 거지.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하는데, 현실에 발붙이지 않은 무모함만으로는 금방 지친다는 이야길 내 책에서도 했다. ‘어떻게 하면 저작권료를 잘 버는 작사가가 되는지’ ‘어떻게 하면 <더블유> 기자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노하우를 말해주기는 힘든 법이다. 순간순간의 히스토리가 쌓이고 개인의 노력이 더해져 여기까지 온 것일 테니.

당신을 계속 버티게 만든 힘은 뭐였을까? 버틴다는 게 지친 상태를 말하는 거라면, 나는 여전히 이 일이 재밌기만 하다. 가요든 팝이든, 음악에는 사람에게 반할 때와 똑같은 케미스트리를 느낀다. 지은이(아이유)나 효신이는 가까운 사이인데도 가끔은 ‘내가 이들과 이래도 되나?’ 싶고, 유재석을 ‘재석이 오빠’라고 부르는 사이가 됐다는 게 나도 놀랍다. 음악을, 무언가를 ‘우와’ 하면서 동경하는 내가 누군가에게는 볼품없이 보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하루하루 있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김재훈
스타일리스트
최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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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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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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