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연인의 숨소리마저 싫은 날이 온다

최수

사랑이 식은 걸까

요즘 들어 연인의 말투,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거슬리나요? 이럴 땐, 관계를 의심하기 전에 내 상태를 먼저 점검해 보세요.

예민함이 다정함을 넘어설 때

@tinvcb

우리 뇌는 하루 종일 엄청난 양의 자극과 정보를 처리합니다. 주변 대화나 자동차 소리처럼 잡다한 소음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대부분 크게 의식하지 못하죠. 우리 뇌가 불필요한 자극을 자동으로 걸러내기 때문입니다. 마치 머릿속에 보이지 않는 필터가 있어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미리 차단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피로가 누적되면 이 필터가 느슨해진다는 점입니다.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냈을 소리를 그대로 인지하게 되는 거죠. 특정 소리에 과도한 불쾌감을 느끼는 ‘청각과민증’ 역시 이 감각 필터 기능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고요(Journal of Hearing Science, 2024). 일이 많은 날, 잠을 설친 날, 인간관계로 지친 날일수록 연인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연인이 내는 소리, 행동 하나하나가 과부화된 뇌를 자꾸 자극하는 것이죠.

편할수록 당연해지는 짜증

@lilyffenn

문제는 이런 예민함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쉽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회사 상사의 숨소리가 거슬린다고 짜증 내는 사람은 드물죠. 동료가 다리를 떨어도, 친구가 펜을 딸깍거려도 대체로 참고 넘어가고요. 하지만 연인이나 가족 앞에서는 똑같은 자극에도 훨씬 쉽게 날카로워지곤 합니다.

이런 모습은 편한 관계에서만 생기는 역설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버틴 긴장이 가장 편한 사람 앞에 서 한순간 풀려버리는 거죠. 안전한 관계일수록 감정 조절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심리학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이거든요(International Journal of Environmental Research and Public Health, 2022). 혹시 최근 들어 사소한 일에 자꾸 날카로워졌다면, 사랑이 식었다고 단정하기 전에 스스로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한 건 대화가 아니라 잠

@birtahlin

물론 모든 짜증을 컨디션 탓으로 돌릴 순 없습니다. 실제 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다만 순간적인 감각을 관계를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해선 안됩니다. 많은 사람이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었을 때, 관계가 흔들린다고 믿지만 현실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무척 지쳤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이 거슬리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사랑의 온도를 논하기 전에 내 컨디션부터 점검해 보세요. 어쩌면 필요한 건 진지한 대화가 아니라, 그냥 푹 자는 하루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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