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LAURENT MEN 2027 SS 컬렉션
파리 패션위크의 오프닝을 연 생 로랑 27 SS 남성복 컬렉션은 관객들을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 속으로 끌어들였다. 장소는 안도 다다오의 손길을 거쳐 현대미술관으로 거듭난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의 로톤다 홀. 93세의 거장 미술가 후지코 나카야(Fujiko Nakaya)의 안개 설치 미술 <Cloud #07156>이 뿜어내는 자욱한 물안개를 뚫고 모델들은 존재와 미스터리의 경계를 흐리며 마치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이번 시즌 하우스의 창립자 이브 생 로랑이 1970년대에 정립한 원칙인 ‘완벽한 수트, 완벽한 코트, 완벽한 슈즈’의 세계로 회귀했다. ‘누구도 당신을 유혹하려 하지 않는다. 유혹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들을 유혹적이게 만든다’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말처럼 컬렉션을 관통하는 메인 테마는 다름 아닌 ‘절제(Restraint)’였다. 셔츠와 넥타이, 액세서리를 과감하게 생략한 자리에 완벽한 비례감의 테일러링이 꽉 들어찼다. 셔츠 없이 베스트만 단독으로 매치한 수트, 신체의 라인을 드러내는 시어한 소재의 탑은 ‘결핍이 곧 최고의 럭셔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반전 카드는 단추였다. 바카렐로는 액세서리를 배제하는 대신 단추를 화려한 주얼리이자 조각품처럼 가공하여 매혹적인 마침표로 활용했다. 무채색의 모노크롬 수트 위에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단추들은 ‘금은 오늘날의 블랙이다(Gold is today’s black)’라는 어록을 남긴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철학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 컬렉션의 매혹은 겉보기에 단정하고 엄격한 테일러링 이면에 숨겨진 은밀한 페티시즘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정갈하게 재단된 로우라이즈 팬츠의 허리 위로 은근히 노출되는 가죽 언더웨어의 밴드가 관능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Y2K 스케이터 스타일을 하이패션으로 재해석한 이 대담한 스타일링은 생 로랑 특유의 퇴폐미를 동시대적인 힙함으로 변주해 냈다. 한편, 지난 26 FW 여성복 컬렉션에서 선보인 투명 펌프스와 궤를 같이하는, 앞코가 뾰족한 투명 하이글로스 옥스포드 슈즈 역시 하우스가 제안하는 새로운 트렌드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컬러 팔레트 역시 하우스의 유산을 영리하게 확장했다. 그레이, 블랙, 베이지, 브라운 등 차분한 뉴트럴 톤의 슈트 사이로 오렌지, 라임, 머스터드, 바이올렛 등 생생한 컬러 아이템들이 시선을 끌었다. 특히 네온 컬러의 테크니컬 타프타 윈드브레이커 아우터는 안토니 바카렐로의 상상력이 흥미로운 결실을 맺은 아이템이었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스포티한 의상을 거의 디자인하지 않았던 이브 생 로랑이 만약 오늘날의 스포츠웨어 트렌드를 마주했다면 어떤 옷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새로운 윈드브레이커를 제작했다. 컬렉션의 대미는 이브 생 로랑의 오랜 명언을 현실로 소환하듯 골드 컬러의 트렌치코트와 더블 브레스트 수트 시리즈가 장식했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절제와 생략을 통해 현대적 남성성이 지닌 관능미를 완벽하게 시각화했다. 덜어낼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생 로랑의 우아한 미학을 다시 한번 증명한 컬렉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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