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아시아의 귀중품을 얻고자 활발히 무역하던 당나라 시대, 그 번영기가 현대미술 신에서도 꽃필 수 있을까?
아시아의 기세를 마음에 품은 베이징의 탕 컨템퍼러리 아트는 ‘우리, 아시아 미술’로서 더 큰 세상에 나아가고자 한다.

무엇을, 누군가를 노리고 있는 걸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섬뜩한 피조물의 정적 상태.
불과 4개월 전, 탕 컨템퍼러리 아트 베이징에서는 전시를 위해 걸어둔 그림 두 점을 전시 도중 내려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2025년 중국에서는 문화부 검열로 전시 중인 작품을 치워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림들은 웨민쥔(Yue Minjun)의 작품이었다. 중국 현대미술이 시장에서 무섭게 부상하던 2000년대, 놀라운 경매가로 뜨겁게 회자되던 그 이름. 장샤오강, 팡리쥔과 더불어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 역사의 트라우마와 강력한 국가 주도에서 탈피하려 애쓴 중국의 대표적 작가. 수십 년간 나라의 검열에 시달리던 화가에게 한국은 색다른 기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2년 전, 탕 컨템퍼러리 서울에서 열린 개인전을 위해 서울을 찾은 웨민쥔은 이곳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시민들이 청와대에도 출입할 수 있는 나라라면, 예술가는 뭐든 시도할 수 있겠다면서. “작가들의 작업에 담긴 속뜻을 대외용 보도자료에는 밝히지 않을 때가 많아요. 중국 내에서는 어떤 작품 스토리를 실제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알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희 갤러리는 기본적으로, 누가 언제 전시장에 와서 어떤 질문을 하든 적극적으로 도슨트 활동을 합니다. 그렇게 접점이 있을 때 진실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거죠. 저는 사람들이 직접 작품을 보고 느끼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겨요.” 탕 컨템퍼러리 서울의 모든 전시를 기획하는 디렉터이자 지사장인 박혜연의 말이다.
1997년 탕 컨템퍼러리 아트를 설립한 린정(Lin Zheng)은 원래 작가로 활동한 이다. 그는 한 작품을 보고서 머릿속이 멍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고, 자신은 그만한 예술을 할 주제가 못 된다는 자각을 했다. ‘어쩌면 예술 작업보다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일이 더 맞지 않을까?’ 중국인인 그는 자신의 지향에 결정적 계기가 된 작품을 목격한 곳, 태국 방콕에서 갤러리를 시작했다. 베이징에도 정식으로 갤러리를 오픈한 건 2006년이다. “90년대 후반 당시 태국에는 현대미술 갤러리가 전무했거든요. 한계를 느끼던 차에, 중국에 서포트가 필요한 작가가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두 도시를 오가며 일을 추진하셨죠. 마침 그즈음이 중국 작가들의 개화기였고요.” 방콕보다 훨씬 더 큰 무대인 대륙의 베이징은 탕 컨템퍼러리 아트의 헤드쿼터가 되었고, 탕은 현재 베이징에만 세 개의 갤러리를 두고 있다. 그중 두 공간이 798 예술지구에 자리한다. 홍콩 지점 두 개 중 하나는 페이스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 등 여러 갤러리가 모여 있는 H퀸스 빌딩에 있다. 2022년 3월 서울점이, 그리고 지난해에는 싱가포르 지점이 개관했다. 현재 탕 컨템퍼러리 아트가 대표하는 작가는 60명이 넘을 정도로 방대하고, 각 지사는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작가는 무용을 했던 경험을 살려, 사뿐한 움직임과 리듬감을 추상화로 완성한다.

작가는 즐겁게 잔디밭을 구르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봤다. 하지만 작가의 화면 속 ‘웃는 남자’들은 늘 어딘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몸집’이 큰 아시아 태생 갤러리라면, 아시아권 작가들을 기반으로 국적도 작업도 다양한 작가와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속에서도 물론 갤러리의 정신과 결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혜연 지사장은 탕 컨템퍼러리 아트의 첫 번째 중요 키워드로 태생적인 정신을 든다. “갤러리 설립 초기에 설치와 퍼포먼스 위주의 아방가르드로 시작했어요.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강했죠. 798예술지구에서 많은 갤러리가 빠져나가는 동안, 탕 컨템퍼러리 아트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어쩌면 베이징 내 가장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죠.” ‘반정부’, ‘반체제’는 간편하고 관성적인 표현인 데 비해 사실 상당히 도발적인 단어지만, 천안문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드는 아이웨이웨이를 떠올리면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웨이웨이는 중국의 명망 있는 가문이 문화대혁명으로 산산이 부서진 것에 충격을 받아, 폐허가 되어버린 그 가문의 종친회관을 매입한 적이 있다. 2015년, 작가는 폐허에서 가져온 400년 된 목재들로 탕 컨템퍼러리 베이징에 종친회관을 재현했고, 갤러리는 그 전시를 위해 벽을 헐었다. “저희, 이상한 전시 자주 합니다(웃음). 한 작가는 사막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한동안 갤러리에 포클레인이 상주했죠. 갤러리에서 한 달 동안 낙타가 산 적도 있어요.”
베이징 갤러리에 낙타를 들여온 작가, 자오자오(ZhaoZhao)의 또 다른 작품들은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는 아이웨이웨이의 제자로 불린다. 두 사람에겐 신장 위구르 자치구 출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자오자오는 아이웨이웨이에게서 작가로서 필요한 많은 것을 배운 듯하다. ‘낙타’는 가장 신장 지역다운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싶은 전시의 일환이었다. “아이웨이웨이가 날것의 그대로를 드러낸다면, 자오자오는 거친 것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표현해내는 감각이 있어요.” 프리즈 서울 부스에서 많은 사람들은 바닥의 아스팔트판에 박힌 빛나는 형체(‘Cat’ 시리즈)가 무엇인지 모른 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가 살던 지역에서 끝없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납작해진 동물 사체를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동물을 최초로 들이받은 누군가는 사고를 알아챘겠지만, 이후 누군가들은 자기가 무엇을 밟고 지나가는지도 모른 채 그 길을 갔을 것이다. 작가는 사체의 흔적을 본떠, 견고한 항공기 소재로 우리가 밟고 다닐 작품을 만들었다. “롱 뮤지엄에서 전시했을 때, 광활한 바닥 전체에 아스팔트를 깔고 작품을 설치했어요. 관람객들은 처음엔 작품 스토리를 모른 채 사방에서 아름답게 빛이 반사되는 그곳을 거닐었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에 피해를 주거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작품이에요. 내가 뭘 밟고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것처럼요.”

아스팔트 도로 위에 각인된, ‘사연 있는 고양이’. 작가의 작업은 대체로 미니멀한 형태이지만, 그 안에 비판적이거나 사유적인 스토리텔링을 품는다.
갤러리 설립 초기부터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아방가르드 정신’ 또한 지닌 작가는 쑨위안&펑위(Sun Yuan & Peng Yu) 듀오다. 그들은 인체 조직, 피, 동물 사체 등을 전시장에 가져와 관람객의 감각과 윤리적 기준을 뒤흔들곤 했다. 탕 컨템퍼러리 아트의 프리즈 서울 부스에서 지나가는 모든 이들을 멈춰 세울 작품은 ‘거대한 독수리’다. 징그러울 정도로 실제 독수리보다 더 독수리답게 만들어진 ‘Waiting’(2006)은 빅 브라더처럼 섬뜩한 존재로서 누군가, 무언가를 감시하고 위협하는 정황을 연상시킨다. 이 독수리는 세상에 두 마리가 있는데, 하나는 파리의 ‘피노 컬렉션’이 소장한다. 피노 컬렉션의 돔형 천장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던 그것처럼, 독수리가 우리 머리보다 저 위쪽에서 감시자로 도사리고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렇게 맥락 있는 설치를 아트페어장에 구현하기는 어렵다. 아트페어 부스에서는 바닥에 아스팔트를 까는 일도 쉽지 않다.
예술 작품을 볼 때, 부스 형태의 장소에서 마주치는 것과 갤러리의 오롯한 공간에서 감상하는 것의 차이는 탕 컨템퍼러리 서울 같은 곳에서 극명하게 체감할 수 있다. 청담동 골목, 층고가 5m나 되는 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지하인데도 자연광이 살짝 비치는 듯한 자연스러움과 시원함이 전달된다. 이 공간에서, 한국에 있는 갤러리들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전시를 선보여야 하는 프리즈 서울 전후로는 1992년생 화가 시야오왕(Xiyao Wang)의 개인전이 열린다. 미술관이 자신의 작품을 두 점 이상은 소장하지 못하도록 당차게 관리하는 그녀는 무용을 했던 그 사뿐한 움직임과 리듬감을 캔버스에 추상화로 담아낸다. “서울점 개관 때, 층고 높은 공간을 찾아 온 동네를 하도 뒤져서 부동산 사정을 꿸 정도였어요. 집 안에 걸어두기 좋은 그림을 찾는 컬렉터들에게는 알맞지 않은 환경일 수 있죠. 거실 벽에 걸어두면 꽉 차는 2m짜리 캔버스도 갤러리 내에서는 작아 보이니까요. 층고가 이만한 데서 전시를 하려면 그에 걸맞은 스케일의 작업을 가져와야 합니다. 그만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있어야 하고, 대형 작품 운송비와 어려운 세일즈까지 감내해야 하죠.”

작가는 아무런 표시나 스케치가 없는 검정 바탕 위에 이미지와 색상을 바로바로 채워간다. 작업과 알맞은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대륙의 기상이 그렇듯 ‘크게’ 가는 탕 컨템퍼러리 아트의 두 번째 키워드는 공간 스케일을 고집하는 면과도 연관이 있겠다. 자신들의 길을 가는 이 갤러리의 컬렉터들은 한 마디로 ‘마니아층’이라고. “저희는 세일즈 면에서 다른 해외 갤러리들과 부딪칠 일이 많지 않아요. 스타일도, 고객층도 다르거든요. 명성 있는 작가들과도 일하고 있지만, 소위 말하는 A급 작가와 전시에 별 관심이 없어요. B급 갤러리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업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을 때 정말 희열을 느끼죠. 린정 대표님이 언젠가 이런 말을 하셨어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무릎 꿇지 않으면, 우리 작가들이 무릎 꿇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요.”
1990년대에 출발한 이 갤러리의 지향점은 그래서 어디에 있을까? ‘아시아’로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유럽의 귀족들이 중국에서 건너온 차와 도자기를 귀중품으로 여기던 시대, 유럽이 아시아의 것을 얻고자 활발히 무역하던 당나라 때의 그 기세처럼 아시아 미술을 꽃피워보자는 바람에서 갤러리 이름도 ‘탕’이다. 탕 컨템퍼러리 아트는 한 해 평균 열 개 이상의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하고 있다. 긴 시간 꾸준히 참가 중인 뉴욕의 아모리쇼를 비롯해 타이베이 당다이, 도쿄 겐다이, 아트 SG 등 아시아에서 열리는 페어들의 비중이 눈에 띈다. “어디에서든 우리는 중국 갤러리라기보다 아시아 갤러리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대표님은 갤러리를 설립할 때부터 아시아 내에서 굳이 지역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좋아하지 않았고요.”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영국과 중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박혜연 지사장의 경우, 비아시아권의 미술 시장 관계자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태도에서 어떤 목마름을 느꼈을 법하다.

프랑스 중세시대 태피스트리 작업을 오마주한 오일 페인팅 최신작.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부조 형태에 가까울 정도로 두툼한 마티에르와 디테일에 놀라게 되는데, 기존 작업보다도 더 많은 손길이 느껴진다.

프랑스 중세시대 태피스트리 작업을 오마주한 오일 페인팅 최신작.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부조 형태에 가까울 정도로 두툼한 마티에르와 디테일에 놀라게 되는데, 기존 작업보다도 더 많은 손길이 느껴진다.
서울에 지점을 둔 이상, 함께하는 한국 작가를 지나칠 수는 없다. “한국 작가들이 해외 갤러리와 계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고 생각해요. 해외 전시를 하고 싶어서죠. 우국원 작가처럼 이미 잘 알려진 흥미로운 작가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전시를 펼쳐본 적이 없었다는 점도 의아했어요. 그런 작가들의 경우, 해외에서 전시를 해보고픈 니즈를 먼저 채워주고자 합니다.” 그렇게 화가 우국원은 홍콩과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전시를 치른 후, 1년 전 탕 컨템퍼러리 아트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브랜드 협업 작업으로도 알려진 장콸,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윤협, 기하학적 형태의 단색화 작업을 하는 중견화가 심문섭은 한국에서 그룹전으로 먼저 선을 보였다. 서울점은 개관 이래 3년여 동안, 아시아 작가들의 전시 사이사이 유럽 작가들의 개인전을 적절한 호흡으로 배치했다.
아시아 미술로서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갤러리의 추진력은 물리적 공간을 확장하려는 청사진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음 차례는 드디어 유럽, 런던이다. 런던의 상황에 따라 그다음 목적지가 유럽 내 또 다른 나라가 될지, 미국이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언젠가 서울에 갤러리가 아닌 또 다른 성격의 공간을 마련할 계획도 있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같은 세상이 있어요. 작품을 둘러싼 토론도 진행하고, 때마다 알맞은 다큐멘터리도 상영하고, 평상시에는 아트 서적과 아트 토이 판매도 하면서 카페를 겸하는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베이징과 방콕에서는 ‘아트 포커스’라는 이름으로 그런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느리지 않은 속도로 지점을 늘려가는 동시에, 고고한 파인아트의 장벽을 두르지 않은 공간들로 어딘가에 스며들기. ‘A급 유치’보다 다른 재미를 더 찾는다는 말과 탕 컨템퍼러리 아트의 행보는 일치한다.
- 사진
- COURTESY OF THE ARTISTS AND TANG CONTEMPORARY AR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