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균형
배우로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잃어버리지 않는 두 남자가 있다. 일의 만족감과 갈증 사이에서 한결같은 태도의 중요함을 아는 공명, 연기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의 확장을 꾀하는 김재욱. 멋진 그들이 신선한 오피스물 tvN <은밀한 감사>에서 만났다.

GONGMYOUG
<W Korea> 오늘 촬영장인 다방에 소품으로 쌍화차가 있었죠. 거기 든 삼 뿌리를 입에 물고 한 컷 찍었더군요. 1994년생이신데, 쌍화차 맛본 적 있어요?
공명 예전에 <바퀴 달린 집>이라는 예능을 촬영할 때, 시골 다방에서 선배님들과 먹어봤어요.
저는 아직도 안 먹어봤거든요. 노른자도 동동 띄워져 있던가요?
네(웃음). 맛 괜찮았어요. 달달해요.
공명 씨 실물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 많을 것 같아요. 키도 크지만, 몸집 자체가 아주 큰 편이시네요.
제가 3년 전쯤 전역한 이후 몸을 더 키웠어요. 이번 드라마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운동을 열심히 했고요. 상의 탈의 신이 있었거든요. 촬영은 다 마쳤는데, 다음 작품에서 운동선수 역할이라 요즘 더 벌크업을 하는 중이에요.
김재욱 씨와는 열한 살 차이가 나네요. 그는 이제 웬만한 현장에서 어른 대접을 받는대요. 유튜브 촬영 때 보니 두 분이 꽤 격의 없는 사이 같았어요.
처음에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쓰다가 점점 편한 사이가 되어서 이제는 형이라고 불러요. 작품 촬영장 분위기가 좋았다는 말이 뻔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번 현장은 정말 손에 꼽게 즐거웠거든요. 쉬는 시간마다 재미나게 놀아서인지 형과 그렇게 나이 차를 느끼지도 못했어요. 제가 형들을 워낙 좋아해요. 누나들도 좋아하는데, 특히 형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재욱이 형이 저보고 리트리버 같다고 한 게 아닐지(웃음).
외모상으로는 두 남자의 느낌이 많이 다르지만, 화보 촬영 때는 그저 멋진 남성 옆에 멋진 남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답니다.
음, 재욱이 형과 저는 드라마 속 모습도 그렇고 좀 상반되는 이미지죠. 사람은 자신과 반대되는 기질이나 성향을 부러워할 때가 많잖아요. 저도 그래요. 재욱이 형은 남자가 봐도 멋진 남자예요. 연기할 때뿐만이 아니라 원래 형이 가진 그 말투와 태도가 있는데, 진짜 멋있어요.

4월 25일 첫 방송을 타는 tvN <은밀한 감사>는 로맨틱 코미디물이면서 오피스물이에요. 감사 1팀 대리 ‘노기준’은 에이스이자 PM 담당이죠. 직장인들은 PM이라고 하면 보통 프로덕트 매니저를 떠올릴 텐데… 노 대리는 사내 ‘풍기문란’을 잡아내는 역할입니다(웃음). 공명에게 육각형 인재라는 설정, 그리 낯설지 않았겠네요?
아니에요, 기준이는 정말 다방면으로 뛰어난 캐릭터예요. 처음 로그라인만 봤을 때는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이스다운 면모를 ‘뿜뿜’ 해야 하는데, 내가 그걸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신감 있는 남자로 보일 수 있을까. 조금 걱정했죠. 걱정한 부분을 배우로서 잘 소화해보겠다는 포부로 이 작품을 시작했어요.
시청자로서는 그저 재밌게 즐길 만한 유쾌한 드라마일 거라고 짐작하는데, 공명 씨에겐 도전의 성격이 있었나 봐요.
‘공명이라는 배우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그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죠.
극 중 상사인 감사실장(신혜선 배우)과 노기준의 관계는 소위 ‘혐관’으로 시작해 발전합니다. 연애할 때의 공명은 어떤 사람이에요?
그건 기준이와 비슷합니다. 기준이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성격이라, 직진하거든요. 저도 직진하는 스타일이에요.
배우가 아니라 회사원이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해봤나요?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좀 상상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 같은 생각도 하면서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아주 성실하게 다녔을 것 같아요.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못나지도 않은 직원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성실하게.
공명에게 김재욱이 멋있는 형이듯이, ‘남자가 봐도 진짜 멋있는 남자’라고 하면 어떤 남자 상이 떠오르세요?
평소 그런 걸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회사에서 에이스 설정인 기준이를 놓고 보면 드는 생각은 있어요. 에이스라는 건 일을 아주 잘한다는 뜻이잖아요. 그 사람이 속한 조직에서 인정받는다는 거죠.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 때, 거기서 배어나는 자신감이라는 게 있을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지점이 멋있는 거고요. 이번에 기준이를 연기하면서는 그 부분을 표현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명 씨는 전역 후 일에 목말랐는지 작품을 연달아 했어요. 작년 한 해 동안만 티빙 <내가 죽기 일주일 전>, tvN <금주를 부탁해>,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이 공개되었죠. 열심히 달리는 와중인데, 배우로 사는 건 여전히 즐거운가요? 언제 일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나요?
저는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도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새로운 작품을 하면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거고요. 그런데 연차가 쌓이면서,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만큼 이별하는 슬픔도 겪잖아요.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이별을 반복하게 돼요. 그 과정을 겪다 보니 이제는 카메라 앞에 서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같아요.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날 바라보며 집중할 때, 기분 좋죠.
저는 예전에 사회생활 선배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좋아한다’는 건 언제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감정이지만, ‘잘한다’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요. 젊은 친구들이 진로로 고민할 때는 좋아하는 것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잘하는 것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었어요.
와,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제 경우는 좋아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어릴 때 운동을 좀 했거든요. 달리기도 잘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시대회, 도대회에 나가고, 태권도 대회에도 나가고. 어느 정도 잘하다 보니 이것저것 열심히 도전했는데, 제가 운동을 엄청 좋아하고 있진 않더라고요. 다치는 일도 잦았고요. 그런데 어쩌다 연기를 배우면서부터는 푹 빠진 거죠. 그렇게 시작을 했어요. 그 좋아하는 마음을 잘 간직하려고 해요. 노력으로 온전히 다 지켜지진 않겠지만, 그냥 제 자신을 믿는 거죠.
공명 씨가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기쁨만큼 이별의 슬픔을 알게 되었다는 데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사람을 좋아하는 건 한때의 취향이 아닌 기질에 가까울 테고요. 스스로에게서 마음에 드는 기질이 있다면요?
긍정적인 편이에요. 낙천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단순해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공명의 긍정적이고 온화한 면에는 혹시 가족 환경의 영향도 있을까요?
저를 예명이 아닌 동현이라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는데, 최근에 친구한테서 ‘너는 어쩜 그렇게 착하고 예쁜 말만 하냐’는 말을 들었어요. 낯간지럽게 친구끼리 뭐 그런 말을 하냐고 넘겼죠. 그러다 제가 부모님과 밥 먹는 자리에 친구들도 같이 하게 됐는데…. 친구들이 ‘아, 동현이 부모님을 보니까 동현이가 왜 그런지 알겠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부모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긍정적인 공명도 좌절 비슷한 걸 경험한 기억이 있나요?
어릴 때, 자그마한 좌절들은 겪었죠. 운동을 하다가 벽에 부딪쳤을 때.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싶으면서 좌절을 맛보기도 했죠.

푹 빠진 연기 생활을 한 지 10년이 좀 넘었어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웬만큼 겪어본 연차죠. 그동안 일로 드디어 인정받았다고 느낀 때가 있나요?
아직은 딱히 없는 것 같네요. 내가 진정으로 인정받았다고 할 무엇을 남긴 적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싶어요. 이제 30대 초반인데 배우로서는 한두 걸음 내디딘 게 아닐까 해요. 물론 지금까지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만족감이 있어요. 그런데 뭔가 갈증이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해요. 일한 지 10년쯤 되니까, 그렇게 만족감과 아쉬움, 그 두 가지가 동시에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냥 계속해서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입니다.
분명 늘 열심히 해왔을 텐데, 어떻게 더 열심히 하려고요?
전에 열심히 했다면, 전에 한 그 정도만큼이라도 꾸준히 하는 거. 그게 지켜지면 저는 ‘열심’이라고 봐요. 내가 지금보다 노력을 더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더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오래 지속하느냐, 꾸준히 할 수 있느냐 같거든요. ‘여기서 더 해야 해’라고 채찍질하다가는 오히려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어요. 열심히 하겠다는 건 밀어붙이고 채찍질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래, 지금 하는 만큼만 꾸준히 계속해보자’ 쪽에 가까워요.
멋진 태도네요. 요즘 배우로서 품은 화두가 있다면요?
한동안 제일 큰 화두가 ‘쉼’이었는데,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쉼 없이 달리고 싶어서 달리다 보니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거든요. 저는 취미로 즐기는 게 많아요. 쉬는 기간에도 어떻게 그 시간을 잘 보낼지 방법을 아는 편이죠. 전역 후엔 그럴 시간 자체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은 셈이에요. 인터뷰할 때면 저는 배우 생활을 마라톤에 자주 비유하거든요. 천천히 가더라도 내 페이스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큰데, 그러려면 건강을 지켜야죠. 일하면서 제일 힘들 때도 어쩔 수 없이 몸이 아플 때예요.
전역 후에는 의도적으로 몰아치는 페이스를 선택한 거네요. 쉴 때는 맘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인가요?
<은밀한 감사> 촬영을 두 달 전쯤 마치고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어요. 원래는 매일 운동을 꼭 하고, 하루 중 일정 시간은 몸을 움직이며 사는 식이었거든요. 친구들과 여행 다녀온 거 외에는 정말 잘 먹고,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보면서 지냈어요. 부모님이랑 가까운 거리에 살아서 매일 집밥 먹으러 가고요.
부디 다음 작품 들어가기 전까지 잘 쉬길 바랍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잘 받는 편은 아니시죠?
그렇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줄 알았는데, 완전히 그런 건 아닌가 봐요. ‘나는 스트레스는 잘 받지 않아’ 하면서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일도 좋지만, 무리가 될 것 같으면 너무 일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일을 오랫동안 잘 해내기 위해서는 건강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끝나고는 뭐 해요? 스케줄 있나요?
부모님 댁으로 갑니다, 밥 먹으러.

KIM JAE UCK
<W Korea> 오늘도 일어나서 따뜻한 물 두 잔 마시고 러닝도 좀 하다 오셨나요?
김재욱 뛰지는 못했고, 따뜻한 물은 늘 챙겨 마십니다.
아침 9시 반에 인터뷰하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혹시 일찍 일어나 오전 시간대를 알차게 보내는 그런 훌륭한 사람인가요?
저도 이 시각에 하는 인터뷰는 처음 같네요. 아침형으로 바뀐지 몇 년 됐어요. 제가 학창 시절에도 새벽을 좋아했고, 오랫동안 올빼미로 살았어요. 그런데 스케줄 때문이든, 의도치 않았든, 왜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날 때 있잖아요.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다는 걸 차츰 알게 됐죠. 또 40대가 되면서는 확실히 운동도 그렇고 일정한 패턴과 루틴이 있어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 조금씩 생활을 좀 바꿔볼까, 하다 보니 이제는 보통 8시면 일어나는 편이에요.
건강하고 바람직한 생활 리듬으로 바뀌는 시점과 나이 듦이 묘하게 맞물린 것 같네요?
정확하게 맞물렸죠(웃음). 살면서 참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가 변하기도 한다는 점, 그 산증인이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지금 이런 리듬으로 사는 게 좋고요. 저는 불면증에 시달린 적도 없어요. 예민해지고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자는 스타일이에요. 오히려 열몇 시간을 자면 잤지, 잘 못 자고 그러진 않아서 의외라는 말을 자주 들어요.
김재욱 씨와 공명 씨 모두 키가 커서, 사진가가 두 분의 풀 샷을 담으려면 꽤 멀찍이 떨어져 서야 해요. <은밀한 감사>로 만난 공명 씨에게선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리트리버 같은 친구입니다. 너무 사랑스러워요. 존재 자체로 현장을 밝게 만들어줬어요. 굳이 애써서 노력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더라고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면도 봤고요
슈트 차림의 김재욱은 샤프한 인상이 더 강해지면서 슈트와 ‘착붙’ 느낌이 나요. 하지만 평소 슈트에 손 가는 일이 별로 없죠?
경조사 갈 때나 입어요. 작품에서 제가 슈트를 많이 입었죠. 20대 때부터 저한테는 가난한 역할보다 돈이 좀 있는 역할을 맡겨주실 때가 많더라고요(웃음).
<은밀한 감사>에서도 슈트를 실컷 입으셨겠어요. 재벌 3세이자 그룹 총괄부회장, ‘전재열’ 은 어떤 인물인가요?
실력과 인성을 갖춘, 뭐 모자란 게 없는 재벌 3세로 통해요.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안쓰러운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대외적으로는 아주 좋은 면만 부각되지만, 사실 기댈 곳 없이 외로운 사람이거든요. 후계 싸움도 치열하고, 어머니와 관련한 고통스러운 가정사가 있고. 그러니까 재열은 분투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자신이 무능하거나 나약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드라마 티저 영상을 보면 기본적으로 경쾌한 코미디 분위기가 있어요. 전재열이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면 공기가 좀 달라질 듯한데, 그렇게 극 전반의 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캐릭터를 수행하는 배우 입장은 또 어떨지 궁금해요. 그냥 내 캐릭터의 세계에 집중하며 갈 길을 가나요?
반가운 질문이네요. 배우로서 늘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은밀한 감사>에서 전재열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다소 시끌벅적하고 ‘우당탕탕’ 하는 분위기가 있을 텐데, 전재열이 나타나면 아무래도 신의 느낌이 무거울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정도를 잘 조절하지 않으면 우리 이야기의 색에서 너무 다른 쪽으로 튈 수 있는 거니까 톤앤매너를 어느 정도로 잡아야할지 혼자 연구했죠. 그걸 감독님께 보여드리면서 조정해갔고요. 결국 현장에서 소통을 자주 하면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저는 감독님을 믿었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끼리 ‘하이브리드 드라마’라는 표현도 썼어요. 재열이만 등장하면 장르가 바뀌어버리니까(웃음). 아예 그런 갭을 확실히 살려보고자 한 면도 있어요.
그룹 감사실장 역할을 신혜선 씨가 맡았죠. 두 분 사이에 얽힌 사연은 뭘지, 인물들의 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궁금하네요.
‘저 배우랑 호흡 맞춰보면 재밌겠다’, 이런 직감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저에게 신혜선 씨가 그런 배우 중 하나였어요. 언젠가 한 번 작업해보고 싶은 친구였죠. 최근 <레이디 두아>에서도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멋진 배우라고 생각해요.
전재열이라는 남자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뭔가요?
저는 사람이 사람에게 나이스한 게 좋거든요. 재열은 직책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나이스하게 대하고, 교양 있게 굴어요. 제가 지향하는 태도이기도 해서 그런 재열이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재욱 씨 주변인들은 대체로 당신에 대해 젠틀하고 다정다감하다고 말하죠?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도 그렇게 증언하나요?
오래 봐온 사이라면 굳이 성격에 대해 코멘트하고 그럴 일은 없지만, 아주 예전부터 저를 안 친구들에게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말은 들어본 것 같네요. 어릴 때 저는 지금보다 뭔가 더 뾰족했죠. 에너지도 넘쳤고. 20대 때까지 제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는 ‘내가 부서지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나는 후회 없이 나답게 한다’ 식이었어요. 내 방식대로 가겠다는 치기 비슷한 거. 30대 때부터는 그 반대를 지향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내가 전과 다르게 군다고 해서 내 신념을 저버린 건 아닌데, 훨씬 유연하면서 주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내가 너무 서툰 건 아닌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래야 원하는 걸 얻기도 한다는 경험치도 쌓였고요.
지금과 다르게 살아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뾰족하던 김재욱은 연차가 쌓이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어느 순간 자체적으로 뭔가 깨달았나요? 철들기 시작한 걸까요?
뭐,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자체적인 깨달음은 맞는데… ‘철들었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성숙해졌다는 말은 듣기 좋으면서도 철들었다는 말은 또 좋지 않네요. 이게 참 미묘한 차이인데, 어쨌든 철들고 싶진 않거든요.
배우로 일한 지 20년이 넘으셨잖아요. 그 시간을 버텨온 끝에 교훈처럼 남는 무언가가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해보면, 결국 내가 이 일을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가 더 명확해지는 기분이에요. 무언가 남았다기보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드는 거죠. 잘하고 싶으니까, 좋아하니까. 그래서예요. 그게 제일 순수하고 좋은 것 같고요.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운 대본과 현장도 있지만, 이 일은 재밌어요. 다음 레벨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내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계속해서 더 알고 싶어요. 정답이란게 없으니까요. 제가 워낙 정답 없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해요.
갈증이라면 어떤 갈증이 남아 있나요?
갈증이야 언제나 있죠. 맡아보지 못한 역할들에 대한 갈증이요. 반대로,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내가 제작진이어도 이 역할 나한테 안 주겠다’ 싶은 역할이 올 때의 희열도 있어요. 그런 희열을 느낄 기회 역시 늘 기다리는 것 같아요.
작년에 넷플릭스 시리즈 <멜로무비>를 보고 ‘고준 때문에 펑펑 울었다’는 사람이 많았죠. 이를테면 고준 역할이 주어졌을 때의 희열 같은 거군요? 남다른 형제애를 가졌으면서 병약한 모습도 있고, 처음 보는 김재욱의 얼굴이었어요.
그 희열, 너무 컸죠. 고준 같은 역할은 정말 꼭 해보고 싶었거든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오충환 감독님과 이나은 작가님에게 ‘어쩌다가 그 역할을 저에게 주셨는지’ 여쭤봤어요. 두 분은 김재욱이라는 배우가 고준에 아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셨대요. 만약 제가 그 작품을 하지 않았다면, 시청자로 작품을 보면서 ‘정말 매력적인 역할이다, 나도 저런 거 잘할 수 있는데’라고 그냥 저 혼자 생각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다른 이야기잖아요. 누군가 저와 비슷한 생각으로 저를 바라봐주었다는 점이 너무 감사했어요.

김재욱 씨가 영화 수입도 하신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2020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마르지엘라>에 이어,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인 <남과 여>를 수입하셨죠. 최근 극장가에 걸렸고요. 이 영화가 1979년에 국내 개봉했다죠? 영화 수입자로 일의 확장을 꾀한 스토리가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30대 초중반까지는 영화를 미친 듯이 열심히 봤어요. 삶의 여러가지 중에서, 영화는 어쨌든 제가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거든요. 제가 그렇게 한국에서 영화를 접할 수 있었다는 건 앞세대 때부터 누군가 작품을 들여왔기 때문이잖아요. 그들 덕에 저는 영화 감상이라는 혜택을 받은 거고요. 제가 연기하면서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와 용기를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진 않듯이, 꼭 어떤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누군가는 제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면서 힘든 시간을 극복했다고 편지를 써주기도 하거든요. 그런 편지를 받으면 이상한 죄책감과 성취감이 동시에 와요. 그런 것처럼, 다음 세대가 좀 더 다양한 영화를 보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과거에 누린 혜택을 이제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으면 좋잖아요. 괜찮은 영화가 세상에 많을 텐데 예전보다 개봉작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에요. 지금껏 배우 일을 그렇게 해왔듯이 영화 수입도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보려고요.
<남과 여>는 유니콘 같은 영화였어요. 작품 제목도, 주제곡도 너무나 유명한데, 아직 보지 못한 옛날 영화. 작년 칸 영화제 때 이 영화의 스틸 이미지가 공식 포스터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듀얼 포스터가 나왔죠. 영화의 어떤 점에 반했나요?
칸 영화제 60주년 기념으로 <남과 여>를 리마스터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크리너를 받아서 봤어요. 그만큼 기념비적인 영화인데, 보는 동안 푹 빠져서는 왜 이 영화를 진작 찾아볼 생각을 안 했을까 싶더라고요. 일단 영화의 무드 자체가 정말 좋았어요. 컬러와 흑백과 세피아 톤이 교차하는 화면, 남녀 배우의 눈빛이 닿는 연기. 거기에 음악도 완벽하고, 당시 유럽의 카레이싱에 대해 엿볼 수 있는 디테일도 놀라웠어요.
앞으로 해외 필름 마켓도 둘러보면서 적극적으로 영화를 찾을 생각이세요?
거기까지 가볼 예정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수입하고 싶어요. <마르지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고, <남과 여>는 어쨌든 재개봉 성격이니까요. 일단 제가 보기에 재밌는 영화가 첫 번째 기준이에요.
요즘에 손 편지를 보내는 분들이 계시다니, 울컥합니다. <은밀한 감사>가 마친 후에도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아마 전재열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죠. 혹은 멋있는 역할에 맞게끔 한껏 멋 부리고 등장하니, 깔롱진 거로 사랑받을 수도….
- 포토그래퍼
-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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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일(공명), 조한나(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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