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의 무한한 뉘앙스, 24 FW 발렌티노 컬렉션

명수진

VALENTINO 2024 F/W 컬렉션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는 ‘검은 것은 민주주의의 제복이다’라고 말했다. 발렌티노를 통해 강렬한 컬러 팔레트를 펼쳐오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24 FW 시즌, ‘르 누아르(Le Noir)’를 주제로 런웨이를 완전한 블랙으로 물들이고 블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재조명했다. 눈이 시릴 정도의 핑크 컬러로 바비코어(Barbiecore) 트렌드를 이끌었던 발렌티노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이다. 피엘파올로 피촐리에게 영감을 준 것은 단색 화가인 마크 로스코(Mark Rothko),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그리고 현대 조각의 아버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si)의 작품

18세기에 지어진 호텔 파티큘리에(Hôtel Particulier)에 마련된 고풍스러운 베뉴. 모든 빛을 흡수하는 블랙의 폭넓은 수용성 안에서 새틴, 니트, 벨벳, 레이스, 페이턴트 등 다양한 소재와 깃털, 러플, 자수, 리본, 폼폼, 시퀸, 로제트 등 화려한 디테일이 제각각의 매력을 발산했다. 피엘파올로 피촐리에게 블랙이란 단순히 컬러의 부재 혹은 절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떤 색보다 무한한 뉘앙스를 지닌 컬러인 것! 블랙 러플이 층층이 레어어드된 미니 드레스, 검은 테슬을 장식한 블랙 코트, 목련 같은 검은 꽃잎을 겹겹이 붙인 시스루 풀오버는 어떤 형형색색의 옷보다 화려하게 빛났다. 검은 베일과 매치한 깊은 컷아웃의 블랙 드레스는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광택이 있는 가죽 집업과 A 라인 스커트, 미니멀한 블랙 톱과 팬츠 스타일링은 블랙 본연의 시크함을 드러냈다. 역시 블랙이 가장 빛난 것은 피날레의 이브닝드레스였다. 폼폼 장식을 더한 시스루 가운과 꽃 시폰을 레이어링한 이브닝드레스는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팔뚝까지 덮는 블랙 글러브가 발렌티노의 고전적인 매력을 돋보이게 했고, V 로고가 특징인 가라바니 로고 백(Garavani Loco Bag)이 검은 옷 사이에서 반짝거렸다.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24 FW 발렌티노 컬렉션을 통해 ‘블랙은 절제된 색이 아니라 가장 생기 넘치는 색이 될 수 있다’는 철학을 총 63벌의 컬렉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미드나이트 블랙, 빈티지 블랙, 머드 블랙, 블랙 아이스 등 다양한 블랙의 뉘앙스를 식별하는 예민함까지 굳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매력적으로 느낄법한 블랙 의상의 퍼레이드였다.

영상
Courtesy of Valen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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