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게 보내는 애도의 연서
87세의 나이로 타계한 패션 천재,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빛나는 전설이 된 그를 그리워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칼을 만났던 코리안 톱모델들이 애도의 연서를 보내왔다.
“펜디 피팅 현장에서 선글라스를 낀 채 의자에 앉아 계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선글라스 너머로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온 모델이 몹시 긴장한 모습을 응시했을 테지. 칼은 말재간이 뛰어나서 모델들이 휴식 시간에 이야기하고 있으면 다가와 그 상황을 캐치해 농담을 던지곤 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건 촬영장에서 만난 칼의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알다시피 펜디와 샤넬의 모든 광고 캠페인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물론 오래 함께 일해온 그의 팀원들이 손발처럼 착착 호흡을 맞춰 칼의 촬영을 돕긴 했지만, 모든 컷의 셔터를 직접 누르고 뷰파인더를 통해 모델과 교감하는 건 오롯이 칼이었다. 특히 ‘You did good’이라는 칭찬을 직접 건넬 줄 아는 분이기도 했다. 지난 S/S 시즌, 파리 그랑팔레 쇼장을 해변가로 탈바꿈시킨 그는 이례적으로 자신의 시그너처와도 같던 선글라스를 벗은 채 피날레 워킹을 했다. 그때 그 모습을 추억하는 이유는 사실 그 슬프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눈빛 때문이다. 난간에 기대어 ‘자유롭게 걸어라’는 메시지를 전하던 그는 어쩌면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은 줄곧 그를 ‘항상 미래를 추구하며 과거에 갇혀 있지 않는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추구하는 사람, 그 인생 자체로도 배울 게 많은 분이었다. 그리고 칼이 남긴 메시지 중에서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문구는 바로 ‘Keep Going!’이니까. 미래를 바라보며 큰 그림을 그린 큰 사람다운 말이다. 자신의 죽음을 넘어 패션계에 여전히 존재감 있는 메시지를 남긴 그.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잠언처럼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면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일으키며 의미 있는 삶을 살아온 그를 추억하며 나 역시 그처럼 내 일을, 생을 사랑하며 열심히 살겠다 다짐했다.” – 모델 정호연
“칼과의 첫 만남에서 특히 인상적인 건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샤넬 피팅을 보는데 요청 사항을 디자인팀에 전할 때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았고 또 기분 좋은 울림이 있었다. 한편 캠페인 촬영을 할 때면 더없이 유머러스하고 에너제틱했다. 한 마디로 위트가 넘치는 분이었으며 또한 매우 섬세했다. 샤넬 광고 캠페인을 찍기 전날, 한 식당에서 그를 우연히 마주쳤는데 다음 날 그걸 기억하고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준 기억이 난다.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그였기에 지난 1월, 샤넬 쿠튀르 백스테이지에서 모두가 그를 기다리며 쇼가 시작되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고, 갑자기 칼이 쇼장에 못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들 당황했다. 바로 전날 피팅 볼 때까지만 해도 정정했는데,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다니. ‘꿈을 꾸다가 영감을 얻어서 디자인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했던 칼 라거펠트. 죽음이 목전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능했다. ‘황제’의 위치에 머무르면서도 그렇게 많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비결은 존중과 배려에 있지 않았을까. 양 볼에 비주를 하며, 내 이름을 ‘욘지’라고 발음하면서도 어떻게 부르면 되는지 계속 묻고 노력하신 모습이 뭉클하게 떠오른다. 이제 곁에 없지만 그로 인해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칼로 인해 스타일리스트 카린 로이펠트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이후로 샤넬 캠페인을 비롯해 여러 좋은 작업이 이어졌으니까. 나를 ‘Karl’s New Baby’라고 소개하며 힘을 실어준 카린은 얼마 전에도 패션위크를 마친 나를 뉴욕 촬영장으로 불렀다. 모델로서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과도 같은 칼, 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 모델 신현지
“격의 없이 소탈하게 말을 건네던 칼 라거펠트. ‘저 사람이 칼이구나’ 하고 감탄하며 쳐다보는 순간,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관심을 갖고 물어봐준 그였다.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에서도 따뜻하고 친근하게 대해준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 모델을 존중하던 그의 태도가 기억에 남는다. 몇몇 디자이너가 모델을 무시하거나 무신경한 행동을 하는 반면에 그는 쇼장에서 모델들이 추위에 떨지는 않는지 늘 컨디션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건 지난 S/S 시즌, 해변을 재현한 샤넬 쇼장이었다. 피날레 때 그는 많이 쇠약해진 모습과 느린 걸음으로 등장했다. 전매특허 선글라스를 벗은 채, 그의 오른팔이자 그의 뒤를 이어 샤넬의 수장이 된 버지니 비아르의 부축을 받으며 나온 칼은 모델들이 워킹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때 다들 뭔가를 예상했고, 지금도 그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후 2월 19일, F/W 시즌 밀란 컬렉션을 위해 마르니 피팅을 보던 날이었다. 모델 현지 언니에게서 ‘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이어 에이전시 부커의 메일이 오면서 모델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칼의 유작이 된 펜디 쇼 캐스팅도 다시 했고, 패션위크 기간 내내 그를 알았던 지인들은 슬픔을 감춘 채 워킹했다. 내게는 보물이 있다. 훗날, 내가 그를 추억할 물건인데, 바로 백스테이지 배지다. 배지는 백스테이지에서 피팅 볼 때 지녀야 하는 것인데, 칼은 시즌마다 드레스나 꽃을 비롯해 각기 다른 스케치를 더한 배지를 제작해 나눠주었다. 얼마 전, 이집트에서 영감을 받은 공방 컬렉션을 할 때도 모델들 방에 초대장과 피팅 스케줄, 그리고 이집트 벽화에서 발견될 법한 무드보드 이미지를 담은 배지를 보내주셨다. 지금까지 이 특별한 배지들을 모두 모아서 간직하고 있다. 이걸 보면서 그가 하늘에서도 좋아하던 그림을 많이 그리시길 빈다. 인사 몇 번과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로도 더없이 따뜻함을 안겨준 분이기에 그가 떠난 이후 며칠 동안 슬픔에 사로잡혔다. 그 특별한 재능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를 떠올리며.” – 모델 배윤영
- 패션 에디터
- 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