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마르지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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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갈리아노가 돌아왔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얼굴로.

1. 연극적인 무대 연출은 갈리아노의 전매특허였다. 2009년 가을 컬렉션. 2.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패션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재능으로 무장했으며, 동시에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선 그 이름, 존 갈리아노가 돌아온다. 그가 돌아 오기로 약속된 자리는 더욱 놀랍다. 바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다. 이 뉴스는 4대 도시 패션위크가 모두 일단락된 후 패션계가 비교적 잠잠해진 10월 7일에 공식 발표되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규모나 매출 면에서는 역사 깊은 하우스들과 견줄 바가 아니지만, 브랜드 자체가 갖는 유일무이함, 즉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모두가 그 행보를 주목하는 브랜드라는 평가 와 함께, 진짜 모습을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팬들에 의해 거의 신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임자이자 창립자인 마르탱 마르지엘라라는 존재 덕분에 누구나 그 신임 디렉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자리에 존 갈리아노가, 지난 2011년 유대인과 동양인에 대한 모욕적인 취중 발언으로 인해 법정에 섰던, 그리하여 15년간 몸담았던 디올 하우스로부터 해고당한 갈리아노가 돌아오는 것이다. 발렌시아가와 법적 분쟁을 겪고 있던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하우스 안주인으로 들여앉히는 데에는 루이 비통의 부회장인 델핀 아르노의 역할이 컸듯, 입으로 자신의 미래를 묶어버린 사내를 다시 패션계로 불러들이는 데에는 렌초 로소 회장의 결심이 바탕이 되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를 비롯해 디젤, 마르니, 빅터&롤프 등을 소유하고 있는 OTB(Only the Brave) 그룹의 회장인 로소는 “누가 그와 함께 일할 기회를 놓치고 싶겠는가? 그가 패션계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 첫 번째 컴백 컬렉션을 내가 생산하는 영광을 누리고 싶다”고 말하며 갈리아노에 대한 무한한 기대를 표현했다. 사실 브랜드 정체성만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해체주의적 미니멀 아방가르드로 대표되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한 레이디라이크 룩이 시그너처인 존 갈리아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놓인 듯 보인다.

하지만 갈리아노는 자신의 시그너처 컬렉션과, 2000년대 초반 디올 컬렉션을 통해 거의 노숙자와 제3세계의 환경 파괴를 주제로 과장된 해체주의 적 무대를 선보이곤 했다. 마르지엘라와의 접점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니콜라 포미체티를 디젤로 끌어들여 동 원 가능한 모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준 렌초 로소 휘하에서 일하게 된 것은 벼랑 끝에 몰렸던 갈리아노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컴백인 셈이다. 의복 구성의 전통을 파 괴하며 급진적인 해체주의 디자인으로 패션뿐만 아니 라 건축과 인테리어, 현대미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의 방향이 기괴한 발상의 천재, 존 갈리아노의 합류로 인해 어떻게 바뀌게 될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컬렉션은 내년 1월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3. 우아하고 드라마틱한 갈리아노의 디올 시절 작품. 2007년 겨울 오트 쿠튀르. 4,5. 마틴 마르지엘라가 이끌던 시절은 해체주의적 성향이 짙었다. 2006년 봄 레디투웨어.

에디터
패션 디렉터 / 최유경
COURTESY
MAISON MARTIN MARGI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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