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쯤 쉬어도 괜찮지. 오늘 당장 모든 게 변하진 않을 테니’라고 노래하던 페퍼톤스는 2012년 내내 쉬지 않고 달렸다. 지난봄 정규 4집 앨범을 발표한 후 전국 방방곡곡 공연장을 누비더니, 연말 공연을 앞두곤 EP <Open Run>까지 꺼내놓았다. 뜨겁게 2012년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새로운 EP 을 4집의 연장선상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신재평 4집 <비기너스 럭>처럼 기본적으로 밴드 음악이고 우리가 노래를 했다. 무엇보다 출생 배경 때문이다. 4집을 발표한 이후 소극장, 페스티벌, 클럽 등에서 공연을 참 많이 했는데, 그때 얻은 에너지들로 만든 음반이다. 공연장에서 관객이랑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즐거운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뮤지션에겐 계속 새로운 곡이 필요했기 때문에, 곡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자 그랬던 거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까지 3주 안에 다 끝냈다.
페퍼톤스 두 명 외에 드럼, 건반, 일렉기타를 포함한 다섯 명의 멤버로 구성된 밴드가 음악을 만들면, 작업 방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있을 듯하다.
이장원 이전까지의 음악이 굉장히 계획적 요소가 많았다면, 지금은 현장감이 커졌다. 4집에 수록한 ‘21세기의 어떤 날’이 밴드 전체가 함께 녹음실에 들어가서 녹음한 첫 번째 곡인데, 이번엔 총 다섯 곡 중 네 곡을 드럼과 함께 들어가서 녹음했다. 작은 디테일은 놓쳤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생동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4집 음반 발표, 소극장 공연, 클럽 투어에 이어 새로운 EP와 연말 공연까지, 올해 유독 그렇게 열심히 달린 이유가 있다면?
신재평 세상에 뭔가 한번 보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밴드로서 4집이면, 어디 가서 귀여운 맛으로 버티기엔 연차가 꽤 있는 셈이니까. 그런 생각이 밴드 포맷으로 공연이 가능한 4집을 만나 실천으로 옮겨진 셈이다. 다만 방송 활동은 욕심 내지 않았고, 온통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이번 연말의 선택도 결국은 음악이었다.
페퍼톤스의 2012년 화두를 하나 꼽으라면 정말 공연이었던 것 같다. 그 수많은 공연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이장원 너 맨날 지산밸리록 페스티벌 얘기하잖아.
신재평 그렇게 사람들이 기차 놀이하고 슬램하는 걸, 우리가 공연하는 무대에선 처음 봤다. 물병이 날아다니고 물을 뿌리고 하는데, 야 신기하다 하면서 공연했다.
이장원 클럽 투어 첫 번째 공연이 대구 ‘헤비’에서 있었다. 클럽 투어의 첫 공연인데다 ‘안테나 뮤직 워리어스’를 제외하면 대구에서의 첫 공연이라 두려움도 있었고 무엇보다 너무 더웠다. 원래 부축 따위 받지 않는 성격인데, 그때는 털썩 주저앉는 바람에 부축을 받으면서 나왔다. 아유, 지금 얘기하니까 재미있는 거지 내가 평생 떠올리지도 못할 욕을 했었다.
특히 지방 클럽에서의 공연은 색다른 의미였을 것 같다.
신재평 그 도시까지 가는 여정을 포함해서 낯선 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설렘이 있다. ‘대구에서 페퍼톤스 이름 걸고 처음 하는 공연인데 어떤 사람들이 올까? 이 공간을 다 채워줄까?’ 했는데 꽉 채워주고 가사를 따라 불러주고 그런 것들이 감동적이랄까. 새로운 장소에서 우리 음악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들과 같이 노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럼 올해를 마무리하는 연말 공연인 은 어떻게 꾸밀 예정인가? 아무래도 공연장 규모가 크니 더 화려한 조명 혹은 댄스?
신재평 아유, 댄스는 안 된다. 이장원 왜 쑥스러워해?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상상을 하고, 서로 나누는 과정에 있다. 확실한 건 무척 즐거울 거라는 사실. 그리고 지난여름의 클럽 투어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리란 사실이다. 그래서 결론은 우리가 하는 모든 종류의 공연에 골고루 찾아와주시는 게 어떨까…(웃음).
어쨌든 참 꽉 찬 2012년이었겠다.
신재평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추억할 만한 좋은 일을 만들면서 왔다는 게 뿌듯하다. 계속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이장원 난 이렇게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건 잘 모르겠다. 너무 더웠다. 솔직히 클럽 투어도 참 좋았다, 또 하고 싶다 이런 건 잘 모르겠다. 일단 건강해야 뭘 할 텐데, 건강이 위험했다(웃음). 후회가 된다면 건강을 챙기지 못한 것? 요즘 내겐 건강이 제일 큰 화두다.
신재평 너 작년에 인터뷰할 때도 똑같이 얘기한 것 같은데?
이장원 내가 작년에도 그랬어?
데뷔 후 8~9년이 흘렀다. 그동안 페퍼톤스의 무엇이 가장 많이 변했을까?
이장원 30대가 된 것, 그래서 생계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밤새워서 술을 마시면 다음 날 힘들다는 것.
신재평 20대의 우리는 그저 곡은 써지니까 발표는 하고 싶고,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고 그랬지 뮤지션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뮤지션이다. 이게 평생을 잘 가져가야 하는 내 소중한 직업이니만큼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올 한 해를 지나면서 너무 당연해졌다.
‘페퍼톤스’ 하면 자연스럽게 청춘, 젊음과 같은 키워드가 떠오른다. 여전히 청춘을 노래하는데, 말한 것처럼 30대가 되어서 어려움은 없는지?
이장원 30대가 됐기 때문에 청춘을 노래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30대가 되었음에도 청춘을 노래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신재평 20대의 청춘이라고 하면 조바심이 떠오르다. 내가 지금 청춘이니까 빨리 재미있게 놀아야 하고,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된다는 그런 조바심. 하지만 지금은 내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현재가 잠시 후에는 다 과거가 되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결국 그러한 추억거리를 많이 생산해내는 게 중요한 거지,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야 된다고 노래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아, 좀 나이 들긴 나이 들었구나.
이장원 지금 엄청 아저씨처럼 얘기하고 있어, 취소한다 그래. 워낙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을 노래해온 우리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 또한 우리가 그런 노래를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옛날엔 상상 속의 이야기들이 팡팡팡팡 쏟아져 나왔는데, 그걸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약간 억지로라도 그런 생각을 하려고…
신재평 땡. 이것도 취소해야 해.
이장원 네. 지금도 팡팡팡팡 쏟아져 나옵니다.
지금보다 더 알려지기를 바라거나,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나?
이장원 갈팡질팡할 때가 있다. 내 경우 음악은 알리고 싶은데,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다. 방에서 조용히 음악 하던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그렇게 바랄 것이고, 그게 제일 멋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건데, 세상이 그렇질 않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에서 약간 벗어난 것들을 얼마나 할 것이고,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항상 고민거리다.
그럼 하고 싶은 일에 속하는 EP 앨범과 연말 공연에 대해서 하고 싶지 않은 홍보를 해보면?
신재평 올 한 해 달려온 페이스를 늦추고 싶지 않아서 계속 달리고 있다. 페스티벌 무대, 소극장 공연, 클럽 공연의 모든 장면들을 모아 팬들과 잔치를 벌인다는 느낌으로 받아주면 좋겠다. EP 역시 2012년 마무리를 뜨겁게 할 수 있기 위해서 만든 음반이니까 음, 많이 많이 애용해주세요.
이장원 뭘 더 보태겠습니까. 많이 많이 애용해주세요(웃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슬기
- 포토그래퍼
- 주용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