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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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2020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 리포트.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 정원이 그랑팔레에 펼쳐졌다.

주얼 장식 버튼과 꼬임 트리밍, 플레어 스커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 베이지 트위드 룩이 등장했다.

삶의 큰 그림을 결정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 디자이너 버지니 비아르는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에서 영감을 얻어 2020 S/S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완성했다. 별과 같은 문양이 새겨진 바닥,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얽힌 패턴, 흑백의 컬러 팔레트, 화이트 타이츠와 로퍼, 둥그런 칼라와 주름 스커트 등 샤넬 하우스의 코드를 정립한 핵심 요소들이 바로 그곳에서 탄생했다.

사진가 카림 새들리가 촬영한 흑백의 쿠튀르 컬렉션 이미지.

섬세한 소재 위에 수놓인 자수 장식.

샤넬 공방의 노하우와 장인정신, 쿠튀리에의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정교한 장식들.

샤넬 공방의 노하우와 장인정신, 쿠튀리에의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정교한 장식들.

샤넬 공방의 노하우와 장인정신, 쿠튀리에의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정교한 장식들.

샤넬 공방의 노하우와 장인정신, 쿠튀리에의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정교한 장식들.

지난 121일, 버지니 비아르의 두 번째 오트 쿠튀르 쇼를 보기 위해 서둘렀던 그 날 아침은 유난히 맑은 겨울 하늘과 햇살이 빛났던 날씨로 기억된다. 기대를 품고 입장한 그랑팔레는 나무와 화초, 농작물이 자라는 텃밭과 중앙에 분수대가 있는 정원으로 꾸며졌다. 공간은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으로 알려진 오바진 수녀원의 정원을 재현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첫 쿠튀르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와 가브리엘 샤넬의 유산을 찾아 떠난 버지니는 이번 시즌 역시 하우스의 역사와 아카이브를 찾는 데서 컬렉션을 구상했다. 그 결과 가브리엘 샤넬이 어린 시절을 보낸 가장 중요한 공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은 것. 1885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브리엘 샤넬과 그녀의 자매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의 오바진(Aubazine)에 위치한 고대 시토 수도회 고아원으로 보내져 다른 어린 원생들과 함께 성장했다. 해와 달, 별이 모자이크로 각인된 수도원 건물 복도의 자갈 바닥, 모노그램을 엮는 영감의 시초였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얽힌 동그라미 등 수도원의 모든 것이 어린 그녀의 감수성을 자극했고, 상상력과 꿈을 키우게 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이곳에서 발견한 다양한 이미지 조각과 바느질을 배운 시절은 깊이 봉인된 채 가브리엘 샤넬의 미학적 원천이 되어주었다.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2020 SS CHANEL HAUTE COUTURE

버지니 비아르는 남프랑스에 위치한 샤넬의 자택, 라파우자(La Pausa)를 둘러보던 중 집의 형태와 스타일이 수도원과 닮은 점을 파악하고 직접 오바진에 가보았다. 라파우자를 지을 당시, 샤넬이 어린 시절 수도원에 있던 돌계단 난간을 건축가에게 똑같이 재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건 수도원 정원을 인위적으로 가꿔놓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해가 정말 쨍쨍해서 여름 날과 꽃향기가 실린 바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섬세한 꽃 표본 같은 플라워 자수를 하고 싶어졌어요. 이 무대 장식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오트 쿠튀르의 세련미와 공간의 단순함 사이에 발생하는 역설이었고요.” 섬세한 트위드와 슈트의 엄격함, 남성성과 여성성, 블랙과 화이트까지, 이 모든 역설은 샤넬 하우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에 자양분이 되었다.

섬세한 튤과 레이스를 장식한 샤넬 오트 쿠튀르 드레스.

양말을 덧댄 로퍼와 레이스업 슈즈에는 흰색 타이츠를 매치했다.

양말을 덧댄 로퍼와 레이스업 슈즈에는 흰색 타이츠를 매치했다.

양말을 덧댄 로퍼와 레이스업 슈즈에는 흰색 타이츠를 매치했다.

교복을 연상케하는 단정한 라인의 트위드 룩을 선보였다.

블랙과 화이트 컬러를 엮은 트위드 울 소재의 드레스를 입은 비토리아 세레티의 오프닝 룩으로 시작한 컬렉션은 브레스티드 피코트와 매치한 트위드 스커트, 깅엄 패턴 드레스 등으로 이어졌고, 고아원생의 옷에서 출발한 어깨까지 감싸는 레이스 칼라를 의미하는 버서(bertha) 칼라는 주요 모티프로 활용되었다. 중반부에 등장한 베이지색 트위드 슈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데, 별과 꽃을 수놓은 주얼 장식 버튼이나 입체적으로 수놓은 꼬임 트리밍, 차이니스칼라 등으로 변화를 주고 플레어 스커트와 튤을 더한 베일 스커트와도 번갈아가면서 매치되었다. 여기에 천연 염색한 듯한 색감의 섬세한 끈으로 목가적인 느낌도 강조했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가져온 그래픽적인 무늬는 파스텔 톤의 시퀸 장식을 수놓은 자수 드레스와 슈트로 거듭났다. 간결한 라인의 정수는 롱 코트에서 부각되었다. 보디 라인을 타고 흘러 종아리 부분에서 퍼지는 듯한 머메이드 실루엣을 만드는가 하면, 크레이프 코트는 크고 화려한 무늬를 엮은 기퓌르 레이스로 전체를 뒤덮기도 하고, 오간자 리본 장식의 헤링본 코트는 피터팬 칼라와 함께 엄격한 매력을 전했다. 특히 모든 룩에 매치한 흰색 타이츠와 양말이 더해진 로퍼는 젊고 활동적인 에너지를 주입했다. “소녀들이 기숙 생활을 하거나 오래전 아이들이 입던 옷 같은 부분도 마음에 들었어요.” 원생들이 입었던 슈트는 쿠튀리에의 천상의 기교를 거쳐 구조적인 드레스로 이어졌다.

오바진 수도원의 정원으로 탈바꿈한 그랑팔레 중앙에 놓인 분수대 주변으로 모델의 워킹이 이어졌다.

백스테이지로 향하는 거버

순백의 티어드 드레스.

백스테이지 모습.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지니 비아르.

샤넬에서 명명한 ‘금욕적인 우아함’을 지나 중반부를 지나면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위한 장식적인 판타지룩이 등장했다. 네이비색 태피터 드레스 위에 입은 커다란 아이보리 케이프와 은은하게 빛나는 시퀸으로 뒤덮인 티어드 드레스, 실크 톱과 스커트 위에 걸친 기모노 소재의 볼레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파편을 연상케 하는 크롭트 재킷 등 섬세하고도 황홀한 샤넬 쿠튀리에의 경이로운 솜씨는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남성성이 강조된 턱시도를 재해석한 검정 시퀸 트위드 피코트는 커다란 버서 칼라를 덧대 클래식한 우아함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블랙 & 화이트가 믹스된 튤 페티코트 사이로 작은 꽃을 수놓은 드레스와 열십자 패턴으로 꾸민 꽃 무늬 레이스, 그래픽적인 시퀸 조각 장식의 페티코트, 튤 스톨과 에이프런 포켓이 달린 풀 스커트, 백리스 드레스 등 관능미와 클래식을 오가는 숱한 요소들이 쇼에 판타지를 더했다. 오바진 정원의 꽃은 튤을 중심으로 재해석되었다. 주름과 버튼 장식 롱 드레스 위에 내려앉은 알록달록한 색감은 튤 속에 은근하게 스며들었고, 오간자 플라운스 아래 자수처럼 피어났다. 잎사귀를 스티칭한 블랙 케이프, 튤 소재 톱과 페티코트의 실루엣 플레이, 멀티 컬러의 팬지와 블루 시폰 드레스에 강조된 옐로 실크 드레스, 그레이 오간자 스커트 등이 합쳐지자 한 다발의 부케가 피어난 듯한 아름다운 착각을 일으켰다. 클로징으로 선보인 베일 장식 웨딩드레스는 쇼의 낭만성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순수한 미학을 드러내는 피터팬 칼라와 등나무 무늬를 수놓은 짧은 베일, 그리고 흰색 타이츠와 양말, 로퍼 장식까지, 과거와 현재가 모두 담긴 샤넬의 모더니즘이 만개한 황홀한 쇼였다.

전역 후 오랜만에 샤넬 컬렉션을 찾은 지드래곤과 샤넬 앰버서더 퍼렐 윌리엄스의 모습.

클레망스 포에지.

아나 무글라리스.

카롤린 드 메그레

에바 그린.

“마드무아젤 샤넬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썼다. 그녀는 소란스러운 상류사회에 고요함의 품격을 안겨주었다. 이 고요함은 오바진의 수도원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피어난 야생화 무리에, 청결한 비누 냄새를 풍기며 햇볕에 말라가던 침대 시트에는 완벽한 기하학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가브리엘의 유년 시절과 샤넬의 코드의 뿌리를 찾아 떠난 버지니 비아르가 데려온 오바진 정원으로의 초대. 이런 그녀의 의도를 읽어내기에 가브리엘의 친구 장 콕토의 이 문장은 너무나 적절해 보인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사진
COURTESY OF CHANEL, BACKSTAGE(TIM ELKAIM, JACK DAVISON, BENOIT PEVERELLI), PRESS KIT (KARIM SAD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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