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의 끝을 잡고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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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렇게 또 한 해가 남긴 것을 돌아본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니 아스라한 것들이 총천연색으로 되살아나고, 어떤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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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TOP 10 

제법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던 2018년 가요계와 KPOP 신의 핵심을 들여다봤다.

1. 올해의 가장 영리한 전략 혹은 선택은? 

김윤하(음악 평론가) Mnet <프로듀스 48>의 일본 연습생 영입. 같은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한일 양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 흐른 시스터후드가 악마의 편집도 길티 플레저를 자극하는 화제성도 모조리 퇴치했다. 딱히 제작진의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미묘(<아이돌로지> 편집장) YG의 선택. 캠프파이어송 호환성 높은 가요(“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를 통해 대중 속에 파고드는 보이 그룹으로서의 아이콘을 정립했다. 동시에 블랙핑크는 뾰족한 구석이 있지만 확실한 팝을 선보여 국내외 모두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김학선(음악 평론가) 래퍼 매드 클라운이 꽃분홍색 마스크를 덮어쓰고 나타난 또 다른 자아, 마미손. 속일 생각이 전혀 없는 콘셉트와 ‘기믹’으로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한 깔깔 한마당을 만들었다. 음원 유튜브 공개를 통해 기존의 시장 질서와는 다른 방향을 제시하며 핑크 오션 개척 중.

2.올해의 프로듀서로는 누구를 꼽겠나?

김윤하 국민 프로듀서. 지난해에도 같은 문항에 같은 대답을 했다. 지난해 선정 이유가 스스로의 가능성에 눈을 떠 움직이기 시작한 골리앗에 대한 존중의 의미였다면, 올해는 그들의 선구안에 대한 존경의 의미다. <프로듀스48>을 통해 탄생한 아이즈원은 최근 보기 드물게 모든 밸런스가 훌륭한 신인 걸그룹이다.

미묘 특정 프로듀서가 부각되는 일은 많지 않았던 해. 그래도 연초부터 모모랜드로 가요계를 뒤집어놓은 신사동호랭이를 꼽고 싶다.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하고, 주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제외하면 ‘뽕끼’ 단 하나로 승부하는 곡.

김학선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과 피독(Pdogg). 2018년 방탄소년단만 한 스탯(Stat)을 기록한 한국 가수는 100년 동안 없었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을 지휘한 방시혁과 피독 앞에 설 올해의 프로듀서가 생각나진 않는다.

3.가장 인상적으로 보고 들은 올해의 여성 솔로 가수는? 

김윤하 선미. 젊은 여성이고, 아이돌 그룹 출신이며, 스스로 곡을 쓴다. 어떻게 해도 편견이 쌓은 통곡의 벽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 모든 장애물을 하나씩 힘차게 물리치며 2018년 한 해 동안 음악적으로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미묘 선미의 해였다. 훌륭한 퀄리티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도 매혹 그 자체였다. 달콤과 냉혹, 애교와 거만을 번쩍이듯 오가는 광경. 뻔한 말이지만 ‘신들렸다’는 것 외에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김학선 일레인. 그 놀라운 목소리를 생각한다. 중성적인 목소리는 대부분 매력적이고, 일레인의 목소리는 그 ‘대부분’ 가운데서도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4.가장 탁월했던 올해의 싱어송라이터는? 

김윤하 역시 선미. 준수한 음악적 완성도와 의미 있는 메시지, 대중적 인기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경우는 좀처럼 흔치 않다.

미묘 싱어송라이터라기보다는 ‘작곡돌’이 적확한 표현이겠지만, (여자)아이들의 전소연. 데뷔부터 작곡하는 걸그룹이라는 존재도 반갑지만 그 결과물이 워낙 좋아서 더욱 주목하게 된다.

김학선 김사월. ‘엉엉’이라는 의성어로 그처럼 사랑스러운 노래를 만들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라니.

5.올해 가요계와 K-POP 신의 인상적인 사건 세 가지는? 

김윤하 1. 방탄소년단의 연이은 승승장구: 지난해 내내 ‘방탄소년단이 누구냐’는 질문에 시달렸다면 올해는 ‘방탄소년단은 왜,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하느라 바빴다. 2. JYP 엔터테인먼트의 기사 회생: JYP는 트와이스와 갓세븐의 뜨거운 활약이 가장 큰 견인차가 되어 ‘1조 클럽(순이익이 1조원을 넘는 초우량 기업을 뜻하는 말)’에 가입하더니 결국 업계 만년 1위 SM마저 제쳤다(시가 총액 기준). 3. 장기하와 얼굴들 해산: ‘밴드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보여주겠다는 이들의 굳은 다짐에 좋은 밴드 하나를 잃는다는 슬픔 하나, 인디 신의 한 시대가 저문다는 슬픔 둘이 더해진다.

미묘 1방탄소년단의 UN 연설: 국내외 온도 차를 봐도 그렇고 BTS를 더 이상 국내적 맥락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세계 시장이 밀레니얼 세대의 ‘새로운 팝’으로 BTS와 K-POP을 지목하고 있다. 2가수 닐로 등의 음원 차트 어뷰징 의혹: 바이럴 마케팅이란 게 얼마나 치졸한지, 차트가 인위적 개입에 얼마나 취약한지, 대중의 취향은 얼마나 헐거운지 보여준 사건. 3최 모 씨의 여성 아이돌 협박 사건: 최 모 씨가 디스패치에 보냈다는 메시지가 잊히지 않는다. “실망시키지 않아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여성 아이돌이 한 명의 악의적인 인간(과 욕정에 굶주린 대중) 앞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

김학선 1방탄소년단: 어릴 때 음악 듣던 시절을 생각해보자. 한국 음악가가 뉴욕 시티필드와 런던 O2 아레나에서 공연한다는 건 허영만 만화 <고독한 기타맨>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2일명 ‘닐로 사태’: ‘멜론 차트 100’으로 돌아가는 가요계가 얼마나 문제가 많고 괴상한지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예. 3블랙넛과 키디비 법정 공방: “사람들이 내 가사를 처음 의도와 다르게 인식하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이 유감스럽다.”(블랙넛 법정 최후 진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늘 화나 있는(척하는) 한국 래퍼들의 현실. 음반과 무대 위에선 여포 같지만 실제로는 ‘간손미’가 되는 구차함과 지질함.

6.아이돌이 공개 연애를 하면 죄인, 게임의 반칙자 취급을 받곤 한다.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김윤하 아이돌 산업이 품은 갖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늘 말하는 ‘기둥 뒤에 사람 있어요’라는 말을 다시 한번 꺼내고 싶다. 연예 산업 전반에서 ‘유사 연애 감정’과 그로 인한 희열, 실망, 분노의 감정을 완벽히 거세하는 건 솔직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스타와 대중, 아이돌과 팬이 서로를 성숙한 하나의 자아로서 마주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그 복잡한 감정의 고리들마저 어느 정도는 투명해지지 않을까?

미묘 대중이 재무제표 보는 사장님에 이입하여 아이돌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팬들이 ‘걸리지만 마라’는 말의 액면처럼 유사 연애를 느끼는 게 아니라면, 남자들이 여성 아이돌을 틈만 나면 성희롱하려고 눈을 번득이지 않는다면, 아이돌의 연애가 이렇게까지 고통이 될 이유는 없다. 누군가는 이상하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저 아이돌을 욕하는 게 가장 쉽고 편하다.

김학선 ‘아이돌 산업’이란 건 ‘인권’ 측면에서 보면 너무 기괴하고 후진적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이를 대부분 ‘익스큐스’하며 서로 공범이 되어준다. 17년 전 박준형이 “연애하면 안 돼요? 아임 써리투. 오케이?”라고 묻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와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7.방탄소년단이 몇 년 후에도 지금에 준하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김윤하 음악과 무대의 꾸준한 퀄리티 컨트롤. 다들 자주 잊는데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든 가장 큰 바탕은 이유 없는 하이프가 아니라 퀄리티를 유지하며 꾸준히 성장해온 음악과 무대다.

미묘 그들은 꾸준히 잘해왔고 매번 더 잘하고 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길을 뚫어낸 이들에게 훈수는 무의미하거나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그저 바란다면 성장 과정에서 주효했던 ‘약자의 설움’ 코드는 줄여나가길, 그래서 팬들이 키워온 한을 덜어내주길.

김학선 무조건 히트곡. 모든 사람이 ‘ARMY’가 될 수는 없다. 그 모든 사람이 흥얼거리고, 호감을 갖고, 공연장을 찾게 하는 게 바로 히트곡이다.

8.방탄소년단은 주로 그룹명으로 호명되고 회자된다. 멤버 하나를 골라 그의 재능이나 가능성에 대해 말하자면? 

김윤하 정국. 대한민국의 1997년이 이뤄낸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인 그는 음색, 춤선, 무대 연기, 피지컬, 다소 엉뚱한 성격까지 매력적인 아이돌의 우수 예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미묘 슈가. 비범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프로듀서이자 과감하고 날카로운 래퍼. 마치 “하, 내가 아이돌을 하고 있군”이라고 중얼대는 듯한 표정이 흥미롭다. 아티스트에게 특히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인데, 자신과 방탄소년단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김학선 3년 전에 나온 RM의 믹스테이프를 오랜만에 듣는다. 힙합을 사랑하는 청년. 생각과 고민이 많은 젊은이. 좋은 랩 가사를 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9.올해 들은 가사 중 기억에 남는 구절은? 

김윤하 “영원하게 사랑할 사람을 난 찾고 / 나는 당연하게 누구도 못 찾아 / 밖은 너무 추워 나는 엉엉엉 울어 /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 나와 함께 있어줄 순 없어?” – 김사월 ‘엉엉’. 김사월의 모든 노랫말이 그렇지만, 이 곡처럼 연애를 하며 한심한 내 자신을 아프게 돌아보게 만든 노래는 없었다.

미묘 “시선은 Left Right 불 위를 걷나 / 시작의 점화 가까이 온다 누가 뭐 겁나?” – (여자)아이들 ‘Latata’.

김학선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 덩기덕 쿵더러러” – 방탄소년단 ‘IDOL’. 부정적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 맥락 없는 가사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몇몇 평론가들의 평. 과하다.

10.기획사 대표나 프로듀서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면? 

김윤하 빅히트 엔터 방시혁 대표에게.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과 7년 재계약에 성공한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그 비법은 뭔가요?”

미묘 WM 엔터 이원민 대표에게. “오마이걸이 바나나 노래를 한 적이 있나요? 제 주위 팬들에게 물으면 다들 그런 건 절대 기억에 없고 ‘비밀정원’ 다음 곡은 ‘불꽃놀이’라던데, 저 그분들 믿어도 되죠?”

김학선 미스틱 엔터 윤종신 대표 프로듀서에게. “왜 재능 있는 많은 인재들이 미스틱에 들어가고 나면 다 행방불명이 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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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코와 평양냉면이 만날 때

활발하게, 그리고 다소 갑작스럽게, ‘북한’이 사회 문화 전반에서 주요 소재로 오르내렸다. 9월 부산비엔날레의 키워드는 분단과 분열이었고,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북한 현대미술을 소개했다. 연초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 단일팀이 뛴 것을 시작으로, 누가, 언제, 왜 북한에 다녀오거나 북한 관계자와 만났는지는 헷갈릴 정도다. 윤상은 남북정상회담 전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마련된 4월 초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의 ‘수석 대표’라는 직함으로 실무 회담 테이블에 앉았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지코’를 검색하면 지코의 평양 무대 모습 한 컷, 지코와 에일리가 대통령과 인증샷을 찍고 있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3차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에 간 지코는 ‘아티스트’를 부르며 ‘풋 유어 핸 즈 업’ 대신 ‘손 위로’라고 외쳤고, 멍한 북한 사람들 앞에서도 허리 웨이브와 리듬 타는 댄스 실력을 감추지 않았다.

나랏일과 거리가 먼 사람들 사이에 종전 선언 가능성, 북한의 건물과 패션 등이 회자되는 가운데 북한과 관련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바로 평양냉면이었다.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의 식사 자리에 옥류관 평양냉면이 등장하고,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과 특별 방송으로 편성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오리지널’이 회자됐으니. ‘평냉부심’을 가진 자들 입에서 ‘평양 냉면은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식의 ‘면스플레인’이 횡행한 지난 몇 년을 거쳐, 2018년 우리들은 그 유명하다는 옥류관의 테이블에 다소곳이 자리한 붉은 양념장을 목격했다. 옥류관의 매니저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가득 들어올린 다음 면에 직접 식초를 쳐야 면발이 탱탱해진다고, 이제 기호에 따라 겨자와 양념장을 쳐 먹으면 된다고 방송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파주시와 고양시 등에서는 국내에 옥류관 1호점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올해의 마침표, 아니 쉼표

박수 칠 때 떠났다, <무한도전> 

영원할 것 같았던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13년 만에 쉼표를 찍었다. 그들 각자가 편애하고 아끼는 에피소드 하나씩이 있을 만큼 <무한도전>은 예능계 새로운 장르와 포맷을 만들어냈다. 강변북로 가요제, 토토가 열풍, 눈물의 봅슬레이 도전기, 못.친.소 페스티벌, 식스맨 특집 등 리얼리티를 통해 눈물과 웃음을 만들어냈으며, 앙리, 지디, 잭 블랙, 김연아, 이나영 등 좀처럼 만나기 힘든 대스타들과의 ‘꿀 케미’도 오직 ‘무도’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김태호 PD의 거처에 대해 많은 말이 오갔지만 우선은 ‘종영’이 아닌 ‘중단’에 방점을 찍었다.

굿바이!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이 5집 <모노(Mono)>를 마지막으로 해체한다. ‘싸구려 커피’, ‘별일 없이 산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 발표하는 앨범마다 ‘크레이지’하고 ‘센세이션’했던 밴드. 마지막 앨범에서마저 이들은 ‘그건 니 생각이고’라며 시크하게 제 갈 길을 간다. 장기하는 기자간담회에서 “6집이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 최고치에 달했을 때 헤어져서 훈훈한 상황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19년부터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걷는다. 12월 28일 열리는 마지막 콘서트 <마무리: 별일 없이 산다>에서 이들의 우주적인 피날레를 감상할 수 있다.

스크린에 복원된 여성 캐릭터 

여배우가 사라진 최근 한국 영화 경향에 비하면 그나마 살아 움직이는 여성을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2018년 한국 영화는 사라져버린 여성의 자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으나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먼저 <마녀>는 여성 주연 영화로는 유일하게 318만 관객을 동원하며 2018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톱 10(9위)에 들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소녀(김다미)가 미스터리한 집단의 등장을 통해 자신의 가공할 만한 힘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초인으로서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마녀>에 이어 주목할 만한 흥행 성적을 낸 여성 주연의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2018년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20위)다. 여성 감독 임순례가 연출하고, 올해의 대세 배우 김태리가 출연한 이 작품은 자극적인 설정을 배제하고 오롯이 여성의 성장담에 주목하는 영화도 극장가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기대했지만 실망을 안겨준 여성 캐릭터도 있었다. 추석 영화 <협상>은 손예진이라는 배우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소모적인 여자 주인공을 선보였다. 유능한 프로 협상가라면서 궁지에 몰리면 눈물부터 보이는 인물이라니!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선입견을 대변하는 사례다. 큰 기대를 불러모은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여성 캐릭터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남자 주인공 종수(유아인)에게 몸을 주고 마음도 주는 혜미(전종서)는 자신의 목소리로 존재하기보다 남성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다.

중요한 건 관객이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주도 서사에 목마른 2018년의 관객은 여성을 배제하거나 편견의 시선으로 재현하는 영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티켓을 불매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미쓰백>과 <허스토리>처럼 팬덤을 형성한 영화도 있다. <허스토리>를 사랑하는 관객 모임인 ‘허스토리언’은 ‘주인공 엄마’나 ‘주인공 할머니’ 역으로 소비되던 중장년층 여성 배우들의 매력을 재발견하며 극장을 빌려 영화를 상영하는 단관 이벤트를 이어갔다. 여성 감독 이지원 연출, 한지민 주연의 <미쓰백>은 개봉 초 상영관 수가 적어 고전하자 스스로를 ‘쓰백러’라고 부르는 팬들이 ‘N차’ 관람과 영화 홍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개봉 23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뒷심을 발휘했다. 여성 주도 서사에 대한, 티켓 파워를 지닌 소비자의 지지와 연대는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캐릭터를 한국 영화 속으로 불러들일 거다. 글 l 장영엽(<씨네21> 기자)

Red and Pink Drinking Straws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향해

플라스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놓은 플라스틱 양은 약 83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그리하여 지금은 버려진 플라스틱이 바다에 떠다니며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결국 다시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는 재앙의 시대다. 일회용품이나 비닐포장의 사용을 줄이는 이른바 ‘플라스틱 제로’의 물결이 더 거세진 이유다. 빨대가 사라진 커피 전문점의 풍경, 일회용 컵 대신 유리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익숙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일회용 비닐과 플라스틱 용기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매장도 오픈했다. 성수동에 위치한 카페 겸 식료품점인 ‘더피커’가 바로 그곳. CJ 쇼오핑, GS 25 등 대기업에서도 포장, 라벨, 용기를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움직임을 보였다. 바야흐로 친환경보다 ‘필(必)환경’을 말하는 시대다. 이제는 전 지구적으로 생존을 위해 모두가 변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올해의 대결

샌드위치 VS 햄버거

올해 샌드위치는 고급 레스토랑이나 바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던 아이템이다. 건강식, 1인 가구 증가, 간편식 선호, 빵 소비 증가 등의 이유로 수요와 인기가 급상승했다. 드라마 ‘PPL’의 단골손님, 서브웨이는 2015년 145개 매장이 올해 339개로 증가했다. 또한 올해 론칭한 대만의 유명 샌드위치 홍루이젠은 1천원대 가격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샌드위치에 대항하는 햄버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맥도널드의 프리미엄 버거는 1천만 개를 돌파했고, 편의점 씨유에서는 ‘아보카도 버거’를 출시했다. 신세계푸드는 ‘버거플랜트’ 1호점을 논현동에 오픈할 예정이다. 패스트푸드 햄버거가 요리에 가까운 프리미엄 음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HOT VS 젝스키스 

거짓말처럼 영원한 라이벌, HOT와 젝스키스가 동시에 콘서트를 열었다. 마치 운명처럼 2018년 10월 13, 14일 잠실에서 말이다. 이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토니안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혀 의도한 게 아니었다. 저랑 재덕이는 같이 사는 사이인데도 서로 비밀리에 진행하다 보니까 정말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되고 서로 놀랐다”고 말했다. 17년 만에 완전체가 되어 만난 HOT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런가 하면 젝스키스는 멤버 강성훈이 사기, 횡령 의혹으로 결국 콘서트에 불참했다. 무대에 오른 4명의 멤버들은 붉은색 슈트를 맞춰 입고서, 온 힘을 다해 열창하며 팬들로부터 ‘살아 있길 잘했다’라는 찬사를 들었다는 후문.

타다 VS 택시

렌트 업체 쏘카의 자회사에서 출범한 ‘타다’는 11인승 차량을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모바일 앱으로 렌터카를 빌렸는데, 그 차량에 기사까지 함께 오는 개념. 카카오에서 개시 준비 중인 ‘카풀’(자가용 운전자가 출퇴근 시간대에 목적지가 같은 탑승객을 태운 뒤 돈을 받는 서비스)이 왠지 모를 찝찝함을 불러일으킨다면, 복장을 갖춘 채 매뉴얼을 숙지한 타다의 운전자와 널찍한 차량은 탑승자 입장에서 ‘생큐’다. 택시업계는 아직 소수 가동 중인 타다보다 카카오라는 기업의 진출에 격렬히 반대하는 상황. 그러나 오늘도 애타게 탈것을 수배하는 나에게 ‘옵션’을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소확행과 워라밸을 아세요? 

어느 미지의 행성도, 헬스 기구 이름도 아니다. 발음이 낯설지만 모두가 간절히 원한 이 두 단어가 올해 라이프스타일 키워드에서 자주 등장했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의 ‘소확행’과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란 뜻의 줄임말 ‘워라밸’. 이런 신조어의 등장은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과 만족감이 중요한 시대임을 증명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이불 밖은 위험해>, tvN <숲속의 작은 집>, JTBC <효리네 민박 2>는 관찰이라는 포맷을 통해 타인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요리, 잠, 휴식, 여행, 정원 가꾸기,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통해 사람들은 웃음과 위로를 얻었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 업무 시간 이후의 연락을 주저하는 태도, 큰 성취감 없어도 온전히 자신만의 기쁨을 위해 돈을 기꺼이 지불하는 일처럼 당연한데 취하지 못한 소박한 가치의 소중함을 생각해보게 한 해다.

김은숙의 선택, 이수연의 밀도

올해도 공중파보다는 JTBCtvN의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김은숙 작가가 역사 속의 이름 없는 의병을 되살려낸다고 했을 때, 스무 살 차이 나는 이병헌과 김태리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tvN <미스터 션샤인>의 앞날은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김은숙은 김은숙이었다. <도깨비>나 <태양의 후예>에 비하면 인기 체감도가 적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배급된 이 24부작 드라마는 오글거리는 멜로의 장인이 지금 시점에 진지하게 펼쳐보고 싶었던 대서사시가 결코 우습지 않음을 증명해 보였다. 연초부터 ‘삼촌 로맨스’라는 손가락질 속에 방영한 tvN <나의 아저씨>는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고퀄리티의 칙칙한 드라마’였다. 이선균과 아이유의 멜로가 아니라 무능하거나 고독한 중년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청춘, 그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군상이 매회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 드라마를 두고 그 속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tvN <비밀의 숲>으로 발군의 데뷔를 치른 이수연 작가는 특유의 긴장감을 또 한 번 조성한 JTBC <라이프>를 통해 여느 의학 드라마와 달리 대형 병원의 구조적 문제에 다가갔다. 조승우와 이동욱, 두 주연 간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개인들을 보여주면서 의료 민영화라는 거대한 화두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방식이었다. 드라마가 초반부터 워낙 긴장감을 조성했기 때문일까? 종영을 몇 회 앞둔 시점부터 시청자들은 ‘작가님, 지금껏 뿌려놓은 떡밥을 어떻게 회수할 겁니까?’ 식의 우려와 불만을 내비쳤다. 다소 힘 빠지고 명쾌하지 않은 결말로 ‘용두사미’라는 원성도 자자했지만, 날카로운 주제를 주조연의 훌륭한 연기와 함께 극으로 담은 <라이프>는 올해의 드라마라고 부를 만하다. 정해인이라는 스타 탄생을 알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정말 오랜만에 ‘코믹’에 제대로 방점을 찍은 드라마의 출현을 알린 <으라차차 와이키키>, ‘왜 그렇게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 하냐’는 질문에 “정의 사회 구현”이라고 답한 고혜란 앵커(김남주)의 대답이 여운을 남긴 <미스티> 모두 JTBC 드라마다. 비록 시청률 면에서 ‘대박’을 치진 못했지만 제법 다양한 시도를 했던 JTBC다.

2019년에는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iHQ에서 드라마를 10편이나 제작할 예정이고, 장동건과 이나영처럼 오랜만에 볼 얼굴도 있다. 왠지 벌써부터 ‘자본’의 향기가 느껴지는 이 감대로 내년에는 ‘초대박’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피처 에디터
권은경, 김아름
아트워크
홍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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