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기억 Vol.2

이채민

강다니엘이 등장했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의 선택을 받았다. 스크린에서 여배우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으며, SNS엔 고백과 폭로가 쏟아졌다. 언제나 숨 가쁘게 흘러가버리는 한 해를 또다시 돌아봤다.

고양과 송도에서 생긴 일

스타필드 고양

스타필드 고양

송도 트리플 스트리트

송도 트리플 스트리트

고양과 송도가 들썩거렸다. 고양시 덕양구에는 8월 대형 복합 쇼핑몰인 스타필드 고양이, 10월엔 불과 3km 떨어진 자리에 이케아 2호점이 들어섰다. 이케아 오픈 이후 스타필드 고양 내 이마트에는 수납용품 전문 매장 ‘라이프 컨테이너’가 생겼다. 이케아에 대한 신세계의 답변인 셈이다. 4월, 인천 송도에는 추진을 시작한 지 11년 만에 드디어 트리플 스트리트가 정체를 드러냈다. 대형 복합 쇼핑몰이란 안 봐도 대강 짐작이 가능한 구성인데, 트리플 스트리트의 경우 워낙 스펙터클한 규모 덕에 신선한 시설도 두루 갖췄다. 큰 길을 따라 늘어선 건물 여러 동에는 당신이 지금 떠올리는 바로 그 브랜드들과 더불어 VR 체험장, 홀로그램 공연장과 야외 공연장, 심지어 미니 축구장도 있다. 평생 서울에 살며 수도권 광역시의 지리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일 없었던 사람들도 길을 찾아 지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차례는? 맡겨놓은 것도 없지만 괜히 한 번 가봐야 할 것 같은 장소라면 단연 이케아다. ‘이케아 하남 상륙설’은 최근 루머로 판명 났고, 대신 이케아 코리아에선 용인과 충남 계룡시에 자리를 마련해뒀다고 ‘흘렸다.’ 이케아가 광명에 처음 상륙하고, 한동안 그 일대에 주말이면 명절 대이동에 버금가는 도로 참사가 벌어진 지 3년. 쇼핑 권하는 메가 스토어가 들어설 만한 자리는 이제 서울을 벗어난 곳에 있다.

느린 예능, 열린 관계
<효리네 민박>이 <윤식당>과 <삼시세끼>에서 진보한 점

JTBC <효리네 민박>은 마치 나영석 PD가 tvN에서 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JTBC의 대답처럼 보였다. <효리네 민박>은 tvN <윤식당>처럼 연예인들이 일종의 사업체를 열고, <삼시세끼>처럼 손님을 맞으며 숙식을 해결한다. 그러나 <윤식당>과 <삼시세끼>가 선후배 사이에 확실한 위계를 둔다면 실제 부부인 이효리와 이상순이 운영하는 이 민박집은 아르바이트생으로 온 아이유에게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주고, 대화 내용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둔다. <삼시세끼>가 이서진을 큰형으로 묘사하며 출연자들을 유사 가족으로 묶으려고 노력하는 것과 달리, <효리네 민박>은 실제 부부인 그들을 손님을 맞이하는 운영자 관점에서 보여준다. 출연자들은 두 사람의 민박집에서 함께 머물지만 공통의 룰만 지키면 무엇인가를 더 할 필요는 없고, 굳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더 친해지기 위해 애 쓸 필요도 없다. 제주도에서 며칠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쉬고 싶을 만큼 쉬고, 이야기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된다. 그점에서 <효리네 민박>은 여행 예능의 새로운 시도였다.

<윤식당>과 <삼시세끼>도 도시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느긋한 생활을 만끽하는 것이지만, 두 프로그램은 그곳에서도 출연자끼리 가족과 같은 관계를 맺으며 또다른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효리네 민박>은 서로 낯선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하고 다시 떠난다. 잠시 만나고, 친해지고, 그러면서도 돌아갈 곳의 일상에는 깊게 침입하지 않는 사람들의 여행이 TV에 상당 부분 옮겨졌다. 나영석 PD가 여행 예능의 틀을 잡아놓았다면 <효리네 민박>은 그 틀을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여행을 대하는 사람의 관점을 바꾸면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관점의 변화가 이효리 같은 여성 연예인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변화다. 남편이 아내이자 민박집 오너의 충실한 지원자 역할을 하고, 이효리와 아이유가 여성 연예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위로하는 모습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순간이었다. 가족이나 선후배라는 관계 대신 여성이자 연예인이라는 입장에 대한 공감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효리네 민박>이 인간과 여행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전에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풍경만큼 차분한 호흡 속에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줬다. 아마도 이런 것이 진보일 것이다.

여배우가 지다
발자취가 선명했던 중견 여배우 셋이 우리 곁을 떠났다. 작품으로 그들을 추억해본다.

김지영(1938년생)

<아라한 장풍대작전>

1995년에 여느 가정의 안방을 책임졌던 연속극 <바람은 불어도>에서 함경도 사투리를 쓰며 드라마를 휘어잡은 나문희는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다소 ‘콘셉추얼’했던 나문희보다 사실적인 생활 사투리 연기의 으뜸을 보여준 쪽은 김지영이다. 젊은 시절 임권택의 <길소뜸>, <아다다>부터 <마파도2>의 임팩트 있는 할매를 거쳐 <해운대>, <도가니> 등등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편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남겼다. 언제나 현실 속 그 자리에 있을 법한 인물로 등장하던 김지영.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단편 영화 <불륜>에서는 부양의무자 기준법 때문에 위장 이혼을 한 두 노인이 여전히 사랑하며 사는 어느 자화상을 신구와 함께 보여준다.

윤소정(1944년생)

<그대를 사랑합니다>

영화감독 윤봉춘의 딸로, 남편 오현경과 딸 오지혜 역시 배우여서 ‘영화/연극인 패밀리’의 한 사람이었던 윤소정은 지금의 20대에겐 낯설 배우다. 그러나 윤소정이 나온 작품을 하나라도 봤다면, 연기는 물론 서구적인 마스크에서도 풍기는 카리스마를 잊을 순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에이미>, <신의 아그네스>, <어머니> 등 최근까지도 상당한 에너지를 써야 하는 성격의 연극 무대를 소화했다. 드라마 출연작 역시 적지 않은데, 올해 오연서와 주연이 나온 <엽기적인 그녀>가 마지막 작품으로 남았다. 영화 <올가미>에서 존재 자체가 스릴러와 공포물이었던 윤소정 버전의 섬뜩한 시어머니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캐릭터다.

김영애(1951년생)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정겨운 어머니와 같은 중견 배우들이 있다. 그러나 김영애는 조금 달랐다. 드라마 <로열 패밀리> 속 재벌 회장, 아들이 죽자 장례식 장에서 며느리 염정아를 두고 “저거 치워”라고 내뱉던 서늘함.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 에서 눈물이 아닌 이성으로 딸의 복수를 계획한 어머니. 이지적일 때나 따뜻할 때나, 그녀에게선 기품이 느껴졌다. 연기 인생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변신을 하고 싶다며 택한 역이 영화 <변호인>의 국밥집 아줌마였다. 익숙한 중견 배우들의 젊은 시절은 웬만하면 모두 낯설고 놀랍지만, 한국 영화 팬으로서 영화 <깊은 밤 갑자기>의 미쳐가는 아내와 <겨울 나그네>의 기지촌 대모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만나보길 권한다.

2017 올해의 내한

한니발의 미소, 매즈 미켈슨

매즈 미켈슨

늦여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덴마크 배우 매즈 미켈슨이 출연했다. 샘 해밍턴의 아들을 돌보는 스티븐 연을 만나러 잠깐 등장했지만, 아이 앞에서 미소 짓는 ‘한니발’을 KBS 예능에서 본다는 건 2011년 사진전과 템플 투어를 위해 내한한 리처드 기어가 <아침마당>에 출연한 일 다음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영화 개봉 때문이 아니라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코믹콘 서울 2017’의 초대 손님으로 한국에 왔다. 이 대규모 애니메이션과 게임 축제에 내년엔 어떤 손님이 올지?

바람처럼 왔다 바람처럼 사라지다, 아리아나 그란데

아리아나 그란데

한국에서 ‘주요 볼 일’을 마치고 금방 출국하는 스타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당분간 아리아나 그란데의 거침없는 행보를 따라잡을 이는 없을 것 같다.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로 광복절에 첫 내한 공연을 한 그녀는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입국, 고척 스카이돔 내 화장실에서 가뿐하게 리허설을 한 후, 22시 전에 공연을 마치고 24시경 출국했다. 관객들 사이에 65만원짜리 VIP 티켓 환불 요구 소동을 비롯한 후폭풍이 번질 즈음 인스타그램엔 “서울, 너희들 참 마법 같았어”라고 썼다. 마법처럼 사라진 그녀였다.

협연의 자격, 조성진

조성진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올해 한국에서 세 번의 공연을 했다. 그런데 이미 수년 치의 스케줄이 밀도 있게 차 있을 그에게 불현듯 추가된 공연이 있으니, 바로 11월에 있을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차기 런던심포니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과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인데, 협연자인 랑랑이 그만 손가락 부상을 당해 공연을 취소했다. 조성진은 이 대단한 세계 투어 공연에 긴급 투입된 협연자로서 한국을 찾는다. 내년 초 국내에서 조성진 단독 공연 투어가 있을 예정이지만, 베를린 필과 함께하는 조성진은 그야말로 깜짝 방문.

가요 TOP 10
<더블유>가 묻고, 날카로운 시선과 아티스트를 향한 애정을 가진 세 명의 전문가가 답했다. 2017년 가요계의 주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말결산_가요계
01 올해의 가장 영리한 기획사는?
강명석 (웹진<ize> 편집장)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JYP와 YG가 가수를 직접 미국 시장으로 보내 도전과 실패를 치른 사이,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해 빌보드 어워즈와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즈)를 뚫었다. 게다가 모두가 그들의 성적에 관심을 두고 있을 때 10대 폭력 근절 및 예방을 목표로 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유니세프와 함께했다. 진입, 초동 판매, 음악 프로그램 등 순위로 올림픽을 하던 요즘의 아이돌 업계에 아예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시야의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다.

미묘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CJ E&M. 기획자는 판만 깔아주고 나머지는 모두 시스템과 시청자가 알아서 한다는 듯이 굴면서도 <프로듀스 101>의 최종적인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단적인 예로 시즌 1 때보다 종영 이후의 음반 퀄리티가 훨씬 높아졌다. 아이돌이 성장 서사라지만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도 성장하다니 놀라울 따름.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솔직히 말하자면, 없다. 굳이 꼽자면 <프로듀스 101>의 대성공으로 얼떨결에 혹은 치밀하게 거대 기획사 반열에 들어서버린 CJ E&M.

02 올해의 프로듀서로는 누구를 꼽겠나?
강명석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 방시혁. ‘DNA’는 문자 그대로 올해 전 세계 10대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M이 쌓은 K-POP의 토대 위에서 서구 시장이 원하는 요소까지 섞어 새로운 산업 표준을 제시했다.

미묘 작곡 팀인 모노트리. 사실 올해의 프로듀서라면 ‘국민 프로듀서’밖에 없다. 그러나 그 뒤를 좇는 이들이 K-POP을 극렬하게 ‘노잼화’하고 있을 때, 모노트리는 전혀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다. 아직까지 엄청난 히트곡은 없지만,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곡을 비롯해 굉장히 흥미로운 음악을 꾸준히 내는 중.

김윤하 솔직한 심정으로는 ‘국민 프로듀서’. 2017년은 그들이 ‘다 한’ 해다.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듀오 그루비룸. 올해의 프로듀서라기보다는 올해 놓쳐서는 안 될 프로듀서다. 어떤 음악가라도 어번하고 힙하게 단장 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특유의 우아함도 발군이다. 꾸준히 작업해온 래퍼들은 물론 수란, 효린, 에일리 같은 출중한 여성 보컬과의 합도 뛰어나다는 것이 강점. ‘Groovy Everywhere’라는 특유의 표어가 ‘JYP’나 ‘Brave Sound’만큼 울려 퍼질 날이 머지않았다.

03 2017년 가요계와 K-POP계의 인상적인 사건 3가지는?
강명석 ➊ <프로듀스 101> 이후 H.O.T.의 팬들까지 아이돌 팬으로 ‘리턴’한 일. ➋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어워즈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 이거 생각보다 훨씬 큰 일이다. ➌ <쇼미더머니>로 등장한 우원재의 ‘시차’. 무의미한 욕설과 여성 혐오 논란이 이어지던 한국 힙합 신에 갑자기 나타난, 어느 20대의 먹먹한 시.

미묘 ➊ <프로듀스 101>과 워너원. 흥행 자체도 큰 사건인데 아이돌의 개념이 바뀌는 전환점 역할도 했다. 이전까지 기획자의 통제로 아이돌이 만들어졌다면, 이젠 기획자가 ‘거들어서’ 만들어내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아이돌을 반드시 ‘국민 프로듀서’가 만든다고 보긴 어렵지만. ➋ 2세대 걸그룹의 일단락. 2세대 걸그룹의 작별은 많은 이들에게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을 실감하게 했다. 동시에, 걸그룹이 10년 가까이 버틸 수 있다는 점과 이를 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와 현재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었다. 역사와 맥락을 팽개침으로써 태어난 K-POP이 진정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➌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어워즈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 수상. K-POP과 팝이라는 평행우주 사이의 문이 열려버렸다. 방탄소년단은 팝으로 나아간 K-POP이라기보단 K-POP 아티스트이면서 팝 아티스트임에 가깝다.

김윤하 ➊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대성공. 시사 주간지까지 ‘왜 강다니엘인가’를 외치게 만든 2017년의 거대 핵폭탄. ➋ 빌보드에 선 방탄소년단. 이것은 단순히 ‘국뽕’이 아닌, 미국 음악 시장이 K-POP을 지금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루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이다. ➌ 여성 아이돌의 각성. 아이유, 선미, 현아, 태연 등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일명 ‘아이돌’ 출신 솔로 여성 음악가의 활약이 돋보였다. 10주년을 맞이한 소녀시대의 애티튜드도 좋았다. 최근 뜨거운 페미니즘 무드와 함께 놓치기 아까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04 강다니엘의 5년 후 모습을 예상하면?
강명석 콘텐츠의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팬덤을 가진 스타. 그는 한국 남성상에 대한 일종의 시대 정신이므로 쉽게 인기가 식진 않을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반응을 얻어내느냐가 관건.

미묘 강다니엘이 보여주는 헤실헤실한 인물상은 그에게 조금은 느긋한 자세와 안정감을 기대하게 한다. 강력한 팬덤의 지지와 더불어 긴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5년 후 어떤 형태의 활동을 할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그가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는 많을 게 분명하다.

김윤하 보컬 부분을 좀 더 보강한다면 비 이후 사실상 맥이 끊긴 가요계 대형 남성 솔로 아티스트로서 크게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훌륭한 피지컬, 무대 장악력, 소년과 남자를 오가는 매력적인 퍼스낼리티까지 혼자로도 스타로서 각광받을 충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미 시대가 증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05 소녀시대 멤버 중 독자적 연예인으로서 가장 롱런 할 것 같은 이와 그 이유는?
강명석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태연. 솔로곡 ‘11:11’과 ‘Fine’으로 소녀시대 안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무엇을 뛰어넘은 데다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졌다. 외모+목소리+감성+곡 선정의 조합에서 정말 이상적인 밸런스.

미묘 음악가로서는 태연. 이미 솔로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확립했고, 이를 안정적으로 잘 운용하고 있으며, 사업적으로도 당장 포기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다만 소녀시대라는 출발점을 가진 모든 멤버가 오래도록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인물상을 보여주길 고대하고 있다.

김윤하 태연. 소녀시대로 다진 글로벌하고 거대한 팬덤과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스타에게 필요할 가장 큰 덕목 가운데 하나인 신비한 이미지를 꽤 오래 유지하고 있다.

06 생각보다 빛을 보지 못한, 저평가된 우량주와 같은 가수를 하나 꼽는다면?
강명석 없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과 잘되는 곡은 다른 영역이고, 저평가나 고평가를 따지기엔 현재 한국 음악 산업에는 그런 합의된 평가 자체가 없다. 좀 더 잘됐으면 한 음반이라면 혁오의 최근 앨범. 지난 앨범보다 ‘힙’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오히려 서구의 인디록 경향까지 받아들이며 팀의 정체성을 구축했다고 보는데, ‘Tomboy’를 제외한 곡들은 이렇다 할 언급이 안 됐다.

미묘 ‘Movie’를 부르는 비투비. 비투비는 말쑥하지만 미쳐 있는 그룹이다. 이는 약점이 되기도 쉬운데, 그 부분을 완벽한 장점으로 제시해 보인 게 이 곡이다. 어른스럽고 세련됐으며, 패기 있고 미쳐 있다. 이런 곡을 왜 다들 안 듣는지.

김윤하 오버그라운드에서는 태민. 10여 년간 샤이니에서 솔로 작업까지, 음반에서 무대까지 언제나 준수 그 이상의 결과물을 보여줬고, 〈Move〉는 그 안에 닫혀 있던 어떤 부분이 끝끝내 열린 앨범이자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좀 더 신의 중심에 놓여도 좋을, K-POP의 완성형이자 희망찬 미래.

07 한국보다 해외에서 훨씬 인기가 많은 방탄소년단. 아이돌에 무지한 한국인 친구가 “얘네는 왜 이렇게 인기 가 많아?”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강명석 2016 MAMA 무대 영상을 보여주겠다. 그걸 보고도 뭘 못 느낀다면 굳이 더 설명해야 하나 싶다.

미묘 이런 말이 있어. 방탄소년단의 인기의 이유를 모른다면 나는 당신이 부럽다..

김윤하 말없이 유튜브에 접속해 무대 영상 몇 개를 조용히 보여주겠다. ‘쩔어’, ‘불타오르네’, ‘피 땀 눈물’, ‘I Need You’ 순이 좋겠다.

08 올해 가장 눈길이 갔던 인디밴드는?
강명석
이랑. 그가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했던 발언은 올해 한국 인디 신의 모든 이슈를 압도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뮤지션은 음악 바깥의 영역에서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미묘
예서(Yeseo). 꼭 일렉트로닉이라기보다는 좋은 팝이다. 멜로디 감각에 기초해 감각적인 음악을 만들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하고 있는 음악임이 느껴지기 때문.

김윤하 새소년. 지난해 모 루키 프로그램에서 처음 본 이후 지금까지 쭉 반해 있다. 멤버 세 사람의 합이 참 좋지만, 무엇보다 보컬과 기타 모두가 출중한 프런트맨 황소윤의 매력이 압도적이다. 장담컨대 한번 보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천천히 알아갈 시간이 없다면 ‘파도’ 라이브 영상을 한 번 찾아보길 권한다.

09 음악 팬으로서 기획사 대표 한 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강명석 윤종신 씨에게. 혹시 ‘좋니’ 같은 노래를 한 번 더 쓸 수 있다면, 그때는 꼭 소속사 가수에게 주세요.

미묘 JYP의 트와이스 전담 팀 여러분. 트와이스의 미모와 K-POP을 제발 더 이상은 낭비하지 말아주세요.

김윤하 JYP님, 제발 트와이스를 잡다한 애교의 늪에서 꺼내주세요.

10 올해의 가장 시시한, 실망스러운 컴백은?
강명석 트와이스.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으로서 한 차원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할 타이밍에 ‘시그널’이라니, JYP는 정말 아무 야심도 없었던 걸까?

미묘 <아이돌학교>나 <더 유닛> 등 <프로듀스 101>에서 파생해 나타난 프로그램과 음반. 제작진이 잘한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지만, 인간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을 내려놨을 때 얼마나 나태해질 수 있는지 이 정도로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었다.

김윤하 젝스키스. 재결성에 쏟아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던 반응을 반사각으로 삼아 딱 그만큼, 이보다 허망할 수 없는 결과물을 계속 내놓고 있다. 다시 만나는 데 걸린 오랜 시간만큼, 그리고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YG에 영입된 만큼 최소 향후 5년은 기대해볼 만한 카리스마 있는 앨범이 나오길 바랐다.

호텔 스타 워즈

용산에 자리한 서울 드래곤시티.

용산에 자리한 서울 드래곤시티 입구의 거대 조형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내 설치 작품.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내 야외 수영장.

서재 컨셉트로 꾸며진 힐튼 부산 10층의 맥퀸즈 라운지.

한두 해 전 실용적인 비즈니스급 호텔, 디자인을 앞세운 부티크 호텔의 붐이 두드러졌다면 2017년은 굵직한 호텔의 개장이 잇따른 해였다. 영종도에 문을 연 파라다이스시티는 인천공항 옆의 넓은 부지와 큰 규모로 화제가 되었는데, 1차로 오픈한 외국인 대상 카지노와 호텔, 컨벤션 시설 외에 쇼핑 센터와 아트 갤러리, 대규모 스파와 클럽, 공연장 등의 시설을 내년 개관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내외 아티스트의 방대한 미술품 컬렉션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여름에 문을 연 힐튼 부산은 이 지역 휴양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급 호텔들이 주로 자리한 부산의 도심이나 해운대에서 벗어난 위치 선정, 서재를 테마로 한 인테리어,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서점 ‘이터널 저니’도 특색을 더했다. 가장 최근 모습을 드러낸 서울 드래곤시티는 그랜드 머큐어, 노보텔, 이비스 스타일, 이비스 등 아코르 계열의 4개 호텔이 모인 매머드급 시설로 객실이 1700여 개에 이른다. 리츠 칼튼을 리모델링한 르메르디앙 서울이 모습을 드러냈고, 포 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강남도 오픈을 앞두고 있다. 사드로 인해 요우커들의 관광이 경직되면서 움츠러든 이 호텔들은 대중관계 훈풍과 함께 온기를 회복하는 중이다.

2017 올해의 파문

공포의 생리대

11개 생리대 제품에서 약 200종의 유해 물질이 방출됐다는 여성환경연대의 발표 후, 여자들은 안전한 생리대를 찾아 헤맸다. 이전부터 예민한 몸을 증거 삼아 불편하더라도 면 생리대를 써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제법 있었다. 9월 말 식약처가 ‘1차 전수조사 결과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라고 발표했지만, 불안과 논란은 가시지 않는다. 신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부위에 닿는 그것이 안전해야 함은 당연한 건데, 우리는 어쩌다 생리대를 의심하게 됐을까?

동물과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것

슈퍼주니어 최시원의 반려견이 이웃을 물었고, 그 이웃이 명확한 연유를 알 수 없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려동물에 얽힌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쟁점이 됐다. 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도 온도 차가 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간극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선 반려동물이 존재함으로써 수반돼야 할 성숙한 에티켓의 정도나 반려동물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에도 ‘합의’됐다고 할 만한 문화가 별로 없다. 연예인이 키우는 프렌치 불독 한 마리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의 챕터가 열린 듯하다.

<리얼>이라는 문제작

파문_리얼 김수현

김수현이 열연한 <리얼> 개봉 직후 쏟아진 반응은 기시감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과거 <다세포소녀>,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긴급조치 19호>가 개봉했을 때 네티즌의 모습이 떠올랐달까? 관객들의 한 줄 리뷰 몇 가지를 옮기자면 이렇다. “시험 공부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꼭 그렇게 찍어야 속이 후련했냐?” “시간 가는 줄 알고 봤습니다.” “아… 그냥, 아…” 영화야 어떠했든, 김수현이 신인 시절부터 눈에 띄게 스타의 가능성을 지닌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시, 김광석

파문_김광석 영화 포스터

탐사 보도 전문 기자인 이상호가 오랜 세월을 투자하여 세상에 내놓은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 저널리스트란 어젠다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고, 적어도 그 점에서 이상호의 시도는 성공했다. 아니, 성공한 듯 보였다. 생방송 뉴스에까지 출연한 고 김광석의 아내가 딸의 사망에 얽힌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끝에 ‘무혐의’로 결론 나기 전까지는. 다큐는 김광석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지만, 그 이후의 흐름 속에서 부각되고 있는 건 사실 김광석보다 다른 무엇이다.

연애 유발자, 웹 드라마

우주의 별이
지상파와 케이블 드라마가 범죄 수사나 미스터리물로 자꾸 눈길을 주는 동안, 풋풋한 로맨스 세상은 웹 드라마에서 펼쳐졌다. 연초에 포문을 연 MBC ‘미니미니’ 드라마 <세 가지 색 판타지>는 웹 드라마가 방송을 탄 케이스. 한 기획 안에서 세 작품을 통해 세 가지 색 사랑을 보여준다는 콘셉트였다. 엑소 수호가 연기한 이승의 슈퍼스타와 저승사자 소녀 별이의 로맨스를 다룬 ‘우주의 별이’는 한마디로 스타와 팬 간의 사랑 이야기였고, ‘생동성 연애’는 노량진 고시촌 안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반지의 여왕’은 황금반지를 얻은 김슬기가 최고의 킹카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그렸다. 재밌는 건 웹 드라마들이 젊은 세대를 겨냥해 로맨스를 기저에 두면서도, 장르물의 장치를 쓰는 식으로 트렌드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점. 옛 연인이 남긴 스마트폰의 비밀번호를 풀며 잠겨버린 사랑의 기억도 함께 풀어간다는 소녀시대 수영 주연의 <알 수도 있는 사람>은 미스터리 색을 취하고, <어쩌다 18세>에선 샤이니 민호가 죽은 첫사랑을 살리기 위해 고교 시절로 타임 슬립한다.

연애플 포스터2
웹 드라마가 부상하면서 방송사가 합작 형식으로, 혹은 자체적으로 작품을 기획하는 경우도 늘었다. 이미 웹을 통해 공개된 작품을 방송에 편성하며 두 플랫폼 간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네이버 TV와 유튜브 등으로만 풀린 <연애플레이리스트>는 시즌 1, 2편을 통틀어 전 세계 누적 3억 뷰를 달성했다. 대학생들의 멜로물 <연애플레이리스트> 시리즈는 꿈과 연애 때문에 골치 아픈 청춘들의 이야기인 후속작 <옐로우>로 이어졌다. 신인을 눈여겨보는 자들에게도 낯선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이 웹 드라마는 해외 마니아층까지 얻으며 작품의 이름으로 팬미팅을 연다. 과거 <우리들의 천국>이나 <카이스트>같은 청춘 드라마가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부활했다고 말하면 너무 나이 든 티가 날까? 어쨌든, 최근 SBS <사랑의 온도>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은 드라마로 연애한다고요.” 드라마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는 바로 ‘꽁냥꽁냥’ 연애 감정을 일으키는 것. TV 드라마들에서 그 기분을 충족할 수 없다면, 웹 드라마를 둘러보도록 하자.

피쳐 에디터
황선우, 권은경
강명석_웹진 〈ize〉 편집장 (느린 예능, 열린 관계)
아트웍
이현
사진
HELLO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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