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의 ‘슈퍼노바’, EXO의 ‘으르렁’이 재즈로 태어나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
재즈 신에서 각자의 인장을 새긴 연주자 셋이 팀을 이뤄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다.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는 그들, SM 재즈 트리오라는 새로운 언어가 울린다.

에스파의 ‘슈퍼노바’, EXO의 ‘으르렁’, 소녀시대의 ‘Gee’가 재즈 버전으로 다시 태어나면 어떤 느낌일까? 혹은 K팝 기획사에서 재즈 그룹이 데뷔한다면? 쉽게 해보지 못했을 상상이지만, 못할 것도 없다. 재즈라는 쉽지 않은 장르를 다루는 만큼 실력과 각오와 포부와 기타 등등을 갖추기만 한다면. 제18회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 라인업 포스터에 쓰인 ‘SM 재즈 트리오’의 ‘SM’은 우리가 아는 그곳이 맞다. SM엔터테인먼트의 클래식&재즈 음악 전문 레이블인 SM클래식스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업하여 SM 뮤지션들의 노래에 웅장한 날개를 달아준 바 있다. 이 레이블 안에서 팀을 결성한 지 2년 남짓인 SM 재즈 트리오의 구성원은 베이시스트 황호규, 드러머 김종국, 피아니스트 요한킴이다. 각각 40대, 30대, 20대로 나이대가 절묘하게 흩어져 있다는 점이 재밌다. 주요 경력을 한데 모으면 컴필레이션 박스 세트 하나쯤은 거뜬히 나올 정도인 프로 중의 프로 연주자들. 하지만 SM 재즈 트리오라는 ‘신인 그룹’으로 서재페에서 공연하는 건 처음이다. 황호규만은 그동안 송영주, 선우정아, 조윤성, 루시드폴 등과 함께 여러 번 서재페를 경험했다. “처음 서재페 무대에 섰을 때가 2013년경인가 그래요. 그때 연주하면서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형 스테이지가 생겼구나’ 싶었어요. 제가 미국이나 유럽 여러 도시에서는 공연한 경험이 많지만, 2002년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그런 무대가 거의 없었거든요.”
서재페의 초창기를 공연자로서 경험한, 다시 말하면 가요계 세션 활동을 비롯해 국내외 재즈 신에서 굵직한 이력을 쌓은 맏형을 멤버로 둔 SM 재즈 트리오. 세 사람은 ‘보는 음악’의 특성이 강한 K팝을 재즈로 치환하는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길에 나섰다. 2024년, 에스파의 강한 비트와 전자음을 유려한 재즈로 재해석한 ‘슈퍼노바(Jazz Ver.)’가 나왔다. 이후 태연의 노래가 원곡인 ‘11:11(Jazz Ver.)’, 팀의 창작곡인 오리지널 트랙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2025년 11월 첫 앨범 <핑크 노트>가 발매되었다. 분명 보아, EXO, 소녀시대, NCT Dream 등의 히트곡이 원곡인데, 태생적으로 모던한 재즈인 듯한 열 곡이 담긴 앨범이다.

“데뷔곡 ‘슈퍼노바’ 작업 때, 처음에는 그저 신나기만 했죠. 온갖 재즈적인 요소를 다 넣고 버무려서 ‘죽이게 멋진 거 하나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황호규가 그때를 회상했다. 피아니스트 요한킴에게 앨범 작업 중 가장 난항이었던 곡을 물었을 때는 그의 입술 사이로 피식 번져 나오고 만 헛웃음을 본 것 같다. ‘죽이는 것’을 선보일 수 있을 줄 알았던 프로 연주자들은, 객관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감을 익히 지녔을 회사 관계자들에게 ‘SM 재즈 트리오의 곡을 들었을 때도 원곡이 뭔지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원곡의 멜로디를 잘 살려야 좋다’같은 피드백을 들었다. 그렇다고 원곡과 너무 비슷해선 곤란하다. 노래에 재즈 필터를 씌우는 정도라면, 이 모든 도전을 굳이 감행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요한킴이 말했다. “노래가 원곡인 곡들을 연주로 잘못 풀면 좀 촌스러울 수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게 가장 고민이었어요.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죠. 수정을 할 경우에도 서로 다른 악기가 어우러져야 하니 하나만 바꿔서 될 일은 아니고요. 여러모로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어려운데, 그렇게 머리를 쓰는 과정이 또 재밌더라고요.” 트리오는 ‘슈퍼노바’를 녹음하는 날 아침까지 밤을 새워 수정 작업을 거듭하다 녹음실로 향했다. 대개 소리의 요소와 레이어가 많은 K팝을 단 세 대의 악기 소리만으로 그토록 풍성하게 살려낼 수 있다는 건, 새삼스럽지만 그게 바로 기악의 마법일까?
성인 남성 앞에 놓여도 커다란 자태를 뽐내는 콘트라베이스는 사현으로 저음역을 묵직하게 떠받쳐준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베이스 주자가 대개 활을 사용하지만, 재즈에서는 손으로 뜯고 튕기는 식이다. 오랜 경력자인 황호규는 이 악기로 벌어지는 일과 재즈에 대해 설명할 때 여전히 설레는 표정을 띤다. “가요 세션을 할 때는 약속된 틀 안에서 기계처럼 정확하게 연주해야 해요. 완벽을 기하는 연주에 도전하는 일도 나름 매력 있어요. 재즈에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멜로디만 지킨 다음부터는 대부분 자유롭게 연주해요. 그 순간순간 내가 느낀 감정, 다른 연주자와의 호흡이 대화처럼 이어지죠.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 매번 다른 스타일의 연주가 나오니까 정말 재밌어요. 경험이 많고 내공이 쌓인 연주자라면 처음 합을 맞추는 연주자와도 음악으로 대화가 가능해요. 지금 우리가 처음 만났지만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처럼요.”

요한킴에겐 현재 유튜브 채널 구독자 53만 명이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과 프로듀싱 활동을 활발히 했고, 트리오를 하기 전 SM클래식스에서 솔로 데뷔 싱글을 냈다. 2015년 SBS <영재 발굴단>에서 피아노 신동으로 등장한 그를 당시 보아가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봐주었는데, 그때의 요한킴과 지금의 요한킴은 외모 느낌이 꽤 다르다. 부모님이 모두 피아니스트인 집에서 그가 건반과 가까이 지낸 건 자연스러웠다. “어머니가 저를 레슨해주신 때가 있어요. 클래식은 악보를 준수하면서 정확하게 쳐야 하잖아요. 저는 즉흥 연주를 좋아했어요. 어머니는 제가 클래식 피아노와는 맞지않다는 걸 알아보셨죠. 그 후로 펑크, 퓨전 음악 쪽에 빠졌어요. 재즈에 깊이 빠지게 된 건 이 팀을 만나면서부터예요.” 드러머 김종국은 요한킴이 팀의 실무를 거의 전담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요한이는 습득력이 어마어마해요. 이미 탁월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나 테크닉을 금세 이해하고 받아들여요. 귀가 좋은 거죠.” 악기가 세팅된 장소에서만 합주가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는 만큼, 이들은 합주에 들어가기 전 김요한의 미디 작업으로 편곡과 스타일의 뼈대를 찾아간다.
황호규에겐 두 멤버에 관한 재밌는 인연이 있다. 그는 버클리 음대 유학 생활과 군 생활까지 마친 후 어느 날 TV를 틀었다가 <영재 발굴단>에 출연한 꼬마 요한을 봤다. “요한이가 음악 교수들 앞에서 블루스를 즉흥으로 연주하는데, 우리나라에 저런 아이가 있구나 싶어 놀랐어요. 정말 천재가 맞았죠. 그러다 몇 년 전에 SM의 제안으로 요한이와 협업을 하게 됐어요. 스탠다드 재즈는 물론이고, 솔로 연주를 자유롭게 너무 잘하는 거예요.” 황호규에게 요한킴이 방송으로 목격했던 ‘그때 그 신동’이었다면, 김종국은 ‘소문 속의 주인공’이었다. “정원영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진짜 미친놈이 하나 있다, 올댓재즈에서 공연한다는데 꼭 가서 보라고.” 황호규는 결국 그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그의 미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김종국은 ‘JK라고, 엄청 잘하는 드러머’로 회자되었다. 요한킴은 언젠가 가까운 사이인 드러머에게서 김종국의 이름을 들었다. “그 친구한테 존경하는 드러머가 누구인지 물었더니, 종국이 형을 말하더라고요. 찾아봤죠.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서 들어보지 못한 테크닉을 구사하더라고요. 훌륭한 연주자여도 사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그 스타일대로 연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종국이 형은 자기만의 언어가 있어요.”
김종국 역시 버클리 음대 유학 후 뉴욕에 머물며 연주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2024년 유네스코 지정 국제 재즈의 날 행사 때 한국 대표로도 공연했는데, 그보다 방탄소년단의 RM이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했을 때 함께한 드러머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재즈는 미국 전역으로 봤을 때도 지금 메인스트림의 음악은 아니거든요. 재즈의 본고장인, 그들에겐 히스토리의 일부인 미국에서도 그래요. 그런데 요즘 공연 후 피드백을 받으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미술관에 가면서 공부하듯이 취미 생활을 풍부하게 하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 재즈라는 장르를 깊이 파고드는 분들을 만나곤 해요. 음악적인 구성에 대해 코멘트해주는 분도 있죠.” 김종국은 작년 서재페에서 색소포니스트 토모아키 바바와 공연하며 이 페스티벌의 공기를 한 번 경험했다. 두 번째 서재페를 앞둔 아티스트에게, 재즈 레이블의 명가 블루노트에서 마침 서재페와 일정이 겹치는 프로젝트를 제안한다면? 고약한 상황이지만, 이번 서재페의 SM 재즈 트리오 무대는 드러머 김태현이 함께하게 되었다. 대신 김종국은 블루노트 발매 앨범에 세션으로 참여하는 최초의 한국인이 될 예정이다(20여 년 전 피아니스트 곽윤찬이 블루노트에서 앨범을 낸 적은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 애런 팍스의 앨범 레코딩에 참여한 후, 함께 투어 공연도 한다.

최근 SM 재즈 트리오로서 처음으로 대만 해외 공연을 한 이들은 서재페 후 6월엔 도쿄에서 공연한다. 하반기에는 SM뮤지션들의 곡을 커버한 재즈가 아닌, 오리지널 앨범을 낼 계획이다. 황호규는 말했다. “저희는 팀명부터 재즈 트리오잖아요. 재즈라고 하면 스윙에 블루스 요소도 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시도를 하든 늘 재즈의 기본은 잃지 않으려 해요. 물론 자유로움이야말로 가장 중요합니다. 재즈라는 뿌리를 지키면서도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트리오 본연의 사운드를 지키면서 보컬이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곡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K팝을 모르는 자들에겐 그저 자연스럽게, 재즈. 원곡의 팬에겐 또 하나의 신선한 변주. SM 재즈 트리오라는 새로운 언어가 서재페에 도착한다. “저희, 라이브는 음원보다 더 재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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