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대한 굳은 심지로, 흔들림 없이 곧은 남자. 언제나 주어진 역할을 자신에게 최적화시켰지만, 이제야 진정한 배우의 판에 들어왔다고 말하는 김래원.

촘촘한 체크 패턴 코트와 재킷, 팬츠는 모두 Ami by 10 Corso Como, 실크 소재의 브이넥 슬리브리스는 Kimseoryong, 흰색 슈즈는 Valentino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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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원에게는 한결같은 느낌이 있다. 그건 그가 예능이나 광고보다는 작품으로 보여주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오랜 시간 성실하게 쌓은 결과물이란 그 사람이 무엇보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함을 말해주니까. 점잖고 느릿느릿한 말투 역시 그런 느낌에 일조했을지 모른다. 10대 시절 연기를 시작한 그는 또래에 비해 묵직한 사람이었고, 낮은 목소리는 일찍부터 안정감을 줬다. 그런데 찬찬히 복기해보면 변함없는 이미지 속에서 그는 다채로운 캐릭터를 종횡무진 누볐다. 드라마 <닥터스>를 할 때엔 멜로물과 궁합이 잘 맞는 배우였고, 검사로 나온 <펀치>에서는 치열하고 냉정한 전문직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옷처럼 보였다. 사실 김래원은 영화 <해바라기>에서처럼 껄렁한 건달 역을 할 때 잘 들어맞는다. 아니, 시간을 훌쩍 거슬러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까지 떠올리면 김래원은 저렇게 물렁하고 유들유들한 철부지가 또 있을까 싶은 남자였다. 그는 늘 주어진 역을 자기 식으로 최적화시켰다. 얼마 전까지는 의사 가운 입고 키다리 아저씨로 TV 화면에 보이던 김래원이다. 이제 만날 작품은 교도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액션 누아르 영화 <프리즌>.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한석규는 죄수들의 정신적 지주인 감옥 안의 지배자이고, 그와 깡다구 있는 신참 수감자 김래원은 담장이 무색하게 또 다른 범죄를 도모한다.

넉넉한 실루엣의 흰색 셔츠와 팬츠는 Burberry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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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주변을 보면 김래원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남자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라는 건 당신의 이미지에 대한민국 남자들의 정서를 건드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일까?
김래원 그러니까, 나도 그게 참 궁금하다. 남자들이 나를 더 많이 좋아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별로다(웃음). 그나마 〈닥터스> 덕에 여성 팬이 좀 늘었다. 그 드라마는 정말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다. 연기 인생 20년 동안 가장 편하게 임했다.

“결혼했니? 애인 있어? 그럼 됐다.” 이런 대사를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남자인가?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멋지게는 못해도, 결혼을 했는지, 안 했으면 남자친구는 있는지, 여자에게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남자친구 있대, 그럼 어떡해야 하나! 일단 알겠다고 하고 속으로 막 생각을 하겠지. 실제로 겪어본 적 있는 상황 같기도 하고.

개인기로 김래원 성대 모사를 하는 남자 연예인도 많다. 영화 <해바라기>의 하이라이트에서 절규하는 신 말이다. 예능 보다가 그런 순간 마주치면 어떤 기분이 드나?
고맙다. 좋다.

당신과 정말 비슷한 사람이 있던가?
유튜브에서 어떤 남성이 나와 영화 <아저씨>의 만석이 성대 모사를 하는 영상을 봤는데 잘하시더라. 그리고 학교 후배 중 최근 <미씽나인>에 출연한 최태준이라고 있다.

이선균 성대 모사의 지존인 최태준 배우 말인가?
참 아끼는 후배 중 하나다. 가끔 보는 사이지만 태준이가 내 앞에서 내 흉내를 낸 적은 없는데, 나 없는 자리에서 그렇게 내 성대 모사하면서 까분다고 하더라. 잘한다고 들었다.

지난해 당신은 드라마 <닥터스>, 한석규는 <낭만닥터 김사부>로 의사 가운 입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영화 <프리즌>에서는 두 사람이 수의를 입고 나타난다. 한석규와의 시간은 어땠나?
작품을 같이한 건 처음이지만, 선배님과의 사이가 7년 정도 됐다. 우리 공통 취미가 낚시다. 어느 날 선배님 매니저 통해서 회사로 연락이 왔다. 래원이가 낚시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같이 해보자고. 그래서 충주호에서 선배님을 만났다. 낚시하면서 우리는 언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얘기하곤 했는데 드디어 함께 해봤다. 낚시할 때는 동네 형 같은 기분이지만, 촬영장에서는 깍듯이 대했다.

한석규와 김래원이 나란히 앉아 낚시를 한다니. 주로 정적이 감돌다가 옷에 물이 튀기라도 하면 “나 원 참 이거” 같은 문어체 멘트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데?
우리가 1시간에 한 마디씩 하던가?(웃음) 그 한마디가 뭔지 아나? “래원이 커피 마실래?” 혹은 “래원아,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서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좀 떨어진 거리에서 각자 낚시를 하다가, 고기가 계속 안 잡히면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고서 또 대화 좀 하거나. 배우들의 사이클은 6개월 일하면 6개월은 쉬는 셈이다. 그러니까 반년 동안 내리 낚시를 할 수 있는 거다. 이건 좀 사적인 얘기라 조심스러운데, 그렇게 선배님과 가까워져서 1년 중 200일 정도를 한 방에서 지내며 낚시하러 다닌 적도 있다. 늦잠 자고 있으면 밥 차려놨다고 깨워주신다. 선배님 특유의 말투로 “야 빨리 일어나~.”

낚시의 매력은 뭔가? ‘낚시를 즐기는 남자’라고 하면 왠지 상징적이고 은유적이다.
술 마시고 파티 벌이는 취미보단 낫지 않나? 혼자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좋고. 작년 연말에는 아예 두 달 동안 남쪽의 어느 섬에 들어가 있었는데, 누워 있으면 지네가 다니고 화장실 문고리는 다 녹슬어 있는 외진 섬이었다. 낚시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그곳에서는 절벽 위에서 하는 위험한 낚시를 했다. 거기 가보면 기절할걸? 수영하고 노는 바다가 아니라 절벽에서 발 헛디뎌 떨어지면 그냥 죽는 바다. 어우, 하면서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젠 그렇게 스릴 있는 낚시는 안 하려고. 원래 매끈한 손이었는데 상처로 다 긁히고 엄청 거칠어졌다.

목과 어깨 부분에 체인이 장식된 검은색 니트와 검은색 팬츠는 Givenchy, 리본이 달린 페이턴트 소재 로퍼는 Versace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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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배우에게 손 중요한 것 모르나? 손과 손가락이 연기 다 해내는 장면도 있는데 어쩌려고.
아니, 손 안 중요하다. 그런 건 20대 스타들한테나 중요하지. 우리나라 최고의 남자 배우인 한석규, 송강호, 최민식의 손이 고울까? 오로지 연기만으로 논할 수 있는 젊은 배우를 떠올려보면 별로 없을 거다. 나 역시 배우로서는 이제 시작이다. 이제야 진짜 배우의 판에 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의외다. 김래원은 청춘 스타나 연예인보다는 연기에 충실한 배우의 인상이 더 강했다.
어릴 때는 그저 대본 보면서 열심히 인물을 흉내 냈고, 활짝 웃으면 예쁘다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운이 좋으면 이슈 되는 작품 만나고 그랬지. 그리고 일찍부터 연기를 시작하고 알려졌으니 주변에서 챙겨주는 생활에 워낙 익숙했다. 언젠가 어머니와 장을 보고 집에 가는데 내가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짐을 건네고 있더라. 아차 싶었다.

스스로 깨우쳤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계기가 있었나?
내가 변했다는 건 아니다. 원래부터 자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20대 때는 거품이 껴 있었다. 그게 젊음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음, 내가 너무 안 좋은 예시를 들었나? 누가 들으면 꼴값 떤다고 할지도 모른다. ‘자기가 뭐 그렇게 대단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솔직한 고백을 하는 걸로 들린다. 옛날에 한 작품들을 다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새삼스럽지만 다양한 작품을 했다. 저때는 뭘 놓쳤구나, 몰랐구나, 하는 점도 보이고 반대로 뭣 모르는 패기로 했기에 더 신선한 면도 있다. 지금은 능숙해졌으니 아무래도 신선함은 떨어진다. 신선함과 능숙함 사이는 내 의지대로 컨트롤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얼굴에 자연스러운 세월이 묻어 나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삶 자체를 때 묻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어떤 노력을 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 그저 진솔하게 살고자 한다. 사람이 나이 들고 사회생활을 좀 하다 보면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거나 속과 겉이 달라야 할 때가 있지 않나. 내 경우 상대방의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딱 알아챈다. 인터뷰라는 일만 해도, 내 나이 되면 보통은 자기 생각이 정돈되어 있어서 조리 있게 말 잘하던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가 평소 접해보지 못했거나 하지 못한 생각을 마치 해본 척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예술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감정에 솔직하고 그 상태를 유지해야 자기 안의 중요한 뭔가가 지켜질 것 같다.

차분한 핑크 톤의 재킷과 팬츠, 니트 톱은 모두 Bottega Veneta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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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화보 컷과 자세한 인터뷰는 더블유 4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