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오래 알던 사이처럼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LA를 베이스로 출발해 오늘날 할리우드 스타들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열혈 마니아층을 구축한 브랜드 토마스 와일드(Thomas Wyld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부사장 젠 박(Jene Park). 바로 2016년 서울에 새로운 둥지를 틀, 열정 넘치는 한국인 여전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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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와일드(Thomas Wylde)의 S/S 컬렉션을 착용한 채,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조우한 디자이너 젠 박(왼쪽)과 모델 정호연. 토마스 와일드는 영화 <카운슬러>에서 여배우 캐머런 디아즈의 의상을 전담했을 뿐만 아니라 제니퍼 로페즈, 앤젤리나 졸리, 마돈나 등 수많은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다. 2006년 토마스 와일드 론칭 시기부터 합류한 오랜 파트너라고 알고 있다. 지난 8월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 9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쇼를 선보 이고 2016년 한국 론칭을 준비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며 토마 스 와일드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고 있다. 토마스 와일드와의 인연 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토마스 와일드와의 인연을 이야기하자면 처음에 미국에 갔던 시절을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 다. 난 부산에서 나고 자라 공부한 뒤, 스물아홉이라는 늦은 나이 에 미국으로 가서 처음으로 패션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자신의 커리어를 새롭게 개척하는 이들이 많지만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도전이었다. 원래 일어를 전공한 일본어 선생님이었는데 말이다. 당시 어린 동기들과 함께 패션 수업을 들으며 동시에 영어를 익 혔다. LA에 위치한 패션 스쿨인 FIDM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 는데 악착같이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덕분인지 총 200명 중 12명 을 뽑아 후원하는 어드밴스 클래스에 뽑혀 한국 사람으로는 유일 하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준비해 발표한 컬 렉션을 통해 프랑스의 르사주라는 오트 쿠튀르 엠브로이더리 아 틀리에에서 연수를 받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 말이다. 그곳에서 200년 가까이 보존해온 귀한 아카이브 의상을 보며 앞으로 쿠튀 르 감각을 지닌 컬렉션을 하겠다는 나름의 약속을 내게 했다.

공부를 마치고 서른이 넘어서야 패션 필드를 경험하며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길을 걸었나?
첫 직장은 바로 BCBG였다. 막내 디자이너를 뽑는다는 공고에 인터뷰를 보았는데 채용이 되 지 않았다. 그래서 헤드 디자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언어 문제 때문에 나를 뽑지 않았다면 알려달라.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아야 다음 번에 제대로 준비해서 재도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라 고 당차게 얘기를 건네자 그가 그럼 3개월간 무보수로라도 일을 배우겠는지 물었다. 그렇게 인턴 디자이너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 를 얻었고, BCBG에서 첫 패션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패션 업계의 일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창의적인 부분이 다가 아니다. 선배가 디자인한 스타일에 후배 디자이너들이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받쳐줘야 하는데 시스템과 환경이 정비되지 않아서 일이 더 디게 흘러가는 점이 아쉬웠다. 내가 맡은 일만이라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매일 밤, 일을 마치고 단추를 분류해 넣는 일을 시작했 다. 바닥에 앉은 채 단추를 만지고 있는데, 어느 날 BCBG의 오너 인 르바가 나의 모습을 목격하곤 말을 걸었다. 다음 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고,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너무나도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막내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지만 어떤 회 사든 내가 몸담기 시작하는 첫날부터 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나의 멘토가 된 르바와 함께 BCBG를 위해 일하며 정말로 많은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토마스 와일드에서 커리어를 시 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패션은 크리에 이티브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10년 동안 르바 옆에서 좋은 취향과 감각, 글로벌 비즈니스의 안목을 키우며 마침 내 BCBG12개 부서를 관리하는 총책임자로 클 수 있었다. 평 생 직장으로 생각했던 곳인데, 가정을 갖게 되고 쌍둥이 딸을 낳 으면서 고민이 커졌다. 큰 조직을 이끌며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의 개인적인 삶에도 시선을 돌려 어린 딸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작은 개인 브랜 드를 론칭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국의 스타일리스트 이자 전직 모델인 폴라 토마스를 만나 함께 ‘토마스 와일드’를 론 칭하게 되는 기회가 불현듯 찾아왔다. 그녀가 브랜드를 대변하는 얼굴이 되었고, 난 마치 집안 살림을 하듯 디자인실을 관리하며 브랜드를 키웠는데 결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로킹한 해골 모티프 에 대한 마니아들의 열띤 반응이 폭발적으로 터지면서 첫해에 50만 달러였던 매출이 1년 새에 20배나 뛰어오르면서 사업이 급 속도로 확장되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난 더 바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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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러운 실루엣에 로큰롤적인 강렬한 취향을 배합, 개성 넘치는 매력을 전하는 토마스 와일드의 S/S 컬렉션.

2006년 론칭 후에 10년 만인 2016년, 드디어 한국에 토마스 와일드를 론칭한다. 이미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토마스 와일드를 이제야 서울에 소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홍콩과 중국의 레인크로포드나 조이스, 아이티 등 유명한 리테일 숍을 비롯해 일본만 하더라도 꽤 일찍 진출했다. 필립 플레인이나 알렉산더 매퀸과 같은 로킹한 정서의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마니 아적인 컬트 문화가 자리 잡은 일본에 비해 한국 시장은 아직이라는 판단이 앞섰다. 분더샵에 2006년부터 일부 제품이 소개 되긴 했지만 토마스 와일드 코리아를 세우기까진 조금 더 기다 려야 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때가 왔다. 오늘날 한국은 K-팝과 K-드라마 열풍에 이어 K-패션을 통해 글로벌한 패션 시장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으니까. 한국은 더 이상 따라가는 패션이 아닌 리드하는 패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이제다 싶었다. 토마스 와일드가 진출할 때가. 얼마 전 한류 스타 전지현이 토 마스 와일드의 핑크 재킷을 입었을 때 중국 고객들로부터 2백 여 통의 문의 메일을 하루 안에 받기도 했을 정도다. 일단은 럭 셔리한 쿠튀르 라인이자 메인 컬렉션인 토마스 와일드 대신, 보 다 대중적이라 할 디퓨전 라인인 ‘와일드 바이 토마스 와일드 (Wylde by Thomas Wylde)’를 먼저 한국에 선보일 계획이다.

그렇다면 룩뿐만 아니라 액세서리 라인도 만날 수 있나? 아까 보여준 위트 있고 강렬한 캠페인 이미지의 ‘노 보탁스 선글라 스’를 비롯해서 말이다.
물론이다. 라이프스타일을 염두에 둔 총체적인 컬렉션을 선보일 플래그십을 서울에 오픈할 계획이 니까. 현재 LA에만 플래그십이 있는데 앞으로 서울에 이어 파 리, 런던, 뉴욕 등에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고 싶다. 도쿄 의 오모테산도에도 오픈 계획을 논의 중이긴 하지만 서울이 우 선이 될 것 같고 말이다. 이곳에서 안경이나 선글라스 같은 아 이웨어를 비롯해 백과 슈즈, 나아가 향수까지 그야말로 ‘토마스 와일드 월드’를 모두 선보일 것이다. 또 럭셔리 청바지의 본고 장인 LA를 베이스로 둔 브랜드답게 감도 높은 프리미엄 진 라 인도 한국에 동시에 선보이고 싶다. 이 모든 계획은 더블유 코 리아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지금 고향에 돌아와 한 국말로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좀 뭉클한데, 오늘 인터뷰를 통 해 초면에 너무 나를 울리는 것 같다(웃음).

그 모든 계획에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 요즘 K-패션뿐만 아니라 디지털 패션이 큰 화두다. 아 까 언급했듯이 패션이 하나의 비즈니 스이기 때문에 이 부분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재 패션계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 느 방향이 맞는지 그 누구도, 그 어떤 글로벌 패션 브랜드도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시대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시도해갈 뿐. 빅 브랜드마 다 아마 소셜미디어 플랜에 골머리를 썩일 텐데 사실 오늘날은 누구나 하 룻밤 새에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 는 세상이다. 하나하나 차분히 공부 하고 경험을 쌓아가는 게 아니라 반 짝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대중의 관심 을 얻고 SNS 채널을 통해 자신의 브 랜드를 전개할 수 있다. 뉴욕 패션위 크를 통해 토마스 와일드의 쇼를 선 보이다 보면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 의 쇼와 프레젠테이션이 쉴 새 없이 열리는 걸 볼 수 있다. 빅 브랜드의 경쟁 우위가 없는 치열한 시 장 상황에서 내 철학은 간단하다. 바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 는 것이다. 특히 나만의 변별력 있는 독창적인 방식이 담긴 이 미지의 소통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난 토마스 와일드를 처음 전개하던 당시에 룩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한 번 보고 버릴 수 없는 소장 가치를 지닌 커피테이블 북을 만들었 고, 스타일 가이드를 이메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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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6일,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선보인 토마스 와일드(Thomas Wylde)의 2016 S/S 컬렉션 의상. ‘Evolution’을 주제로 가죽과 새틴 소재의 믹스 매치, 베이식한 색감, 체인과 십자가 모티프를 메탈 소재의 액세서리 장식으로 다채롭게 활용했다.

매혹적인 모델 로지 헌팅턴 휘틀리와 함 께 작업한 책이 바로 토마스 와일드만의 독창적인 룩북이었나?
그렇다. 이처럼 자 신만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일례로 밤 12 시에 무덤을 콘셉트로 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거다. 죽을 때 제일 좋은 옷을 입혀서 묻는 이집트인의 풍습처럼 유리관 안에 새로운 토마스 와일드 컬렉션을 입 은 모델들을 눕혀서 흥미로운 비주얼 콘 텐츠를 동시에 만드는 것은 어떨까. 이러 한 콘텐츠를 새롭게 창조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SNS를 통해 보러 오게 되어 있 다. 프랑스 신진 디자이너 자크뮈스의 인 스타그램 계정처럼, 이미지 자체가 너무 좋고 디자이너의 머릿속이 흥미로워서 자 꾸 가서 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또 어떤 아이디어가 있나?
디지털로 쇼 현장의 비하인드 신을 소개하고 싶다. 현 재 S/S 시즌의 비하인드 신 영상, 일명 ‘파이브 미닛 비디오’를 준비 중이다. 사람 들이 보는 결과물이 생겨나기까지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은 것인데 사람들이 보지 못한 이면을 흥미롭고,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라프 시몬스가 디올에서 첫 쿠튀르 컬렉션을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디올&아이>처럼 말이다. 디자 인 팀의 작업 과정 하나하나와 디자이너의 고민 등 모든 부분 에서 전적으로 공감했고, 또 보면서 많이 울었던 영화다. 디자 인 팀의 노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느끼게 하고 싶다.

최근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나가면서 했던 말이 패션계에 진지 한 파문을 일으켰다. 일 년에 숨 가쁘게 이어지는 컬렉션을 준 비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아이디어를 인큐베이팅할 시간이 없 다는 그의 말에 당신도 동감하나?
물론이다. 나 역시 1년에 메인과 디퓨전, 두 가지 라인을 선보이 며 프리 컬렉션을 포함해 총 8번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게다가 아이웨어 라인의 캠페인을 준비하고, 스타일 북도 만든다. 아까 인터뷰 전에 잠깐 얘기 나눴던, 패션계에서 오래 일하기 위해선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바로 그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래 서 난 패션계의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한편 때론 거꾸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예전에 이브 생 로랑이 살롱 쇼를 선 보였듯이, 쇼를 보러 온 VIP와 프레스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룩 에 집중하고 교감할 수 있는 자리 말이다. 또 패션위크 캘린더 에 없는 독자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뮤지엄에서 전시를 선보이고도 싶다.

사실 토마스 와일드의 서울 진출을 주제로 한 이번 인터뷰를 위해 가로수길이라는 촬영 베뉴를 정했다. 서울의 거리가 품고 있는 동시대성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어땠나?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와일드 바이 토마스 와일드의 첫 플래 그십 스토어가 가로수길에 자리할 것 같다. 정감 어린 가로수길 엔 토마스 와일드가 지향하는 마니아적인 컬트 문화가 구석구 석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며 존재하고 있다. 마치 LA 베벌리힐 스가 아닌 베니스 비치나 애보키니 거리, 뉴욕의 소호, 파리의 마레 지구처럼 말이다. 그러니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토마스 와 일드의 서울 행보에 많은 기대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