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열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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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 애스> 시리즈의 이 멋진 여배우는 학교나 다니기엔 너무 쿨하다.

그레이스 모레츠가 네 살이었을 때, 열네 살이던 그녀의 오빠 트레버는 클로이에게 <스타 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 옷을 입히고 놀았다. 그들은 애틀랜타에 있던 집 수영장에서, 점점 가라앉는 뗏목에 갇힌 레아 공주 연기를 하는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클로이의 연기 잠재력을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이 바로 배우가 꿈이었던 오빠 트레버였던 것이다. 그는 최근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클로이는 처음부터 카메라를 굉장히 편안해했어요. 어린 꼬마였는데도 뭔가가 있었어요.” 2002년에 모레츠 가족 중 몇 명은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트레버가 공연 전문 예술 고등학교에서 연기에 대한 열망을 꽃피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여섯 살 먹은 클로이가 오빠를 따라 대사 연습을 하기 시작하자 트레버는 동생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보았고, 결국 스스로의 연기 커리어 대신 클로이의 커리어로 초점을 옮겼다. 트레버는 클로이의 연기 코치 겸 프로듀서 겸 멘토 겸 구루가 된 것이다.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복잡해지는 아역 배우의 세계에서 오빠 트레버는, 어쩌면 클로이를 구해준 것일 수도 있다. 촬영장이든 어디든 트레버는 늘 클로이 곁에서 연기 지도를 한다. 클로이는 아만다 바인스처럼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니켈로디언(미국의 어린이 채널) 아역 배우였다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릴 위험도, 영화 속의 완벽한 딸이지만 실제로는 형편없는 부모를 둔, 예를 들면 재능 있는 린지 로한처럼 되는 위험도 피했다. 그 대신에 모레츠는 아역 스타였던 조디 포스터와 나탈리 포트먼이 갔던 길을 따라, 성인 역으로 부드럽게 전환할 수 있는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는 커리어를 쌓아갔다. 2010년, 모레츠가 열세 살이었을 때 그녀는 액션 영화 <킥 애스>에서 입이 험하고 폭력적인 자경단원 ‘힛 걸’ 역으로 유명해졌다(속편이 한국에서는 10월에 개봉한다). <렛 미 인>에서의 혼란스러워하는 뱀파이어 역할 역시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 이번 달에는 킴벌리 피어스 감독의 공포 영화 <캐리> 리메이크 작에서 염력을 지닌 부적응 고등학생으로 출연한다. 얼마 전에 폐교한 뉴욕의 고등학교에서 이 영화 촬영을 마친 뒤 모레츠는 이렇게 말했다. “캐리 역은 이제까지 제가 연기한 어떤 인물과도 달라요. 오래된 옛 영화들에서 배운 바가 커서 흡수하려고 애써요. 트레버는 위대한 영화들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 미치는 중요성을 가르쳐줬어요. 그리고 다른 연기 스타일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죠.” 끼어들거나 어슬렁거리지 않고 근처에 앉아 있는 키 큰 금발 오빠 트레버와는 달리 모레츠에겐 이국적이며 어렴풋이 고스적인 면이 있다. 도톰한 입술, 거의 검은색에 가깝게 염색한 짙은 금발, 그리고 큰 눈으로 나약함과 신비함을 동시에 투사하는 묘한 능력. 침착하고 자신감 있는 그녀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열여섯 살 소녀일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가 뭐였나?
여섯 살 때 공포 영화 <아미티빌 호러>에 출연했다. 오디션을 네댓 번 봤는데, 그때마다 울어야 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일 때는 울 수 있다는 게 대단한 재주라서, 우는 장면을 계속 반복했다. 내가 이렇게 울어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려고.

우는 연기를 할 때는 아주 슬픈 생각을 했나?
(미소를 지으며) 좋은 마법사는 절대 비밀을 밝히지 않는다.

알겠다. 영화 만드는 일이 처음부터 정말 좋았나?
솔직히 말하면 난 카메라 앞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 내 자신을 제3자로 생각하는 법을 익혔다. 내가 찍은 장면을 볼 때면 “쟤 저것보다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라고 남 얘기처럼 말하기도 한다.

처음으로 당신에게 주목한 것은 <킥 애스> 때다. 열한 살에게는 아주 강렬한 역할이었는데. 촬영장 밖에서도 캐릭터에 몰입했나?
아니, 난 촬영장 밖에서는 절대 캐릭터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트레버는 내게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줬다. 내가 <킥 애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열 살 때인데, 난 그 역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앤젤리나 졸리의 <원티드>가 막 나왔을 때고, 난 그런 쿨한 걸 하고 싶었지만 어린애 같은 건 싫었다. 조그만 레이저 총을 들고 뛰어다니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킥 애스’는 전혀 어린애 같지 않았다. 내 캐릭터는 여섯 살 때부터 사람을 죽이고 다니지 않나.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프롬(졸업 댄스파티)에 못 간다든가,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살지 못해서 아쉬운가?
그렇지 않다. 영화 시사회가 나에게는 프롬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기리는 행사니까. 다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의자에 앉아 있는 건 그립다.

당신이 출연한 유일한 ‘어린애’ 영화는 <휴고>였다. 오디션은 어땠나?
마틴 스코세이지가 감독이라는 말을 듣고 짜릿하고 정말 어두운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스코세이지가 처음으로 만든 ‘가족’ 영화였다. 영국 배우만 캐스팅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가발을 쓰고 영국 억양으로 오디션 테이프를 찍었다. 스코세이지는 내 테이프를 마음에 들어 해서, 나에게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오라고 하더라. 난 LA로 이사 온 영국 여자애 연기를 계속했다. 대사를 다 읽고 나서 떠날 때가 되어, 내 원래 목소리로 “마티, 잘 있어요!”라고 인사를 했다. 내 억양이 어디 갔느냐고 놀라길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다행히 마티는 아주 재미있어 했다.

그전에 스코세이지 영화를 하나라도 본 적이 있나? 당신이 보기엔 전부 너무 어른 영화였을 텐데.
비행기 나오는 영화만 하나 봤다. 오빠, 그게 뭐였지? (트레버가 고개를 들고 <에비에이터>라고 말한다) 맞다, 그거였다.

<휴고>를 영국과 파리에서 촬영한 것으로 안다. 유럽에 머문 게 당신의 패션 감각에 영향을 주었나?
트레버가 나에게 온갖 패션을 소개해줬지만, 막상 유럽에 가니 나는 완전히 사로잡혀버렸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버튼다운 셔츠랑 작은 스웨터를 주로 입었다. 하지만 이젠 크리스토퍼 케인 같은 스타일을 하고 싶다. 나는 변덕이 심하다. 검은색을 많이 입지만, 내일이라도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패션의 영감을 얻기 위해 옛날 영화를 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나오는 <클레오파트라>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 트레버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여줬다. 난 오드리 헵번을 사랑한다. 그 영화를 보면서 배우는 연기를 통해 관객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감정 상태로 옮겨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여덟 살 때 깨달았단 말인가?
물론이다. 그 경험이 나를 영원히 바꿔놓았다. 글 | Lynn Hirshberg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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