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합시다! Part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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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엔 아무것도 먹을 수 없는 식당 사람들. 메뉴판엔 없는, 그들만의 진짜 밥상 ‘패밀리밀’을 훔쳐봤다.

대장금의 재림

“저희는 매일 탕을 끓여 먹어요. 왜냐면 매일 숙취에 시달리니까.” 어젯밤에도 식당 문을 닫을 무렵 역시나 술을 마셨다는 정창욱 셰프가 양지, 버섯, 무 등이 듬뿍 들어간 새빨간 육개장을 내오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입 들이켰더니 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목구멍을 타고 흐른다. “꼬박 18시간을 끓였다니까요. 우리 식당에서 파는 스튜보다 오래 끓여요. 하하하.” 곧이어 반찬 접시에 올라오는 양념 게장 또한 마치 ‘장금이’의 마음으로 직접 담갔단다. 4~5명의 직원들이 하루에 두 끼, 그래서 하루에 직원 식사용으로만 쌀 1.5kg를 소비한다는 식당 차우기 식구들의 진짜 점심시간. 창가에 위치한 2인용 테이블에 3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 소리가 들려오자, 다음 일정은 잊고 그 사이에 끼어 앉고 싶어졌다. 식당 차우기 02-915-0105

나의 첫 패밀리밀

진한 풍미의 브런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이태원의 런던티가 얼마 전 신사동에 2호점을 열었다. 이번엔 다이닝 메뉴도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에, 신사점의 점심시간은 사장과 셰프가 머리를 맞대고 파스타도 만들어 먹어보고 리조토도 만들어 맛보느라 바쁘게 흐른다. 오늘의 점심 샐러드엔 특별히 단감을 넣었다. 아침에 장을 볼 때 시장 아주머니가 지금이 제철이라며 한 번 먹어보라고 건네준 그 단감이다. 특히 베이컨, 소시지, 시금치 등 런던티에 항상 구비되어 있는 재료를 넣어 만든 토마토 소스 펜네 파스타를 내놓을 땐 셰프의 표정이 따뜻해졌다. 오래전 외국 레스토랑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점심시간에 식당 옆 길가에 앉아 먹었던 첫 패밀리밀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문을 연 식당의 주방을 책임진 그녀의 지금 표정이, 바로 그때의 표정일 것 같았다. 런던티 신사점 02-514-2660

식판 부대의 역습

냅킨 하나까지 셔츠 모양으로 예쁘게 접어놓을 정도로 섬세하고 다채로운 프렌치 요리를 선보이는 컬리나리아 12538의 점심시간은 우아하고 또한 화려할까? 점심시간이 시작되자 아름다운 그릇들이 사라진 자리에 투박한 식판이 차곡차곡 쌓였고, 스태프들이 그 위에 밥과 반찬을 수북이 담기 시작했다. 백상준 셰프가 “촬영한다고 이렇게 차린 거 절대 아니에요”라고 할 정도로, 든든하고 제대로 된 한 끼다. 오늘의 메뉴는 황태 해장국, 어제 먹다 남은 마파두부를 얹은 밥, 똑 떨어지게 부친 가지전과 호박전, 오이소박이, 취나물, 소금과 후추로만 간해 훈제한 닭, 그리고 워낙 계란 노른자를 많이 쓰는 까닭에 남은 흰자로만 만든 계란찜. “식사하세요” 우렁찬 외침과 함께 총 10명이 넘는 직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기시작했다.컬리나리아 12538 02-515-0895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상

입안에 넣기 아까울 만큼 아름다운 창작 스시를 맛볼 수 있는 타츠미즈시는 일본 후쿠오카 지방의 맛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식당의 점장인 마루야마는 스태프들 또한 그 맛을 기억하도록, 점심시간마다 일본식 가정 요리를 해주곤 한다. 특히 재료는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남는 재료를 활용한 메뉴가 대부분이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감자를 넣어 끓이다가 얇은 삼겹살, 실곤약 등을 넣어 만든 니꾸자가, 육수를 내고 건져낸 다시마를 졸여 만든 시오곤부, 남은 가츠오부시를 볶은 후 양념한 후리가케, 쓰고 남은 껍질로 만든 무와 당근 볶음, 마지막으로 남은 무를 얇게 썰어 말렸다가 간장으로 양념한 호시다이꽁. 짭조름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밥상을 앞에 두고 스태프가 외친다. “돈 들어간 재료는 고기밖에 없네!” 타츠미즈시 02-749-0712

오른손으로 볶고, 왼손으로 볶고

빨갛고 얼큰한 인스턴트 ‘라면’이 거의 전부였던 8년 전, 뽀얗고 진한 육수가 인상적인 후쿠오카 지방의 ‘라멘’을 선보인 하카타분코. 한성문고는 바로 그 하카타분코가 이번엔 제대로 된 서울라면을 만들어보겠다며 합정과 가로수길에 오픈한 또 하나의 브랜드다. 대표 메뉴인 인라멘 외에 새롭게 한라멘과 서울라면이 추가됐는데, 이 중 센 불에 볶은 양배추와 양파를 넣어야 하는 한라멘 때문에 중화요리용 프라이팬을 구입했다. 팬을 사용하는 기술도 연마할 겸 점심시간엔 남는 재료를 활용한 볶음밥과 볶음면을 만들어 먹을 때가 많은데, 오늘은 차슈 덮밥을 만들고 남은 차슈 찌꺼기를 활용한 볶음밥, 육수에 사용된 닭가슴살을 넣은 볶음면 당첨. 온 주방이 고소하고 화끈한 불 맛으로 그득했다.한성문고 가로수길점 02-543-7901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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