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와 서브컬처 비트, 27 SS 디올 남성복 컬렉션

명수진

DIOR MEN 2027 SS 컬렉션

디올의 초대장은 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오브제였다. 도자기 접시부터 튈르리 정원의 녹색 의자 미니어처에 이르기까지, 하우스의 내러티브를 위트 있게 함축해 온 초대장의 이번 시즌 테마는 뜻밖에도 ‘검은색 디스코볼’이었다. 조나단 앤더슨이 이끄는 디올 남성복 27 SS 컬렉션은 ‘컴 언돈(Come Undone)’을 타이틀로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현대적인 비트로 재해석했다.

쇼가 열린 곳은 파리 몽소 거리에 위치한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Musée Nissim de Camondo). 프랑스 은행가 모이즈 드 카몽도(Moise de Camondo)가 생전에 수집한 18세기 장식 미술품들이 가득한 저택은 마침 디올 하우스와도 영리한 연결고리를 갖는다. 무슈 디올 역시 18세기의 우아한 미학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현재 복원 공사 중이라서 은근한 미완성의 결을 드러내는 이 박물관에 대해 조나단 앤더슨은 ‘무슈 디올과 모이즈 드 카몽도 모두 보존만큼이나 재창조에 관심이 많았다’며 ‘리노베이션 단계에 있는 이 흥미로운 과도기의 불완전함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파리의 이른 무더위를 피해 당초 예정되었던 오후 2시 30분에서 아침 9시로 시간을 옮겨 진행된 쇼는 관객들에게 딸기와 하얀 부채를 쥐여주며 시작되었다. 더위를 쫓는 관객들의 부채질의 물결 속에서, 오프닝 모델이 걸어 나와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는 오프닝과 함께 저택 내 공간과 정원에 BGM이 울려 퍼졌다. 밤샘 파티를 마치고 들어와 충전기를 꽂고 다시 음악을 트는 청춘들의 루틴을 런웨이 오프닝으로 시각화한 것이었다.

이번 컬렉션의 뮤즈는 영국의 DJ 겸 프로듀서인 프레드 어게인(Fred again..)이었다. 찰리 XCX, 스켑타, 에드 시런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하다 자신의 음악적 일기를 담은 믹스테이프 시리즈 <액추얼 라이프(Actual Life)>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이번 디올 쇼의 음악 감독을 맡아 KTNA, 메이브 프라티(Mabe Fratti), 제이미 T(Jamie T)의 곡들과 크리스틴 앤 더 퀸즈(Christine and the Queens)의 오리지널 보컬이 담긴 사운드트랙을 미술관 정원에 가득 채웠다. 조나단 앤더슨은 이런 음악적 연출과 함께 컬렉션 자체를 마치 디제잉 하는 것처럼 구성했다. 하우스 아카이브를 샘플링하고 리믹스하여 새로움을 창조해 낸 것이다.

이러한 ‘리믹스’는 잘 차려입는 정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으로 완성됐다. 무심하게 헝클어진 머리를 한 모델들은 댄디한 턱시도를 시어한 시스루 소재로 변조한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투명한 재킷 위에는 핀스트라이프와 체크 등 지극히 클래식한 패턴이 얹어져 기묘한 이질감을 안겼다. 라운지웨어처럼 나른한 파자마 스타일의 셋업, 거칠게 뜯어진 디스트로이드 니트 카디건, 그리고 데님 버뮤다 팬츠의 매치는 우아함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편안함을 극대화했다. 전통적인 더블 브레스트 슈트와 이너 셔츠들은 와이드하고 루즈한 핏으로, 나폴레옹 코트는 캐주얼한 아우터로, 브이넥 풀오버의 네크라인은 옆에서 잡아당긴 듯 비대칭으로 변형되어 디자이너 특유의 전위적인 위트를 드러냈다. 쇼의 인비테이션이었던 디스코볼은 메탈릭한 소재의 팬츠로 재탄생해 날카로운 에지를 더했다. 동시에 조나단 앤더슨의 고향인 북아일랜드의 투박하면서도 서정적인 배경 역시 룩 곳곳에 은근한 터치로 묻어났다.

액세서리 라인은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실용성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디올의 오랜 헤리티지인 오블리크(Oblique)와 까나쥬(Cannage) 패턴이 새겨진 토트백이 쏟아져 나왔고, 다른 백들 역시 짐색처럼 간편하게 짐을 넣기 좋은 캐주얼한 숄더백 실루엣으로 진화했다. 클래식한 보우 타이는 촘촘한 비즈 장식의 넥타이로 대체되었으며, 거대한 숄 스타일의 빅 사이즈 스카프는 울부터 망사 소재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어깨를 감쌌다. 재킷 깃에 얹어진 눈부신 보석 브로치는 디올 특유의 섬세한 유산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조용한 고택의 정원에 일렉트로닉 비트를 가져오는 과감함. 조나단 앤더슨이 이끄는 디올 남성복은 동시대의 서브컬처와 결합하여 가장 힙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하우스의 유산을 더욱 빛나게 했다. 이번 27 SS 디올 맨 컬렉션은 방대한 아카이브를 동시대적 언어로 리믹스한 매력적인 믹스테이프였다.

Courtesy of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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