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 윈터, 그 이전의 스물다섯 김민정. 둘은 꽤 닮았고, 또 선명하게 다르다.
최근 정규 2집 <Lemonade>의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윈터는 무대 아래에서 다시 생각이 많고, 동심을 사랑하며, 기꺼이 모험을 준비하는 민정으로 돌아갔다.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의 윈터와 민정이 여기 나란히 서 있다.


<W Korea> 몇 시간 뒤면 멕시코행 비행기에 몸을 싣죠?
윈터 네. 올해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나라 선수들을 응원하러 가요. 무려 직관입니다(웃음). 축구 경기 자체를 직관하는 것도 처음인데, 그 시작이 월드컵이라니 진짜 영광이죠. 원래는 집에서 치킨을 시켜놓고 TV로만 봤는데 말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볼 영화는 찜해뒀어요?
아직요. 이제 집에 가자마자 무한 다운로드받아야 해요. 원래는 영화 <마이클>을 아껴뒀다가 비행기에서 보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최근 영화관에서 봐버렸거든요. 음… 이번에는 그냥 닌텐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젤다의 전설>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오늘 화보 촬영에 기대가 많았다 들었어요. 이런 시안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어요?
보통 화보는 하나의 큰 무드가 있고, 그 틀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게 매 컷을 찍잖아요. 그런데 착장 하나하나 아예 다른 사람인 것처럼, 완전히 다른 나를 보여줘도 흥미로울 것 같았어요. 마침 오늘 촬영이 딱 그랬고요.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만약 에디터가 돼서 직접 화보를 기획해본다면 어떨까요. 해보고 싶은 콘셉트가 있어요?
에스파는 미래적인 느낌이 강한 팀이잖아요. 어딘가 사이버틱하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과거로 가보고 싶어요. 언제적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어느 시대에 갖다 놔도 어울리는 느낌으로요.


음악만큼이나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편인가요?
그럼요. 저는 에스파가 ‘보이는 음악’을 하는 그룹이라고 생각해요. 노래뿐 아니라 비주얼 역시 무대에 포함된다고 보고요. 최근 곡인 ‘Lemonade’를 예로 들면, 결국 그 노래를 표현하는 우리가 곧 ‘Lemonade’의 정체성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음악만큼 비주얼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편이에요.
평소 시안을 폴더별로 정리해둔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들이 있어요?
와, 진짜 많아요. 일단 폴더명을 다 이모티콘으로 해놔요. 너무 정직하게 적어두면 괜히 무조건 해야 할 것 같고… 압박감이 생기거든요(웃음). 그래서 최대한 재미있게 설정해요. ‘Rich Man 때 할까 말까 할까’, ‘다음 컴백…?’ 다 이런 식이에요. 좀 맑고 청량한 느낌의 시안들은 구름이나 클로버 이모티콘 폴더에 쏙 넣어두고요.
매거진 화보가 많이 저장되어 있을까요?
아니요, 완전히 섞여 있어요. 화보, 영화, 포스터, 그림…. 가리지 않고 심심할 때마다 일단 추가해둬요. 영화도 시각적인 자극을 확실하게 주는 작품을 좋아해요. <사랑하는 기생충>이나 <물에 빠진 나이프>가 딱 그랬는데, 특유의 분위기, 색감, 질감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최근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많이 참고해요. 캐릭터마다 개성이 분명하잖아요. 특히 <추억의 마니>를 좋아하는데, 거기 나오는 ‘사람의 색깔’이 너무 예뻐요. 왜, 사람을 보면 수채화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온색 같은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추억의 마니> 속 주인공은 몽글몽글한 동화 같고 맑은 수채화 같은 친구였어요. 그게 너무 예쁘고 순수해 보이더라고요.
윈터의 노래나 춤 실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잖아요. 그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강점이 콘셉트 소화력이라고 생각해요. 한 활동 안에서도 무대마다 스타일링이 확확 바뀌는데, 또 겹치는 느낌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계속 변화를 주는 게 사실 안전한 선택은 아니잖아요. 기꺼이 모험을 하는 쪽인가요?
성향 탓인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금방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어져요. 약간 갈대 같은 성향이 오히려 좋게 작용하는 거죠. 사실 <추억의 마니> 주인공이 쇼트커트예요. 그걸 보고 ‘Whiplash’ 활동 때 쇼트커트를 해봤죠. 물론 결과물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훨씬 센 느낌이 됐지만요.


자주 느끼지만, 예뻐 보이는 것보다 멋있어 보이는 게 더 중요한 사람 같아요.
에이, 예뻐 보이는 것도 당연히 좋죠(웃음). 그런데 제가 음악에서 ‘힘’을 받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멋진 무대나 누군가의 열정을 보고 감탄한 기억이 더 많더라고요. 저 역시 그런 에너지를 주고 싶은 마음인 거죠.
윈터의 기준에서 진짜 멋진 사람은 누구예요?
와, 너무 어렵다. 그래도 마이클 잭슨이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잖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 자체가 진짜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걸 남겼고, 아직도 그 영향 아래 우리가 살고 있고요. 지금도 뭔가를 제작할 때 마이클 잭슨이 레퍼런스로 나오는 경우가 많고요.
최근 정규 2집 <Lemonade>활동이 끝났죠. 완전히 상반된 스타일의 ‘WDA’와 ‘Lemonade’가 더블 타이틀이었어요. 개인적으론 ‘WDA’가 에스파 하면 떠오르는 쇠맛의 정수처럼 느껴져서 더 취향이었어요.
오. 저도 이어폰 끼고 들을 노래를 고르라면 ‘WDA’예요. 개인적 취향으로는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멤버 네 명의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었어요. 딱 2 대 2로.
윈터의 한 표가 궁금한데요?
저는 ‘Lemonade’ 쪽이었어요. 아무래도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잖아요. 아예 새로운 시도보다 우리가 잘하는 거, 가장 우리 같은 걸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장르적으로 보면 ‘ Whiplash’와 비슷하잖아요. 그런데 ‘Whiplash’가 차가운 실버나 날카로운 쇠 느낌이라면, ‘Lemonade’는 트로피컬인데 마냥 밝고 청량하진 않거든요. 청량함에서 톤을 살짝 다운시켰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보들보들한 핑크, 에나멜 핑크 같은 곡이에요. 되게 재미있잖아요. 무대도 한 번 보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고요.
‘Lemonade’는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통쾌하게 갈아 마시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실제 윈터는 어때요? 어려움이 닥치면 일단 부딪치는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오래 생각하고 움직이는 쪽인가요?
저는 진짜 완전 후자예요. 전혀 쿨하지 못하고요. 소심하고, 생각도 엄청 많아요.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게 바로 저예요(웃음).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오히려 외유내강에 가까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에요. 저는 혼잣말도 거의 안 하는 사람이거든요. 집에 있으면 정말 조용해요. 그런데 가끔 거울을 보면서 혼잣말할 때가 있어요. ‘민정아, 너 왜 그러냐’, ‘정신 좀 차리자’ 같이요. 일종의 채찍질인 거죠. 그래서 이런 걸 일할 때 다 푸는 것 같아요. 저도 좀 신기한 게, 일할 때만큼은 ‘그냥 하면 되지 뭐’ 하는 사람으로 변해요. 평소에는 완전 F인데, 일할 때는 T에 가까워지는 거죠.
“얻어걸리는 걸 싫어한다. 그건 내 실력이 아니니까.” 언젠가 했던 이 말도 T‘ 모드’의 윈터였을 때겠네요?
하하, 맞아요. 일할 때 대충 어설프게 이해하고 ‘네’ 하고 넘어가는 걸 잘 못하겠어요. 어떻게 보면 제 고집일 수도 있는데, 이해가 안 가면 그 자리에서 ‘한 번만 다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고 꼭 묻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그 디테일이 진짜 다르거든요. 알고 하는 것과, 얼핏 알고 하는 건. 특히 녹음할 때 그 차이가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얻어걸린 건 결국 티가 나요.
최근 대학 축제 무대가 많았죠. 퍼포머로서 또 어떤 재미가 있어요?
진짜, 진짜, 너무 부러워요! 무대 옆으로 푸드트럭도 잔뜩 있고, 사람들을 보면 ‘진짜 젊음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제 젊음도 충분히 사랑하지만, 대학 시절은 제가 경험할 수 없는 종류의 행복이잖아요. 확실히 대학 축제는 에너지부터 달라요. 보통은 관객을 신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데, 그분들은 이미 소리 지르고 뛰어놀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 제 경험상 말하자면, 다들 기본적으로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이기 때문에(웃음).
하하, 그게 너무 좋아요. 하는 사람도 신나고, 보는 사람도 신나잖아요.
무대 위 에스파 윈터가 아니라, 관중석 속 대학생 김민정을 상상해본 적도 있어요?
음… 일단 악기를 전공했을 것 같아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거든요. 오른손, 왼손 구별하는 법도 피아노 학원에서 배웠고, 한글보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먼저 알았어요. 어린 시절에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으니까, 대학생 김민정은 아마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지 않을까요.
가장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나의 모습… 와,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 무대 할 때?
에스파 윈터 말고, 김민정이요.
잠깐만… 민정이… 그냥 친구들이랑 실없이 웃고 떠들 때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가잖아요. 그러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정말 소소해져요. 맛있는 밥 먹고, TV 보다가 너무 웃겨서 뒹굴고, 강아지랑 장난치고 그래요.
예전 지젤과의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지젤은 일에 치여 스스로 딱딱해졌다고 느끼거나, 문득 ‘나도 소녀인데!’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윈터를 찾는다고 했어요.
진짜요? 감동인데요. 그런데 저 그런 면이 있긴 해요. 동심이나 낭만 같은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놀이공원도 종종 가고 그래요.
나에겐 없어서 질투 나는 타인의 모습이 있어요? 가까운 에스파 멤버들에게서 찾아볼까요?
일단 닝닝이의 쉽게 털어버리는 성격이요. 저는 뭐든 오래 곱씹는 편이거든요.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닌가? 맞는 것 같은데?’ 하면서 계속 생각해요. 그런데 닝닝이는 힘들거나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세 털어내고 막 장난을 쳐요. 딱 5분이면 그게 가능해요. 지젤 언니를 보면 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게 멋있어요. 항상 어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거든요. 반면 저는 겁이 많은 편이에요. 무서워서 해외여행도 함부로 못 가고, 일상에서 도전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좀 멀죠. 카리나 언니는 사람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에요. 그냥 밝은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에너지로 주변까지 밝게 만드는 사람이 있잖아요. 언니는 후자예요. 그런 면에서는 저와 정반대인 것 같아요. 저도 밝은 편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차분한 성격이거든요.

8월에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새롭게 월드 투어도 시작되고, 롤라팔루자 시카고 무대도 앞두고 있죠.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냥 계속해서 생각하는 건 하나예요. 무대 위에서 그 순간의 감정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는 것. 결국 공연은 소통이잖아요. 저희가 팬데믹 시기에 데뷔해서인지 아무래도 짜인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하고 콘서트조차 음악방송처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시선이 카메라에서 관객들께 맞춰지는 것 같아요.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같이 노는 거, 그 자연스러움이 가장 멋지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목표와 우선순위도 조금씩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의 윈터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무엇일까요?
요즘은 그냥 좀 더 재미있게 하려고 해요. 에스파로서도 그렇고,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이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가능한 한 이 시간을 즐기려고 해요. 이상하게 내가 잘했던 무대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영상으로는 남아있겠지만, 정작 그 순간을 떠올리면 희미해요. 아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해서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거겠죠. 그런데 정말 즐겼던 무대는 달라요. 팬분들 표정도, 그날의 하늘도, 그때 제 기분도 생생하게 다 기억나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기억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요.
올해 윈터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뭐였을까요?
일단 해보려는 자세가 생긴 거요.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못할 것 같은데?’ 하면서 겁부터 먹었어요. 완벽하지 않을 것 같으면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서웠고요. 그런데 올해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부딪쳐봤을 때, 오히려 더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일단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포기하자.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가끔 인생이 정말 짧다고 느껴져요. 지금 젊음이 너무 아까워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고, 재밌어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거라면 망설이지 말고 해보는 게 최고라고 결론 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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