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럽고도 우아하게, 구찌코어 컬렉션

신지연

‘코어’가 하나의 언어가 된 시대, 구찌만의 미학을 응축한 ‘구찌코어(GucciCore)’가 모습을 드러냈다. 뉴욕의 한복판, 도시의 심장부인 타임스스퀘어를 무대로, 소란스럽고도 우아하게 베일을 벗은 구찌코어 컬렉션.

1953년 뉴욕 맨해튼 5번가에 둥지를 튼 구찌와 뉴욕의 인연은 특별하다. 구찌는 그해 하우스 첫 해외 매장으로 뉴욕을 선택했고, 이후 70여 년에 걸쳐 이 화려한 도시와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구찌코어(GucciCore)’ 컬렉션은 단순한 쇼를 넘어 하우스의 상징적이고 대대적인 귀환이자 뉴욕에 대한 헌사를 의미한다. 브로드웨이와 7번가 교차점에 있는 타임스스퀘어. 화려한 전광판들이 반짝이고, 뮤지컬과 연극 공연장이 즐비하고, 끊임없이 오가는 인파로 가득한 이 전설적인 장소에서 하우스의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Demna)가 선보이는 첫 크루즈 컬렉션이 막을 올렸다. 쇼장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진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타임스스퀘어 전체가 구찌의 세계로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찌 오토모빌리, 팔라초 구찌 호텔, 구찌 펫, 구찌 하이 주얼리, 구찌 라이프 등 구찌 세계관을 망라한,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영상 몽타주가 거대한 디지털 스크린 위로 흘렀다. 런웨이를 위한 검은색 벽 너머로 자동차 경적과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거리를 오갔다. 현실과 연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더없이 미래적이고 장엄한 풍경에 앞으로 펼쳐질 쇼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구찌 쇼의 전경.

이번 ‘구찌코어’ 컬렉션은 다채로운 인물 군상과 그 미학을 탐구해온 뎀나의 네 번째 챕터다. 그가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후 선보인 라 파밀리아(La Famiglia), 제너레이션 구찌(Generation Gucci), 구찌 프리마베라(Gucci Primavera)에 이은 이번 구찌코어 컬렉션은 앞선 세 컬렉션을 하나의 미적 언어로 응축한 결과물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전광판을 가득 채운 라이브 영상을 배경으로 시작된 쇼.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연상시키는 올 블랙의 슬림 슈트를 입은 모델이 걸어 나오고 핀스트라이프 슈트를 입은 주식 브로커와 비즈니스맨을 떠오르게 하는 룩이 차례로 등장했다. 풍성한 시어링 코트에 슬릭한 스커트를 걸치고 무심한 듯 여유롭게 걸어 나오는 여성들, 오버사이즈 쇼퍼백과 트렌치를 입고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는 여행자들,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사교계 명사들, 당장 레이브를 할 것 같은 경쾌하고 핫한 레이버들. 마치 실제 뉴욕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런웨이 위로 옮겨놓은 듯했다. 유연하게 흐르는 소프트 테일러링 착장을 입은 남성들부터 슬라우치한 데님 차림의 스케이터들, 가운과 팬츠 슈트를 소화한 자선가에 이르기까지. 여성복과 남성복이 조화를 이루며 개성 넘치는 다채로운 인물이 교차했고, 이는 그 자체로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탄의 풍경을 완성했다.

이번 컬렉션은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유서 깊은 하우스의 빛나는 유산, 시대의 혁신가 뎀나식 실용성, 그리고 세계인이 동경하는 도시 뉴욕이다. 먼저 하우스의 유산. 1950년대부터 이어져온 구찌의 시그너처 웹 스트라이프는 반도 톱(Bandeau Top) 스타일로 재해석되었고, 아이코닉한 홀스빗 모티프는 부츠와 숄더백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한편 톰 포드가 하우스를 이끌던 시절을 회상하듯 플로럴 프린팅 가죽 코트와 몸을 타고 흐르는 슬릭한 라인의 팬츠, 시어링 디테일이 곳곳에 등장하며 더없이 관능적이면서 세련된 구찌만의 무드를 자아냈다. 두 번째는 실용성이다. 뎀나는 이번 컬렉션에서 피코트, 클래식 트렌치코트, 비즈니스 슈트, 셔츠, 펜슬스커트 등 현대인의 옷장에 존재할 법한 다양한 아이템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테크니컬 소재와 퍼를 이용한 리버서블 코트, 데님 셋업, 시어링 안감으로 마감된 코트가 대표적이다. 그간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룩을 많이 선보인 그의 행보와는 사뭇 결이 다른 선택이었다. 피날레의 과감한 드레스를 포함한 몇몇 룩을 제외하면, 실용적인 피스 위에 구찌의 미학을 정교하게 담아내는 데 집중한 듯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뉴욕이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 주제이자 하우스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는 도시. 쇼 인비테이션을 받을 때부터 뉴욕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1980년대 뉴욕에는 아이코닉한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상층부에 ‘구찌 갤러리아(Gucci Galleria)’가 존재했다. 특별 제작된 골드 키를 소지한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이 공간에 대한 오마주로, 이번 초대장은 열쇠 형태로 제작되었다. 또한 이번 컬렉션에서 ‘구찌 NY(Gucci NY)’ 캡슐 컬렉션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구찌 NY 토트백을 비롯해 슈즈, 주얼리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구성된 이번 캡슐 컬렉션을 통해 하우스가 뉴욕에 얼마나 진심 어린 애정을 쏟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매디슨 애비뉴에서 브루클린, 소호에서 할렘, 그리고 5번가에 이르기까지, 뉴욕이 품은 특별한 에너지와 스타일을 타임스스퀘어 한가운데로 불러낸 구찌. 뎀나는 이야기한다. “뉴욕다운 무언가를 선보이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이 컬렉션은 뉴욕의 길을 걷다 만날 수 있는 누군가를 상상하며 만들었어요. 저마다의 개성이 분명한 이 도시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의 말처럼 사소한 룩의 디테일부터 쇼를 둘러싼 거대한 스케일의 풍경까지 모든 것이 구찌와 뉴욕 그 자체였다. 하우스의 유산과 도시의 에너지, 그리고 뎀나의 시선이 만나 그려낸 이 대담한 귀환. 이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컴백은 없을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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