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창작자 8명

전여울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시대에 가장 안테나를 자극하는 창작자는? 어쩌면 수상하고, 전방위적이고, 무엇보다 ‘재미있는’ 걸 하는 이들이 아닐지

채범석

가구 디자이너(@beomseok_chae)

해체적 디자인, 볼트와 너트를 의도적으로 노출시켜 자아낸 날것의 느낌, 차가운 톤. 채범석이 디자인한 가구들은 어딘가 근미래에서 현시대로 불시착한 듯한 느낌이 풍긴다. ‘Post-Collapse’ 시리즈를 비롯해 SF 영화에 등장할 법한 미래적 디자인의 가구를 선보여온 그는 최근 그래픽 노블을 기반으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소개하는 브랜드 ‘Post Equipment’도 론칭했다. 가구가 중심이지만 경계 없이 활동하고 싶다 말하는 그는 자신의 작업을 ‘Functional Artowork’라 소개한다.

가구의 개념이 붕괴된 가상의 세계관을 설정해 ‘Post-Collapse’ 시리즈를 전개 중이다. 처음 이런 세계관을 떠올린 계기는 무엇이었나?
평소 <인터스텔라>, <듄>, <블레이드 러너>처럼 근미래 혹은 독자적인 세계관을 다룬 SF 영화를 여러 번 돌려볼 정도로 좋아한다. 완벽한 내러티브와 각 세계 안에서 이뤄지는 풍부한 아트 디렉팅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 <블레이드 러너>를 보던 중 주인공 집에 있는 기물이 눈에 들어왔는데, 서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지만 영화의 세계관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콘셉추얼한 사물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붕괴 후’를 뜻하는 ‘Post-Collapse’ 세계관을 설정했는데, 이 시리즈의 가구는 현재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듯하도록 디자인 됐다. 기존의 가구 개념과 형태가 붕괴된 세계관이기 때문에 형태, 레이아웃, 조립 방식이 새롭고 자유로운게 특징이다.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정은?
작업 초기의 몰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좋아하는 SF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종일 듣고 인터넷을 뒤져 근미래적 형상을 디깅하면서, 최대한 몰입한 상태에서 무형으로 산재하는 느낌을 유형으로 만들어가는 편이다.

작업의 실마리는 주로 어디서 찾나?
음악, 영화, 건축, 패션 등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음악이 나오는 공간에 어울릴 만한 형태는 무엇일까?’, ‘이 패션 브랜드의 옷을 입는 사람에겐 어떤 가구가 어울릴까?’, ‘이 평면 작업이 입체 혹은 가구로 치환되면 어떤 형태를 가질까?’란 식으로 자유롭게 연상한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밴드 실리카겔. 음악은 물론, 음악 외적 부분에도 눈길이 가는 밴드다. 혜인서와 같은 감도 높은 패션 브랜드와 교류하고 영화 음악에 도전하는가 하면 뮤직비디오 만듦새도 감각적이다. 멤버들의 활동 폭이 광범위하고 다재다능하다는 느낌이 든다.

EFG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efgmeanseggandfig)

EFG는 디렉터 김민지, 베이커이자 프롭 디자이너 장예진, 메뉴 디벨로퍼이자 프롭 디자이너 이혜원으로 구성된 크리에이티브 프로덕션이다. 음식을 매개로 VMD, 프롭 프로덕션, 케이터링, 파티 기획 등을 펼치는 이들은 지용킴, 로우 클래식, 논픽션, 부디무드라를 비롯해 지금 서울에서 가장 감도 있는 브랜드들로부터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창작자들이다.

EFG라는 네이밍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Egg and Fig’, 즉 달걀과 무화과의 줄임말이다. 무화과는 인류가 최초로 재배한 과일, 달걀은 시대와 국가를 떠나 식문화에서 빠져선 안 될 중요한 식자재라는 점에서 EFG의 모토와 교집합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최초의 장르이자 없어서는 안 되는 팀이 되고자 지은 이름이다.

‘영역의 제한 없이 아름다운 것,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다.’ EFG의 소개 문구다. EFG가 정의하는 아름다움, 세상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아름다움은 참 단순하다. 한눈에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것, 직관적인 아름다움이다. 지금 시대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안겨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늘 새로움을 잃지 않는 무언가를 선보이고자 한다.

VMD, 프롭 프로덕션, 케이터링, 파티 기획 등 영역의 제한 없이 활동하지만 주로 ‘음식’을 매개로 한 작업을 펼친다. 이유가 있나?
누군가의 앞에 음식이 놓이면 낯선 타인과도 자연스러운 대화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 다른 머터리얼이 갖지 못한 음식만의 흥미로운 지점이기 때문에 작업의 중심엔 늘 음식이 자리한다.

창작자로서 고수하는 태도나 철학이 있다면? 아류가 되지 말 것.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와일드덕 칸틴, 힐즈앤유로파, 타코스탠드, 카페 파르고를 이끄는 팀 와일드덕. 초창기부터 알고 지낸 팀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에 그치지 않고 엄청난 실행력으로 현실에 구현해낸다. 이런 팀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남다현

현대미술가(@dhnam_001)

남다현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모방’과 ‘복제’다. 2019년 룬트갤러리에서 선보인 개인전 <#21>에선 갤러리 맞은편에 자리한 세탁소를, 2020년 4호선 충무로역에 위치한 ‘오! 재미동’에서의 개인전 <#22>에선 지하철 개찰구를, 2021년 갤러리요호 <#23>에선 과거 전시장 부지에 자리했던 게스트하우스를 복제, 구현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남다현이 펼치는 기묘한 복제술은 관객을 실재와 모방, 가상과 현실의 틈새로 안내한다.

작년 9월 비주얼 아트 페스티벌 ‘웁서울 2023’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은 단연코 당신의 퍼포먼스 아트 ‘제프 쿤스 파격 세일!’이었을 거다. 당시 제프 쿤스의 대표 연작 ‘Balloon Dog’를 모방해 만든 작품을 1천원에 판매했다. 작품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Balloon Dog’는 제프 쿤스가 1995년부터 전개하고 있는 에디션 작품이다. 접시에 풍선으로 만든 강아지가 붙어 있는 형상의 도자기 작업은 한 번에 2,300개씩 총 5가지 색상의 에디션으로 생산됐다. 그리고 그 작품은 현재 2차 시장에서 개당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2,500만원 전후로 거래된다. 개인적으로 ‘Balloon Dog’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을 보면, 미술의 진정성과 그 가치의 순수함이 대량 생산과 작품의 화폐화로 흔들리는 현시대의 일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를 풍자하고자 시작한 게 ‘제프 쿤스 파격 세일!’이다. ‘Balloon Dog’를 복제해 현재 거래 가격의 99.99% 세일한 1,000원에 판매했는데, 대량 생산 과정을 강조하기 위해 전형적인 공장의 환경을 복제해 설치했고, 작가 혼자가 아닌 여러 명이 함께 작품을 생산하는 방식을 취했다. 실제 제프 쿤스의 ‘Balloon Dog’가 제작되는 방식과 개념적으로 닮도록. 재료는 은박 접시와 풍선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쪼그라드는 두 재료가 미술 시장을 풍자하는 훌륭한 상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시 판매한 남다현표 ‘Balloon Dog’의 총개수와 그로 벌어들인 금액은?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프로젝트 진행을 도와준 ‘제프 쿤스 1’, ‘제프 쿤스 2’ 역의 두 동료와 맛있는 저녁 식사 한 끼를 할 수 있었다.

‘모방’과 ‘복제’를 중심으로 작업을 펼치는 이유가 있나?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베끼는 습관이 있었다. 동물 사전 속 곤충 삽화, 세계 전도의 국기 등등. 이 행위가 시각적, 개념적으로 흥미롭다고 여긴 것 같다. 또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것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향한 집착이 고조된 요즘 복제, 모방, 뒤돌아보기가 오히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고수하는 태도나 철학이 있다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보다 ‘내가 하는 거니까 특별한 거야’라는 태도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것.

소키장

현대미술가, 타투이스트(@sokijang)

소키장의 작업엔 경계가 없다. 아티스트이자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며 회화, 조각, 드로잉 등 서로 다른 매체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작업한다. 의도적으로 신체 비율을 무시한 캐릭터 연작, 에어브러시를 활용한 자유분방한 페인팅 등에선 현실과 환상의 기묘한 경계, 그만의 장난기 어린 상상력이 엿보인다.

작년 갤러리 워터마크에서 개인전 <스키장>을 진행했다. 전시장에 가상의 스키장을 구현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캐릭터 연작을 선보였는데,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구글에 ‘소키장’을 검색하니 스키장이 연관 검색어로 나왔다. 당시 여름이었는데 ‘야간 개장한 겨울의 스키장을 떠올리며 전시를 구상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시작이었다. 솜으로 눈을 형상화하고 곳곳에 ‘눈길 조심’이란 문구를 넣어 현장감을 살려봤다. 작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 날것, 그러니까 계획되지 않은 우연인데 <스키장>으로 평소 몰두하던 날것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바밍타이거부터 아티스트 나솔, 고요손, 패션 브랜드 컨버스, 예스아이씨 등과 활발히 협업 작업을 이어왔다. 시대와 국가를 떠나 협업해보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찰리 채플린. 그의 비극인 듯 희극처럼 보이고, 희극인 듯 비극처럼 보이는 퍼포먼스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가 어릴 적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올라가 연극을 펼친 무대처럼.

창작자로서 고수하는 태도나 철학이 있다면?
편견을 버리고 본질을 볼 것. 세월을 거듭할수록 타인의 편견이 나의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소모시키는지 깨닫는 것 같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효창동의 디저트 숍 ‘브레드읍읍’, 편집매장 ‘키집’, ‘갤러리 워터마크’를 운영하는 송태용, 하영지. 공간에 본인의 삶을 녹인 사람들이랄까. 무조건적인 주목보다 본인들의 결과물만으로 주목받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선보일 프로젝트를 소개한다면?
양초로 작업하는 아티스트 더스튼룸과 2월 대전에서, 4월 대만의 리버아트 갤러리에서 전시를 올릴 예정이다. 캔버스 안에 둘의 감정을 담아보기로 했다. 마치 어릴 적 소꿉놀이처럼.

김한표

3D 아티스트, 브랜드 ‘Test Artifact’ 운영(@guff_han)

‘내가 그리는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고 싶다’는 욕망은 김한표를 3D 아티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올해로 21세, 2021년 고등학교 졸업 작품으로 제작한 3D 단편 애니메이션 부터 지난해 코엑스 파르나스 타워, 인천공항 등의 대형 사이니지를 통해 전시된 미디어아트 ‘Seoul 3.0’, 기획부터 제작까지 홀로 총괄하며 전개 중인 브랜드 ‘Test Artifact’ 등 경계 없는 그의 모든 작업은 ‘퓨처리즘’으로 수렴한다. 자신을 ‘퓨처리즘 중독자’라 말하는 김한표는 지금 가장 미래적이고도 실험적인 디자인을 제시한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서 ‘Futurism Addict’란 문구가 눈에 띈다. 어떤 의미가 담겼나?
‘퓨처리즘 중독자’. 요즘의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문구다. 오래전부터 퓨처리즘 디자인에 푹 빠져 있는데, 모든 작업마다 어떻게든 미래적 바이브를 가져가려는 모습이 중독자에 가깝지 않나 싶어 생각한 문구다.

2021년 발표한 3D 단편 애니메이션이자 고등학교 졸업 작품<Quarantine, 격리>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퓨처리즘을 추구하는 동시에 미래 사회에 막연한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는 그 두려움을 담은 경고장 같은 작품이다. 기술 발달에 의한 빅브라더 사회를 경고하는 주제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낮에는 수험 공부를, 밤에는 작품 제작을 병행하며 시나리오부터 시작해 9분가량의 애니메이션을 홀로 제작했다. 작품 공개 이후 NFT로 발행하기도 했는데 ‘선진 기술을 경고하는 작품이 가장 최신의 선진 기술 위에 영원히 남게 된다면?’이라는 발상에서 판매 목적 없이 유쾌하게 접근했다. 지금 보면 아쉬운 퀄리티의 작품이지만, 담긴 생각만큼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브랜드 ‘Test Artifact’도 운영 중이다. 작년 디지털 디바이스 액세서리 ‘ERA’ 컬렉션을 출시했는데 여기서도 퓨처리즘의 요소가 돋보인다.
‘미래에서 온 유물’을 콘셉트로 제작한 브랜드 첫 컬렉션이다. 처음 컬렉션을 구상할 당시 특이한 형태의 에어팟 맥스 케이스가 해외 개인 작가들의 작품 속에선 등장하는데, 정작 브랜드가 나서서 제대로 상품으로 풀어본 케이스는 없었다.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고 스케치와 모델링 후 3D 프린팅을 통해 프로토타입 제작, 최종 발주의 프로세스로 진행했다.

당신의 취향에 영향을 끼친 것을 나열해본다면?
어린이 과학 잡지, 공상과학 영화, 판타지 소설. 동심 가득한 아이템들이다. 어릴 적부터 과학 선생님이신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집에 마련된 실험실에서 특이한 약물을 섞으며 놀기도 했고 앞서 말한 책들을 종일 붙들고 지냈다. 지금도 흥미로운 오컬트 뉴스가 들려오면 한두시간이고 해외 포럼을 들여다보곤 한다.

작업의 실마리는 주로 어디서 찾나?
전적으로 아카이빙에 의존한다. 학창시절부터 습관처럼 틈틈이 아카이빙을 해둬서 지금까지 모인 작품만 수천 점이다. 70~80년대 작품부터 가장 최신 트렌드까지, 비주얼보다는 아이디어를 살핀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이래라(@yiraera_). 서브컬처와 밈 문화를 기반으로 “엄마가 싫어하는” 공간과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인물이다.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여러 전시와 캠페인을 선보이는데, 정말 전 세계 부모님들이 기겁할 듯한 아이디어들뿐이다. 더욱 정제되고 규모가 커진다면 어떤 무브먼트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지금 당신의 흥미를 가장 자극하는 현상은?
국내 언더그라운드 문화예술 신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패션부터 음악까지 국내 내수 시장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들이 보인다. 질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이미 뛰어넘었다고 보는데, 적은 수로 임팩트를 끌어내려면 아직은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나 또한 그 흐름을 먼저 이끌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도 하다.

다주로

디자인 스튜디오(@dajurostudio)

‘개인적인 기억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내러티브를 가진 오브제, 가구, 공간을 디자인합니다.’ ‘다주로’는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정담우, 이준형이 설립한 다주로는 신화, 종교, 역사적 건축 등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내재한 흐릿한 잔상을 모티프로 오브제, 가구, 공간, 전시 디자인 프로젝트를 펼친다. 2021년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현장 프로젝트 ‘의심스러운 발자국’에 참가하고, 2022년 실린더에서 전을 개최하며 올해 브랜드 ‘모닝스타’를 론칭하는 등 지금 가장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항상 ‘어떠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인상을 주고자 한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신화나 종교, 역사적 건축양식등을 디자인 모티프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이 결국 사람들 각자의 기억과 반응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20년 총 9점의 가구로 구성된 ‘Stupa’ 시리즈를 전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당 시리즈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첫 계기는 집에 있는 수많은 물건 중 역할을 다했지만 버려지지 않는 물건들에 대한 고민이었다. ‘분명 죽어 있지만 혹시 살아 있을지도 몰라’ 싶은 상태의 무언가가 많다고 느껴졌다.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산 엽서, 콘서트 티켓, 옷을 사면 딸려오는 스티커, 더는 쓰지 않은 이어폰 같은 것들. 이런 버리기 힘든 것을 담는 가구를 구상하다 보니 ‘반쯤 열린 관’이란 콘셉트가 떠올랐고, 자연스레 관과 비슷한 성격의 테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Stupa Table’엔 독특한 기능이 있다. 우체통의 수납 방식을 적용해 무언가를 담을 순 있지만 다시 꺼낼 수 없도록 제작했는데, 이런 기능과 어울리도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무덤인 스투파, 피라미드 같은 형태로 상판을 디자인했고 이를 지탱하는 다리 역시 어딘가 디스토피아적 분위기가 나도록 송전탑과 같은 형태로 완성됐다.

최근 브랜드 ‘모닝스타’도 론칭했다.
모험가의 상점을 콘셉트로 만든 일종의 가구 상점이다. 세계 각지를 모험하며 마주한 이들에게 받은 전리품 같은 물건을 팔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최대한 경계 없이 다양한 문화, 종교에서 영감 받은 작업물을 선보이고 싶다. 모닝스타란 이름은 중세시대 무기 철퇴에서 가져왔는데, 섬뜩한 기능에 반해 ‘모닝’과 ‘스타’라는 희망찬 단어로 이뤄진 것이 재미있어서 정하게 됐다. 지금 ‘한 사람 정도는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 중이다.

다주로와 가장 비슷한 결을 가졌다 생각하는 건축가는?
벨기에 출신의 건축가 올리비에 구탈스. 얇은 선적인 부재들로 공간을 구획하는 방식이나 자유로운 회화 작업을 공간에 적용하는 방식이 너무 멋지다.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런던 기반의 가구 디자이너 리오 코바야시. 키치한 색감이나 화려한 회화와 그래픽을 과감하게 목공과 접목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작업 중 휘갈긴 일본어를 새긴 책장이나 사람 형태의 어처구니 없는 선반 같은 것도 좋아한다.

서수현

가구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suhyunarchive)

어쩌면 요즘 시대 창작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미덕은 ‘전방위성’일 거다. 서로 다른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능수능란하게 작업물을 완성할 것. 이 점에서 서수현은 가장 ‘오늘’에 가까운 창작자다. 텍스타일 아트를 기반으로 과감한 색과 패턴의 아트 퍼니처로 일찍이 이름을 알렸고 세븐틴, 에스파, 라이즈 등 K팝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아트 디렉팅 그룹 ‘수우’를 전개하며 패션 브랜드 이스트쿤스트와 협업하는 그는 한마디로 지금 가장 ‘잘나가는’ 창작자 중 하나다.

2020년 대학 졸업 작품이자 아트 퍼니처 시리즈 ‘Warm Worm Wriggle’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해당 시리즈의 출발점은 무엇이었나?
‘동심’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평소에도 추억팔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졸전 준비 당시 우연히 어린 시절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 동심으로 돌아가 작업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Warm Warm Wriggle’은 물감을 흩뿌린 듯한 패턴의 소파부터 복슬복슬한 퍼 소재 러그, 자석 칠판을 모티프로 한 거울 등으로 다양한데, 모두 색과 패턴이 변칙적이고 과감하다. 동심의 눈으로 재료를 바라보다 보니 아이들의 색칠놀이처럼 뻔하지 않고 계획적이지 않은 표현이 탄생한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가구와 패션 사이의 관계성에 주목하는 듯하다.
어떻게든 원단에 머리를 넣어 입을 수 있으면 옷이 성립되는 패션과 달리 가구는 내구성이 중요해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제약이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예전부터 가구가 몸이 되고, 그 위에 옷을 입힌다고 생각하며 자유롭게 작업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날이 추우면 의자도 패딩을 입는다’는 상상에서 출발한 ‘Plumpy’ 시리즈도 그 연장선에서 탄생한 작업이다. 최근엔 패션 브랜드 이스트쿤스트의 2023 S/S 시즌에 참여하기도 했다. 패션 관련 작업은 흥미로워서 앞으로도 계속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다.

본인의 작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닷속 생물을 모티프로 작업한 텍스타일 시리즈 ‘틈’. 어느 대지에도 속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고찰하는 것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아트 퍼니처 작업도 하지만 아트 디렉팅 그룹 ‘수우’도 전개 중이다. 그래서 늘 작업자와 디렉터, 가구와 패션, 공예와 디자인 등 명확히 하나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모호함이 나를 괴롭혀온 것 같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여러 분야가 중첩된 사이의 ‘틈’같이 느껴졌달까. 이런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피어나는 재미난 우연을 기대하자는 마음에서 ‘틈’ 시리즈를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틈’ 시리즈에선 마치 좁은 틈에서 피어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상징이 가득하다. 나와 같이 삶의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작업의 실마리는 주로 어디서 찾나?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문득 ‘엇’ 하고 느껴지는 순간은 반드시 사진이나 메모로 기록해둔다. 길에서 만난 들꽃의 모양, 주차금지 표지판 위 낙서, 눈으로 뒤덮인 나무, 멋쟁이 할아버지의 스웨터 등등.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패션 브랜드 초포바 로위나. 매 시즌 피스 하나하나가 너무 위트 있다. 업사이클링 소재를 활용하고 전통 공예 기술을 접목해서 브랜드를 전개하면서 비주얼을 잘 뽑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영리하게 브랜드 방향성을 잘 잡은 것 같다.

김진

제품 디자이너(@yellowhippies.kr)

몫을 다한 물건들이 김진의 손을 거쳐 아트워크로 재탄생한다. 그 물건들의 환생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유머 한 스푼.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코로나19 자가 진단 키트로 핑거보드를 만들거나 버려진 의자다리 26개를 수거해 스툴 완성하기. 그가 운영하는 ‘옐로우 히피스’는 지금 단연 가장 수상하고도 흥미로운 디자인 오브제를 만드는 스튜디오다.

‘옐로우 히피스’의 홈페이지에 ‘My Sense of Humor Might Hurt Your Feelings’란 문구가 있다. 어떤 의미가 담겼나?
작업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싶은 마음에 새긴 문구다. 사실 내 작업물에 타인이 보기에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주제나 비주얼이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미 말했다^^’라는 식으로 재미있게 경고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면 내 작업에 대한 대의적 기대가 낮아지니 작업하기에 편하다.

주로 주변 사물을 리사이클링해 제품을 만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재활용 의미도 있지만 사실 단순 취향에 더 가깝다. 기존의 익숙한 사물이나 환경의 다른 의미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즐겁다. 그리고 제한된 재료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재미있고. 3D 프린터로 뭐든 뚝딱 구현해내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한편으론 ‘뭐든지 가능하면 무엇이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도 든다. 멀티버스 설정이 생긴 후 마블 영화에 흥미가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창작자로서 고수하는 태도나 철학이 있다면?
작업을 순수하게 즐기고 스스로 떳떳한 만듦새를 유지하고 싶다. 작업 대부분 손으로 하다 보니 마감이나 작업 방식에 약간 ‘러프’한 느낌이 있다. 핑계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부분을 좋아하고 추구한다. 작업물의 기본적인 바이브는 ‘홈메이드 느낌’이었으면 한다. 요즘같이 제품의 생산력이나 마감이 좋은 시대에 저항하고 싶은 묘한 반골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완벽한 모습보다 약간의 ‘어거지’와 과정에서의 고민이 엿보였으면 싶다. 어차피 나는 기계가 아니니까. 그냥 나답게 하자는 게 고집이라면 고집이다.

당신의 취향에 영향을 끼친 것을 나열해본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BBC 다큐, 퍼렐 윌리엄스, 칼 세이건, 알렉산더 맥퀸, 살바도르 달리, 조 로건, 데이브 샤펠, 오지 오스본, 스티브 오, 라이언 맥긴리, 릭 루빈.

요즘 가장 재미있는 걸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앤드루 슐츠.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언어를 소재로 이야기를 빌드업하고 이들을 직관적으로 연결하고 막판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넣는 게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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