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선 유명 설치 작품 속에서 수업을 한다고?

전종현

맨해튼 학교에 설치된 제임스 터렐의 작품, ‘스카이스페이스’.

“제 작품에는 대상도, 이미지도, 초점도 없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한 예술가가 묻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보고 있는 거예요. 저는 말 한마디 없이 사유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듭니다.” 설명만 들으면 뭔가 사기꾼 느낌을 진하게 풍기지만, 실제 작품을 접하면 그 어떤 백 마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동으로 유명한 그의 이름은 바로 제임스 터렐입니다. 우리에게는 ‘빛의 마법사’, ‘빛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독보적인 설치예술가인데요. 그는 공간에서 빛이 어떻게 작용하고, 관객의 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밀하게 관찰한 후,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빛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도와요. 터렐의 작품을 접하는 관객은 초현실적인 지각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까지 끝없이 들어가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죠.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명상 수련을 한달까요. 각자가 지닌 내면의 빛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게 터렐이 작품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약간의 종교적인 냄새를 맡으셨다면, 당신은 ‘개코’입니다. 터렐은 미국에 있는 기독교 종파인 퀘이커 신도예요. 퀘이커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평등, 정의, 평화와 같은 선(善)을 이루려고 노력하죠. 이런 터렐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사립학교 ‘프렌즈 세미너리 스쿨’에 대표작 중 하나인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를 설치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어요. ‘스카이스페이스’는 방처럼 생긴 평범한 장소 천정에 정사각형이나 원 모양의 판을 뚫고 외부의 자연광과 하늘의 변화를 내부의 인조광과 대비해서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장소 특정적이면서 매번 바뀌는 모습 때문에 한 번 생기면 예술 관광 명소가 되죠. 현재 전 세계 90여 곳에 설치됐어요.

터렐의 작품은 엄청나게 비싸요. 기본 설치비만 수십억 원이 들거든요. 근데 프렌즈 세미너리 스쿨은 미국 학제로 K-12랍니다. 유치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전 과정을 제공하는 중등교육기관이죠. 알고 보니 터렐이 뉴욕에 살 때 이 학교 근처에서 계속 예배를 보면서 교장 선생님과 오랜 친분을 쌓았다고 해요. 프렌즈 세미너리 스쿨 또한 퀘어커 계열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문 사립학교이기 때문에(한 해 등록금이 약 6만 달러라고…!) 발전 기금을 외부에서 엄청 당겨왔답니다. 터렐은 다른 작품과 멘토링 시간을 기부하면서까지 모금을 도왔고요. 그래서 이제 학생들에겐 ‘스카이스페이스’에서 미술 수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특권이 생겼어요. 터렐의 작품 속에서 공부하면 없던 창의력도 튀어나올 것 같은데요. ‘멘털 스파’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랍니다.

더불어 뉴욕에 있는 아트 러버들까지 흥분한 이유는 이곳이 뉴욕에 생기는 두 번째 ‘스카이스페이스’이기 때문이에요. 원래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PS1에만 있었답니다. 한 도시에 두 개가 존재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인데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제주도 우리들리조트와 원주 뮤지엄 산에 있거든요. 게다가 익스클루시브하게 운영하는 곳도 많다 보니, 일반 대중이 편하게 접근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아요. MoMA PS1의 경우, 소정의 입장료를 받는데 그것은 아주 사소한 문제고 가장 골칫덩이는 바로 예약이거든요. 시간마다 인원 제한이 있어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티켓팅이 일상이었는데, 프렌즈 세미너리 스쿨에서 매주 금요일에 ‘스카이스페이스’를 외부에 공개한다고 하니 갑자기 기회가 확 늘어난 거죠. 게다가 학교의 아량으로 무료(!)랍니다. 박터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죠.

터렐은 한국과 인연이 깊기로 유명해요. 부인도 한국계이고요. 예전에 미군으로 복무할 때 다쳐서 서울의 군사병원에서 치료받은 경험도 있답니다. 그곳이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됐어요. 신안에 있는 자은도에 작품을 설치할 계획도 가지고 있고요. 이참에 서울 어딘가에 ‘스카이스페이스’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멘털 디톡스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대인데요. 물론 그 전에 건설 자금부터 있어야 하겠지만요!

사진
Courtesy Friends Semin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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