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주목받는 예술가, 이종원 작가와의 인터뷰

전종현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와 로에베가 콕 찍은 이종원 작가를 소개합니다.

요즘 자주 들려오는 말이죠. 공예는 럭셔리의 미래다! 이를 실천하는 브랜드가 로에베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은 2016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을 제정하고 매년 진취적이고 재능있는 작가들을 발굴 중이에요. 올해 로에베 재단 공예상의 최종 후보 30명에는 한국 작가 5명이 포함됐어요. 124개 국가, 총 3900여 명 중 뽑힌 보석들입니다.

이중 필자의 레이더에 포착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이종원(Weonrhee) 작가입니다. 작년 밀라노국제가구박람회에서 진행하는 신인 가구 디자이너의 등용문인 ‘살로네사텔리테(SaloneSatellite)’에서 최종 입상하는 걸 현장에서 봤거든요. “Weonrhee, South Korea”라는 발표에 남몰래 박수를 보냈죠. 지난 가을에는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일본의 유서 깊은 공예 레지던시인 ‘마루누마 예술의숲’에 초대 받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로에베라니! 올해로 29살인 그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인터뷰를 청해 보았습니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든 것을 축하합니다. 작년 살로네사텔리테, 마루누마 예술의숲 레지던시에 이어 해외에서의 성과가 1년 사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비결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작가라고 불리기엔 쑥스러워서 저도 얼떨떨한 상태인데요. 스스로 어떤 것이 좋고 싫은지, 좋은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생각해 보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어요. 여기서부터 나오는 미감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를 작업 전 과정에 적용하는 시도가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데…정말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웃음)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2023

다른 분이 쓰지 않는 특별한 소재를 재료로 사용한다고 들었어요.

2021년 카페 철거 현장에서 우연히 버려진 ‘패럴램(Parallam)’을 발견했어요. 패럴램은 PSL라는 공학목재의 브랜드명이에요. 목재로 합판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준 미달인 폐기물이 생기는데 이를 잘게 자른 후 압축한 부산물이죠. 강도가 매우 높아서 철근, 콘크리트 대신 건축물의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체로 쓰입니다. 길쭉한 나뭇조각이 평행하게 반복되는 강렬한 패턴과 러프한 질감, 외부 환경에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한 성질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실제 패럴램으로 가구를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서 맨바닥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Dolmen’, 2022

작품명이 모두 ‘원시적 구조들(Primitive Structures)인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적부터 미시적인 자연에 빠져들곤 했어요. 공룡, 화석부터 돌의 무늬, 사슴벌레, 곤충의 눈, 잎맥 등이요. 좀 더 들여다봐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디테일이죠. 그래서 평소 작업할 때도 소재에 무척 민감한데요. 패럴램을 만나면서 소재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 강렬하고 러프한 질감이 인공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한다는 점에 주목했죠. 건축 구조체로 쓰이는 PSL의 특성을 고려해 원시적인 구조물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는데요.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바로 고인돌이었어요. 전국 곳곳을 답사하며 고인돌을 관찰하니까 기둥을 이루는 거석이 일종의 다면체처럼 조형성을 가진 존재로 다가오더라고요. 고인돌은 사실 인류 최초의 구조체 중 하나거든요. 이런 맥락을 결합해서 가구로 구현해 보고 싶었어요. 밀라노에서 발표한 작업은 고인돌에서 느낀 다면체적인 특성을 강조해 ‘무기물(Inorganic)’이라고 명명했어요. 현재 영국의 민트 갤러리와 계약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판매 중이에요. 로에베에 출품한 작품은 작년 9월에 작업했는데요. 비대칭, 기울어짐 등 유기체의 특성에 주목하다 버섯을 떠올리며 ‘식물(Botanical)’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트윈 테이블의 상판이 이리저리 겹치며 깊이감을 형성하는 덕분에 패턴도 다양해지고, 밝기 차이도 생겨서 시각적인 지루함을 없애는 점이 마음에 쏙 들어요.

‘Primitive Structures – Inorganic’, 2023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2023

재료의 텍스처가 확실히 강렬하네요. 특히 연둣빛이 살짝 도는 모습은 마블 파우더를 뿌린 느낌이에요.

고인돌을 답사하다 발견한 이끼 색이에요. 살아있는 이끼는 초록색인데, 이미 죽은 이끼가 파스텔톤의 연둣빛을 띠더군요. 보자마자 미묘한 아름다움을 느꼈어요. 재료의 텍스처가 강해서 색으로 정돈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덕분에 대비 효과가 생겨서 보는 흥미도 배가됐어요. 실제 작업을 접하는 분들은 나무가 아니라 대리석,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떠올리시더군요. 바로 얼마 전에 완성한 최신작인 ‘유적지’(Historical Site)는 발굴 중인 유적지의 층위와 도식에서 영감 받았는데요. PSL의 특수한 결을 강조하면서, 그린 대신 브라운으로 염색해서 분위기를 차분하게 누르니 또 다른 멋이 나더라고요. 사실 패럴램은 전혀 다른 세 가지 패턴을 지녀서 그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창작자의 도전 의식을 북돋는 것 같아요.

‘Primitive Structures – Botanical’, 2023
‘Primitive Structures – Historical Site’, 2023

지난 1년 꼬박 작업하면서 창작자로서 어떻게 성장하셨나요?

사실 제가 모든 걸 제어하려는 성격이라서 힘든 점이 많았어요. 작업하다 보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걸 말끔히 막겠다고 2mm 크기의 나뭇조각으로 다 메우거든요. 심신을 혹사하며 작업했지만, 덕분에 인간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성격과 리듬이 나빠지니까 이를 만회하려고 분리수거, 설거지, 인사하기 등 사소한 것부터 챙겼거든요. ‘아, 내가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고 있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평안해져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명상 효과도 있고요. (웃음) 앞으로 최대한 소소한 즐거움으로 오래오래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하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제가 목조형가구학과를 나와서 그런지, 가구 조형은 디자인의 영역으로 다가와요. 디자인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적의 해답을 찾는 행위입니다. 저는 그 목표 아래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미감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요. 산업적 측면에서 대량생산도 염두에 두지만, 개인적인 감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작가적인 면모가 공존하죠. 더구나 PSL은 폐자재를 활용할 수 있어서 지속가능성과 맞닿아 있어요. 이런 시대적 의제를 다루면서 공예와 디자인 사이를 현명하게 넘나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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