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세계에 대한 항거, 24FW 릭 오웬스 컬렉션

명수진

Rick Owens 2024 F/W 컬렉션

릭 오웬스는 100명의 게스트를 자신의 파트너인 미셀 라미(Michèle Lamy)와 함께 살고 있는 파리 집으로 초대했다. 파리의 팔레 부르봉 광장(Place du Palais Bourbon)에 있는 3층짜리 타운하우스는 릭 오웬스가 ‘콘크리트 궁전’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차가운 질감의 콘크리트 바닥에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가 놓여있다.

데뷔 30년을 맞는 62세의 릭 오웬스는 부자연스러운 비율로 다시 한번 인체의 실루엣을 새롭게 정의했다. 바라클라바로 얼굴을 감싸고 패딩 재킷의 어깨는 하늘로 높이 치솟았으며 대형 도넛같이 둥근 상의는 극단적으로 팽창되어 있다. 특히 걸을 때마다 탱글거리고 서로 부딪쳐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는 풍선 모양의 러버 부츠가 기이한 느낌을 더했다. 이는 런던 기반 디자이너 ‘스트래이투케이(Straytukay)’와 콜라보를 통해 완성한 것. 이상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퍼를 장식한 카키 컬러 털북숭이 점프슈트는 스타워즈의 츄바카를 떠오르게 하고, 니트 상의는 거의 벗겨져 하의로 흘러내리고, 블랙 니트에 새겨진 ‘포터빌(Porterville)’이라는 단어는 기괴하게 흘러내리는 듯한 형상이다. 포터빌은 릭 오웬스가 태어난 남부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로 릭 오웬스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세계를 상징하는 것.

이처럼 모든 기이함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릭 오웬스의 실망을 반영한 것이다. ‘현실에 대한 좌절감. 더 마법 같은 세상을 바라는 갈망’이라는 설명이다. 릭 오웬스는 쇼 노트를 통해 이 모든 그로테스크한 컬렉션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가장 실망스러운 인간의 행위에 대해 거의 울부짖는 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고백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물론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에 대해 화두를 던졌다. 모델의 피날레를 따라 무심코 걷는 모습으로 마치 부조리한 세상에 항거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릭 오웬스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영상
Courtesy of Rick Ow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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