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가 2023 S/S 컬렉션
발렌시아가 컬렉션은 독특한 초대장으로부터 시작됐다. 동전, 지폐, 카드, 신분증, 영수증, 고양이 사진 따위가 담긴, ‘나탈리아 앤튠스’라는 정체 모를 인물의 낡은 지갑을 인비테이션으로 보낸 것! 지갑 뒷면에는 패션쇼 정보가 간단히 적혀있었는데 타이틀은 ‘진흙탕 쇼(The Mud Show)’라고 쓰여 있었다. 이후 발렌시아가 소셜미디어에는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찾으시면 10월 2일, 11시 30분에 반납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올렸다.
발렌시아가 컬렉션이 열린 파리 외곽 빌팽트 지역의 박람회장(Parc des Exposition)에 마련된 런웨이는 수 톤은 족히 넘을법한 양의 진흙으로 뒤덮였다.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눈발이 휘날렸던 지난 F/W 시즌의 연장선상이라며 눈이 녹으면 진흙이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흡사 달착륙을 연상케 하는 어둡고 진흙투성이 무대는 스페인의 설치 예술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가 조성했고, 발렌시아가와 꾸준히 작업해온 작가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가 조향한 그을음과 유칼립투스 향을 섞은 메케한 향기를 뿌렸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는 진흙 무대는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며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매일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금만 다르면 세상은 가차 없이 당신의 얼굴을 가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프닝은 위풍당당한 카니에 웨스트가 열었다. 멀티 포켓 택티컬 재킷과 가죽 바이커 팬츠를 입고 야구모자와 발렌시아가 로고를 새긴 마우스피스까지 낀 모습이었다. 연이어 나온 총 75명의 모델은 아이를 안거나 멍투성이 얼굴을 하고 진흙 길을 걷느라 엉망진창이었고, 얼룩지고 낙서가 가득한 데님 팬츠, 온통 헤진 스웨트셔츠, 빌려 입은 것 같은 오버사이즈 재킷 등 도통 성한 옷도 없었다. 포테이토 칩 봉지를 거의 그대로 따라 만든 레이 칩 가방, 불량한 테디베어 인형 가방, 손부터 어깨까지 넣는 장갑 형태의 글러브 백, 청키한 플랫폼 클로그 등 위트로 가득한 액세서리가 눈길을 끌었다. 발렌시아가의 아이코닉한 르카골 백의 조각을 업사이클 방식으로 이어 붙여 만든 롱 가죽 드레스를 마지막으로 고난과 역경의 퍼포먼스 같은 컬렉션이 끝났다.
이번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통해 뎀나 바잘리아는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과 애정’을 표현했다고 한다. 또한 날로 증가하는 불평등, 파시즘의 귀환, 핵전쟁의 위협, 자연재해 등의 주제의식을 컬렉션에 녹여냈다. ‘쿨함’을 정의하는 뎀나 바잘리아의 대담성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고, 지난 시즌에 쓰레기봉투에서 영감을 받아 선보였던 ‘트래시 백’처럼 많은 아이템이 화제 속에 판매될 것이 분명해보였다.
- 프리랜스 에디터
- 명수진
- 영상
- Courtesy of Balencia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