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소코도모, 김뜻돌, 전성배, 서리 인터뷰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We are Young

2021-12-26T23:04:30+00:002021.12.27|FEATURE, 피플|

이것저것 눈치보지 않고 ‘내’ 음악을 한다. 여기 서로 다른 장르와 색깔의 네 뮤지션 소코도모, 김뜻돌, 전성배, 서리가 그렇다. 오롯이 자신에게서 출발해 멀리 세상에 울리는 이들의 음악에선 영원한 ‘젊음’의 기세가 뚜렷하다. 

 

여러 자아들의 총체 
소코도모 2000년생, @sokodomo 

<고등래퍼>에 이어 <쇼미더머니>에 뛰어든 10대와 20대는 ‘이곳은 어른들의 싸움’이라 말하는 듯한 냉기 속에서 금세 불구덩이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소코도모는 2019년 <고등래퍼 3>에서 양승호라는 본명으로 인상적인 첫 등장을 보여준 후, 몇 개의 싱글과 미니앨범 두 장을 내고 2021년 <쇼미더머니 10>에 도전했다. 세미파이널에서 탈락했지만, 자이언티와 원슈타인이 피처링한 ‘회전목마’는 수년 만에 주요 차트 1위를 달성한 <쇼미더머니>의 음원이 됐다. 독특한 사운드와 태도 때문에 이방인처럼 보이는 그에게는 감정과 상황에 따른 여러 자아가 각각의 이름으로 존재한다. 

구조적인 실루엣의 바이커 재킷과 노란색 커스텀 바이커 팬츠, 장갑은 모두 키미제이 제품.

큼직한 검정 재킷, 안에 입은 컷아웃 디테일 데님 베스트와 팬츠는 모두 릭 오웬스 제품.

비대칭 검정 톱과 통이 넓은 슬릿 팬츠, 검정 마스크는 모두 릭 오웬스 제품.

<W Korea>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이런 문구를 써놓았다. ‘Left Brain of @ GimSookHee8000.’ 김숙희는 누구인가?

소코도모 나는 음악 작업을 할 때면 늘 긴장하는 편인데, 영상 작업을 할 때는 소파에 누워 뒹구는 것처럼 편안하다. 두 상태가 꽤 다르기 때문에 영상물을 만지고 있을 때의 내 자아를 표현할 이름이 필요했다. 그 자아가 바로 ‘김숙희’다. ‘Go Home’이라는 싱글에 피처링 아티스트로 등장한 이름 ‘라파마사카(LáPamasaka)’ 역시 내 또 다른 자아다. 라파마사카는 온몸이 불덩이인, 내 분노를 표현하는 자아다. 그 자아가 위험하고 불안정한 감성의 영역이라면, 김숙희는 24시간 동안 기계처럼 영상 편집만 하며 살 수 있는 자아로 내 이성을 담당한다. 그리고 여자다.

당신의 여러 자아 중 하나에 ‘여자’라는 특징을 부여한 이유는 뭔가?

그동안 나의 메타버스에는 순 남자들뿐이었다. 그래서 재미가 없고, 좀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외계인 소코도모를 비롯해 여러 자아와 함께 모든 걸 공유할 인물을 떠올려보니 자연히 내 이상형 비슷한 존재가 떠올랐다. ‘마음과 정신 상태가 편안한, 그러면서 자기 할 일 잘하는 사람.’ 김숙희는 이상한 남자들밖에 없는 메타버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다. 그래서 기계 모델명처럼 숫자 ‘8000’을 붙였다.

이름까지 붙인 여러 자아를 콘셉트에 따라 의도적으로 오가는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모드가 전환되는 식인가?

인위적인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오가기 때문에 내 작업뿐 아니라 남의 작업도 비교적 잘할 수 있는 것 같다. 최근 씨엘과 NCT 127의 곡 가사를 썼다. 씨엘 누나의 데모 곡을 녹음할 때는 내가 씨엘이라는 여자가 되어 랩하고, NCT 127의 가사를 쓸 때는 내가 한 멤버라고 여기면서 쓰는 식이다.

대화 중인 지금 당신은 어떤 자아인가?

자연인 양승호인데, 어제 밤을 새워 약간 넋이 나간 상태의 양승호다.

SNS에 포스팅하는 간단한 콘텐츠 편집을 비롯해 뮤직비디오의 모션그래픽 작업도 곧잘 직접 하는 거로 안다. 소코도모에게 음악과 영상은 뗄 수 없는 하나인가?

IT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영상을 먼저 접했다. 당시 들어갈 수 있는 동아리가 독서와 음악 동아리뿐이었다. ‘음, 독서는 안 될 말이지’ 싶어 음악 동아리에 들어가 그때부터 음악을 시작했다. 두 가지를 병행하면 이도 저도 아닐 것 같아서 3개월은 영상에, 9개월은 음악에 집중하면서 익혔다. 뮤직비디오나 앨범 디자인 작업을 누가 하든, 어떤 결과물의 가장 코어와 맨 마지막 단계의 레이어에는 내 손이 닿는다. 내가 추구하는 디테일이 있는데, 그게 없으면 나답게 표현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쇼미더머니 10>에는 어떤 마음으로 출연했나?

2021년 5월에 중요한 앨범을 냈다. 앨범명은 <…—…>. 모스 부호로 ‘S.O.S.’라는 뜻이다. 왜 중요한 앨범이냐면, 나의 100퍼센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래퍼 3> 이후 선보인 음악들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는 ‘몰라, 나는 그냥 이게 좋아’ 싶으면 그대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로 채웠다. 온전히 나를 믿고 만든 이 앨범에 관해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단단한 상태로 <쇼미더머니>에 나갔다.

우승을 기대하진 않았나?

기대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우승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무대를 선보이고, 곡도 잘 되고, 퇴장도 멋지게 하고, 그 여러 가지를 다 잡고 싶었다.

결과에 만족하나?

<고등래퍼 3>에 출연하는 동안 울렁증을 겪었고, 정신적으로 좋지 못한 날을 보냈다. 그때 생긴 진한 아픔을 이번 기회에 많이 극복했다. 물론 이번에도 3차 무대를 할 때부터 매번 체하고 고생한 탓에 ‘이렇게까지 힘들면 우승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다행히 멋지게 끝을 내서 만족한다.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다.

본선 1차 경연에서 선보인 ‘회전목마’가 음원 차트에서 선전하는 중이다. 프로듀서 슬롬과 자이언티의 손길로 완성된 그 곡은 소코도모와 얼마나 코드가 맞나?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스타일의 음악이라 아주 마음에 든다. 동요 같고 판타지가 있는 음악. 동심과 향수라는 건 그 어떤 음악도 뛰어넘기 힘든 경지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본 디즈니 만화 영화의 인트로, 놀이동산에서의 인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어느 시기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그 소중한 힘이 음악의 한 역할이라고 믿는데, 그에 딱 맞는 곡과 무대를 선보여서 기쁘다.

아티스트 소코도모가 되기 전, 양승호는 어떤 유년기를 보냈나?

4세 때 가족과 미국 앨라배마에 가서 6년 정도 살았고, 한국에 와서 잠시 살다가 다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4년 정도 보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한국에 들어온 이후 가끔 일본에 갔지만 여기서 쭉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딱히 튀지도 않고 평범한 아이였는데, 한국에 왔을 때 ‘여긴 내가 알던 곳과 다른 곳’이라는 걸 느꼈다. 아이들이 행동하는 방식도 달랐고,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나에게 대부분 못되게 굴었다. 그 2년 정도의 시간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브라질이 탈출구였다. 그곳에서는 인종차별 등 또 다른 방식의 다름이 있긴 했지만, 다행히 안전하고 좋은 주거 환경에서 보냈다.

다른 나라와 환경, 문화를 거치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외계인 같다고 느꼈나?

사춘기 무렵, 그 어려운 포르투갈어를 새롭게 이해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던 시기에 나에겐 한국과 미국과 일본까지 공존해 있었다. 문화적으로 꼬일 대로 꼬인 느낌이었고, 내가 점점 ‘잡종’, ‘돌연변이’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생각하는 방식이랄까, 그런 기준에 있어서 내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빵집에서 빵 하나를 보면서도 그 빵의 성분에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빵과 거리가 먼 생각에 이르기까지 100가지의 궁금증과 의문이 순식간에 밀려든다. 그래서 나는 늘 피로하다.

아티스트 활동을 하는 데 자양분이 된 음악이 있다면?

아버지가 음악을 자주 듣는 분이었고, 보사노바와 재즈를 많이 들으며 컸다. 내가 힙합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은 그 장르와 아주 다르긴 하지만, 단 하나, 보사노바의 특징인 사운드의 풍부함만큼은 내 음악에도 적용하고 있다. 나는 소리에도 비주얼에도 상당한 레이어가 층층이 쌓인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것들의 조화로움과 뾰족하고 잘 드러나는 소리, 고퀄리티 여부를 민감하게 신경 쓴다.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는?

오스카와 그래미 시상식에서 공연하는 것.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꿈꿨는데, 요즘 현상을 보면 그게 결코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분명 영화를 만들지 싶다. 30대 중반쯤 영화를 배우기 위해 다시 학교에 다닐 계획이다.

소코도모에게 단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프로듀서 히치하이커. 이미 오래전에 메타버스를 시작해서 음악으로 선보인 분이다. 음악에 죽고 사는 라이프 스타일도 그렇고, 여러모로 내 롤모델이자 ‘사운드 파더’라고 할 수 있다. 미술적으로도 상당히 재밌는 작업을 하신다.

2021년에 잘한 일은?

<쇼미더머니>에서 슬롬&자이언티 팀과 함께한 것.

소코도모가 좋아하고 잘하는 음악이 대중적으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회전목마’를 통해 확인했다.

 

음악, 청춘의 기록 
김뜻돌 1996년생, @meaningful_stone 

놀랍도록 능숙하게 화보를 촬영한 김뜻돌은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것이 좋고, 내가 나온 장면을 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수년 전, 그저 부담 없는 뮤직비디오 만들기를 즐겼던 김뜻돌은 음원이 아닌 유튜브로 자기 음악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앳된 얼굴로 ‘다 벗지 않아도 부끄럼 없이 솔직했던 나 언젠가부터 샤워를 해야 깨끗해졌나(‘샤워를 해야해’)’라고 읊조리던 이는, 이제 록 사운드 안에서 ‘내 인생은 너무 서툴러 하루 이틀 사는 것도 아닌데(‘비 오는 거리에서 춤을 추자’)’라고 토로한다. 그리고 장르를 불문하고 하나의 지표가 되어버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첫 정규앨범인 <꿈에서 걸려온 전화>로 ‘2021 올해의 신인’에 선정되었다. 누군가는 김뜻돌의 음악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기억해내겠지만, 당분간 쳇바퀴일 것 같은 인생과 그 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에 대해 말하는 최근 곡들이야말로 김뜻돌의 현재에 가깝다. ‘돌 하나에도 뜻이 깃들어 있다’는 그 이름의 의미처럼, 김뜻돌이 남기는 음악 하나하나는 어떤 청춘들의 발차취와 함께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컬러 블록 원피스는 돌체&가바나, 플랫 슈즈는 김해김, 꽃으로 제작한 헤드피스는 하이이화.

꽃 장식 크롭트 재킷과 하얀 레깅스는 김해김 제품.

<W Korea>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가?

김뜻돌 90년대 음악을, 90년대생인 내 느낌으로 풀어내는 음악을 하고 있다.

90년대 음악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나?

나는 MZ세대의 특징이 ‘학교에서 공들여 키워지고, 제도권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진’ 면이라고 생각한다. 10대 시기에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건을 목도한 세대이기도 하고. 숨죽여 살면서 개성은 SNS에 표출하는, 어떻게 보면 SNS라는 환상의 세계에 사는 게 MZ세대다. 여기에 코로나19 시대까지 겹치면서 욕구를 풀 데가 정말 SNS밖에 없는 기분이었다. 그 답답함과 반항심이 커졌다. 90년대의 음악을 들으면 해방감을 느낀다. 새로운 시대가 오기 전의 두려움 때문인지 폭발하는 유의 음악이 많다. 나도 그렇게 표현하고, 표출하고 싶었다.

2021년 9월에 발표한 미니앨범 <Cobalt>에 대해 소개하자면?

청춘의 색인 푸른빛을 앨범명으로, 청춘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담았다. 20대 초반에는 세상 탓과 환경 탓을 많이 했다. 그러다 세상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만 스물다섯에 이를 즈음 이제는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좀 알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삶이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싶었고, 어릴 때 믿었던 세상에 대한 환상이 깨진 후의 심정 그대로 ‘나 힘들다!’라고 외치는 음악을 표현하려고 했다. 사랑 이야기도 있고.

2020년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이나 그간의 싱글과 달리 미니앨범에서 록 음악을 선보였는데, 록에 끌린 이유는?

재즈에 빠진 적도 있고, 지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건드려봤다. 우연히 록을 들으며 록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임을 알았다.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을 들으면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 정규앨범을 낼 때부터 ‘이것은 나의 한 단락을 마무리 짓는 음반이고 앞으로는 좀 다른 걸 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Cobalt>를 통해 비로소 하고 싶은 음악을 했기 때문에 마음에 든다. 정규앨범 때만큼 피드백이 많지는 않지만 확실히 해외 팬이 늘었다.

어떤 록을 좋아하나?

러시, 그리고 소닉 유스의 킴 골든처럼 여자 보컬이 돋보인 록. 과거의 느낌을 가져와 재해석하는 식으로 활동 중인 밴드에도 관심 있다. 그런 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울프 앨리스다.

창의력의 돌파구가 되는 순간이나 곡이 잘 써지는 경우가 있다면?

요즘엔 괴롭고 우울하고 힘들 때 곡을 쓴다. 힘든 점을 친구에게 말로 굳이 설명하면 찌질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음악으로 풀면 영화가 된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 내 삶을 재단하기보다 멀리서 바라보며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해하고 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다.

10대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녔는데(교직에 있는 엄마의 권유로 3남매가 다 대안학교를 나왔다), 숙제가 많았지만 학원을 따로 다니지 않아서 시간이 많았다. 밴드 동아리 활동을 비롯해 하고 싶은 걸 하며 비교적 재밌게 보냈다. 어릴 때부터 여러 악기를 배웠고 그걸 즐겼다. 아빠가 집에서 음악을 자주 틀어놨고, 나는 종종 기타를 치거나 가야금 연주를 했다. 고등학생 때는 첼로를 전공하려고 준비하기도 했다. 음악을 전공한 후 음악심리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음악이 당신의 운명이라고 느끼나?

그렇다. 엄마의 태몽도 음악적이었고(웃음). 어떤 선비가 숲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예뻐서 귀 기울여 듣다가 깨셨다고 한다. 우울하고 심란할 때 악기를 연주하면서 사람을 치유하는 주파수 대역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 창작 작업을 하면서는 내가 온 별이랄까, 내 근원과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온 곳에서, 나를 알고 있는 존재에게서 어떤 신호가 오는 것 같달까? 그런 순간들이 음악을 계속하게 만든다.

김뜻돌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나는 야망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다다를 수 있는 목표라는 건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음악을 보면 나는 계속 변해왔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자면 ‘그때의 나는 그러했지만, 지금의 나는 좀 다른 존재가 됐고 다른 질문을 가졌다.’ 모든 예술가는 뭔가를 계속 궁금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나는 왜 이럴까’, ‘저건 왜 저럴까’부터 시작해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어쨌든 종종 깊은 생각에 빠지는데, 그렇게 얻은 결론이 또 정답은 아닌 것 같을 때도 있다. 하지만 진짜 정답을 찾고 싶었다면 종교인이 됐겠지? 그저 나의 큰 무기인 솔직함으로, 변화하는 나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 하나의 존재로 재단할 수 있는 내가 아니라, 나라는 많은 사람 중에 하나를 발견하고 또 발견해가는 일이 내겐 음악 활동이다.

당신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는?

비요크와 한 무대에 설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좋겠다.

12월 첫 단독 콘서트를 마친 후 연말연초 계획이 있다면?

남자친구와 우리 아빠가 다이어트를 두고 내기를 했는데, 크리스마스에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남자친구가 8kg을 빼면 아빠가 100만원을, 그만큼 못 뺐으면 남자친구가 100만원을 내놓는 내기. 내가 공증인으로 참석한다.

멋, 맛, 드럼 
전성배 1997년생, @taketheholygrail

2021년 8월 방영된 JTBC <슈퍼밴드2> 본선 2라운드에서 건진 한 장면. 무대 위 다소 독특하고도 미니멀한 드럼 세트가 놓여 있다. 12인치 스네어, 뱀장어처럼 꼬불꼬불 디자인된 스파이럴 이펙트 심벌, 전자 트리거를 건 탐. 그 앞에 스틱을 쥐고 선 이는 힙합 드러머 전성배였다. 비의 ‘It’s Raining’을 새로운 스타일로 편곡한 무대, 이를 본 심사위원 이상순은 말했다. “전성배 씨의 드럼은 굉장히 독특한 그루브를 가지고 있어요.” 으레 전성배의 드럼은 이렇게 요약된다. 변칙적인 리듬과 ‘말랑쫀득’한 그루브. AOMG 소속 뮤지션의 세션 밴드 ‘워크맨쉽’의 드러머이자 <슈퍼밴드2>를 통해 결성된 밴드 ‘Kardi’의 멤버,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자 성배를 뜻하는 ‘홀리 그레일’로 활동하는 뮤지션, 전성배가 이제 막 신에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꽃무늬 원단이 패치워크된 원피스와 주름 스커트는 준야 와타나베,
팬츠는 오프화이트, 체인 목걸이와 해골 반지는 지방시 제품.

회화 프린트 재킷은 짐존잼 제품, 키치한 반지는 에디터 소장품.

<W Korea> 당신에겐 늘 ‘힙합’ 드러머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록 드럼과 힙합 드럼은 어떻게 다른가?

전성배 어긋나는 듯 어긋나지 않은 리듬을 사용하는 건 힙합 드럼밖에 없다. 보통 드럼 세트를 보면 연주자의 성향이 보이기 마련이다. 어떤 음악을 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화려함 위주로 가는지 리듬 위주로 가는지. 그런데 힙합 드럼은 세팅이 굉장히 미니멀하다. 록처럼 화려한 걸 할 필요가 없는 거지. 그루브랑 리듬만으로 ‘죽여야’ 하니까.

드럼 세트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인다고 했다. 그럼 당신의 드럼 세트를 소개한다면?

일단 특이해야 한다. 튀어야만 그 사람만의 아이덴티티가 생긴다. 그래서 남들이 하지 않는 조합을 많이 시도한다. 보통은 하이햇을 하나만 쓰는데, 나는 크기가 크고 구멍이 난 하이햇을 하나 더 놓는다. 그럼 좀 더 ‘바삭바삭’하게 힙합에 어울리는 리듬을 칠 수가 있다. 스네어도 14인치를 주로 쓰지만 나는 12인치를 사용한다. 피치도 좀 높고 평범하지 않는 소리가 난다. 힙합에 어울리는 빈티지한 맛도 잘 살고. 최근엔 박수 소리를 리얼로 표현하고 싶어서 클랩 스택 심벌도 자주 쓴다.

어떤 계기로 음악을 시작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드럼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드럼 치는 형이 너무 멋있어서 아빠를 졸라서 동네 악기 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나뿐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베프들 다 데리고 가서 등록시켰다. ‘너는 베이스 쳐, 너는 기타 치고’(웃음). 그렇게 밴드를 만들어 중학교 축제 무대에도 섰다. 이전까진 무언가로 인정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드럼만 치면 친구들이 좋아해주니까 드럼에 더 빠졌던 것 같다.

보통은 프런트맨인 보컬이나 기타에 매력을 느끼지 않나? 드러머에 유독 이끌린 이유가 있나?

어릴 땐 앞장서서 무언가를 하는 걸 안 좋아했다. 유치원 때도 애들끼리 파워레인지 놀이를 하면 나는 리더인 레드 말고 어딘가 어중간한 옐로를 맡았다(웃음). 보컬, 기타 뒤에서 묵묵히 드럼이 다이내믹을 올렸다 높이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뭐랄까, 안 보이는 지휘자 느낌이랄까. 그런데 지금은 바뀌었다. 이제는 뒤에만 머무는 게 싫고 내가 앞으로 나서고 싶다.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뮤지션은 누구인가?

힙합 드러머 크리스 데이브. 디안젤로의 앨범 <Black Messiah>, 아델의 <21> 등에서 연주한 드러머다. 사실 나는 힙합을 좋아해서 힙합 드러머가 된 게 아니다. 크리스 데이브의 힙합 드럼을 보고 충격을 받아 힙합 드럼을 시작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의 드럼을 보고 무작정 ‘아,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2>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출연 계기는 무엇이었나?

사실 프로그램을 통해 밴드를 만들고 싶었다기보다 ‘이런 드러머도 한국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드럼 세트도
‘죽이게’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나갔다. 화면에 한 번 비치더라도 제대로 각인시키고 싶어서. 밴드에 속해야만 드러머가 더 빛을 발한다는 걸 잘 알지만, 나 자체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욕구가 큰 것 같다. 전성배라는 이름 앞에 ‘드러머’라는 수식이 굳이 따라붙지 않는 게 내 꿈이다. 남들이 안 하는 것, 멋있는 것은 다 하고 싶다. 누가 들어도 ‘이건 전성배 드럼이다’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하는 게 목표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인정받지 못했을 때 생기는 복수심?(웃음) 중학생 땐 하도 까불고 다니니까 선생님들이 나를 무시했다. 그것에 복수하고자 시험을 봐서 드럼으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재야의 고수들을 만난 거지. 1학년 때까진 전교에서 드럼 실력이 꼴찌였는데 또 무시받는 게 싫어서 3학년이 될 즈음엔 1, 2등으로 올려놓았다. 늘 욕심이 많았고, 남들에게 실력으로 나를 설득시키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계속 그 맛에 사는 것 같고.

조만간 홀리 그레일로서 첫 솔로 앨범을 낼 계획이라 들었다. 어떤 음악을 펼칠 예정인가?

한국의 음악 신에서는 악기 다루는 사람이 포커스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걸 좀 깨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피처링도 누구나 알 법한 뮤지션에게 부탁할 거다. 장르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어쨌든 힙합이 베이스가 될 테지만, 테크노 기반의 곡도 쓰고 싶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

휴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옷을 너무 좋아한다. 중고장터에 매물 뜨는 게 없는지 항상 찾아보는 편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젊음’의 아이콘은 누구인가?

패션 디자이너 릭 오웬스. 그가 우리 아빠와 나이가 같다. 그런데 릭 오웬스의 감각은 시대를 타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사람들도 그의 디자인에 열광하니까. 아, 그리고 지금까지 몸의 근육을 탄탄히 유지하고 있는 것도 너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웃음).

언젠가 펼치고 싶은 꿈의 무대가 있나?

혼자서 블루스퀘어 공연장을 채울 수 있을 정도면 족하다. 그것만으로 정말 행복할 것 같다.

 

밤의 틈을 향하여 
서리 1996년생, @iam_seori 

밤의 해방. 2020년 EP 앨범 <?depacse ohw>로 데뷔한 R&B 싱어송라이터 서리의 음악에 대한 첫인상이다. 가사에 짙게 깔린 밤의 이미지, 폭발을 향해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듯한 곡의 전개, 코러스를 켜켜이 쌓아 올려 멜로디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방식까지. 리스너들 사이에서 서리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데뷔 전인 2019년이다. 그해 서리가 아비어(Abir)의 ‘Tango’를 커버한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되자 빠른 속도로 조회수 500만에 도달했다. 짐짓 음울하고 몽환적인 음악적 색채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탄탄한 팬층을 구축한 서리는 비보(Vevo)가 선정한 ‘2022년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2021년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OST에 참여했다. 

검정 드레스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이어링은 돌체&가바나 제품.

세일러 칼라 크롭트 재킷, 롱스커트, 주얼 장식 초커는 모두 미우미우 제품.

<W Korea> 최근 ‘헤드 인 더 클라우즈’(HITC) 페스티벌 참석차 미국에 다녀왔다 들었다. 어떤 경험이었나?

서리 HICT는 미국의 음반사 ‘88rising’이 주관하는 페스티벌인데, 작년 초 88rising과 정식으로 계약해 올해는 나도 무대에 서게 됐다. 코로나19 시대에 데뷔했기 때문에 대면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3만 명가량의 관객이 모인 페스티벌이었는데 사실 처음엔 별 기대를 안 했다. 당연히 사람들이 날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내 무대를 보러 많은 관객이 모이고 심지어 한국어 가사까지 떼창을 해줘서 너무 놀랐다. ‘진짜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말 그대로 날뛰며 무대를 즐겼던 것 같다. 나중에야 무대 영상을 봤는데 목소리에 막 신남이 가득하더라고. 조금 후회됐다(웃음).

미국에서 ‘Tango’의 원곡 가수 아비어도 만났다 들었다. 그녀와 함께 즉흥으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봤는데 당신이 시종 웃느라 광대가 안 내려오더라.

맞다. 아직도 좀 얼떨떨하다.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아비어 측에서 연락이 왔다. 사적으로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페스티벌이 끝난 이틀 뒤 아비어의 집에 가서 한두 시간 수다를 떨다 ‘Tango’를 함께 불러보게 됐다. 뭐랄까, 그 순간이 마치 음악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합을 안 맞춰봤지만 서로 자연스럽게 코러스를 넣어주었으니까. 아비어 노래를 커버했던 2년 전으로 돌아가서 내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 2년 뒤에 이 사람을 직접 만나!’(웃음)

어떤 계기로 음악을 시작했나?

처음엔 그저 노래 부르는 것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직접 곡을 쓸 생각까진 못했는데, 평소 좋아하는 해외 뮤지션을 보면 모두가 직접 자신이 부를 곡을 쓰는 거다. 뮤지션이 직접 곡을 써야만 진정성 있고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열일곱 무렵 처음 한 것 같다. 그래서 부모님께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처음엔 반대가 심했다. 국영수 성적을 올리는 열정을 보이면 생각해보겠다는 말씀에 미친 듯이 공부해서 성적을 올렸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럴 거면 그냥 공부를 하지 그래?’였지만(웃음).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곡 학원에 등록했고 대학도 실용음악과를 나왔다. 이후엔 유튜브가 뮤지션의 길을 열어줬지. 커버 영상을 2개 올릴 무렵부터 음악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유년기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뮤지션이 있나?

에이브릴 라빈. 가장 처음으로, 또 가장 강렬하게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했고 지금도 음악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힐 때면 에이브릴 라빈의 음악을 듣는다. 콜드플레이, 파라모어와 같은 록 밴드의 음악도 즐겨 들었다. 지금 내 음악이 R&B로 규정되지만 스스로는 록 베이스라고 생각한다. 얼터너티브 록, 록 발라드 장르를 워낙 많이 들었고 늘 내가 하는 음악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으니까.

당신의 음악을 묘사해본다면?

아주 베이스는 록, 그 위에 신스가 있고, 여기에 보컬과 팝적인 요소가 버무린 무언가.

‘밤’이 당신의 음악 세계의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다. 밤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곡도 있고, 앨범 커버 아트워크에도 밤이 주요 비주얼 요소로 등장한다.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소수의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하다고 느낀다. 타인에게 위로를 얻을 때도 있지만 혼자 다양한 생각을 하다 스스로에게 위로를 얻을 때가 더 많다. 그런데 낮이 아닌 비로소 해가 진 밤에 그 ‘스스로의 공간’이 열리는 것 같다. 나에게 밤은 본능적인 무언가고, 가장 편안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개체다.

주로 무엇에서 영감을 얻나?

사실 나도 모르겠다. 어느 날 머리를 말리다 문득 떠오른 허밍을 가지고 ‘Hairdryer’란 노래를 만들기도 했고, 밤에 혼자 자전거를 타다 데뷔 EP의 타이틀이었던 ‘Running through the night’을 떠올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자전거를 타다 거의 10년 만에 처음 자전거를 탄 순간이었거든. 찬 바람을 맞으면서 도시를 달리는데 너무 해방감이 느껴졌다. 영감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일상의 어느 순간, 습관적으로 틈틈이 메모한 음성 메모, 평소 들었던 음악이 모두 영감이 된다.

휴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취미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필름카메라에 빠져 한창 사진을 찍기도 했고,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거나 일기를 쓰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최근엔 비디오 편집에 빠져 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결국 ‘기록’에 관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좀 있는 것 같다. 나의 시간을 놓치는 걸 너무 아쉽게 생각하는 성격이라 하나라도 덜 놓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기록 행위로 이어진 것 같다.

당신을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은 곡이 있나?

가장 최근 발매된 싱글 ‘Dive with You’.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곡이자 나를 가장 잘 담고 있는 곡이다. 여름 노래라 경쾌한 리듬이 시종 흐르는데 마냥 신나지만은 않은, 어딘가 침울한 무드가 기저에 깔린 곡이다. 그리고 나의 더 깊은 곳까지 보여주고 싶다면 데뷔 EP에 수록된 ‘Fairy Tale’을 들려주겠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순간, 밑바닥에 있는 상처 입은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2022년의 목표가 있나?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앨범을 내고 싶다. 아무래도 여태까진 도전적인 음악을 주로 했다 보니 ‘서리 음악 어렵다’는 피드백도 종종 들었거든. 물론 그걸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음악으로 표현하는 가치가 나에겐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데 최근엔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들어주는 기쁨도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낀다. 2022년에는 그 둘을 다 잡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