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울, 서울

W

 봄가을이면 늘 들썩이던 DDP가 잠잠하다. 런웨이도 관객도 사라졌다.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이 초래한 폐허랄까. 하지만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그에 지지 않고 차분히 다른 길을 모색했다. 그들이 선보인 영상은 서울패션위크의 새로운 형태였고, 다시 관객 앞에 서기 위한 그들 각자의 분투였다.

DOUCAN

디지털 플랫폼에서 선보이는 컬렉션, 즉 ‘방구석 런웨이’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졌다. 이번 2022 S/S 서울패션위크가 특별했던 건 조금 다른 의미에서다. 서울 곳곳에서 촬영한 패션 필름을 상영한 것. 운현궁과 덕수궁, 경희궁, DDP, 국립중앙박물관 등 서울의 시간을 품은 특별한 장소와 함께 옷을 감상하는 건 서울패션위크라는 이벤트의 존재 의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했다. ‘서울의 전통-현재-미래’라는 이번 시즌 주제에 어울리는 선택이기도 했고. 중견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26편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컬렉션 11편은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9일 동안 서울패션위크 홈페이지와 유튜브, 네이버TV, 틱톡, 티빙 등에서 방영되었다. 디지털 영상으로 선보인 37개의 컬렉션 중 더블유가 주목한 15개 컬렉션을 여기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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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UET(TE)

매년 서울패션위크의 베스트 10을 선정해 글로벌 육성 지원 사업을 펼치는 ‘텐소울 프로젝트’. 그중 라이 컬렉션과 비뮈에트가 런던 패션위크 스케줄에 이름을 올리며 가장 먼저 디지털 런웨이를 선보였다. 먼저 이청청 디자이너의 라이 컬렉션은 ‘벨에포크’를 주제로 삼았다. 19세기 말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번영을 구가한 유럽의 시대를 가리키는 이 단어를 떠올린 이유에 대해 그는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번영의 시기로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 아픔과 고통으로 정체된 현실을 벗어나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가 꿈꾸는 ‘벨에포크 서울’은 고전적인 실루엣의 소매, 파스텔 톤 컬러, 로맨틱한 패턴과 실루엣으로 표현됐다. 서병문 · 엄지나 디자이너의 비뮈에트 컬렉션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비뮈에트 특유의 구조적인 볼륨! 층층이 쌓아 올린 러플 장식은 한없이 로맨틱할 것 같지만, 디자이너들은 거기에 펑키한 감성을 더한 채 그 둘을 충돌시키며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설파했다. 컬러풀한 파이핑 장식, 투박한 워크 부츠, 벨트 모양의 액세서리 등이 그들이 품은 비장의 무기였다.

BEYOND CLOSET

MUSEE

서울패션위크에 최연소 데뷔해 이미 중견 디자이너가 된 고태용. 그가 이번 비욘드 클로젯 컬렉션을 준비하며 떠올린 단어는 ‘야드(Yard)’다. 워크웨어와 라운지 웨어를 뒤섞어 입고 밀짚모자, 작업용 앞치마, 가드닝 장갑 등의 액세서리를 매치한 정원사들이 줄지어 등장해 덕수궁 중명전 앞마당을 거닐었다. “내추럴한 색감과 소재를 통해 오가닉한 생활방식 전반을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다”는 디자이너. ‘전원생활에 대해, 더 나아가서 건강한 삶과 정신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는 그의 바람은 성공한 듯하다. 그런가 하면 뮤제의 이주현 디자이너는 여성의 몸이 드러내는 곡선과 그 움직임에 관해 오래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뮤제의 옷은 정지된 사진이 아닌 동영상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모델들이 걸으며 몸이 움직일 때 옷자락이 흩날리는 모양, 움직임을 고려한 듯 길게 늘어지는 벨트와 끈 등의 디테일이 특별하다. 미니멀한 룩에 독특한 커팅이나 드레이핑으로 변화를 준 방식 또한 눈에 띈다.

CARUSO

CARUSO

SEOKWOON YOON

‘창덕궁의 봄’을 주제로 선보인 장광효 디자이너의 카루소 컬렉션. 슬림한 재킷과 통 넓은 트라우저, 혹은 오버사이즈 재킷과 슬림한 슬랙스를 매치하는 방식으로 실루엣의 리듬감을 살리고 레드와 터키블루, 옐로와 네이비 등 강렬한 컬러 대비를 주는 등 그의 강력한 무기가 총동원됐다. ‘인공 지능’을 주제로 한 석운 윤의 이번 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 윤석운의 특기인 ‘비틀기’가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아우터와 팬츠의 길이, 주머니의 크기나 위치 등을 조금씩 비틀며 독특한 프로모션과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그 솜씨! ‘인공 지능’을 주제로 하면서 운현궁 마당에 오래된 빈티지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그 사이로 모델들이 걷는 방식을 선택한 것도 일종의 ‘비틀기’가 아닐까.

A.BELL

SLING STONE

NOHANT

DOUCAN

에이벨 컬렉션을 전개하는 최병두 디자이너는 지난봄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패션 VR 기술 전문 회사 에이아이바와 손잡고 VR 패션쇼를 선보였다. 3D로 구현한 고궁을 배경으로 31벌의 3D 의상이 등장했다. 그 외에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두고 런웨이를 펼친 박종철 디자이너의 슬링스톤 컬렉션, 모델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고궁을 산책하듯 걷는 모습을 영상에 담으며 특유의 편안하면서도 캐주얼한 스타일을 선보인 노앙, 언제나처럼 직접 제작한 프린트를 접목한 컬러풀한 룩을 선보인 최충훈 디자이너의 두칸 컬렉션이 더블유의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JULYCOLUMN

IRYUK

NOTKNOWING

MINA CHUNG

RINJEON

GENERATION NEXT 

신진 디자이너에게 컬렉션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는 ‘제너레이션 넥스트’는 1년 이상 5년 미만의 커리어를 가진 독립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이번 시즌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려 애쓰는 몇몇 디자이너가 눈에 띄었다. 먼저 줄라이칼럼의 박소영 디자이너는 쉽게 만들고 소비하고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메시지를 건넨다. 아뜰리에의 마스터 재단사, 재봉사와 호흡을 맞추는 그는 고급 맞춤복을 지향하며 패스트 패션에 맞선다. 핸드 프린팅과 핸드 니팅 기법을 활용한 아이템에서 그가 추구하는 장인정신이 선명하게 읽힌다. 임우준 디자이너의 이륙은 태생부터 서브 컬처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비행기가 땅에서 떠오르듯, 주류 문화에 반기를 들고 다양한 실험을 하는 레이블. 이번 시즌에는 들끓는 행성 위를 걷는 모델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선보였는데, 다양한 소재와 패턴, 실루엣이 뒤섞인 룩이 젠더와 스타일의 온갖 경계를 허문다. 낫노잉의 런웨이는 엉뚱하게도 DDP의 지하 주차장에서 펼쳐졌다. 스트리트 스타일에 스포티한 무드를 더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낫노잉의 김시은 디자이너. 그는 데님 팬츠, 스타디움 점퍼 등 대중적인 아이템에 감각적인 터치를 더했는데, 그 스타일링이 돋보였다. 매우 일상적인 장소-주차장-에서 영상을 촬영한 것도 영민한 선택이었다. 미나정의 정미나 디자이너는 한자에서 컬렉션 테마를 얻는다. 이번 시즌 그가 마음에 품은 글자는 ‘돌 회(廻)’. ‘봄의 시작은 겨울의 끝에 맞닿아 있으며 여름의 끝은 가을의 시작을 품고 있다’라는 문장을 되뇌다가 우리는 계절 사이의 경계를 구분 지을 수 없고, 모든 것은 끊임없이 순환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런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는 곡선적인 실루엣으로 표현되었다. 이번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 중에서 가장 ‘순한맛’을 고르라면 분명 린전일 것이다. 린전의 전혜린 디자이너는 클래식 음악과 오래된 건축물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는다. 소프트한 컬러를 사용하고 패턴은 극히 제한하는 것이 특징. 그가 바라는 건 오래 입을 수 있옷을 만드는 것, 그리고 국내 고급 봉제 장인들에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며 상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디지털 에디터
김자혜
사진
COURTESY OF SEOUL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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