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날들

W

가을의 한가운데서, 소설을 넘기며 보낸 날들.

1.<패싱: 백인 행세하기> 넬라 라슨 지음, 민음사

1920년대 뉴욕 할렘을 무대로 흑인들의 예술과 문화가 부흥했던 ‘할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넬라 라슨의 소설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패싱’ 은 백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흑인들이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을 뜻한다. 작가는 백인 피부를 지닌 두 흑인 여성 주인공을 통해 할렘 르네상스 시기 신여성들의 ‘패싱’에 주목한다. 소설은 레베카 홀 감독의 영화로 각색돼 2021 선댄스 영화제에서 큰 화제를 모았으며, 곧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2.<경계선> 욘 A. 린드크비스트 지음, 문학동네

‘추운 나라에서 온 기묘한 사랑 이야기.’ 영화 <렛미인>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스웨덴 소설가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경계선>을 설명하는 한 줄이다. 표제작 <경계선>은 북유럽 신화 속 존재인 트롤을 인간 중심의 현대사회로 가져와 젠더, 인종, 나아가 우리가 알던 세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놀라운 반전 효과를 만들어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2018년 영화화돼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렛미인> 결말부에 단역으로 등장한 인물을 중심으로 펼친 러브 스토리 <지나간 꿈은 흘려보내고> 등을 함께 묶었다.

3.<밝은 밤> 최은영 지음, 문학동네

소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국내 탄탄한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최은영의 첫 장편 소설이다. 언젠가 작가는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힌 적 있다. 이 책을 통해선 증조모,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비추고 자연스럽게 백 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등단 이후 줄곧 빛나왔던 작가 특유의 서정적인 문장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그 안에 자리한 뜨거운 문제의식을 이번 작품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4.<대불호텔의 유령> 강화길 지음, 문학동네

단편 소설 <음복>으로 2020 젊은작가상 대상을 거머쥐며 한국형 여성 스릴러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강화길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원한’이라는 정서를 소설화해냈다. 셜리 잭슨의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을 오마주한 이번 작품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전국을 지배하고 있던 1950년대, 귀신 들린 건물 ‘대불호텔’에 이끌리듯 모여든 네 사람이 겪는 공포스러운 경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피처 에디터
전여울
포토그래퍼
김대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