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색, 연애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다섯 가지 색, 연애

2021-09-05T01:14:06+00:002021.09.05|FEATURE, 라이프|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장승리의 시집 <무표정>에 수록된 시 ‘말’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모양이 있으며, 그중 가장 정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여기 정확한 사랑으로 가는 길목에서 서로 다른 모양의 연애를 경험한 다섯 사람이 있다. 사내 연애, 망한 연애, 첫연애, 다자 연애, 자기애로 마침표를 찍는 연애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자, 작은 사랑이 하나 지나간 기분이 들었다.

 

 #사내 연애 

신입 사원 시절, 본부장님이 말씀하셨다. “광고주랑 연애하면 고과 가점, 사내 연애 하면 고과 감점이다!” 웃고 넘어가기엔 말에 뼈가 있었다. 나의 마음을 쿡쿡 찌르는 날카로운 뼈가.

썸타는 사실을 비밀로 했던 게 ‘사내 연애’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제대로 시작도 안 된 관계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은 장소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고작 회사라는 이유로 접을 수 있는 감정이라면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겠어? 게다가 일이 바쁠수록 사내 연애가 시작될 확률은 높아지기만 했다. 퇴근을 제때 해야 밖에서 소개팅이라도 해볼 텐데, 지독하게도 바쁜 광고 회사 특성상 그나마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회사 동기와 가까워지는 건 몹시 자연스러웠다. 구구절절한 배경 설명 없이도 회사 생활에 대해 쉽게 토로하고 이해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관계를 급격하게 진전시키는 동력이었다.

물론 본부장씩이나 되는 분께서 지레 지적할 정도로 사내 연애는 눈치 볼 일이 많다. 연애하다 성적이 떨어지면 이별부터 권고를 받는 학생 시절 같달까. 일하다 뭐라도 실수하면 연애 때문에 공사도 제대로 구분 못하는 아마추어 취급을 할 기세들이다. 회사의 부품 주제에 감히 사내에서 ‘연애질’을 해? 그런 칼날 같은 시선들이 잠재적 사랑꾼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적당한 고난과 역경은 연애에 감칠맛을 더하는 법. ‘사내’란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있는 연애만이 가질 수 있는 짜릿함이 있다! 어떻게 장담하냐면, 내가 해봤으니까. 그것도 두 번이나.

회사에서 화장실에 가는 것만으로도 똥 싸면서 월급 받는다고 좋아하는 게 직장인이란 존재다. 하물며 회사에서 연애를 하는 건, 일과 사랑이라는 매력적인 두 마리 토끼를 다 쟁취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회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변한다. 일하는 곳에 불과했던 회사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지닌 장소로 탈바꿈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층과 층 사이의 계단, 비어 있는 회의실, 사내 카페의 구석 자리가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무려 출근이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가끔은 더 일찍 일어나 사내 카페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사랑의 힘은 그 정도다. 직장인이 피 같은 수면 시간을 줄이는 게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는 정도.

고백까지 회사 안에서 받았을 땐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사실상 사귀자는 말만 안 했을 뿐인 관계에서의 합의에 가깝긴 했지만.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야근하던 날, 마찬가지로 회사에 붙잡혀 있던 썸남이 나를 잠시 사내 라운지로 불러냈다. 이제는 썸에 종지부를 찍고 제대로 연애하고 싶은데 너무 바빠서 도무지 말할 틈이 안 나고, 막상 결심하고 나니 입이 근질거려 애가 타고, 그러니 이렇게 회사에서라도 말해야겠다고. 어두컴컴하게 소등된 회사 라운지에서 멋없는 고백이 오간 뒤,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 앞으로 복귀했다. 화려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일도 사랑도 놓치지 않는 진정한 직장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사내 연애의 순간이었다고 자부해본다.

회사 동기와 연애한다고 하니 주변에선 사내 연애는 비밀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내에서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연애가 잘못도 아닌데 왜 숨기라는 걸까? 어차피 연애는 둘만의 일이니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여자라서’, 사내 연애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라고도 했다. 관계는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데도, 사내 연애가 파국을 맞으면 후폭풍은 여자가 맞게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나는 굴하지 않고 사랑을 감행했다.

모두가 경고하던 사내 연애의 부작용을 피해 가진 못했다. 회사 선배들 앞에서 이별의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펑펑 울어버린 것이다. 점심시간에, 그것도 부대찌개 앞에서. 나는 부은 눈으로 불어터진 라면 사리를 먹은 뒤 꿋꿋하게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갔다. 운 건 부끄러웠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 게 쪽팔리진 않았다. 영원히 지속되는 연애는 없다는 것도, 언젠가는 이 일을 후회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으니까. 그런 후회까지도 연애의 일부란 걸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별 뒤에도 다른 사람과 또다시 사내 연애를 하고 만다. 어쩔 수 없었다. 사랑은 사내외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만 다시금 실감했을 뿐. 솔로거나 커플이거나 일은 열심히 했으므로 본부장님의 협박과는 달리 고과는 잘 나왔다. 그리고 사내 연애를 하던 애인과 결혼해 살고 있는 지금, 월급은 나름 두 배다.

글 | 김혜경(광고 기획자, 책 <아무튼, 술집> 저자)

 

#망한 연애

나는 실패하고 싶었다. 사랑에 실패하고 싶었다. 예술가라면 응당 사랑에 실패하고 그 상처로 작품을 쓰고 그 작품으로 치른 대가로 반열에 오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습지만 나는 늘 나를 멋지게 망칠 남자를 기다렸다. 망칠 만한 남자는 사실 예술대 주변에 널려 있었지만, 나는 골라도 역시 제일 좋은 것만 골랐다. 가장 최악의 남자를. 먼 미래까지 내 인생을 괴롭힐 최악의 남자를 골랐다.

내가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복학생이었다. 때문에 열정이 넘쳤다. 모든 과의 수업을 다 들으며, 배우면 배울수록 역시 예술가는 불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학우가 내게 말했다. “프리다와 디에고를 봐. 정말 미친 사랑이잖아. 그리고 용서하면서도 영원히 용서하지 못했잖아.” 맞는 말 같았다. 나는 예술가라면 저런 아픔쯤은 하나씩 있어야 해. 그렇게 생각했다. 매번, 백지 앞에 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하얗게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멋진 고통을 가지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이 좋아 교수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다른 학우들의 글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했다. 역시 내면에 뭐가 많은 사람이 잘 쓴다. 나는 상처 없이 왠지 착하게 산 것 같다. 반성했다. 그리고 나쁜 연애를 떠올렸다. 연애를 떠올리면서도 나는 멋진 이별이 하고 싶었다. 시작부터 망칠 계획이었다. 그리고 꿈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아무 남자라도 좋아. 상처받고 싶어. 소개해줄 사람 없니?” 그렇게 우리는 친한 후배의 주선으로 만난 지 2번 만에 사귀었다. 사실 썸이 제일 재미있는 것인데 다 건너뛰었다. 우리는 걸어서 5분도 되지 않는 거리에 살았다.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은 시간을 더 좋은 기분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는 조급함과 꼰대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어서였을까. 그는 예술대에서 ‘학회장’이라는 자신의 롤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내게 그걸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의 산책 코스는 늘 학교였다. 그는 학교 과 잠바를 입고 지나다니면서 후배들의 인사를 받는 것을 즐겼다. 나는 그의 옆을 지키는 잘 깎아 만든 지팡이 같았다. 학회장의 여자친구. 그게 내가 그 학과에서 불리는 이름이었다. 그렇게 나는 소비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의 마음도 빨리 소비되었고, 그 소비된 마음을 전혀 숨길 줄 모르는 그는 크리스마스 데이트에도 늦었고, 모든 일에 다 늦었다. 남자가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네가 학회장이 아니라서 잘 모르는 거라고, 학교 일은 정말 바쁘다고 그가 그렇게 말했다.

가끔 그는 내게 일부러 심부름을 시켰다. 무대를 만드는 야간작업을 하는데, 내 돈으로 자꾸 뭘 사 오길 바랐다. 그리고 거절하면 서운함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분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는 나의 삶은 늘 등한시했지만 자신의 동기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뛰어들었다. 그래서 집이 없다는 온갖 여자 동기들을 다 자신의 자취방에서 재웠다. 지금 이만큼을 쓰면서도 내가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헤어졌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현자인가. 나는 현자가 아닌 멍청이이므로 이렇게 반성하는 글을 쓴다.

좋아해도 되는 사람과 좋은 사람, 그리고 좋아해서는 안 될 사람. 너는 그중에 누구였을까. 내가 너와 연인이 아니라 학교나 사회에서 만났다면 분명하게 대답은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의 너는 좋아해서는 절대로 안 될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의 헤어짐은 오히려 시시했다. 그는 맥도날드의 햄버거나 돈까스를 질릴 때까지 먹고 다시는 먹지 않는 그의 식성처럼, 아주 쉽게 마음이 변했다. 말하면서도 끝까지 ‘내가 졸업하게 되고, 서울에 가면 자주 못 볼 게 뻔하니 미리 헤어지자’ 고 한 것이다. 그 새끼다웠다. 모든 이유는 다 나이며, ‘네가 무엇무엇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들로 시작하는 지긋지긋한 회피와 핑계는 정말 넌덜머리가 났다. 하지만 붓을 든 이상 그림은 끝을 찍어야 하는 법.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을 찍어보겠다. 지금까지의 묘사는 솔거 선생의 손을 빌려 거의 그를 섬세한 붓 터치로 어루만져 그려줬다면 이제 두 눈알을 그려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다. 언젠가 처음 소개해준 후배에게서 아주 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정말로 사귀는 동안 최선을 다해주고 잘 해줬는데,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될 줄 알았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말이 딱 그답다. 사랑이 피자 한 판이라면 모두에게 다 피자를 주고 그나마 나를 아낀답시고 도우 크러스트 몇 개 남은 것을 가져온 그는, 그 크러스트를 줬다는 것 자체가 애정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천불이 났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위치’가 있으니 주변인들의 부수적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저 말은 나에게는 비극적이지만 아주 투명한 진심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사랑의 실패가 필요해서 그를 소개받았다. 말해보자. 그로 글을 몇 편이나 썼는가? 그는 내 문학에 도움이 많이 되었는가? 결론은 아니다. 그는 살며 쓰며 단 두 번 나왔으며 그것도 오브제로서 출연했을 뿐이다. 그는 내 글의 어떤 리듬도, 그 어떤 세계도 짓지 못했다. 2009년. 나는 망치고 싶어서 실패하고 싶어서 너를 만났다. 그리고 바라던 대로 나는 실패했다. 사랑만 실패하길 바랐는데, 문학도 망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랑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새로운 고통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애써서 만든 고통은 창작자로서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먼 훗날이 되어서야 말한다. 내가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던 인생의 거대한 고통이자 분노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랑은 어차피 자꾸 실패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상처가 적어서 실망했던 나의 과거는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이미 충분했다. 그걸 몰라서 나는 너를 만나 망했다.

새로운 감정은 없다. 새롭게 느껴지는 감정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알면서도 이 밤에 끝나지 않는 생각을 붙잡아둔 채로 옴짝달싹 못하게 하거나, 쉼 없이 뒤척이는 것이다.

글 | 이소호(시인)

 

#첫 연애

이 세상 연인들 수만큼 모두 다른 첫 연애가 있겠지만 이건좀 순수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떠올려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게 진짜야?’ 다시 반문하게 되는 근거 없고 오싹한 순수함인데, 황당하게도 그것이 첫 연애 전반의 작동 원리나 다름없었다.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앞반 회장이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광광 돌았다. 속닥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광광 요란하게 들렸는데 그건 순전히 두 반 아이들 모두가 이 상황을 재미있어했기 때문이다. 우리 학년은 2년째 남녀 분반으로 꽤나 철저히 내외 중이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반이 뒤섞이는 복도나 급식실에서의 묘한 긴장감이 지루한 학교생활에 소소한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 (앞만 보고 걷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지만 실은 모든 공간을 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토록 분명하고 공개적인 움직임은 복도를 마주 보고 있는 남녀 반 모두를 잔잔히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어서 대상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더라도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그 부응이란 건 <하트시그널>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대리 서사와 설렘을 친구들에게 매일 조금씩 던져주는 것인데 앞반 회장 A의 역할도 나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 봐야 A가 친구들과 우르르 뒷문으로 몰려와서 나를 부르고 매점에서 산 빵과 피크닉을 주는 모션 정도였는데 가끔 ‘좋은 하루 보내!’, ‘너랑 친해지고 싶어!’ 라고 쓰인 쪽지가 붙어 있기도 했다. 나중에 A가 편지를 줬을 때도 느꼈지만 글씨가 엄청 예뻤던 기억이 난다. 균일한 크기의 줄을 잘 맞춘 획이 얇은 글씨.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글씨는 악필인 A가 매번 다른 친구에게 써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한 명의 친구에게 꾸준히 부탁하다니 철저하기도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A가 따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날 A와 나는 야자가 끝난 뒤 학교 주변을 좀 걸었던 것 같은데 정말 그게 다였다. 무슨 이야길 했는지 기억나지 않거나 아무 말이나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둘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큰일 하나를 해내고 헤어지기 전에 A가 친구를 불렀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데 둘 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A의 제일 친한 친구 B가 우산을 가져다줬다. (알고 보니 그 애가 바로 예쁜 글씨의 주인이었다!) 그날 나는 버스 카드에 잔액이 없어서 A친구 B에게 천원을 빌리기까지 했다. 다음 날 앞반으로 찾아가 B에게 남색 삼단 우산을 돌려주고 돈도 갚았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앞반 뒷문으로 가서 누굴 부른 것이었는데 그게 A가 아니라 B였다. 그리고 나는 2년 뒤에 B와 첫 연애를 하게 된다.

연애에 대한 대부분의 교훈이 첫 연애 때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게 우리의 첫 교훈이었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는 것. (A가 1년 내내 나에게 직진하다 전 여친과 다시 사귈 줄 누가 알았겠나. 그 자식은 끝까지 나한테 고백 한 번 하지 않았다. 이게 포인트.) 그럼에도 징조는 이미 도처에 있었다는 것. (B와 내가 샅샅이 찾아내고 결국 우리가 사귐으로써 기어코 완성한 의미심장한 징조들.)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나의 입장. 저 모든 시끌벅적한 서사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게 나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내 관점에서 사건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나는 애초에 아무와도 사귈 생각이 없었다. 이건 내 안에서 확고하게 확정된 결론이었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엄마는 학생이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고 나를 가르치셨는데 나는 정말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둘째로 나 스스로 연애를 해야 할 이유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 완고함이 내게 있었고 게다가 논리는 강해서 대부분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네가 좋은지 모르겠어.’ ‘좋을지 나쁠지 모르는 연애를 굳이 해봐야 할까?’ ‘그리고 그게 하필 너여야 할까?’ B는 완고하지도 않고 논리도 별로였는데 뭐든 열심히 했다. 설득하지 않으니 방어할 설득이 없는 모순 공방이 이어졌다. 어쨌든 우리는 사귀게 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서로의 무언가를 깨부수는 일. 알고 보니 그 파괴가 바로 연애의 본질이었다! 확고하게 확정되었다고 믿었던 나의 일부, 나의 선택, 나의 미래를 바꾸는 일. 그동안 가족이나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 모든 이해가 얼마나 얕은 성취였는지 알게 되고, 인간은 사실 이토록 복잡하고 이상한 존재라는 것, 내 연인뿐 아니라 나 역시 그런 인간의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가는 과정. B와의 첫 연애는 불순물 없이 오직 나만의 믿음과 욕망으로 세운 견고한 벽들을 부수고 나를 침략한 완전한 타인의 생각, 고집, 요구, 성향과 뒤섞였던 역사다. 이제는 오직 폐허의 풍경으로 남은 부끄럽고 서툰 역사. 하지만 모든 폐허는 흥망성쇠를 품었던 자리이고 누가 뭐래도 나와 B는 그 폐허의 주인이다. 우리가 어리석고 오만한 벽을 세우고, 부수고, 결국 무너져 사라지도록 만든 첫 번째 폐허다. B는 내 삶에서 완전히 떠났지만 나는 언제나 내 안의 그 폐허를 들여다볼 수 있다. B가 바라보는 폐허가 나와는 전혀 다른 모양일지라도.

글 | 우다영(소설가)

 

#다자 연애

폴리아모리는 1 대 1 독점 연애가 아닌 방식으로 애정적인 돌봄과 성애적인 관계를 나누는 관계, 또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맺는 관계 중에선 상대적으로 가벼운 관계도 있지만, 꽤 깊게 서로 책임지는 관계도 당연히 있다. 폴리아모리를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관계로 바로 연상시키는 것은 조금 부당한 로직이다. 상호 인정 속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깊이 대화해야 하고, 때로는 수많은 심리적 갈등도 감수해야 한다.

작년 홍승은이 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는 실제로 저자가 두 명의 애인과 한집에서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가 쓰인 에세이다. 애인이 두 명인 것도 모자라 그 애인들이 한집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 충격적인 에세이는 생각보다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두 애인을 소개하고 꽤 오랜 기간 상호 이해 과정을 거친 후에, 저자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건넨다. “사위가 둘이라 참 좋다. 당신(엄마)도 든든하겠어.” 아버지가 이런 말을 꺼내기까지 서로 얼마나 부대끼고, 대화하고, 협상했겠는가.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폴리아모리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변하기도 한다. 나와 연애한 전 애인 중에서도 처음에는 한사코 자신은 폴리아모리를 할 수 없다고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네가 진짜 날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네가 이기적인 거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러다가 네가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은 허용해줄 수 있지만, 자기는 한 사람만 바라보고 연애할 거라는 합의까지는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개월 만나다가, 그 친구에게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에는 말하기 어려워했는데, 내가 낌새를 눈치채서 혹시 다른 사람이 생겼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펑펑 울면서 자기가 바람을 피웠다고 우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으니까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용기 내서 만나라고 말해주고, 응원해줬다. 그 이후에도 나는 내 애인의 다른 연애 시도에 대해서 연애 상담을 해주는 일이 더러 생겼다.

결국 내 애인은 짝사랑하던 그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듣고 다시 물어봤다. 여전히 자기 자신을 해바라기 사랑꾼이라고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나에게 “너랑의 연애를 계기로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거 같아”라고 답했다. 애인은 나에게 자신의 새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줬고, 만난 날 애인의 적극적인 권유로 세 명이 함께 잠자리를 갖기도 했다. 폴리아모리를 절대 못하겠다던 그 친구는 나보다 더 폴리아모리에 진심인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난 애인의 애인과 섹스를 해본 경험이 그때 한 번밖에 없는데 꽤 참신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또 이럴 수 있을까?) 이 친구는 나랑은 헤어졌지만 여전히 합의된 폴리아모리를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요새도 연락하면 남자가 너무 좋은데 왜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한 사람에게만 한정해서 만나야 하냐고 되려 내게 반문하기도 한다.

나도 스무 살 이전까지는 한 사람만 바라보며 연애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마주한 관계의 사연들을 어떻게 이어 나가고 싶은지 하는 욕구를 알아채는 것이다. 주기적으로 성적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인지, 상호적인 돌봄의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인지, 서로에 대한 호감과 애정을 나누고 싶은 것인지. 이런 관계 욕구들에 반드시 연애라고 이름 지을 필요도 없고, 특히나 독점적인 연애만이 이런 욕구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열고 상상력을 넓힐 필요가 있다. 상호 돌봄, 성적인 의미 부여, 호감과 애정 나누기를 독점적인 단 한 사람과만 나누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과의 교감 속에서도 우린 충분히 안정적인 삶을 갈구할 수 있다. 관계 협상은 그 전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는 전적으로 한 사람에게 상호 돌봄에 대한 기대와 성애적 의미를 부여하며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게 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관계 맺음의 고려사항에서 독점 연애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아는 게 제일 중요하다. 지금 자신의 연애관, 성적 가치관이 그냥 사회에서 학습된 건 아닌지, 진짜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한 번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글 | 심기용(책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 저자)

 

#자기애와 연애

상에서 무엇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네이버 지식인에 그것을 검색한다. 그게 바로 나다. ‘사랑이 뭘까요.’ ‘사랑은 웃는 걸까요, 우는 걸까요.’ 내가 모르는 지점은 이 사랑이 나를 지키려는 것인지 너를 지키려는 것인지였다. 내 사랑이 오해받으면 어떡하지, 나는 진짜인데 그에게는 이게 진짜 같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연인에게 서운한 감정이 커질 때마다 내가 도자기 굽는 체험을 하는 사람처럼 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사랑해, 그런데 여기가 좀… 사랑해, 여기도 좀… 사랑해, 여기만 좀… 성숙한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나는 그에게 충분한 도자기인가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직 아프고 화나고 미안한 상태였다. 저기는 좀 안 가면 안 되나, 나 불안하고 무서운데 그런 말 좀 안 하면 안 되나, 그러다 어느새 그와 멀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 지식인에선 ‘사랑이 다른 나라 말로 무엇인가요’라는 질문만 해결 가능했다. 그러다 새 시대의 검색엔진, 유튜브로 넘어온다. 유튜브 인기 영상 중 하나는 ‘백프로 연락 오는 주파수’다. 헤어진 연인이든 지금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에게든 아무튼 간절한 대상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것인데, 나는 역시나 댓글을 지나치지 못하고 집중해서 본다. 그들은 집념에 찼거나 체념했다. 어떤 방향이든 극단이다. 그들은 각자의 사연을 댓글에 적었고, 나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생각한다.

연락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는 중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사랑은 기다리게 하고 노래를 듣게 한다. 초등학생 시절 손가락 길이만 한 아이리버 MP3가 유행했다. 나는 MP3에 비의 ‘안녕이란 말 대신’을 넣고 언니가 알려준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 OST를 넣었다. 유명한 앨범에 끼어 있는 안 유명한 곡을 넣었다. 네 MP3에 뭐 있나 보자, 하고 빌려간 친구들은 아 다 모르는 노래 아니면 느끼한 노래밖에 없어, 라고 했다. 어느 날에는 ‘롢닿탁’ 같은 파일명의, 나만 아는 노래를 좋다고 하는 애를 만났다. 그가 교실에서 만난 친척같이 가깝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애의 MP3 목록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 순간의 호감은 고작해야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의 마음을 연장하고 싶은 욕망일 뿐.

그의 마음이 궁금해 그도 하지 않는 페이스북에 들어가 이름을 검색해보던 시절, 그가 꼭 나만큼의 음심을 품지 않았더라도 그는 언젠간 각별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연애는 이렇게도 해볼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난 네가 좋아… 네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가 너에게 다른 사랑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더라도, 그 느낌은 그가 아니라 나에게서 솟는 것이라는 걸 안다. 이 에너지가 너를 바꾸지 않는 곳으로 흐를 수 있을까.

이별은 간단하다. 그만하자는 말로 복잡한 매듭을 끊고 고조된 긴장감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부풀었다가 쪼그라드는 감정과 함께 표류하기로 한다. 내 한계를 감당하면서.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면 너무 추워 매연이라도 맞고 싶다. 나의 중요한 것이 너에게 있어서 우리는 헤어지면 안 된다. 네가 사랑스러워서 나는 너를 더 봐야겠다. 그가 나에게 보여준 얼굴들을 생각한다. 나를 배웅하기 위해 역에 따라와서는 기차가 출발할 때 자기도 함께 달리는 척을 하는 모습을. 사랑은 의지와 믿음 같은 착한 단어와 멀고 중독과 욕망 같은 나쁜 것과 잘 붙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중독과 욕망은 어디서 시작되었든 나에게 돌아오고 의지와 믿음은 상대의 주변에서 멎는다. 사랑 중의 사랑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그걸 두려워하다가. 하루는 엄마가 바닥에 누워 조카에게 비행기를 태워주었다. “이거 타고 어디로 갈래?” 나는 저렇게 물어본 적 있나. 엄마는 반나절 조카를 봐주면서도 조카가 엄마는 사랑하고 할머니는 안 사랑해, 하고 말해도 머리를 빗기고 간식을 챙긴다.

사람은 알고 싶은 것에 관해 생각하고, 쓰게 된다. 내게는 그것이 사랑인지, 사랑에 관한 책을 썼다. 책이 가지런히 진열된 서점에 와서 이 글을 쓴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서점원이 독자분이 부탁을 하셨는데요, 하고 쭈뼛 책을 내민다. 혹시 책에 사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함을 묻는데 산 사람과 갖는 사람이 달랐다. 나는 두 이름을 오래 보았다. 모든 걸 녹이는 여름에 관해서, 여름에 할 수 있는 대범하고 자유로운 사랑에 관해 적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감정과 싸우고 연인과 다툴 것이다. 의아해하고 서운해하고 불안해할 것이다. 그는 도자기가 아니라는 것과 그 나름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우주라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그가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내가 모르는 곳에 있는 그를 나는 우선 꼭 안아주고 싶다. 그를 안으면 나는 하려던 말을 잊는다. 그는 내게 뭐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물을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지식인에 사랑이 뭐냐고 물어온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 싶다. 내공을 받을 수 없더라도.

글 | 서한나(책 <사랑의 은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