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캔버스 위에 수놓은 샤넬의 도시적 서사, 26 샤넬 공방 컬렉션

명수진

CHANEL 2026 Métiers d’art in Seoul

샤넬과 서울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12년 크루즈 전시를 시작으로 2015년 칼 라거펠트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선보인 크루즈 쇼, 그리고 2018년 ‘파리-뉴욕’ 공방 컬렉션 레플리카 쇼까지. 샤넬은 서울을 일시적 목적지가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창조적 영감의 좌표로 다뤄왔다. 그리고 2026년, 샤넬은 또 한 번 서울을 주목했다.

6월 개관을 앞둔 여의도 ‘퐁피두센터 한화’는 이번 공방 컬렉션의 무대이자 거대한 설치 작품처럼 기능했다. 현대 건축의 구조적 긴장과 한강이 지닌 유동적인 에너지가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모델들은 피카소와 브라크 등 큐비즘 거장들의 작품 사이를 가로질렀다. 패션과 현대 미술이 교차하는 순간은 쇼적인 연출을 넘어 도시라는 유기적 존재를 해석하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다채로운 인물 군상을 입체적으로 포착한 하나의 영화적 장면이었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처음 선보이는 공방(Métiers d’art) 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지난해 12월 뉴욕 맨해튼의 폐역인 바워리(Bowery) 지하철역에서 공개된 이 컬렉션이 서울이라는 맥락 속에서 어떻게 번역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 그가 포착한 도시의 에너지와 위트, 그리고 정교하고 화려한 공방 기술은 고유의 활기와 독특한 속도감을 지닌 서울을 만나 한층 더 선명해졌다.

핵심은 ‘착시’였다. 오버사이즈 화이트 티셔츠, 헐렁한 데님 팬츠, 하프 집업 풀오버 같은 도시의 일상적이고 웨어러블한 아이템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 표면 아래에는 샤넬의 ‘르19M(le19M)’ 공방들의 압도적인 테크닉이 층층이 잠재돼 있다. 르사주(Lesage)와 몬텍스(Montex) 공방의 장인들이 수 시간에 걸쳐 한 땀 한 땀 박아 넣은 비즈와 자수는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일렁였고, 건축물의 구조적 디테일을 직물 위에 정교하게 모사했다. 특히 르사주에서 직조된 트위드는 섬세함과 야성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하며 컬렉션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구센(Goossens) 공방은 금속을 다루는 예술적 접근으로 룩의 무게중심을 잡는다. 망치질과 파티나 처리, 스톤 세팅을 거친 장식은 마치 파인 주얼리처럼 정교한 세공이 돋보였다. 파리에서 14세기에 시작된 장인 정신을 이어 온 메종 미셸(Maison Michel)의 장인들은 나무를 깎아 형태를 정하고 원단을 잡아 늘리며 모자를 하나의 조형물로 완성했다. 르마리에(Lemarié) 공방의 정교한 장식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장인들이 엠보싱 볼로 하나하나의 형태를 섬세하게 잡아낸 뒤 완성한 꽃잎은 자수, 인그레이빙, 압착 또는 프린지 처리 과정을 거쳐 마침내 한 송이의 꽃으로 피어난다. 또한 숙련된 장인들이 핀셋과 칼을 이용한 정교한 커팅을 비롯해 컬링, 패턴 자수, 피그먼트 염색 등 수많은 기법으로 형태와 색을 더한 깃털은 치마 밑단이나 자락 사이사이에 얹어져 묵직한 예술적 무게감을 더했다.

런웨이의 또 다른 축은 1920년대 사교계의 화려한 아르데코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실크 라운지 룩과 강렬한 색감의 트위드 스커트 수트가 채웠다. 어깨 라인을 강조한 대담한 블레이저와 그래픽 니트웨어의 매치는 동시대적 여성상을 명확히 그려냈고, 뉴욕의 잔상을 담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전복시킨 형태의 플리츠 프린지 스커트와 슈퍼히어로를 연상시키는 원색 그래픽 니트는 퐁피두센터 한화의 베뉴와 어우러지며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이번 서울 쇼의 오프닝은 모델 신현지가 열고 피날레는 모델 최소라가 닫았다. 특히 최소라는 D라인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등장해 또 하나의 인상적인 서사를 더했다. 현장에는 하우스의 글로벌 앰버서더인 블랙핑크 제니를 비롯해 김고은, 고윤정, 김민하, 지드래곤, 박서준, 이정재, 르세라핌 카즈하 등 동시대의 스타일 아이콘들이 대거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마티유 블라지의 첫 번째 샤넬 공방 컬렉션의 서울 상륙은 일상의 궤적 위에 하우스의 오랜 헤리티지를 서사적으로 엮어낸 영민한 시선을 가장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역동적인 도시의 에너지를 장인들과 함께 정밀하게 직조해내며 샤넬이 왜 여전히 시대를 이끄는 하우스인지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했다.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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