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해시태그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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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세상에서 사람들은 ‘뉴노멀’을 외쳤고, 트로트는 세대 간극을 뛰어넘어 온 나라에 열풍을 일으켰다. 극장을 떠난 한국 영화는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섰으며, SNS에서의 고백과 폭로는 상찬 혹은 난장을 낳았다. 숨 가삐 달렸으니 이제는 잠시 멈춰 설 때, 해시태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 2020년이 여기 있다.

웹툰이 불 지핀 #표현의 자유 논란

“또, 기안84다”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올해 8월의 일이다. 기안84가 연재하는 웹툰 <복학왕>의 304화 ‘광어인간’ 에피소드가 여성 혐오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극 중 실력 없는 여성 인턴 봉지은은 인턴십이 종료되던 날 치러진 회식 자리에서 자신의 배 위에 커다란 조개를 올려놓고 막대기를 내려쳐 조개를 깨부수는 기행을 펼친다. 조개는 유난히 번질거리고, 깨진 조개에선 사방으로 물이 튄다. 한 발 나아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봉지은은 독백으로 읊조린다.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학벌, 스펙, 노력… 그런 레벨의 것이 아닌…” 평소 봉지은의 무능함을 비웃던 남성 팀장은 문제의 ‘조개 장면’ 이후 봉지은을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팀원들에게 봉지은과 교제하게 되었다고 알린다. 여성의 성기를 빗대는 질 낮은 비유를 경유해 평소 자신의 능력 부족을 ‘애교’로 메우려던 여성이 성 상납을 통해 정직원이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사건도 대사도 ‘난데없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여성 신체에 대한 비하적 표현이 시대를 역행해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현실, 구직 전선에 나선 여성이 마주하는 왜곡된 현실을 게으르게 재생산하는 방식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해당 장면이 논란이 되자 기안84는 사과문을 발표하며 말했다.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생각했는데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사과문을 보자면 누가 기안84에게 ‘개그’를 위해 타자를 조롱하는 방식을 택해도 된다는 권리를 주었는지 궁금해진다. 기본적인 윤리 의식조차 배반한 작품을 ‘사회 풍자’라고 항변하는 기안84의 배짱만큼은 적어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과문이었다.

<복학왕>을 둘러싼 소동은 ‘또 하나의 여성 혐오 사건’으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웹툰 작가 주호민을 필두로 드라마 <풀하우스>의 원작자인 원수연 만화가, 웹툰협회가 나서 기안84를 둘러싼 논란이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규정하기 전까지는. 이들의 입을 모으자면 <복학왕>의 연재를 중단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기안84가 출연 중인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해야 마땅하다고 제기되는 목소리는 “시민 독재”(주호민)이며 “만화계 역사의 치욕스러운 암흑기를 다시 오게 하려는 패륜적 행위”(원수연)이자 “파시즘”(웹툰협회)과 다름없었다. 여론은 다시 재판에 들어갔다.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아 웹툰을 그들만의 ‘거룩한 성지’로 만들려고 한다며 비판하는 진영과 군중 검열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회가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는 진영 사이에서 물러남은 없어 보였다. 물론 한국 여론에는 병적인 부분이 있다. 개인이 생각하는 정의를 ‘절대 선’으로 가장해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려”라며 휘두르는 폭력적인 프레임, ‘논란’이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기까지 난무하는 무자비한 칼질, ‘사이버 자경단’이란 명찰을 내세워 논란 당사자에게 가하는 온라인 공격과 실질적인 외압. 한국의 여론을 둘러싼 현주소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소강 국면에 접어든 10월, 논란을 재점화한 사건은 블랙핑크 신곡 ‘Lovesick Girls’ 뮤직비디오에서 터져 나왔다. 제니가 입은 간호사 복장이 특정 직업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여론은 다시 회초리를 들었다. 가사 ‘내가 상사병에 걸렸을 땐 의사도 소용없어’를 반영한 의상으로, 뮤직비디오도 하나의 독립 예술 장으로 봐달라는 YG의 공식 입장이 무색하게도, 결국 5일 만에 YG는 해당 장면의 삭제를 결정했다. 이후 제니는 ‘검열된(Censored)’이라는 문구가 적힌 청바지를 입고 음악 방송에 등장했다. 표현의 자유와 검열이라는 여론의 경계에서 발이 묶이는 딜레마,이 소화불량과도 같은 갈등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나는낙태했다

20194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순간만 해도 1953년 제정된 낙태죄는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싶었다. 이후 16개월이 지나 올해 10월 정부는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좋게 말해 어정쩡한 봉합, 엄밀히 말하자면 지난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사실상 후퇴시키는 예고안이다. 이후 고통의 무게가 실린 선언이 SNS에 들불처럼 번졌다. “2020년인데 아직도 낙태죄를 논합니까. 저는 이 땅의 몸의 경험들과 연대합니다” 라는 이길보라 감독의 심지 굳은 발언은 ‘#나는낙태했다’ 릴레이 선언에 기름을 댔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입법 시한은 올해 1231일이다. 낙태죄 전면 폐지라는 마침표의 행방도 이때에 달렸다.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

올해 6월 서울광장에선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최를 두 달 앞둔4 월 행사를 주최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이유로 불가피하게 행사가 취소될 수밖에 없음을 알렸다. 하마터면 그렇게 무지갯빛 행진을 못 볼 뻔했다. 이후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SNS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6월의 일이다.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해시태그를 수단으로 기획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가 그 정체다. 623일부터 12일간, 전례 없는 온라인 퍼레이드에 동참한 이만 85767명. 아무리 게으른 방관자라 할지라도 SNS상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행진을 보고 지나쳤을 법한 숫자다. 전염병, 혐오보다 강한 연대의 가능성은 올해 SNS에서 새로운 꽃을 틔웠다.

그럼에도 빛난 #올해의 전시는?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6월 18일~11월 8일

“이승조 하면 떠오르는, 빈틈없이 화면을 가득 채운 밴드나 파이프 형태의 이미지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들에 ‘핵(Nucleus)’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였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이승조는 자신만의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를 뚝심 있게 전개한 작가로 꼽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회고전 <이승조: 도열하는 기둥>은 작가의 대표 작품 90여 점과 아카이브를 망라한, 작가의 작품 세계만큼 반짝이고, 고집스럽고, 그래서 감동적인 전시였다. 작가의 작품을 ‘색 띠의 탄생’, ‘평면과 모티프의 구축’, ‘고요한 일렁임’, ‘음과 양의 변주’, ‘무한을 향하여’ 등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오가며 많은 관객이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 김재석(갤러리현대 디렉터)

<스테레오 비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10월 16일부터 11월 4일까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세계를 다른 감각과 지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한 해였다. 사회로부터 고립되기를 권유받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함께 ‘경험’하고 ‘공유’할 방법을 찾는 것에 절실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 모여 공동 창작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결과물을 예술 작품으로 보여준 <스테레오 비전>은 유독 많은 질문을 던진 전시였다. 타인과 함께 창작을 하기 위한 출발점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어떤 생각이 그들을 이끌어 나갔을까, 이 과정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또 변화시켰을까, 그 끝에서 과연 그들은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모종의 환희를 경험했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 김민정(바라캇 컨템포러리 큐레이터)

<공기를 두드려서>

바라캇 컨템포러리, 5월 12일부터 7월 5일까지

“거절. 신뢰. 미세함.’ 정서영의 조각에 관한 바라캇 컨템포러리 강연에서 비평가 유진상이 제안한 키워드다. 그가 얼마나 좋은 작가인지 형언하려다 늘 ‘거절’당하고 마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탁월하고 간결한 솜씨로 정서영을 말할 방법이 없다. 4년 만에 열린 개인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는 한층 서늘하고 단단하게 벼려졌음을 확인했다. 한국 동시대 미술의 한 장면을 연 그가 이제 하나의 시공을 파괴하려 한다. 정서영에 이어 특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이 기묘한 갤러리의 다음 선택도 주목할 만하다”. – 윤율리(독립 큐레이터)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2020 부산비엔날레, 9월 5일부터 11월 8일까지

“정면 돌파! 서울과 광주에서도 열렸어야 할 비엔날레들이 코로나19로 일정을 내년으로 미룬 가운데, 2020 부산비엔날레는 갈 곳을 찾지 못한 작품들이 숨 쉴 공간을 마련해주려는 듯 부산시 전역에서 치러졌다. 부산현대미술관뿐 아니라, 구도심의 곳곳, 심지어 항구의 야외 공간마저 전시장으로 활용한 것. 몸을 웅크리고 있던 전국의 미술 애호가, 작가, 큐레이터들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열렬히 화답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 – 박재용(독립 큐레이터, 통번역가)

<탱크>

아트선재센터, 1월 19일까지

“너는 어떤 사람이니?” 어른이 초등학생쯤 되는 아이에게 묻자 아이가 되묻는다. “어디서요?” 한때 인터넷을 떠돈 이 유튜브 영상을 통해 추측해볼 수 있는 건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가상세계는 또 하나의 실재 현실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을 두 가지로 받아들이는 세계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립될까? GPS, VR, 페이스 스왑, 게임 등의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뒤섞는 영상 작업을 펼쳐온 김희천의 신작이자 동명의 전시 <탱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과도 같은 전시였다. 작품 속 작가는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기 전, 감각 차단 탱크에서 시뮬레이션 잠수 경험을 하며 자신이 가상세계에 있는지 실제 잠수 중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중의 자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불안감과 동시에 즐기는 태도를 보인다. Z세대에게 ‘정체성’이란 이러한 질감이 아닐까? 전시를 관람한 사람이라면 분명, 41분짜리 영상 1개 작업이 전부인 이 전시를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기억하게 될 것이다. ” – 김민수(PKM갤러리 홍보팀)

드라마를 점령한 #감정 없는 남자들

SBS 드라마 <앨리스> 속 여자 주인공 윤태이(김희선)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별다른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남자 주인공 박진겸(주원)을 향해 몇 번이고 짜증을 낸다. 이것은 윤태이가 유난스럽거나 히스테릭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다. 박진겸이 애초에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성격 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박진겸이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보일 때마다 시청자들 또한 윤태이 못지않게 시원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tvN <비밀의 숲>이 시즌 2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황시목(조승우)은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데 어려움를 겪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 했던 뇌 수술의 여파로 그는 시즌 1 내내 차갑고 이성적이기 그지없었고, 시즌 2에서도 여전히 감정이 없는 남성의 깔끔하고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력은 늘 빛이 났다. tvN <악의 꽃>에서 이준기가 연기한 도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연쇄살인범의 아들이라는 사회적 낙인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신분 세탁까지 해야 했다.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연습해 사랑을 연기했고, 슬픔을 연기하며, 아주 철저하게. 황시목이나 박진겸보다 생존의 압박을 느끼는 상황에 처한 그에게서는 두 사람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안타까움까지 묻어났다.

2020년은 드라마 산업에서 유독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남성 캐릭터가 도드라진 해였다. JTBC <모범형사>의 오지혁(장승조)이 그랬고,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박준영(김민재)이 그러했으며, JTBC <경우의 수>의 이수(옹성우)도 그랬다. 이전에는 무뚝뚝한 남성 캐릭터라고 단편적으로 묘사되던 이들의 캐릭터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복잡다단한 사연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같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차분하고 소심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채송아(박은빈)가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친구의 배신을 숨겨준 박준영에게 “다신 그러지 말라”며 이건 스스로의 일임을 확실히 할 때, <경우의 수>의 경우연(신예은)은 끊임없이 이수에게 고백하면서 솔직하게 사랑의 이름으로 덤벼들었다. 윤태이가, 한여진(배두나)이, 차지원(문채원)이 혼돈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직감이 이끄는 대로 극적인 상황에 뛰어들었듯이 말이다.

이런 변화는 페미니즘 이슈가 대두된 이래 몇 해 동안 조금씩 일어난 변화의 연장이다. 그러나 2020년의 드라마 산업에서는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의 성향 대비가 본격적으로 눈에 띄기 시작했으며, 장르와 그에 따른 서사 또한 풍부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스릴러나 수사물뿐만 아니라 로맨스물에서도 남성 주인공을 깊은 구덩이 안에서 건져내는 튼튼한 동아줄을 가진 여성 주인공이 나오고, 두 사람의 공조나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마다 우리는 새로운 쾌감을 맛보았다. 새로운 재미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들 틈을 파고들었다. 글 | 박희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올해의 인명사전

미술계 최강 인플루언서, #RM

올해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떠돈 말이 있다. ‘한국 미술계는 RM이 본 전시와 안 본 전시로 나뉜다.’ 이를 방증하듯 올해 RM이 다녀간 전시를 망라한 기사가 쏟아졌다. 3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김종학 개인전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Ⅲ 김종학〉부터 지난해 이탈리아 포르투니 미술관에 이어 올해 4월 PKM 갤러리에서 열린 <윤형근 1989-1999>, 10월 갤러리현대에서 개관과 동시에 작가에게 꾹꾹 눌러 쓴 편지까지 전한 김창열 개인전 <더 패스> 등. ‘RM 리스트’를 살피고 있자면 그가 바쁜 스케줄을 쪼개가며 참으로 방방곡곡 발로 뛰었다는 인상과 취미 차원의 컬렉팅에서 넘어서 미술사학적으로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는 뉘앙스마저스친다. 올해 한국 미술계의 숨은 히트 상품은 ‘RM의 발자취 따라간 성지순례’가 아니었을까?

‘조선의 힙’을 묻는다면, #이날치

더 이상 ‘1일 1깡’만 기억할 일이 아니다.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이날치’ 밴드와 손잡고 기획한 홍보 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를 본 이들은 일찍이 ‘1일 1범’을 외쳤다. 합산 조회수 2억7000만을 훌쩍 넘기고 있는 이 영상은 이날치 밴드의 ‘범 내려온다’를 배경 음악으로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무용수들 이 서울의 곳곳을 돌며 신명 나게 춤추는 모습을 담는다. 청와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경유해 영화 <기생충>의 배경이기도 했던 자하문 터널까지 꾹꾹 눌러 담은 영상을 시청한 외국인들은 말했다. “코로나19인데 한국 가고 싶어 어쩌나…” ‘두 유 노우 코리아?’가 주는 민망함을 영리하게 걷어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국뽕’은 고개를 내밀었고, 사람들은 “이게 바로 조선의 힙이다”를 외치거나 “공기관에서 웬일로 세금 안 아깝게 일을 했다”며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아무도 즐기지 않는 전통은 박물관에만 머무는 법. 전통을 현대로 멱살 잡고 끌고 와 매끈한 재해석을 보여준 이날치를 앞으로도 주목해야 한다.

가황의 귀환, #나훈아

실시간 순간 시청률 41.44%. 인터넷이 발달하며 방송판이 뉴미디어 중심으로 새로 짜이기 시작한 이래 이런 숫자를 구경한 적은 없다. 추석 연휴 KBS에서 방영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 만의 외출> 이야기다. ‘그 옛날 가수’ 혹은 ‘5분을…’로만 나훈아를 인식하던 젊은 세대는 방송이 끝난 직후 각종 ‘밈’을 생성해 퍼 날랐으며, 어느 발 빠른 인터넷 백과사전에선 신곡 ‘테스형’의 가사를 반영해 나훈아의 인적 사항에 ‘소크라테스와 의형제 관계’라는 한 줄을 추가했다. ‘노개런티’로 치른 나훈아 인생 최초의 비대면 공연은 결국 재방송이란 긴급 편성까지 이끌어냈다. 올해 안방 1열을 달군 인물로 ‘가황’ 나훈아만 한 이가 있을까?

피처 에디터
전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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