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스퀘어 새긴 구찌 유니버스, 27 CRUISE 구찌 컬렉션

명수진

GUCCI 2027 CRUISE COLLECTION 컬렉션

“구찌와 이 도시의 인연은 70여 년 전 피프스 애비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타임스퀘어 한복판에서 쇼를 열고, 그곳의 스크린과 빌보드를 무대 그 자체로 활용함으로써 구찌를 이 도시의 중심에 세우고자 했습니다.”

디렉터 뎀나(Demna)의 말처럼, 뉴욕은 구찌의 역사에서 언제나 특별한 이정표였다. 1953년 하우스가 해외 첫 매장을 열며 글로벌 확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도시. 바로 그 뉴욕의 심장부에서 펼쳐진 2027 크루즈 컬렉션 ‘구찌코어(GucciCore)’는 하우스에 있어 찬란한 홈커밍(homecoming)의 순간이었다. 대중과의 타협 대신 브랜드의 원초적인 유전자를 파고든 이번 컬렉션은 하우스의 본질을 가장 동시대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구찌의 ‘코어 워드로브(Core Wardrobe)’를 단단하게 벼려냈다.

5월 16일 토요일 저녁, 자본주의의 거대한 용광로이자 뉴욕을 상징하는 타임스퀘어 광장은 통째로 구찌의 런웨이가 되었다. 럭셔리를 은밀한 성역으로 남겨두려던 패션계의 관행을 비틀어, 뎀나는 구찌를 가장 민주적이고도 소란스러운 공간의 한가운데에 던져놓았다. 이는 영리하고 흥미로운 동시에 완벽히 구찌적인 도발이었다. 타임스퀘어를 에워싼 초대형 디지털 전광판들은 구찌의 가상 광고판으로 일제히 탈바꿈했다. 구찌 아쿠아(Gucci Acqua), 구찌 언더웨어(Gucci Underwear), 구찌 타임(Gucci Time), 구찌 짐(Gucci Gym), 팔라초 구찌 호텔(Palazzo Gucci hotel), 구찌 하이 주얼리(Gucci High Jewelry)를 넘어 구찌 펫(Gucci Pets)과 패션계의 영생에 대한 집착을 위트 있게 풍자한 구찌 라이프(Gucci Life)의 ‘장수 캡슐 컬렉션’까지. 스크린 속 영상들은 구찌를 하나의 브랜드가 아닌 거대한 미적 정체성이자 삶의 방식으로 확장시켰다. 한편, 이 소란스러운 스펙터클 이면에는 1980년대 피프스 애비뉴 구찌 갤러리아(Gucci Galleria)의 전용 골든 키(Golden Key)를 오마주한 비밀스러운 인비테이션이 존재해, 하우스 특유의 은밀하고 농도 짙은 서사를 영민하게 대조시켰다.

이번 컬렉션의 핵심은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품은 인간 군상의 단면을 포착하는 데 있었다. 매디슨 애비뉴의 주식 브로커부터 브루클린의 스케이터, 소호의 소셜라이트와 할렘의 예술가까지, 도시의 골목이 교차하듯 수많은 스타일이 런웨이 위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쇼의 미학적 뼈대는 작가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의 연작 ‘도시의 사람들(Men in the Cities)’에서 기인한다. 백색 배경 위에서 신체의 균형이 무너진 채 댄스인지 추락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몸짓을 보여주던 로버트 롱고의 목탄화 속 인물들처럼, 뎀나는 자본주의의 불안과 활력이 공존하는 뉴욕의 정서를 런웨이 위에 고스란히 재현했다. 핀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비즈니스맨과 풍성한 시어링 코트를 걸친 여성들은 마치 평범한 뉴요커처럼 아이폰과 동네 마켓에서 산 꽃다발, 요가 매트를 들고 무심히 걸어 나왔다. 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얼굴들, 그들 각자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스타일 아카이브이자 살아있는 문화적 텍스트였던 셈이다.

의상은 하우스의 언어를 이루는 불변의 근간에 오롯이 집중했다. 피코트와 트렌치코트, 수트, 셔츠, 펜슬 스커트 등 이탈리아적 글래머와 우아함의 정수를 관통하는 아이템들이 견고하게 축을 잡았다. 여기에 뎀나 특유의 파괴적인 디테일이 긴장감을 더했다. 버터처럼 부드러운 레더와 모노그램 패브릭으로 제작된 원형 듀베 스톨(Duvet Stole)은 극적인 실루엣을 이루었고, 1950년대부터 하우스의 상징이었던 웹 스트라이프는 방도 톱(Bandeau Top)으로 변주되었다.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시그니처 홀스빗은 구조적인 힐 부츠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시퀸과 깃털 등으로 화려하게 무장한 알타 모다(Alta Moda) 드레스는 하우스의 탐미주의적 정체성을 여실히 증명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뉴요커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구찌 NY 토트백’도 주목할 만 하다. 뉴욕에서의 쇼를 기념해 특별 제작되었고, 쇼 직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도록 선보여졌다. (현재 국내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구매 가능하다.)

캐스팅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정교한 내러티브였다. NFL의 전설 톰 브래디(Tom Brady)부터 톱 모델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Emily Ratajkowski)까지 등장한 데 이어, 자신의 시그니처인 금발을 지운 채 갈색 머리 가발을 쓰고 런웨이에 오른 파리 힐튼(Paris Hilton)은 시대의 아이콘이 소비되는 방식을 드러내는 강렬한 코멘터리였다.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한 레전드 모델 신디 크로포드(Cindy Crawford)까지, 뎀나는 대중에게 각인된 인물들의 상징성을 컬렉션의 완벽한 일부로 직조해 냈다. 프런트 로를 가득 메운 안나 윈투어(Anna Wintour), 마라이어 캐리(Mariah Carey),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등 당대의 아이콘들은 물론, 배우 이영애와 타잔 등 셀럽들의 등장은 타임스퀘어의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구며 컬렉션의 거대한 스펙터클을 완성했다.

타임스퀘어의 화려함과 도발적인 캐스팅이 주는 충격에만 매몰된다면, 이 컬렉션이 이룩한 진짜 성취를 놓칠 우려가 있다. ‘구찌코어’는 뎀나가 지속해 온 캐릭터 스터디 접근 방식의 네 번째 막으로, 앞선 라 파밀리아(La Famiglia), 제너레이션 구찌(Generation Gucci), 프리마베라(Primavera) 컬렉션의 파편화된 언어들을 하나의 단단한 우주로 응집시킨 결과물이다. 뎀나는 얕은 기교 대신, 구찌의 본질을 이루는 클래식한 아이템들로 런웨이를 채웠다. 2027년 크루즈 컬렉션을 통해 구찌가 뉴욕의 심장부에 아로새긴 것은 일상과 가장 밀착된 자리에서 피어난, 가장 정교하게 조율된 모습의 럭셔리였다.

사진
Courtesy of 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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