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을까? 멋진 장소는 어떻게 구했을까? 우아하게 포즈를 하는 모델에게는 어떤 힘든 미션이 주어졌을까? 지면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카메라 뒤의 다양한 속사정들이 여기 펼쳐집니다.
화보 촬영을 하다 보면 생각 치도 못한 돌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머릿속으로 생각했을 땐 그럴 싸 할 것 같은데 정작 결과는 생각과는 딴판인 상황이 벌어지는 것. 이번에도 그랬다. 촬영 전날 직접 페인트 색을 고르고 벽면 3개에 각기 다른 페인트를 칠해놓고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건만 허무하게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의상, 조명, 헤어 & 메이크업 모든 요소가 배경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의 판단 오류였던 셈. 욕심이 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수시간의 장고 끝에 눈물을 머금고 애써 칠한 배경을 포기했다. 컬러 배경이 사라지자 촬영은 일사천리! 그나마 다행일까? 돌이켜보면 길고 긴 시간 동안 에디터의 방황을 참고 기다려준 스태프들에게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 그나저나 아까운 페인트…… 언젠가는 꼭 다시 써야 할 텐데. 에디터 | 송선민
패션 에디터로 살며 수천 수만 벌의 옷과 액세서리를 접하지만, 오랜 하우스의 역사와 장인의 손길이 담긴 쇼피스를 직접 만지고 느낄 때의 감동은 경이로울 정도! 건축적인 볼륨과 우아한 라인이 어우러진 발렌시아가의 룩을 모던하게 표현해내기 위해 선택한 세트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쇼를 열었을 법한 고풍스러운 파리의 인테리어와 거울이었다. 특히 거울은 “옷은 360도 그 어디에서 봤을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고 이야기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믿음을 표현해내기 위한 장치! 에디터 | 정진아
앤드뮐미스터의 룩을 보는 순간 ‘뉴 히피 제너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자신만의 무채색 세상을 깨고 레드 컬러를 차용한 점에서는 디자이너의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고, 자유로운 영혼에게 뭔가 혁명적인 일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리고는 외로운 겨울 바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운 모래가 깔리고 에머럴드색 바닷물이 있는 해수욕장 말고, 그냥 서있기만 해도 외로워 죽을 것만 같은 그런 바다로 가고 싶었다. 우리가 찾아간 옥계 해수욕장은 딱 그랬다. 좌 군부대, 우 공장이 있는 이곳은 영화 만추에 등장한 시애틀의 바닷가와도 비슷한, 극한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바다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곳처럼 거칠고 외로워 보이는 곳은 난생 처음이었다. 심지어 넓은 모래사장 한복판에는 가로수가 서있었는데, 그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바다는 역시 겨울바다고, 겨울엔 역시 추위를 참으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 해야 하는 로케이션 촬영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에디터|김신
푸석한 머릿결과 건조한 외모, 바스락거리는 종잇장 같은 몸매를 가진 시크한 프랑스 여자가 입을 법한 레이블, 이로의 옷을 보면서 떠올린 곳은 약간은 삭막하지만 온기가 감도는 공간. 그러던 중 성수동 공장 지대에 오픈한 인더스트리얼 갤러리를 발견한 순간, 머리 속에 불빛이 반짝!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얇은 라인을 가진 모델 유지안과 담담한 톤을 가진 이로의 옷 그리고 잔잔한 선율을 닮은 이 공간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에디터 | 정진아
헉! 모델 박세라에게 ‘그 분이 오셨다’. 오늘 의상은 관능미를 대표하는 구찌의 옷이며 야릇하고 기괴한 포즈를 부탁한다는 말을 던지자 고양이처럼 얌전히 앉아 메이크업을 받던 세라는 금박의 세트 위에서 첫 컷부터 다리를 쫙 찢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예쁜 모델 덕분에 신이 난 나와 사진가 목정욱은 첫 컷부터 신이 났다. 한참 촬영이 무르익을 무렵, 나는 세라에게 구찌의 킬힐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편하게 가지고 놀아봐’라고 가볍게 말을 던졌다. 그러자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유명한 우리의 열혈 모델, 세라가 과감하게 슈즈의 굽을 입 안으로 넣는 게 아닌가! ‘역시 박세라!’ 라는 찬사가 여기 저기서 튀어나왔고 목정욱은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촬영이 끝나자 다시 사랑스런 미소를 지으며 “최근 너무 얌전한 화보만 많이 찍어서 그런지 이런 센 화보에 목말랐었나 봐요”라며 배시시 웃는 그녀 앞에서 어찌 하트 눈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에디터 | 김한슬
아프리카와 오리엔탈 무드의 만남. 에디터는 그 해답을 동양적이지만 와일드한 느낌의 우리 민화에서 찾았다. 세트 스타일리스트 김영철 실장은 반짝이는 금색 파우더를 섞은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나무 합판을 레이저 커팅해 그 위에 염료로 민화를 그려넣었다. “스태프 세명이 달려들어 어제 밤새도록 그린거야. 잠 한숨도 못잤어~” 만나자마자 우는 소리를 하는 김영철 실장. 덕분에 뉴욕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모델이 한국 민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몽환적인 컷이 완성될 수 있었다. 에디터 | 이지은
- 에디터
- 에디터 / 송선민, 이지은, 정진아, 김한슬,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