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이 아니라면 접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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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다면 길을 만든다. 불안과 위험의 시대라면 그에 맞는 방식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에서 타인을 만나고 세상을 즐기는 여섯 가지 방식에 로그인해봤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게 최근 몇 개월간 깨달은 사실이다. ‘1인 가구’니 ‘혼밥’이니 하는 건 라이프스타일과 태도의 문제였다. 섬처럼 살고 싶다고 해서 타인과의 접촉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거리 두기와 비대면 같은 물리적 화두가 미션이 되자 우리는 한바탕 소동극을 치렀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을 맺지 못했다. 문명사회를 사는 전 지구인이 등장인물인 이야기 중 대한민국이라는 챕터에서 빈도수가 높게 등장하는 용어가 있으니, ‘언택트’다. 이 말은 김난도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책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물냉면을 ‘물냉’ 이라 부르는 한국에서 ‘언컨택트’보다 발음하기 용이한 단어가 태어난 셈이다(사실 비접촉과 비대면을 뜻하는 말로 영어권에서 쓰는 용어는 ‘논 컨택트’나 ‘제로 컨택트’다). 맘 놓고 사회적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자 모두가 알다시피 온라인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늘었다. ‘랜선 챌린지’ 같은 바람이 연이어 불었고, 서로 ‘이렇게 살아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발 빠른 신조어의 천국이자 IT 강국에서 그렇게 ‘온택트’가 등장했다. 비대면이 숙명이라면,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연결될 방법을 찾자는 바람과 움직임이 모인 끝에 또 다른 신조어가 자연 발생했을 것이다. 지금 변화의 속도는 기존의 조어 방식과 검증 과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급격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큰 틀에서 온택트도 물론 언택트라는 개념 안에 있다. 4월에 출간된 <언컨택트>에서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언컨택트는 서로 단절, 고립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연결되기 위해서 선택된 트렌드’라고 강조한다. 인간관계든 비즈니스 관계든 지금까지는 대면을 통한 관계가 주축이었다. 언컨택트 기술과 서비스는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일과 삶에 지장이 없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흐른다. 배달 앱으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필요한 걸 주문하고, 배송 기사와 마주칠 필요 없이 문 앞에 놔달라고 메시지를 남기면 되는 패턴이 대표적 예다. 김용섭은 ‘가상현실과 증강 현실, 그 둘을 융합한 혼합현실, 더 나아가 여기에 원격의 서로 다른 사용자들이 현실 공간감을 느끼며 협업하는 공존현실’이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진짜냐 가짜냐의 의미가 사라지면 모든 건 그 자체로 실재하는 진짜가 되고, 그 수준에 이르면 대면이냐 비대면 이냐는 더는 중요하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 길로 가는 와중에 사람들의 욕망과 필요에 따라 새로운 문화와 기술이 거듭 출현하고 있다. 그 온택트적인 라이프스타일에서 인상적인 여섯 장면을 복기해 봤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 세상을 만나는 여섯 가지 체험.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뒤섞여 있는 그 풍경이 지금 여기의 ‘뉴노멀’일 것이다.

Scene 1. 대체재인 줄 알았던  온라인 콘서트가  오히려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었다.

콘서트는 KPop 팬의 종착지와도 같다. 오로지 ‘내 가수’ 만을 위해 마련된 공간 속에서 끈끈한 결속을 느낄 수 있는 자리이자, 특히 음악 방송이나 지방 행사에 가지 않는 대다수 팬들에게는 아이돌의 퍼포먼스를 직접 볼 유일무이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공연장을 향한 육로와 항로를 막아버렸다. 월드 투어에 수입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던 기획사에게도 이는 사업의 존속이 달린 문제였을 터다. KPop이 찾아낸 대체재는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콘서트였다.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본래 현장 공연을 계획하고 있던 기획사와 방송사를 중심으로 4월께부터 온라인 콘서트가 속속 등장했다. 지난 석 달여 이어진 ‘온택트 공연’은 아티스트가 스크린 뒤로 후퇴한 관객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현장성이 결여된 공연을 관객이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지를 탐구해왔다.

가장 먼저 온라인 콘서트를 시도한 것은 SM의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다. 일찍이 코엑스 아티움에서 홀로그램 콘서트를 상영한 기획사다운 결정이었다. 첫 시도인 만큼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공연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온라인 콘서트의 접근성은 현장 공연과 비교할 수 없는 강점이었다. 사실 현장 공연은 고난의 연속이다. 교통이 불편한 원거리의 공연장에 어렵사리 찾아가, 수 시간의 대기를 거친다. 사람들에 치이는 불편한 자리에서 좁쌀만 하게 보이는 아이돌과 전광판을 미어캣처럼 살피다 오는 것은 확실히 피곤한 일이다. ‘비욘드 라이브’로 집에서 친구와 함께 마라샹궈에 맥주 한 캔 마시며 여유롭게 공연을 관람하는 쾌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멤버별 ‘직캠’을 포함한 멀티캠이 제공되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구태여 최애 멤버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다.

실시간 댓글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신선한 경험이었다. 현장 공연에서는 응원법을 외치는 것 외의 언어적 의사소통이 억제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티스트에게 직접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온라인 콘서트의 한계라고만 생각했던 현장성의 결여는 오히려 현장의 제약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험의 장을 열어젖혔다. 게다가 이 모든 게 3만 3000원이라니. 현장 공연에 한 번 갈 돈으로 온라인 콘서트를 서너 차례 볼 수 있다. 여러 아이돌에 두루 관심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제안이다.

지난 6월 종영한 Mnet의 <로드 투 킹덤>에서는 온라인 콘서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무관중 공연을 상정한 <로드 투 킹덤>은 관객이 사라지고 오로지 아티스트와 무대만 남은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했다. <로드 투 킹덤>이 택한 것은 ‘360도 회전 무대’다. 관객석을 과감히 치워버리고 무대 한가운데로 카메라를 불러들였다. 아티스트가 관객석을 한 방향으로만 바라봐야 했던 기존의 퍼포먼스 구도는 해체되고, 무대 공간이 입체적으로 재구성되었다. 치밀한 카메라 워킹을 따라 완성되는 퍼포먼스는 색다른 차원의 응집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대 바깥으로 분출되는 에너지를 느끼기보다 무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에 가까운 체험이랄까? EXO ‘으르렁’의 센세이션이 떠오르기도 했다. ‘으르렁’은 원 테이크 퍼포먼스 기법을 사용해 공간을 360로 활용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곡인데, EXO가 방송 무대를 할 때는 퍼포먼스를 좀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현장은 대개 무대와 관객석이 마주보는 일방향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만이 있었던 <로드 투 킹덤>은 생방송으로 진행된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였다. 이는 대면 공연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는 온라인 콘서트만의 자율성을 입증한 시도로 남을 것이다.

6월이 되자 다수의 온라인 콘서트가 쏟아져 나왔다. 4면 스크린과 AR 기술로 공간감을 구현해내고 다채로운 미디어 아트 퍼포먼스를 기획한 CJ ENM의 <K CON:TACT>, 다양한 세트를 넘나들며 무대를 꾸민 방탄소년단의 <방방콘 The Live>, 팬들에게 받은 응원법 녹음 파일을 공연에 삽입한 (여자)아이들의 <ILAND: Who Am I> 등 모두 선례를 바탕으로 연출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였다. 물론 지금까지 진행된 온라인 콘서트는 대개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현장 공연을 갈망하고, 온라인 콘서트는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은 분명 현장에서 얻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고유한 콘텐츠로서의 자격이 충분히 있다. 팬들에겐 접근성을, 창작자에겐 자율성을, 제작자 에겐 효율성을 제공하는 미덕도 갖췄다. 연말만 되어도 이를 확증할 양질의 온라인 콘서트가 대거 등장하지 않을까? 어쩌면 시국이 안정화된 이후에도 온라인 콘서트는 계속될지 모른다. 글 | 스큅(<아이돌로지> 필진)

Scene 2. “온라인 경매는  매월 첫 번째 목요일 오픈합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품 경매 회사 A사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대뜸 팝업창 하나가 반겼다. ‘신진 컬렉터를 위하여’라는 문장과 함께 온라인 경매 일정을 알리는 팝업을 보고 달력을 펼쳐 7월의 첫째 목요일인 2일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기까진, 순전히 호기심의 발로였다고 고백할 수 있다. 팝업창을 따라 온라인 경매의 구체적인 절차를 살피고 스크롤을 찬찬히 내려가며 ‘현명한 컬렉터가 되기 위해 알아두면 좋을 팁’까지 정독했다. 우선, 전제 조건 만큼은 완벽했다. 매달 1~2개의 미술 기사를 작성해야 했기에 국내외에서 열리는 굵직한 미술 전시를 자의로든 타의로든 주시해야 했고, 종종 현장에서 미술 작가를 인터뷰 하며 내심 그들의 작품에 눈독을 들이던 참이었다. 결정적으로 게시물 말미에 적힌 한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형근, 이우환, 데이비드 호크니, 다카시 무라카미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꼭 한 번 들러볼 것!’ 위 문장에서 언급된 4명의 작가 중 이우환만 하더라도 올해 상반기 총 92점의 작품을 시장에 출품했고, 낙찰 총액만 자그마치 약 61억원대였다. 그런 그의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는 말은 적어도 내게 ‘사장님이 미쳤어요’만큼의 파격 세일 문구처럼 다가왔다. ‘합리적’이란 단어를 중얼거리며 거실에 이우환의 단색화가 걸리는 풍경을 상상해봤다. 아주 그럴싸했고, 흐뭇했고, 그렇게 홈페이지에서 회원 가입을 하고 있었다.

A사의 7월 온라인 경매에는 총 70점에 달하는 고미술품과 천경자, 김종학, 김창열 등 한국 근대 작가의 작품, 국내 외 판화와 조각 작품이 출품됐다. 무가로 시작하는 경매품은 총 28점, 이를 포함한 작품들에 마우스를 가져가 확대하면 보존 상태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의 클릭으로 출품작 중 가장 군침이 돌던 김창열의 ‘회귀’ (1929) 속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을 화면 가득 띄웠다. 시작가와 추정가 아래로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현재가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됐다. 모든 시작은 ‘응찰하기’ 메뉴를 클릭하는 것으로 이뤄질 참이었다. “온라인 경매가 사람을 ‘덜’ 흥분하게 하는 게 있죠. 혼자 모니터를 힐끗대면서 응찰 여부를 정하기 때문에 현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주머니 사정을 아주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요. 이브닝 경매가 아닌 이상 으레 경매는 낮에 진행되기 마련인데, 온라인 경매는 24시간 언제든 접속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성만 뾰족하게 튀어 오르는 새벽에 모니터 앞에 앉아 냉철하게 잔머리를 굴릴 수 있으니까요.” 컬렉터 R이 말했다. 우선, R의 경험처럼 냉철한 이성이 발동했다 기보다 눈독 들이던 작품의 시작가가 1억을 웃도는 숫자였다는 사실이 차마 ‘응찰하기’ 메뉴에 손도 가까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해야겠다. 다소 허무하게 끝났을지언정 어깨너머로 경험한 온라인 경매를 통해 확실히 엿본 어떤 가능성이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컬렉터라면, 나아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장기화된다는 가정하에 온라인 경매는 이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숨통’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출장길이 막혀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위 1차 시장이라 불리는 오프라인 전시장에서의 구매가 막히니까 세컨드 마켓인 옥션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요. 갤러리는 배를 곯고 있는데 옥션 하우스는 호황을 맛보는 격이죠. 게다가 온라인 경매라는 아주 그럴싸한 창구도 있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유찰됐을 법한 경매품이 온라인 경매에서는 추정가의 2배를 훨씬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는 것도 종종 목격해요.” R이 덧붙였다. 실제 코로나19로 글로벌 옥션하우스 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은 올봄 진행할 예정이었던 오프라인 경매의 대안으로 온라인 경매를 마련했고, 이를 통해 뜻밖의 실적을 거뒀다. 특히 소더비는 지난 629일 설립 이래 최초로 화상회의 형식의 온라인 경매를 진행하며 4시간 30분에 걸쳐 약 4371억원어치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낙착률은 93.2%에 달했고, 이날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은 세폭 재단화’(1981년)는 입 찰 10분 만에 낙찰가 약 115억원에 팔렸다. 이는 여태 경매로 팔린 베이컨의 작품 중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경매 종료 직후 소더비 뉴욕의 현대미술 부서장 그레구아르 빌로(Greégoire Bill ault)가 남긴 전언은 사뭇 의미심장했다. “오늘 실시간으로 온라인 상의 치열한 입찰 경쟁을 목격하면서 어려운 시기에도 시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로써 경매의 미래가 활짝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갤러리, 아트페어를 통해 미술품을 거래하는 1차 시장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6월 진행 예정이었던 스위스 ‘아트바젤’은 행사를 취소하는 대신 지난 3월 론칭한 ‘온라인 뷰잉룸’을 2회째 개최하며 나섰다. 제2회 온라인 뷰잉룸에서 약 97억원에 거래되며 화제를 모은 제프 쿤스의 ‘레스퓌그 비너스 풍선(빨강)’(2013~2019)은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의 출품작. 갤러리 설립자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 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세계 미술 신에서 우리가 가장 유의미하게 주목하고 있는 변화는 온라인으로의 전환이다. 온라인은 새로운 잠재 고객을 찾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고 전하며 조만간 미술계에서 온라인을 둘러싼 인식과 기능이 훨씬 막강해질 것을 예고했다. 국내 국공립 미술관의 행보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주목할 만 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올해 첫 전시인 <미술관 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개관 이래 최초로 유튜브에서 개막하며, 90분의 생중계 동안 약 14000명을 운집시켰다. 학예사의 진행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온라인 관람객은 실시간으로 채팅을 주고받으며 쌍방향 소통을 이어 간다. ‘재개관하면 직접 가고 싶다’는 아쉬움을 말하는 채팅이 있는가 하면 ‘1만 명과 함께하는 전시라니!’처럼 미술의 새로운 관람 방식을 반기는 채팅도 눈에 띄었다.

2020년 아트바젤 & UBS 글로벌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온라인 미술 시장의 규모는 약 7조원으로, 전체 미술 시장의 9%를 차지한다. 여전히 미미한 점유율인 건 사실이다. 더욱이 온라인 미술일지언정 방점은 ‘미술’에 있을 테다. 오프라인 전시장과 경매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한 흥분과 공동체 의식을 과연 온라인 플랫폼에서 정확히 동일한 질량으로 만끽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 미술계를 뒤흔드는 변곡점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온라인’이 숙명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전 크리스티 경매 CEO 에드워드 돌먼(Edward Dolman)은 말 한다. “한 번의 큰 고비를 넘기면 온라인 미술이 광범위하게 확대될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상황을 예고편처럼 보이게 만드는 본편이 조만간 펼쳐질지도 모른다. 글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Scene 3.
퀴어 퍼레이드는 온라인에서 계속된다. 
그렇게,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든다.

올해 6월 서울광장에선 제21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최를 두 달 앞둔 4월, 행사를 주최하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많은 사람이 집합할 수밖에 없는 퍼레이드의 특성을 이유로 불가피하게 행사가 연기될 수밖에 없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통제된 도로에서의 달뜬 행진, 무지갯빛 깃발의 춤, 장벽을 없애고자 거리로 나온 이들의 용기를 하마터면 그렇게 보지 못할 ‘뻔’했다. 이후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글이 SNS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6월의 일이다. SNS 이용자 각자의 취향으로 선택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으로 무장한 디지털 캐릭터가 깃발을 쥔 채 보랏빛 도로를 행진하는 일러스트는 SNS상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보랏빛 행진의 정체는 미디어 스타트업 ‘닷페이스’가 해시태그를 수단으로 디지털 공간에서 모두와 만나 연대하도록 기획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다. 623일부터 12일간 온라인상에서 진행한 퍼레이드에 동참한 이만 자그마치 85767명. 아무리 게으른 방관자라 할지라도 SNS상에 적어도 한 번쯤은 행진을 보고 지나쳤을 법한 숫자다. “지난 5월 이태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사건을 기점으로 퀴어 혐오적인 언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혐오의 시선이 깃든 시간을 통과해 어느덧 6월이 됐죠. 온라인 퀴어 퍼레 이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당신 곁에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퍼레이드에 동참해주면서 다시 한번 연대의 가능성을 엿본 것 같아요.” 퍼레이드를 기획한 닷페이스의 디자이너 김헵시바의 말이다. 퍼레이드의 한중간인 629일, 국회에서는 성별과 장애, 나이, 언어 등을 이유로 생활 모든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예방하도록 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다시 새로이, 없던 길을 만들 차례다. 글 | 전여울(<더블유> 피처 에디터)

Scene 4.
내 방에서 기리보이와 박찬욱의 클래스를 들을 수 있다.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다. 곧 추위만 가시면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서 화실을 골라 일주일에 한 번은 드로을 배우고, 상상으로만 기웃거렸던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트레바리’에 가입할 생각이었다. 그게 지난 2월에 한 생각이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몇 가지 찾아가고, 책 한 권을 제대로 읽기 힘든 나약함을 적당한 강제성으로 극복하면서 토론을 하며 인문학적 근력을 키우겠다는 계획. 그 밖에도 계획은 다 있었고 실행만 하면 될 문제였다. 길을 가다 엎어져도 바이러스 탓을 할 기세였던 지난 몇 달, 인터넷 서핑 중에 온라인 클래스 광고와 후기가 자주 눈에 띈 건 나뿐일까? 퇴근 후 학원에 다니며 자기 계발과 취미 생활을 하는 부지런한 직장인이 있듯, 누군가는 인터넷으로 스낵 컬처를 소비하기보다 배우고 익힌다. ‘비대면’ 이 숙명이었던 최근, 온라인에서 유사 학원과 강연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건 자연스럽다.

‘클래스101’에서 일러스트 클래스를 이것저것 뒤진 이유는 회사가 위치한 강남에서는 원하는 풍의 화실을 찾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었다. ‘마카와 색연필로 그려내는 일상의 기록, 뜻밖의 풍경, 찰나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클래스. 20 개의 강의 콘텐츠가 커리큘럼 소개와 함께 업로드되어 있고, 그걸 20주 동안 수강하는 데 드는 비용은 월 49,900 원(총 249,500원)이다. 필요한 마카 여러 개와 스케치북이 배송되는 비용도 포함한다. 화면 속 선생님이 마카 펜으로 크루아상을 천천히 그리기 시작한다. 몽글몽글한 빵을 표현하기 위해 선 처리하는 법을 알려준다. 선생님의 음성에 따라 화병에 꽂힌 야자잎과 식물, 노을 지는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혼자서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보며 쉽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들, ‘뭔가를 익히고 싶다’는 이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들 등 ‘취미 생 활’을 표방하는 온라인 강좌 600여 개가 클래스 101에 있 다. 개설 클래스의 커리큘럼을 카테고리별로 둘러보는 기분은 후기와 상품 설명을 보며 웹 쇼핑을 할 때와 비슷하다. 잘 고르면 좋고, 잘못 고르면 실망하는 것 말이다.

코로나19 등장 이후 오프라인 강연 문화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런데 전보다 비약적으로 늘어난 온라인 강의 문화에 본 적 없는 생소한 풍경이 펼쳐지는 건 희한한 중첩이다. ‘원더월(Wonderwall.)’은 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노하우를 제공한다. 기리보이의 프로듀싱 클래스를 신청하면 그가 비트를 만드는 과정, 시퀀서를 활용하는 법, 샘플 사운드를 응용하는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특유의 회화 같은 사진을 구현하는 사진가 최랄라가 펜탁스 67과 마이크로 렌즈 등의 장비를 쓰고, 고유의 무드를 위해 셔터 스피드 수치와 노출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보고 듣는 건 관심 있는 자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정보다. 십센치의 권정렬, 래퍼 도끼, 프로듀서 밀릭과 DPR 크림, 촬영 감독 홍경표, 드라마 피디 표민수 등 각각의 클래스는 대개 10개 정도의 챕터로 구성되고, 한 챕터당 10분에서 30 분 정도의 동영상을 제공한다. 올해 초 론칭한 ‘바이블 (ViBLE)’은 무려 박찬욱이 강의하는 영화 연출, 소설가 조정래의 문예 창작, 유노윤호의 댄스 퍼포먼스와 화이트 해커의 입문 클래스 등을 보유하고 있다. 방송계 실력자였던 여운혁이 차린 곳이다. 지금 내가 가장 기다리는 건 곧 공개를 앞둔 이수만의 KPop 프로듀싱 클래스다. 프로듀서 가 될 꿈은 없지만, 가끔 국제 심포지엄 같은 데서나 연사로 나선 KPop의 아버지가 보급형 강연을 선보인다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다.

요즘 각자 브랜딩에 나선 이런 온라인 클래스들은 대개 웹 사이트와 앱을 통해 동영상과 강의 내용이 정리된 PDF를 제공하는 식이다. 만듦새는 고화질에 휴먼 다큐멘터리 같은 편안한 구성이다. 이 바람에는 세계 각 분야 최고를 강사로 섭외해 온라인 클래스 콘텐츠를 만드는 미국의 ‘마스터 클래스’가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마음먹으면 내 집에서 세레나 윌리엄스에게 테니스 수업을, 스테판 커리에게 농구 수업을, 나탈리 포트먼과 헬렌 미렌에게 연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이 놀라운 수업들은 전염병이 세계를 잠식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때부터 히트를 쳤지만, 비대면 흐름 속에 랜선으로 뭔가를 도모하는 움직임과 맞아떨어지며 더욱 회자된다. 인터넷상에 산재하는 정보들 대신 전문가에게 정연한 조언을 얻고 싶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호응한 것이다.

한때는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했다. 꾸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기보다 궁금한 걸 스치듯 한 번 경험하는 것, 소유가 아닌 체험과 경험에 만족하는 소비와 취미 생활이란 SNS 인증용으로도 적합했다. 이제는 원데이 클래스도 온라인으로 체험하는 때다. 그건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완전히 대체했다기보다, 병행하는 두 세계에서 온라인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옵션이 전보다 훨씬 풍성해졌다는 의미다. 이합집산으로 운영되는 모임 운영자들도 만남의 장에서 온라인을 젖혀두긴 어렵다. 트레바리는 4월 ‘랜선 트레바리’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 달의 책’에 대해 매주 ‘400자 에세이 쓰기’, ‘두 문장으로 답하기’, ‘감상을 글 대신 사진으로 업로드하기’ 식으로 미션을 공개하고 온라인상에서 담론이 조성되게끔 한다. 이런 방식에서는 물리적 거리감도, 일정으로 인한 제약도 문제가 아니다. ‘뉴노멀’을 맞아 확장되는 시장에서 콘텐츠 공급자들은 기존 ‘인강(인터넷 강의)’과 다른 플러스 알파도 꾀한다. 클래스를 라이브로 진행하며 실시간으로 질문을 받고, 강사와 채팅하는 시간을 마련하거나 강사가 수강생에게 피드백을 주는 식으로 소통의 길을 만드는 게 그런 예다. 영상을 통한 배움과 교류가 얼마나 끈끈하게 지속될지, 언제까지 지겹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마음이 동할 때 골라 취할 것들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글 | 권은경(<더블유> 피처 에디터)

Scene 5.
미래의 남녀는 어쩌면 텔레딜도닉으로 섹스를 나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창궐했다. 런던과 서울 간 장거리 연애를 한 내 경우엔 여름휴가 계획을 바꾸면서부터 일상의 변화가 왔음을 실감했다. 8시간의 시차와 8,851km라 는 거리감을 버티려면 1년에 한두 번쯤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내 사정과는 관계없이 국경이 닫혔다. 나와 그는 몇 달간이나 허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텍스트로, 전화로, 페이스타임으로. 날이 갈수록 우리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이 사태를 이겨내기엔 결속력이 부족했다. 몇 달 전 그와 헤어졌다.

눈물 콧물을 쏟는 동안, 세상은 다음 단계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온택트의 시대가 도래했고, 휴머니티로 묶이던 사람 간 대면 관계망이 다른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온라 인 속에서 어떻게 상대와 접촉해야 효율적인 경험을 주느냐’가 플랫폼과 통신업 전반의 이슈로 떠올랐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내 일상에 적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AI가 찾아준 광고 때문이었다. 유튜브는 내게 매력적인 광고 문구를 가진 업체를 소개했다. ‘세계 어디서든 당신의 연인을 느껴보세요. 연인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리움의 고통은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키루(Kiroo)’는 텔레딜도닉(Teledildonic) 기술을 적용한 디바이스를 처음 개발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섹스토이 회사다. ‘텔레’, ‘딜도’, ‘닉’이라는 미래 지향적이고 망측한 단어 조합이 대체 무엇을 뜻할까? 텔레딜도닉은 1975년 미국의 통신 기술 전문가 테드 넬슨(Ted Nelson)이 저서 <컴퓨터 해방/꿈의 기계>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50년 전 통신 기술의 발전이 섹스 시장을 움직일 것으로 예측했다. “촉각을 통해 작용하는 감흥을 원격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이며 보디슈트, 통신 기계가 나올 것”이라 고. 텔레딜도닉은 사이버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성행위를 말하는 단어고, 키루는 그의 전망을 예언으로 바꾼 예다. 설명서를 더 읽어봤다. ‘우리는 원격 섹스를 지원하는 기기를 판매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닌텐도 핑퐁 게임과 같은 작동 원리입니다.’ 이 회사가 개발한 ‘리모트 섹스’ 기계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로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딜도 디바이스를 질에 삽입하면 예민한 센서가 질의 수축 정도와 삽입 빠르기를 감지해 상대 남성용 자위 기구에 전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기계에 삽입된 5~10개의 링이 남성의 페니스의 뿌리부터 귀두까지의 힘과 진동 정도를 감지해 내 쪽의 디바이스에 전송한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필요하다면? 이 기기는 스피커 기능도 제공하니 블루투스를 연결해 맘에 드는 음악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에도 우리는 이미 ‘사회적 거리 두기’ 상태에 있었다. 기술과 통신의 발전이 휴머니티에 악 영향을 준다는 경종은 수만 개의 연구 결과와 공익 광고물, 심지어 스마트 디바이스 안에서도 울리고 있지 않았던가. 기술로 망가진 사람 간 관계를 기술로 다시 복구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어쩌면 작은 희망일 수도 있다. 물론 직관적으로 그에 대한 이견이 생각난다. 휴머니티의 종말, 윤리적 가치 훼손, 듣도 보도 못한 악랄한 사이버 성범죄…. 가장 ‘텔레딜도닉’한 인스타그래머인 엘라 달링(Ela Darling)은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런 걱정을 불식시키는 말을 남겼다(그는 고프로 카메라 2개를 이어 붙여 촬영하는 방식으로 ‘생생하게 즐길 수 있는’ VR 포르노를 만든다). ‘버추얼 섹스가 현실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구요? 오 제발요, 어떤 기술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그게 아이들과 사회를 망칠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괜찮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이게 실제의 섹스보다 훨씬 못한 경험을 준다는 걸 알아요.” 그녀의 말대로 종이가 발명되고 사람들이 글을 적기 시작하자 ‘요즘 애들은 도무지 기억을 하려고 들지를 않는다’며 불평했다는 소크라테스처럼, 우리도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걸까?

지금까지 통신 기술의 발달은 대체로 인간 간 연대와 화합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조선 시대엔 전쟁을 알리려 봉화에 불을 지폈고, 모스 부호는 알베르 카뮈가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라는 문장을 쓰게 했으며, 5G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촬영한 초고해상도 영상을 즉각 심사위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데 도움을 줬다. 통신은 뭐든 정확하게, 사람이 놓치는 것을 잡아낸다는 면에서 이롭다. 대규모 화합을 위할 뿐 아니라 개인 간의 연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여긴 이들이 만든 게 닌텐도의 핑퐁 게임이나 키루일 뿐. ‘머지않아 나도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스마트폰 같은 건 줘도 안 쓰겠다고 일갈하던 2010년대 초반을 지나 2020년 스마트폰이 내 머리의 반쪽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지금 텔레딜도닉스 시장의 화두는 ‘어떤 데이팅 앱이 이 기술을 가장 빨리 적용할 것이냐’다. 각각의 디바이스에 접속하는 패스워드만 있다면, 원나이트에 따르는 신체적 감정적 부산물에 대한 걱정도 정리될 터다. 텔레딜도닉스는 확실히 가까운 미래의 적절한 섹스 대체재로 사용될 확률이 높다. 다시 내 문제로 돌아가자. 어떤 선택지든 최고가 무엇인지 알지만 결국 최선을 택하게 되듯, 런던에 사는 내 전 남자친구와 나도 현실적인 방안을 고려하다 헤어졌다. 만약 내가 그와 헤어지기로 결정하기 전 텔레딜도닉스를 알았다면? 우리는 아직 만나고 있을까? 아니면, 디바이스를 가지고 섹스하다 환멸을 느끼고 다시 헤어짐을 결정했을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섹스와 텔레도닉스의 미래처럼. 글 | 박초롱(섹스 칼럼니스트)

SCENE 6.
가상 공간에서 파티가 열린다.
디제이와 관객이 모두 모였다.
아주 안전한, 멈추지 않는 댄스가 펼쳐졌다.

대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 어둡고 후끈한 공간에서 온 몸이 땀에 젖도록 춤을 추고 먹먹한 귀를 만지며 집에 가 는 경험은 제아무리 SNS와 숏폼 콘텐츠의 시대에도 대체 할 수 없는 경험이라 생각했다. 그 온도와 냄새와 음압은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처음 만나 만드는 공기가 있다.

음악을 틀다 보면 그런 관객들과 연결되는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을 ‘걸렸다’고 표현한다. 디제이와 관객이 ‘싱크’가 걸려서, 같은 속도와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이다. 서로의 맥박이 같아지는 느낌이라 표현하면 다소 과할 테지만, 굳이 묘사하면 그렇다. 그 순간이 오면 디제이는 일방적으로 댄스 플로어를 이끌지도, 끌려가지도 않는다. 같이 떠난다. 신나는 노래, 무조건 터지는 ‘띵곡’ 같은 말이 무색해지는 찰나다. 디제이로서, 그런 환상적인 기분 또한 대체할 수 없다. 누군가와 긴 대화를 나누지 않고 어디서 어떻게 그런 교감을 할 수 있나.

그러다 모든 게 멈췄다. 황망했다. 이건 집에서 아무리 끝내주는 하우스와 테크노를 듣는다고 될 일이 아닌데. 다만 안전을 위해선 그만둬야 했다. 나가지 말아야 했다. 그 대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시작은 역시 가장 전통적 형태인 믹스셋이었다. 기존 플랫폼, 새로 생긴 플랫폼, 다시 부활한 플랫폼이 디제이의 믹스를 업로드했다. 하지만 믹스셋을 현장과 비교하기 어려운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믹스셋엔 ‘지금’이 없다. 언제나 접근이 가능하다. 아침에도, 밤에도. 그것은 일견 장점일 수 있지만, 클럽의 대체 불가한 성질은 ‘오늘 밤’의 낯선 긴장에서 야기되는 측면이 크다. 지금이 결여된 믹스에 대한 대안으로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다. 스트리밍은 지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표격 댄스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보일러 룸’ 또한 단순 믹스셋이 아닌 현장을 그대로 중계한다는 점에서(춤추는 관객까지!) 초기부터 차별화에 성공했다.

‘클럽 쿼런틴’(Club Quarantine)은 코로나 시대 스트리밍 파티의 선두주자다. 비디오 컨퍼런싱 앱 줌(Zoom)을 중심으로 열리는 이 스트리밍 클럽은 토론토에서 시작됐지만, 당연히 국경이 없다. 설립자 안드레스 시에라(Andres Sierra)는 클럽 쿼런틴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클럽은 퀴어 친구들에게 몇 안 되는 안전한 공간이었죠. 격리의 세계에서 그런 공간을 이곳으로 가져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실로 클럽은 그렇게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체적 성격을 띠는 공간이 되곤 한다. 비디오 앱에서 열리는 파티인 만큼, 클럽 쿼런틴에서는 서로를 확인할 수 있다. 물리적 거리만 떨어져 있을 뿐. 클럽 쿼런틴은 지난 5월, 서울의 퀴어 파티 ‘셰이드 서울’과의 합동 스트리밍 파티를 열기도 했다.

스트리밍 파티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과거의 파티 스트리밍이 현장을 중계하는 쪽이었다면, 코로나 시대의 스트리밍 파티는 즐길 준비가 된 사람을 위한 진짜 파티의 역할도 수행한다. 서울에서도 여러 형태의 스트리밍, 혹은 영상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이태원 ‘케이크샵’은 올해 4 월 매 주말 클럽에서 스트리밍을 진행했고, ‘서울 커뮤니티 라디오’ 또한 위기의 로컬 신을 지지 하는 목적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비롯한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커뮤니티 서비스’를 포함해, 봄부터 몇몇 스트리밍 및 영상 플랫폼에서 음악을 틀었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자주 ‘걸렸다’ 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에서의 촬영을 위해 장비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 의뢰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상적 각도를 위해 ‘셀카봉’도 샀다. 관객에게도, 디제이에게도 파티에는 더 이상 지정된 장소가 없다.

관객 또한 변모해갔다. 전 세계 최대 댄스 음악 매체 레지던트 어드바이저가 관여한 대형 스트리밍 파티 ‘클럽 쿼런틴’ (Club Quarantäne, 토론토의 클럽 쿼런틴과 언어 및 철자가 다르다)은 가상 공간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파티다. 화장실, 바, 댄스 플로어 등으로 웹 페이지를 구성했다. 바를 클릭하면 도네이션, 화장실을 클릭하면 같은 방에 들어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접속자들은 실제 클럽 화장실에서 나눌 법한 이야기를 한다. 과거 스트리밍의 채팅창은 영상과 디제이에 대한 품평이 주를 이뤘다. 음악이 좋네, 별로네 같은. 클럽 쿼런틴은 달랐다. “내일 이 디제이가 틀 때 여기서 다시 만나자!” “너 1달러짜리 있니?” “이 클럽 BYOB인 거 좀 쩌는 거 같아.” 물론 대부분은 장난이지만, 장난처럼만 보이진 않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이런 가상 파티가 실제 클럽에서의 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건 궁여지책인 동시에 새로운 흐름이기도 하다. 그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수많은 예측이 공존한다. 당분간 스트리밍 위주의 파티가 이어질 것이다, 국경 이동이 불가하니 로컬 디제이가 주목 받을 것이다, 다시 모든 게 정상화되어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등등.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은 전에 없던 시도가 벌어지는 시기라는 점이다. VFV CLUB’은 지난 6월 서울의 세 테크노 클럽 ‘파우스트’와 ‘버트’, ‘볼노스트’가 의기투합해 벌인 스트리밍 프로젝트 다. 홍대와 이태원을 오가지 않아도 세 클럽 디제이들의 음악을 한날한시에 들을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시작된 프로젝트 ‘유나이티드 위 스트림’은 현재 71개의 도시로 퍼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홈페이지에서는 라이브 스트리밍이 한창이다. 서울의 디제이들도 곧 참여할 계획이다.

이것을 연대라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연대 하고 의지하며 주말 밤마다 만나던 이름 모를 당신의 생존을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 클럽 쿼런틴(Club Quarantäne)을 다룬 레지던트 어드바이저의 기사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함께할 수 없고 같이 춤 추고 땀 흘리는 그 희열을 느낄 수 없는 동안, 이 결속과 연민의 온라인 공간에서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 부디 안전하게, 같이 춤춰요.” 우리의 밤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글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디제이)

피처 에디터
권은경, 전여울
사진
GETTYIMAGES KOREA, COURTESY OF SM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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