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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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진계의 유망주,  루오양.

미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중국 사진계의 유망주로 지목한 루오양(Luo Yang). 세계의 도시들을 돌며 개인전을 열 예정인 그녀가 전시에 선보일 사진을 <더블유>에 보내왔다.

이 여성은 오래 끌어온 남자친구와의 우울한 관계를 청산하며, 인생의 새 챕터를 위해 삭발을 감행하는 순간을 담고 싶어 했다.

2013년 네덜란드 그로닝거 뮤지엄에서 도발적인 제목의 그룹전이 열렸다. 이름하여 <Fuck Off 2>. 세계 미술계의 스타이지만, ‘반체제적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찍혀 구금된 적도 있는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가 큐레이터로 나선 전시다. 그는 <Fuck Off 2> 전시를 통해 현대 중국 사회의 환경과 정치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작품 활동을 펼쳐온 중국의 젊은 예술가 37명을 소개했다. 사진가 루오양은 그중 하나였다. 1984년생, 상하이와 베이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사진가. 중국에서의 전시 경력만 있을 뿐이었던 그녀는 <Fuck Off 2>를 계기로 처음 해외 전시를 할 수 있었고, 이후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중 하나로 꼽히며 세계적인 사진가로 발돋움했다.

벗은 모습은 외설적이라기보다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벗은 모습은 외설적이라기보다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작년 연말 루오양이 방콕에서 개인전을 열 때 만난 태국 여성들. 현재 삶과 고민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다.

작년 연말 루오양이 방콕에서 개인전을 열 때 만난 태국 여성들. 현재 삶과 고민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다.

작년 연말 루오양이 방콕에서 개인전을 열 때 만난 태국 여성들. 현재 삶과 고민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 다큐멘터리 작업도 했다.

루오양 측에서 <더블유 코리아>에 먼저 연락해온 건 지난해 말 방콕에서 열린 첫 개인전 <Girls>를 마친 직후다. 올해의 새 계획을 알린 그녀는 막 작업을 끝낸 사진 여러 점을 보내왔다. 지난 10여 년간 루오양이 일관되게 포착한 대상은 10대와 20대의 중국 여성이다. 극장이나 갤러리 하나 찾아보기 힘든 중국 북부에서 자란 루오양은 우연히 친구가 빌려준 카메라로 주변 사람을 찍기 시작했다.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선 여자들은 루오양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허기짐과 외로움을 느끼거나, 남과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받거나, 크고 작은 고민과 두려움, 희망과 야망을 품은 보통 사람이다. 자신의 현재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진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주위에 루오양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중국 전역에서 루오양에게 ‘나를 찍어달라’며 SNS 메시지를 보내는 여자들이 늘어났다. 시골에 살며 뉴욕 디자인 대학으로 진학하길 꿈꾸는 이, 남자친구와의 연애 문제로 애먹는 이나 연인과의 행복한 순간을 남기고 싶은 레즈비언 커플, 만삭의 몸을 올 누드로 드러낸 이 등등. 누드 사진에는 라이언 맥긴리 스타일의 감성적인 면 따위는 일절 없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모델의 얼굴에는 그윽한 조명의 흔적조차 없다. 무심하거나 과감한 그들의 초상을 통해 루오양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현대 중국 여성의 ‘진짜 모습’이다. 미디어가 그리는 중국 여성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유로우며, 감히 꿈을 꿀 수 있는 새로운 세대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Girls’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계속 되고 있다. 모든 작품명은 사진에 등장하는 모델의 이름이다.

하반기 순회전 때 전시될 최근 ‘Girls’ 시리즈 작업물.

하반기 순회전 때 전시될 최근 ‘Girls’ 시리즈 작업물.

하반기 순회전 때 전시될 최근 ‘Girls’ 시리즈 작업물.

하반기 순회전 때 전시될 최근 ‘Girls’ 시리즈 작업물.

다가오는 6월부터 하반기 동안 루오양은 파리를 시작으로 도쿄, 뉴욕, 런던 등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회고전 성격의 개인전을 연다. 또 각 도시에서 전시할 때마다 현지의 젊은 여성을 찍는 프로젝트도 이어간다. 이제 중국을 넘어 세계로 눈을 돌려, 보다 확장된 ‘Girls’ 시리즈를 꿈꾸는 거다. 그녀가 첫 개인전을 연 도시인 방콕에서 작업한 ‘Luo Bangkok Girls’ 가 그 시작이다. 피사체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과 사정을 담은 이미지가 쌓이고 쌓이면, 그건 곧 한 세대의 현재를 담은 아카이브가 될 것이다. 대담하고 솔직한 사진으로 여성을 탐구하는 이 사진가의 행보는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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