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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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7일, 불가리는 베일에 싸인 유서 깊은 도시, 모스크바의 크렘린 박물관에서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Tribute to Feminity > 전시의 시작을 알렸다. 19세기 후반부터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 주얼리 하우스에서 제작한 5백 점 이상의 방대한 주얼리 컬렉션과 정교한 메이킹 세계를 보여주는 이 전시는 여성의 시대성과 스타일의 변화를 견인해온 불가리의 예술성과 유산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다.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네크리스(1969).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를 화려하게 세팅한 플래티넘 골드 네크리스(1967).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골드 소재 소뜨와 네크리스 (1970).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네크리스(1938).

루비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브로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볼드한 반지.

꽃잎을 정교하게 표현한 브로치.

모스크바의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크렘린 박물관. 러시아의 장구한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해놓은 이곳은 러시아 건축 예술의 백미로 평가받는다. 아모리 챔버, 성모승천 성당, 대천사 성당, 수태고지 성당, 이반 대제의 종루, 로베 디포지션 교회, 총 대주교 궁전이 자리한 기념비적인 장소다.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예술, 문화, 역사 관련 자료와 작품 16만 개 이상이 소장되어 있고, 12세기부터 20세기에 걸쳐 제작된 주얼리 1만3천여 점을 상설전과 특별전을 통해 전시한다. 그 자체로 인류의 유산인 이곳에서 지난 9월 7일, 불가리는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라는 이름으로 5백여 점의 주얼리와 예술적인 메이킹 세계를 공개했다. 크렘린 안의 성모승천 종루와 총 대주교 궁전 지상 층에서 불가리의 창조성이 담긴 아카이브 작품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변천해온 다양한 주얼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불가리 네크리스와 이어링을 즐겨 착용한 잉그리드 버그만.

1964년도의 잉그리드 버그만.

불가리 주얼리의 열렬한 애호가 엘리자베스 테일러.

잘못된 만남임에도 열렬히 사랑했던 커플,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불가리의 비아 콘도티 매장은 이들이 밀회를 즐긴 장소로 알려졌다.

잘못된 만남임에도 열렬히 사랑했던 커플,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 불가리의 비아 콘도티 매장은 이들이 밀회를 즐긴 장소로 알려졌다.

배우로 시작해 조각가와 사진가로서도 활동한 지나 롤로 브리지다.

지나 롤로 브리지다는 불가리의 에메랄드 이어링을 늘 착용하고 다녔다.

지나 롤로 브리지다는 불가리의 에메랄드 이어링을 늘 착용하고 다녔다.

불가리의 아카이브 컬렉션 네크리스.

터키석과 에메랄드, 자수정을 화려하게 세팅한 네크리스(1965).

불가리의 첫 모듈 컬렉션인 파렌테시 컬렉션.

아카이브 드로잉에서 발견한 파렌테시 컬렉션.

고대 로마 동전에서 영감을 얻은 초커는 모네떼 컬렉션.

뱀의 비늘을 형상화한 세르펜티 컬렉션.

에메랄드, 자수정, 핑크 투르말린, 사파이어 등 유색 보석을 세팅한 골드 네크리스(1991).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이어링(1964).

불가리 주얼리 디자인은 독특한 광채와 볼륨감, 시대를 관통하는 창의성과 장인 정신이 깃든 정교함에 ‘웨어러블’하다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전시되는 작품 역시 비즈니스 우먼부터 셀레브리티, 귀족 등 다양한 지위와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컬렉션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시대성을 반영한 주얼리 사진도 함께 전시해 불가리 주얼리의 카리스마와 헤리티지를 실감케 했다. 불가리를 사랑한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열정에 불가리는 진귀한 작품으로 응답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를 위해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소장한 불가리 헤리티지 컬렉션 전체를 공수했다. 불가리의 열혈 애호가였던 만큼, 그녀의 취향과 컬렉터로서의 높은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 영화 촬영장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매혹된 리처드 버튼과 그녀의 세기적인 러브 스토리는 워낙 유명하다. 그들의 사랑의 징표인 에메랄드 네크리스, 펜던트에 60캐럿 이상의 황홀한 슈거로프 사파이어를 세팅한 소뜨와 등을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트렘블런트’ 브로치와 카보숑 사파이어를 세팅한 ‘트롬비노’, 1957년에 선보인 고대 동전을 해석한 모네떼 (Monete) 컬렉션에 각별한 애정을 지녔다. 1950년대 영화 <장미 문신(The Rose Tattoo)>과 <무방비 도시(Open City)>에서 얼굴을 알린 이탈리아 여배우 안나 마냐니의 주얼리도 볼 수 있다. 스크린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화려한 주얼리로 대담한 스타일을 즐겼던 그녀는 25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트롬비노 (Trombino) 링과 이니셜 ‘AM’을 새긴 플래티넘 링, 다이아몬드와 진주를 세팅한 플래티넘 브로치, 담수 그레이 진주 브로치 등 공식 행사에서 즐겨 착용한 ‘브로치’를 특히 소중히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롱한 초록빛을 내뿜는 에메랄드에 애정을 보낸 또 다른 이탈리아 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는 1964년에 구입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귀고리를 무척 사랑했다고 밝혔다.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도 이어링은 빼놓지 않아 실제로 그 모습이 많은 사진에서 포착되었다. 훗날 조각가이자 사진가로 활동한 그녀의 예술적인 감수성과 조화를 이룬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자신의 강인한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옐로 골드와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주얼리를 즐겼고,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의 아니타 엑베리가 착용한 카보숑 사파이어 주얼리는 대담한 컬러 조합으로 로마의 풍요와 마법 같은 순간을 그려낸다. 자수정, 터키석, 오닉스, 라피스라줄리, 칼세도니, 말라카이트 등과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등 진귀한 유색 보석을 세팅한 주얼리는 불가리의 가치를 넘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자 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심플한 네크리스나 섬세한 꽃 장식이 돋보이는 ‘ 자르디네토 (Giardinetto)’ 브로치도 맥락을 함께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에 공개된 적 없는 올림피아 토를로니아 공주의 웨딩 티아라를 전시해 눈길을 끈다.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소재의 변형 가능한 작품과 길게 늘어지는 네크리스, 클립은 1930년대 당시의 스타일을 떠오르게 한다.

아쿠아마린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티아라(1935).

터키석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플래티넘 골드 네크리스(1957).

세르펜티 워치 브레이슬릿.

배우 안나 마냐니의 주얼리 컬렉션.

강렬하고 대담한 것만이 불가리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유쾌한 감성과 틀에 박히지 않은 경쾌하고 자유로운 감성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팝아트와 1970년대, 카드게임, 코끼리, 파라오, 옵티컬 등에서 영감을 얻은 다채로운 주얼리는 젊고 명랑한 불가리의 면모를 드러낸다. 불가리와 함께한 전설적인 여배우와 패션 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적 작품들을 보고 나면 불가리의 아이코닉한 작품을 전시한 곳으로 이동한다.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뉘는데, 193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당대의 현대적인 여성을 빛내준 컬렉션 중 ‘파렌테시(Parentesi)’는 불가리가 하나의 디자인 요소를 어떻게 무한대로 확장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 ‘투보가스’라고 불리는 아이코닉 밴드 역시 골드와 스틸을 조합한 것, 골드와 스톤의 조합, 바꿔 착용할 수 있는 인터체인저블 방식 등 소재에 대한 실험 정신과 디자인 변형에 공들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접근성이 높은 가격대, 낮과 밤 어떤 상황에도 어울리는 스타일도 한몫한다. 고대 동전을 활용한 디자인으로 로마에 뿌리를 둔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모네떼 (Monete)’컬렉션은 1990년대 당시 로고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마지막으로 메종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뱀 모티프의 세르펜티도 다채로운 셀렉션을 자랑한다. 뱀의 역동성과 생명력, 창의성을 담은 ‘세르펜티(Serpenti)’컬렉션의 다양한 작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하우스의 비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 오프닝 파티가 열린 파스코브 하우스.

불가리의 CEO 장 크리스토프 바뱅과 하이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체아 실베스트리.

오프닝 파티에 참석한 배우 서기.

고혹적인 모습의 에바 그린.

불가리의 앰배서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우아한 에바 그린의 모습.

역사적인 회고전을 축하하기 위해 모스크바의 파스코브(Pascov) 하우스에서 열린 오프닝 파티에는 불가리 앰배서더 알리시아 비칸데르를 비롯해 에바 그린, 서기 등 각국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여배우들과 불가리의 CEO 장 크리스토프 바뱅, 사교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뜻깊은 전시의 서막을 알렸다. 이탈리아의 재즈 뮤지션, 마테오 브란칼레오니와 DJ 그라치아노 델라 넵비아의 공연은 우아하고 현대적인 주얼리 하우스의 파티를 뜨겁기 달구기에 충분했다. 풍부한 유산과 낭만적인 도시에서 탄생한 로마의 메종 불가리와 차갑고 신비한 색채가 넘실거리는 모스크바라는 도시가 묘한 울림을 주는 <여성성에 바치는 헌사> 전시는 해를 넘겨 2019년 1월 13일까지 계속된다.

패션 에디터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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