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하는 여자 VS 요가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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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허물어뜨리는 그 여자, 그 남자의 스포츠 스토리.

주짓수 남여

강한 여자가 멋있다.

지난 7월 1일 ‘나를 지키는 주짓수 원데이 클래스’가 열렸다. 이 클래스는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의 제1장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다. 처음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라는 캐치프레이즈이자 동명의 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은 지난 6월 트위터였다. 여성으로 살아오며 ‘운동’ 영역에서 배제받아온 설움과 억울, 짜증과 분노가 차고 넘치게 축적되어 있던 차였다. 힘을 키우고 기술을 연마하는 거의 모든 운동에서 여성은 주변부였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여성으로 살기에 최적화된 나라가 아님을 선명하게 알아간다. 국가와 법체계가 우리 편이 아니라는 걸, 피해자가 되는 순간 싸워야 하는 건 개인의 몫임을 매일 뉴스로, SNS로 확인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나는, 여성 스스로 힘을 키우고 기술을 연마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는 구체적인 열망을 갖게 됐다.

클래스가 열린 날은 호통 같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일요일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끝내고 공덕동 어반 주짓수에 도착한 건 5시 5분 전. 안전하고 아늑한 집들을 떠나 그곳까지 굳이 찾아온 참가자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짓수는 상대방을 공격하고 싸워서 이기는 단순한 목적의 운동은 아니다. 방어와 탈출, 제압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무술이다. 어쩌면 주짓수는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술’ 일지도 모른다. ‘보통의 남자’가 물리적 힘으로 공격해올 때 그 힘의 구조를 깨트리고 빠져나감으로써 위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을 때 신체적 상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내는 기술로서 주짓수는 이 시대 여성에게 쓸모가 무척 크다. 파란 도복을 입은 김지영 사범은 그날 도장에서 더욱 강하고 여유롭게 빛났다. 단단한 인상의 그는 강단 있고 위트 있게 수업을 이끌어주었다.

이날 수업에서는 상대방이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방법부터 위협의 수위가 높아지는 단계에 따라 각각의 탈출과 방어 방법을 익혔다. 이날 참가한 사람 중 한 명이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내 몸을 원치 않는 상대로부터 분리시키는 동작이 내 삶의 경험을 작게나마 전복시키는 상징처럼 느껴졌다”라고. 나 역시도 이번 주짓수 수업을 통해 힘을 모으고 해체하는 원리를 알게 되었다. 몸에 뼈와 근육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것들이 어떤 원리로 힘을 쓰게 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였다. 상대방이 위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며 두 팔을 지지대로 상체의 힘을 실어 눌러올 때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의 팔꿈치를 꺾이도록 하면 그로부터 탈출할 수 있다는 방법을 배웠다. 이번 주짓수 클래스는 참가자들에게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어느 참가자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남겼다. “강한 여자는 눈물 나게 멋집니다. 가슴을 뛰게 하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줍니다. 많이 자주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되고 싶어요.”

우리는 이런 경험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여성 지도자들이 이끄는 클래스가 더욱 자주 열렸으면 한다. 그들을 따라 몸을 굴리고 내던지고 겨루고 버티면서 강해지는 여자들이 범람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 희망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공덕 어반 주짓수 소속 김지영 사범은 이번 클래스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 대상 비정기 원데이 클래스를 생각 중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여성에게 권장되지 않았던 종목에 대한 클래스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대전을 기반으로 다양한 여성주의 활동을 펼치고 있는 보슈(BOSHU)는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는 스포츠 클래스를 기획하고 SNS를 통해 널리 알리고 있다. 첫 주짓수 클래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여자가 가르치고 여자가 배운다’ 프로젝트는 제2장으로 농구 클래스를 준비하고 있다.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몸을 쓰는 활동과 이야기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퍼져 나가길희 망한다. 글 – 강소희(TBWA 카피라이터)

유연한 남자가 아름답다.

첫날, 그 많던 걱정이 백지처럼 지워지는데 걸렸던 시간은 딱 15분 정도였다. 나는 종아리 즈음에서 조여지는 면 트레이닝 바지에 면 티셔츠를 입고 매트 위에 앉았다. 조금은 불안한 심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나를 요가원으로 초대한 후배가 말했다. “선배 빡빡이잖아… 머리 오늘 밀었죠? 어차피 눈에 띄어. 요가 백 년 한 사람 같아. 근데 아무도 신경 안써, 걱정하지마.” 약 3년 전이었다. 그날 이후 꾸준히 수련 중이다. 내 몸은 아주 천천히 변했다. 마음의 너비도 조금 달라졌다. 요가에는 ‘수련한다’는 동사를 쓴다. 이 엄격한 단어가 요가에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올해 초에는 국제 지도자 과정도 수료했다. 좋은 건 나누고 싶으니까, ‘이제 운동을 해야겠다’ 마음 먹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요가를 권해왔다. 하지만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한테는 몇 가지 걱정이 있었다. 공통적으로 좀 부끄러워했다. “넌 옷 뭐 입고 해?” “가면 대부분 여자 아니야? 민망하지 않아?” “나 되게 뻣뻣해. 요가는 유연해야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첫날의 나도 비슷했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그 낯설고 고요한 에너지 사이에서 나는 좀 복잡하게 두려웠다. 수업 시작 전, 못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시범을 보고, 오늘은 하는 데까지만 해보세요. 되는 데까지만. 그럼 돼요. 걱정하지 마세요.” 과연, 수련을 시작하자 마음은 곧 가라앉았다.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동안엔 평화를 만끽했다. 요가 수련 땐 코로만 호흡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몇 년 동안 쪼그라들었던 몸의 구석구석을 느긋하고 친절하게 펴주는 느낌이었다. 그렇게라면 몇 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평화는 딱 10분이었다. 이후 40분 정도는 누가 시간을 압축한 것 같았다. 처음 듣는 언어, 처음 보는 자세가 무슨 파도처럼 왔다 갔다. ’비라바드라사나 투’, ‘파스바코나사나’ 같은 이름들은 고대 주술 같았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왼쪽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한 흐름이 지나가고 나면 오른쪽 허벅지 차례가 돌아왔다. 편안하고 부드러웠던 선생님의 목소리에서는 이제 결기가 느껴졌다. 모든 수련생들의 에너지가 다 같이 상승하면서 엄청난 열기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우리는 어떤 교향곡 3악장을 내달리는 오케스트라 같았는데, 나는 다만 열심히 따라가는 초보 단원이었다. 그때부턴 보이는 것도 없었다. 어떤 자세에서 허리를 굽혔더니 매트 위로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닦을 틈도 없었다. 이제 옷 같은 건 신경도 안 쓰였다. 누가 나를 보는지 내가 누굴 보는지도 모르는 몰입의 상태였다. 누구의 시선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요가 수련은 오로지 나와 내가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딱 요가 매트만큼의 공간을 나눠 갖고, 그 위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고르게 강해지길 원하는 개인일 뿐이었다. 성별을 따지는 데 의미가 없으니 내외할 이유도 사라졌다. 부끄럼은 스스로를 속일 때만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는 마침내 자유로웠다. 몸의 절정에서 마음을 만난 셈이었다.

그렇게 한 차례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등 대고 누워서 자신의 사바사나, 송장 자세를 준비합니다. 모든 긴장을 툭 내려놓고, 자신에게 쉼을 선물합니다.” 사바사나는 모든 요가의 마무리 자세다. 죽음을 연습하는 자세라고도 한다. 그때 나는 깜빡 잠이 들었을까? 5분 남짓의 시간이 밤처럼 달콤했다.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서 3개월 회원이 되었다. 3개월 후에는 6개월, 6개월 후에는 1년 회원이 되었다. 일에 치여 요가원에 못 간 날 밤엔 집에서라도 매트를 폈다. 초열대야가 이어지던 8월의 밤에도 그렇게 했다. 몸 위를 몇 갈래로 흐르던 땀이 마침내 매트 위로 떨어질 때, 목표로 하던 자세까지 부드럽게 마치고 사바사나에 들어갈 때 나는 그 무자비했던 더위와 화해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았다. 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나와 내가 했던 일이었다. 기꺼이 나누고 싶은 시간이었다.  글 –  정우성 (칼 럼니스트, ㈜더파크 대표)

피쳐 에디터
김아름
아트워크
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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