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90s 슈퍼스타

W

보이런던 티셔츠와 게스 진에 목매고, 스톰과 티피코시 광고에 열광하던 90년대. 패션의 레전드가 된 브랜드, 그 영광의 슈퍼스타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들.

1. 90년대 인기였던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레이블의 벨벳 재킷으로 패션 홍보 대행사 브랜드폴리시 심연수 대표 소장품. 2. 에 등장한 화사한 색상의 메이폴 후드 맨투맨 티셔츠는 한송경 소장품. 3. 선명한 로고의 스테파넬 티셔츠. 4.  극 중 주인공 성나정(고아라)이 입은 데님 오버올즈. 5. DKNY 진의 코듀로이 재킷은 심연수 대표 소장품. 6. 에 등장한 고아라의 떡볶이 단추 더플 코트는 BCBG의 빈티지 아이템으로 스타일리스트 한송경 소장품.

1. 90년대 인기였던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레이블의 벨벳 재킷으로 패션 홍보 대행사 브랜드폴리시 심연수 대표 소장품. 2.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 화사한 색상의 메이폴 후드 맨투맨 티셔츠는 한송경 소장품. 3. 선명한 로고의 스테파넬 티셔츠. 4. <응답하라 1994> 극 중 주인공 성나정(고아라)이 입은 데님 오버올즈. 5. DKNY 진의 코듀로이 재킷은 심연수 대표 소장품. 6.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 고아라의 떡볶이 단추 더플 코트는 BCBG의 빈티지 아이템으로 스타일리스트 한송경 소장품.

“94년대 사극을 찍고 있어요.” 사극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스타일스트 한송경 실장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유인즉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빠져 있는 <응답하라 1994>에서 성나정(고아라)의 스타일링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응답하라 1994>를 시청하는 대중의 초미의 관심사는 칠봉이와 쓰레기 중 과연 누가 나정이의 남편일까 하는 것. 더불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90년대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들이다. 극 중 나정이의 떡볶이 단추 코트와 GV2 멜빵 바지, 브렌따노 스웨트 셔츠, 리복 망치 가방, 베이비지 손목시계 등은 그 시대극에 활력을 더한다. “정확한 고증을 위해 75년생인 주변
언니들의 옷장을 뒤지거나 광장시장을 오가고, 옥션의 구제 사이트를 서치하며 구제 공수기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 당시 옷을 찾아낼수록 느낀 건 유행은 돌고 돈다는 사실이에요.”

따지고 보면 요즘 스트리트 패션을 수놓는 큼직한 로고 프린트 티셔츠는 90년대 캐주얼 패션의 표상이었고, 오늘날 아이돌이 주도한 하이톱 슈즈의 인기는 당시 나이키와 아디다스 농구화 열풍과도 맞닿는다. 1995년 스톰과 닥터마틴의 MD로 활동한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황의건 이사의 말도 이와 같다. “요즘 최신 패션이라고 하는 것들은 이미 90년대가 향유한 문화의 범주 안에 있어요. 그 당시의 베이스볼 점퍼, 스키니 진, 큼직한 타이포그래피, 지퍼 장식, LA기어로 대변되던 하이톱 슈즈 등이 모두 제가 젊은 시절 즐겼고, 당시 시대가 열광한 패션이죠. 그리고 패션의 한 라운드를 지켜본 이들에게 주어진 보너스랄까. 오늘날 나와 같은 시대를 지나온 에디 슬리먼과 같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즐기던 룩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이고, 그걸 지금 젊은 세대가 신선하게 느끼며 다시 즐기고 있는 거죠.”

더구나 최근 90년대 열풍에 이은 90년대 인기 브랜드의 부활은 이 패션의 도돌이표를 실감케 한다. 최근 지드래곤을 비롯한 아이돌 스타들뿐만 아니라 해외의 음악과 패션 신을 좌우하는 리애나, 리타 오라 등의 애정을 듬뿍 받는 ‘보이런던’이 대표적인 예. 서태지와 아이들이 보이런던의 큼직한 로고 티셔츠와 비니 등으로 무장해 시대를 주름잡던 90년대를 모르는 1020세대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보이런던은 진 캐주얼 브랜드에서 요즘 각광받는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로 변신해 재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화사한 색감의 점퍼로 인기를 얻으며 세련된 강남 스타일의 대학생 룩으로 여겨진 ‘노티카’는 아웃도어 룩으로, 후드 티셔츠로 힙합 패션을 이끈 ‘퀵실버’는 서핑과 스노보드 등 익스트림 스포츠 브랜드로 재론칭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리바이스 오리지널 블루진 501’이 여전히 회자되는 것처럼 대중들의 요구에 응답하며 부활한 90년대 아이템들은 ‘90년대 클래식’으로서 브랜드의 미래를 새롭게 쌓고 있다.나아가 90년대 패션에서 눈여겨볼 것은 브랜드의 대중을 움직이기 위한 스타 마케팅의 초시이다. 9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룹 노이즈는 이신우 옴므의 옷을 입었고, 로고 티셔츠로 인기를 얻은 브랜드 야(YAH)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는 국내 최초의 패션 PPL이 아닐까라고 황의건 이사는 이야기한다. 또 패션의 일각에 신선한 광고 비주얼로 이슈를 일으킨 브랜드 292513=STORM도 스타 마케팅을 적극 시도한 경우. 일례로 스톰에서 당시 가장 핫한 패션 아이콘이자 자사 모델인 듀스의 김성재와 광고를 찍을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한 송승헌과 소지섭이 20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스톰 모델로 활동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캐주얼 룩이 90년대 패션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다른 한 축은 성숙한 어덜트 룩의 몫이었다. 패션 홍보 대행사 브랜드 폴리시의 심연수 대표에 따르면 당시 청담동과 압구정을 장악한 보세 숍들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고급 보세 숍이었던 리즈 클럽에 가면 앤테일러, 앤클라인, 도나카란 등의 브랜드를 만날 수 있었죠. 당시 청담동을 누빈 요조숙녀들은 지춘희의 투피스와 손정완의 원피스를 입었고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겐조와 베르사체도 패션계가 열망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죠. 또한 신장경 트랜스모드의 재킷을 입었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 그때 그 시절 삐삐의 음성 메시지에 가슴 떨려 하고, 김성재의 죽음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에 눈물 흘리며, 농구장을 찾던 오빠 부대. 그 X세대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인터넷 쇼핑을 즐기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와 통할 수 있는 지점에 돌고 도는 패션 트렌드와 다시 부활한 90년대 브랜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20여 년 간극의 패션 유산을 더듬어보는 것에서 나아가 패션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응답하라 1994>가 우리에 안겨준 것처럼 패션이 격동의 시대와 조우하며 강렬한 내러티브를 갖게 되었을 때, 시대를 뛰어넘어 퇴색되지 않는 공감과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목도했으니까. 밤하늘의 별처럼 그 시대를 산 보통 사람들을 빛나게 했던 90년대 브랜드들이 오늘날 그 등장만으로 마음 한구석에 애타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에디터
박연경
포토그래퍼
엄삼철
아트 디자이너
표기식
스탭
어시스턴트 / 임아람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