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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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영화 예술감독으로 살았던 이경 대표는 오랜 친구들이 모일 수 있는 번잡스럽지 않은 공간을 그리며 4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을 개조해 이 집을 꾸몄다.

청운동 골목에 위치한 하얀 이층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늑한 향 냄새가 한 번, 큰 솥에 소고기, 고구마, 감자, 당근, 브로콜리 등등을 넣고 푹 끓여 스튜를 만드는 냄새가 또 한 번 코끝을 건드렸다. 주방 옆 계단에 놓아둔 오디오에서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음악들이 쉬지 않고 흐르는 동안, 밖으론 사람도 자동차도 어쩌다 한 번 지나갈 뿐이었다. 한동안 영화 예술감독으로 살았던 이경 대표는 오랜 친구들이 모일 수 있는 번잡스럽지 않은 공간을 그리며 40년대 지어진 적산가옥을 개조해 이 집을 꾸몄다. 동시에 이곳은 얼마 전 시작한 저예산 영화 제작사 ‘버진 필름’의 둥지이기도 해서, ‘P.S bar & film’이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전문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고 그저 좋아하는 와인으로 꾸렸다는 와인리스트에 써 있는 가격표는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고, 100% 현미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꿀과 버터에 발라먹는 현미 설기는 유독 쫀득하고 고소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문 닫는 시간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꼴깍꼴깍 와인병을 비우겠구나 불길한 예감이 엄습한 건, 아마 “원하시면 라면도 끓여들일게요”라는 목소리가 주방에서부터 들려온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경복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30미터 직진.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김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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