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인 창의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가에타노 페셰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로 어제죠. 4월 4일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가에타노 페셰(Gaetano Pesce)의 인스타그램에 활짝 웃는 그의 사진과 함께 포스팅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60년 동안 예술, 디자인, 건축의 세계를 오가며 독창적이고 대담하게 실험한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안타까운데요.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은 있었지만,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아쉽습니다.
1939년 이탈리아 북부의 항구 도시 라스페치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 건축 대학교를 나온 페셰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건축가로도 활동했지만, 특히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장르는 디자인이었는데요. 이탈리아 현대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에 처음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은 1969년 B&B 이탈리아에서 출시한 암체어인 ‘UP 5’와 발을 걸칠 수 있는 오토만 ‘UP 6’입니다.
고대 풍요의 여신을 닮은 듯한 풍만한 곡선으로 처리한 암체어는 여인의 나체가 연상됐는데요. 여기에 오토만 역할을 하는 요소를 동그란 구로 처리한 후 암체어와 서로 줄로 연결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엄마와 아기처럼 뗄 수 없는 유대 관계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주로 강렬한 페미니즘 메시지가 큰 화제를 모았어요. 마치 죄수처럼 족쇄를 찬 여인의 이미지를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페셰는 이를 두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사회적인 편견에 구속당하는 여성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다고 밝혔어요. 만든 지 5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그의 선구안에 찬사를 보내게 되면서도, 아직 지구 곳곳에서 여성의 인권이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작품의 긴 생명력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페셰에게는 급진적이라는 수식어가 자주 달렸어요. 그에게 디자인이란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었어요. 기능적이면서도 불완전한 모습의 디자인을 추구하며 예술적인 풍모가 돋보이던 그의 작업은 국제적으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금 보아도 독창적인 프랫 체어는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끊임없이 창작에 몰두한 덕분에 그의 건축 스케치와 디자인은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파리 퐁피두 센터와 국립 장식 미술관, 독일 비트라 뮤지엄 등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의 영구 소장품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페셰는 몇 년 전부터 패션계와 협업하면서 노익장을 보여줬는데요. 특히 보테가 베네타의 2023 여름 컬렉션 런웨이 쇼를 위해서 만든 400개의 레진 의자는 젊은 세대에까지 그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어느 하나 동일하지 않은 다양한 색채와 그래픽이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창작자의 성향을 잘 보여주면서도, 시대 정신과 맞물렸죠.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에는 보테가 베네타를 위한 한정판 가방을 선보이면서 마치 동굴 속을 탐험하듯 접근하는 공간 디자인을 연출해 가장 인기 있는 스폿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페셰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호기심이라고 꼽았어요. 호기심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로 나아갈 수 있는 샘물과도 같은 존재이며, 사고력을 자극해 아이디어를 발견하도록 돕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언제나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던 그의 태도는 많은 창작자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진
- Courtesy of Gaetano Pesce, Bottega Vene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