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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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과 가로수길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러는 사이 잊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잊혀지기도 했다. 과거를 지우지 않으며 걷는 속도를 조절할 줄 아는 동네, 이태원과 서촌이 궁금해진 건 그 때문이다.

이태원 프리덤

지금 이 순간, 가장 빠른 심장 박동을 지닌 동네 이태원

11:30 빙봉
자리마다 빨간 담요가 걸렸다. 살을 에이는 바람, 그래도 평화롭기 그지 없는 한남 오거리에 들어서면 꼭 걸어야만 할 것 같았다. 3년 전 이 근처로 이사를 왔다는 빙봉(Bim Bom)의 심가영 오너 셰프도 이 길을 좋아라 걷다가 9개월 전쯤 테라스석 포함 여섯 자리가 전부인 식당을 차렸다. 순박한 유럽식 식사를 차려주고 싶었지만, 팬케이크나 와플과 같은 미국식 브런치에 익숙한 손님들에게 프리타타나 라따뚜이와 같은 메뉴는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도 기대했던 것보다는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물론 아직 돈이 되는 정도도 아니고, 하루 중 꼬박 열네 시간을 일한다. 그래도 작은 식당에선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곧바로 느껴져서 보람차다. 그러곤 생각한다. “작게 하길 잘했다.” 취재하러 온 김에 점심을 먹고 가겠다고 했더니 에그 플로텐틴과 크레페를 내준다. 아침을 걸러 약간 배가 고팠는데도 이상하게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급해지질 않아 재료를 평소보다 꼭꼭 씹었다. “서울의 한가운데 위치한 동네지만, 의외로 정적이고 편안한 곳이 여기잖아요. 도시 사람이 먹는 음식이지만 순박한, 내가 하고 싶은 음식과 이 동네가 꽤 닮은 것 같아요”.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서 좋다고 하는 사장님이 있으니, 괜스레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점심식사였다.

13:30 테이크아웃 드로잉 한남동
오늘도 한 번에 찾아가는 데 실패했다. 이태원역과 한강진역 사이 대로변에 위치한 꽤나 큰 건물인데도 매번 지나치고만다. 흔히 꼼데가르송 길이라 불리는 이곳은 요즈음 워낙 공사하는 데가 많아 가림막 천지인데다, 이 일대 길거리엔 늘 해외 관광객을 실어다 나르는 전세 버스가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다. 테이크아웃 드로잉은 현대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장이자, 그 일을 누구의 지원금도 받지 않고 꾸려나가려 애쓰는 카페다. 지난 가을 5주년을 맞은 이 프로젝트 그룹은 성북동, 대학로에 이어 이태원을 세 번째 장소로 선택했다. 그런데 한남동에 문을 연 이후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단다. 성북동 테이크아웃 드로잉에 자주 놀러 오던 손님 중 상당수가 사실은 한남동에 살고 있더라는 거다.“ 아마 새로운 것, 색다른 것에 부딪쳐보겠다는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들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현대 미술도, 우리의 활동도 난해한 개념일 수 있지만 그분들께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죠.” 테이크아웃 드로잉의 기획과 홍보를 맡고 있는 송현애의 말이다. 새로운 걸 찾는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해보려는 이들이 만났으니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새로운 것과 옛것이 충돌하며 몸살을 앓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테이크아웃 드로잉은 그 동네의 변화를 가끔은 흥미로워하며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관찰하는 중이다. 한남동의 지금을 관찰하는 건, 두 달간 이곳에 세들어 작업 중인 시인이자 건축가 함성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 <두 집 사이>라는 이름의 발표회를 위해 마치 미래에서 온 고고학자처럼 성북동과 한남동을 오가며 물소리, 돌멩이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채집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채집된 소리들은 성북동 테이크아웃 드로잉에선 하프 연주로, 돌멩이와 같은 사소한 물건들은 한남동 테이크아웃 드로잉의 천장과 바닥에 전시되어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그러니까 어느 날 길을 가다 이곳에 들르면, 이태원의 미래까지는 예측하기 힘들더라도 이태원의 지금은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15:30 밀리미터밀리그람
햇빛이 비치자 타일의 깨진 귀퉁이가 번쩍 빛났다. 밀리미터밀리그람이 사옥을 이태원으로 옮긴 지 이제 채 반년도 안 됐지만, 군데군데 깨진 타일은 그 이상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지어진 이 건물로 들어오면서 MMMG 사람들은 이 건물의 역사를 지우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 이사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하고 칠하여 자신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데 비해, MMMG는 반대로 깨끗이 청소하고, 닦고, 지난 30년 동안 덧입혀온 내장 재료 또한 모두 철거했다. 그렇게 원래의 모습을 찾아낸 건물 1층엔 MMMG의 디자인 상품이 진열된 스토어와 여유롭게 기대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카페가, 2층엔 ‘프라이탁’의 모든 상품을 만나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스토어가, 마지막으로 지하 1층엔 일본의 ‘가리모꾸 60’과 우리나라의 ‘아이네 클라이네 퍼니처’ 가구들을 전시한 쇼룸 그리고 그들 자신의 사무실이 자리 잡았다. 물건들이 풍성히 진열되어 있는 매대 사이사이를 걸어다녔다. 꽉곽 채워넣기 보다는 부딪히지 않을 만큼 적당히 비워놓은 공간에선 여유가 느껴졌고, 문구와 가방 그리고 가구를 만질 때마다 사람이 만든것이 확실한 물건에서만 전해지는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져왔다.

16:30 길종상가
“처음에 어떻게 이 동네에 작업실을 여셨어요? ” 길종상가의 관리인 박길종은 최근 이렇게 물어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냥 2009년 여름, 친구와 같이 집을 구하기 위해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란 카페를 둘러보다가 위치도 좋고 그래서 결정했을 뿐이란다. 길종상가는 홈페이지 운영 방침에 써놓은 그대로 스스로를 박가공이라 칭하는 관리인이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들을 이용’해서 ‘적절한 금액’을 받으며 ‘물건이나 인력, 그 외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종합 상가다. 그러니까 주문을 받아 책장, 책상, 의자와 같은 가구를 만들기도 하고, 가끔 어디 수도관이 터졌다거나 하면 가서 돕기도 한다. 가구를 만들고 배송하는 일이야 평생 A/S 조건으로 합당한 비용을 받지만, 수도관을 고칠 땐 비타민이나 책으로 수고비를 대신하기도 한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운 목공일이 재미있어서 시작하게 됐다. 다행히 이곳에서 버는 돈으로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면서 소소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정도는 된다고 했다. 지금은 홈페이지(bellroad.1px.kr)를 통해서만 의뢰를 받지만, 언젠가는 숍도 열고 하면서 ‘고속터미널 못지않게 전국의 인력과 물건들이 몰려드는’, ‘한국은행처럼 현금을 보유할지도 모르는’ 길종상가를 만들고 싶다. 요즘 같은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이렇게 하나하나 수작업 주문 제작을 해서 언제 그렇게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고요하나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대기업이 만들어지는 데 몇십 년이 걸렸잖아요. 길종상가는 겨우 1년도 안 됐는걸요.”

18:00 스탠딩 커피
바람이 많은 날이었지만, 경리단길에 위치한 스탠딩 커피 앞에는 여전히 선 채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동네에서는 꽤 유명해진 덕분에 얼마 전엔 상수역 근처에 2호점도 열었다. 사업이 쭉쭉 뻗어나가니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김상혁 바리스타는 꽤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2호점을 내고 나서도 우리가 마음을 담는 게 가능할지 해서요. ” 원래 극단과 무용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항상 이 길로 출근하면서 묵직한 커피가 아쉬웠다. 특히 바리스타인 초등학교 친구의 커피맛을 가장 좋아했던지라, 함께 이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만약 셈에 능했다면 이 구석진 동네에 차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양쪽으로 큰 고깃집이 자리하고 있어, 처음엔 옆 집에 고기 먹으러 왔던 손님들이 우연히 커피를 마시다가 입에 안 맞는다고 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앞에는 하늘이 보이고 옆으론 산이 보이고 이 동네만의 삶이 추정되는 여기가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 친구 또는 극단이나 무용단에서 함께 일한 후배들로 이루어진 ‘스탠딩 가이즈’들이 벌써 9명이 됐다. “처음에 이렇게 큰 사이즈의 컵을 생각하신 계기가 있어요?” 스탠딩 커피를 상징하는 큰 컵에 대해 물었더니 어쩌면 환경 운동 하는 분들에게 혼날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시작했다. “남아서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이 배불렀으면 했어요. 하나 사서 나눠 먹더라도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윤을 안 남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19:00 장진우 식당
얼마 전부턴 ‘수요 만찬’을 대접하기도 하지만, 원래 평일엔 트위터(@321project) 등으로 예약을 하고 찾아오는 손님만 받는다. 장진우 식당의 요리사 장진우의 직업은 사실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처음 이 동네에 놀러 왔을 때, “이 동네 뭐야, 무서워” 그랬단다. 그런데 자꾸 정이 들었다. 일요일이면 정장을 입고 교회에 가는 흑인, 맥주를 집에서 만들어 나눠 주는 미국인, 그리고 그런 낯선 모습에 익숙한 한국 할머니가 공존하는 곳이 이 동네였다. 원래는 책을 쌓아둘 서재를 만들고 싶었지만, 놀러 온 친구들이 배고픈 꼴을 볼 수가 없어서 요리를 하고, 그러다 보니 식당이 됐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메뉴는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4명 이상 먹는 음식’이라고 대답이 돌아왔다. 음식을 해서 먹으면 추억이 생기니까, 아마 오늘 먹은 카레가 5년 후에도 생각날 거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그런 요리사 장진우 앞에서 차마 음식을 남길 수 없어, 그릇 한 가득 꾹꾹 눌러 담아준 돈까스 카레밥을 싹싹 긁어 먹었다

21:00 RUF XXX
“이 동네 뭐가 제일 좋아요?”라고 물었더니 “물이 깨끗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RUF XXX는 남산 하얏트 호텔 앞의 꼬불꼬불한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자리해 남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무언가 더 거창한 대답을 해도 됐다. “정말이에요. 여기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가 수도 관리가 철저해요. 몇 번 검사했는데 기준치보다 좋게 나왔다니까요.” 이 공간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는 ‘규리씨’ 성규리가 대답했다. 원래는 사진가 김형남이 스튜디오로 쓰기 위해 발견한 공간이었다. 우연히 대중음악 좀 하던 제이슨이란 친구가 스태프로 들어오면서 곡을 만들어서 공연을 하게 됐고, 2층을 극장으로 만들었다. 그러곤 홍대에서도 ‘가장 못나가고 인기 없으면서도 열정은 충만한’ 인디 밴드들을 불러다가, 함께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그랬다. 그러다 보니 그들끼리 함께 모일 공간이 필요해 1층은 카페와 바로 꾸미게 됐다. ‘RUF XXX’는 이 공간의 이름이자 극단의 이름이기도 해서, 다른 곳에 초대받아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밤 9시에 공연을 하다 보니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앞집, 뒷집, 옆집 이웃들이 놀러 오면 음료 한 잔은 공짜로 준다고 했다. 분주해진 가로수길에서 도망왔다면서 “여기 좋지 않아요? 같은 가격에 청담동 같은 데 있으면 닭장 같잖아요”라고 신나하는 그녀에게 “여기도 혼잡해지면 다시 도망갈 거예요?”라고 반문했더니 큰 눈이 더 커졌다. “아뇨.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슬기
포토그래퍼
김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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