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데뷔와 동시에 태버는 음악 신에서 뜨거운 발견으로 떠올랐다.
늑대의 하울링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목소리, 음산하고 축축한 사운드는 당시 메인스트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결이었다. 시간이 흘러 때로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노래하기도, 때로는 어긋난 사랑을 이야기하던 태버가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조금 더 깊숙이 ‘나’에 침잠하기로 했다. 새 소식과 함께 찾아온 태버를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만의 하울링이 무대를 가득 채울 예정이다.

곧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를 앞두고 있어요. 이번이 첫 참가죠?
태버 맞아요. 예전에 프렙의 무대를 보러 관객으로 간 적은 있어요. 다른 페스티벌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자유롭게 즐긴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처음 서는 무대인만큼 아무래도 관객이 제일 기대돼요.
무대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도 엄청 고민 중이에요. 처음에는 재즈 페스티벌에 맞게 밴드 구성을 휘황찬란하게 가져갈까 생각도 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 마인드가 좀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태버’. 지금은 노선을 이렇게 틀었어요. 저를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가장 저다운 모습을 보여줄 무대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접근 중이에요. 새로운 EP가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초여름에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준비는 거의 끝났어요. 이제 마무리하는 단계예요.
이번이 세 번째 앨범이에요. 이전 작업과 어떻게 다를까요?
2020년 <Deep End Mix Tape>를 작업할 때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 한창 빠져 있었어요. 워낙 SF 영화를 좋아해서,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사운드트랙으로 쓰이면 어떨까 상상하면서 만든 앨범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운드가 워낙 딥하다 보니 정작 공연장에서 분위기가 묘해질 때가 많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두 번째 <Madness Always Turns to Sadness>는 사람들이 조금 더 신나게 들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갔어요. 팝적인 무드도 넣으면서 ‘태버가 이런 것도 하네?’ 하는 느낌도 주고 싶었고요. 이번에 나올 앨범은, 글쎄요. 듣는 사람마다 갈릴 것 같아요.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혹은 완전히 다르다고 하거나.
어떤 이야기에서 출발한 앨범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 말고, 원래의 나,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성격을 어떤 것에 빗대 표현한 곡이 많고요. 뭐랄까, 지금이 아니면 이런 얘기를 영영 못할 것 같더라고요. 어쨌든 지금이 커리어 초반부잖아요.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작업하면서 ‘내가 이랬나’ 싶어 낯설어지는 순간도 있었을 듯 해요. 나를 가장 잘 알기도, 모르기도 하는 게 결국 나니까.
어릴 때 기억을 많이 꺼내봤어요. 그땐 365일 내내 검은 옷만 입고 다녔거든요(웃음).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딱 질색이었고요. 웬만하면 어디에도 섞이지 않고 혼자 조용히 있는 애였어요.
최근 인스타그램에 이모(Emo) 키즈들 사진을 올리셨잖아요. 혹시, 그 모습?
아, 그렇진 않고요(웃음). 그런데 그때의 제 모습이나 지금 사람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다들 어두운 옷을 입고, 표정도 어딘가 어두워 보이잖아요. 그런 데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어요.

어쩐지 사운드 역시 꽤 다크하겠는데요.
다크해요(웃음). 1980년대 무드가 군데군데 들어가 있어요. 그때가 고스 밴드 전성기였잖아요. 대표적으로 더 큐어가 있고요. 그런 음악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그 당시 특유의 리듬감이나 악기를 가져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그대로 따르는 건 싫어서 제 방식대로 많이 바꿨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는 희석된 느낌이 있을 거예요.
평소 시각적인 것에 예민하다는 인상을 받아요. 직접 연출에 참여한 MV만 봐도 그렇고요. 이번에 앨범을 준비하면서는 어떤 이미지에 가장 꽂혔나요?
아무래도 고스 밴드들의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죠. 그런데 꼭 작업 때문이 아니어도, 재미있는 사진을 디깅하면서 모아두는 습관이 있어요. 10년 전쯤 자주 드나들던 텀블러를 요즘 다시 열어보고 있거든요. 옛날에 저장해둔 것들을 뒤져보면서 생각해요. ‘진짜 미친놈이었구나’(웃음). 세상에 공개되면 안 될 것들이 수두룩하더라고요. 그만큼 컬처 자체에 관심이 컸고, 어리다 보니 뭔가를 걸러내기보다 그냥 전부 흡수했던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들을 때, 가장 끝내줄까요?
확실한 건, 밤이라는 거예요. 모든 곡이 밤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새벽 2시쯤, 사람 없는 공원을 혼자 걸으면서 들으면 딱일 거예요.
데뷔 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2020년 등장과 동시에 신에서 크게 주목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올해의 발견’이나 ‘올해의 루키’ 같은 수식도 따라붙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맥락이 있었던 듯해요. 하나는 레이블 ‘유윌노우’와 딘이 픽한 아티스트라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당시 메인스트림에서 드문, 어둡고 축축한 무드의 음악을 한다는 점이었죠. 당시의 그런 ‘샤라웃’ 반응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요?
사실 어떤 계산을 한 적은 없어요. 데뷔 앨범은 그냥 그 시절 제가 좋아한 것들을 최대한 담아낸 결과물이거든요. 지금도 작업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고요.
“어둡고 싸늘한 사운드도 대중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 무렵 남긴 말이죠.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요?
그런데 요즘은 오히려 어둡고 싸늘한 사운드 자체가 메인스트림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다면, 요새는 ‘이런 것까지 사람들이 좋아하네’싶거든요. 그래서 가끔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하는 걸 할 수 있을까’ 상상해요.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싱글 단위의 작업은 이지 리스닝에, 꽤 명확한 대중적 코드를 품고 있죠. 디 인터넷의 보컬 시드가 피처링한 ‘007’이나
딘과 함께한 ‘Chi-Ka’가 대표적이고요. 그럼에도 태버 특유의 ‘공허한’ 무드는 기저에 단단히 깔려 있어요.
제 기질 탓인 것 같아요. 제가 아주 살갑거나 사랑스러운 성격은 아니거든요. 말도 거의 없고, 주로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필연적으로 공허한 감정에 닿아 있어요. 그런 감정이 익숙하기도 하고요.
뮤지션으로서 태버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일까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 아닐까요.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비주얼까지 함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작업을 즐기기도 하고, 자신도 있고요.
태버의 무기를 이야기할 때 목소리를 빼놓을 수 없잖아요. 늑대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낮게 깔리는 음산함도 느껴져요. 수많은 뮤지션이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일 텐데, 만약 시대와 국적을 떠나 단 한 명의 아티스트와 작업할 수 있다면 누구를 소환하고 싶어요?
멋진 아티스트가 너무 많아서 한 명을 꼽는 건 좀 뻔한 일이 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얼마 전 팬분께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고민하다 ‘영(Young) 태버’라고 답했어요.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진심이기도 해요. 만약 내가 쉰 살이 된다면, 스무 살의 나에게 채널링을 하고 싶을 것 같거든요. 늙은 제가 오히려 젊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걔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냥 막 하거든요. 정해진 규칙 없이 톤도 자유롭게 쓰고요.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상태라 더 막 나가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좋아요.

지금 속해 있는 유윌노우는 태버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딘, 라드뮤지엄 같은 아티스트들과 함께하고 있는데, 대외적으로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팀은 아니다 보니 어딘가 베일에 싸인 집단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아티스트는 종종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독단에 빠지곤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옆에서 전혀 다른 시각이나 재미있는 피드백을 던져줄 때가 많아요. 서로를 다른 관점으로 계속 관찰해주는 느낌이랄까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많고요. 또 자주 느끼는 건, 결국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 팀이라는 거예요. 다들 계속 더 좋은 걸 만들고 싶어 하고, 그걸 끝까지 좇고, 고민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만약 유윌노우의 새 식구를 뽑는 가상의 구인 공고를 낸다면, 어떤 자격 요건이 붙을까요?
가끔은 너무 ‘끼리끼리’ 모여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웃음). 오히려 완전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 들어와서 밸런스를 맞춰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곧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를 밟습니다. 뮤직 페스티벌을 가장 제대로 즐기는 사적인 방법이 있다면요?
무조건 뛰는 것. 어떤 음악이 나오든 그냥 재미있게 노는 것. 그게 전부죠.
만일 어떠한 제약도 없다고 가정해볼까요? 태버가 그리는 꿈의 무대는 어떤 형태인가요?
어릴 때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게 스타디움 공연이에요. 그런 무대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니까 연출도 훨씬 자유롭게 할 수 있잖아요. 무대 디자인에 관심이 많거든요. 또 제가 무대 위에서 뛰는 걸 워낙 좋아하기도 해요. 스타디움처럼 넓은 곳에서 숨이 턱끝까지 차서 쓰러져도 상관없다는 기분으로, 그냥 마음껏 뛰어다니며 공연하는 게 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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